• 내가 본 사람들, 이들은 누구인가?
        2008년 06월 08일 03:0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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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일 저녁 촛불문화제에 모인 사람들이 어떠하다고 한 마디로 전하기는 거의 불가능할 듯싶다. 이순신 동상 앞에서부터 남대문까지 그 거대한 물결을 한 눈에 보거나 듣는다는 게 어려울 뿐더러, 거기 모인 사람들 자체가 제각각이다. 사람들은 문화제(주최측 추산 12만명) 때보다 행진(20만명) 때 더 많이 늘어났다.

    이들은 누구인가

    덕수궁과 시청 사이에 설치된 연단을 향해 앉은 태평로의 사람들은 어느 정도 일사불란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지만, 연단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한 사람들은 연단을 보거나 연설을 듣지 않고 끼리 모여 놀고 있었다.

    특히 서울시청 잔디광장의 촛불 인파는 그야말로 나들이객이었으니, 아예 깔개를 준비해와 아이들과 함께 즐기고 있었다. 주최 측도 이에 맞추어 집회 중간에 잃어버린 아이 찾는 안내방송을 계속 내보낸다.

       
      ▲서울시청 잔디광장의 재기발랄한 벽보그림들 (사진=이재영 기획위원)
     

    인파를 헤치며 겨우 이순신 동상 앞에 다다르니 전경차를 죽 이어 붙여놨는데, 아예 장벽이다. 전경차 위에 철재 가로막까지 덧대어 놓아 팔레스타인 분리 장벽 꼴이다. 팔레스타인의 ‘공격’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쌓은 장벽이 이스라엘을 단절시키고 있는 것처럼 이명박네는 국민들로부터 자신들을 단절시키고 있었다.

    촛불 비판하는 1인 시위자 "불쌍하다"

    ‘과격파’들이 “경찰 책임자 나와라, 차 치워라”고 외치는 곁에서 중늙은이 대여섯이 기념사진을 찍고, 노무현 때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냈던 이정우 교수가 가족들과 차도를 점거하고 있었다.

    촛불시위를 비판하는 1인 시위자를 둘러싸고 구경하는 사람들은 귓속말로 “불쌍하다” 속삭이고, 여름밤 동네 공원에 놀러가는 채비로 나온 가족들은 데리고 온 강아지에게 몸 현수막을 붙여주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가장 눈에 띄는 그룹은 회원 가입 캠페인 중인 ‘다함께’였는데, 운동권 대개가 몸사리는 촛불문화제에서도 조직적 목표를 꿋꿋하게 견지하고 있으니, 역시 훌륭하다.

    광화문 사거리까지 둘러보는 데 한 시간, 시청 앞으로 돌아온 여덟시 반에는 이미 행진이 시작돼 있었다. 시위 행렬의 이동에 따라 주변 가게들에는 손님이 넘쳐나고, 유흥주점 웨이터들은 문을 열고 재밌어라 구경한다.

       
     ▲무엇이 두려운지 이명박 정부의 ‘장벽’은 높기만 하고, ‘장벽’ 밖의 사람들은 흥겹다.
     

    남대문 조금 못미친 곳에서는 ‘아빠’가 초등학생임직한 사내아이들의 사진을 찍어주고 있었다. 남대문에서 명동으로 길을 틀어 남대문로 지하상가에서 이우학교 정광필 교장을 만났다. 정광필씨는 자신보다 키가 더 큰 아들에게 “아빠하고 노동운동 같이 한 친구야”라고 소개한다.

    한동안 소원했던 역전의 용사들이 다시 거리로 나선 모양이다. 운동권 중년들이 아이들에게 현장 교육을 하는 것인지, 물러앉아 있던 부모를 아이들이 잡아끌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2008년의 촛불에는 오랜 역사가 쌓여 있다.

    1열부터 3열까지

    한국은행 분수대에 이르니 마치 80년대 가투 분위기다. 앞섰던 사람들이 분수대에 올라 대열을 지켜보며 박수를 친다. 한 달 전 KBS 이사장을 그만둔 김금수 선생이 인도 한 켠에서 혼자 시위대를 구경하고 있다.

    롯데백화점, 종각역을 거쳐 다시 광화문 사거리에 이르러서야 행렬 선두를 따라잡을 수 있었다. 9시 20분, 교보문고 앞 방송차량에서는 ‘사랑도 명예도~’가 나오고, “……하도록 하겠습니다. 청년학생 여러분, 노동자 선배님들” 어쩌구 운동권 사투리가 거슬린다.

    대학생과 민주노동당 중심의 ‘돌격조’가 서대문과 안국동 쪽으로 가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광화문 사거리에 남았는데, 그들 역시 크게 셋으로 나뉘어졌다.

    이순신 동상 앞 ‘1열’ 사람들은 “전경 여러분, 우리는 여러분의 적이 아닙니다. 협조해주십시오. 차 빼주십시오”라고 대전경 선무방송 중이었고, 광화문 사거리 ‘2열’ 사람들은 방송차량 주변에서 구호를 외치고, 동아일보 근처 ‘3열’ 사람들은 이리저리 흩어지고 모여 놀고 있었다.

    ‘3열’ 사람들은 늦은밤 가족 야유회를 온 것처럼 어른들은 맥주를 마시고, 아이들은 햄버거 따위 간식을 먹고 있었는데, 그 중에는 민주노총의 전현직 임원들도 있었다. 단상에 앉거나 시위대 선두에 서지 않은 그들이 낯설다.

    앞으로의 전망이 궁금한 지식인들

    ‘3열’ 인도 턱에 앉아 있던 금융경제연구소 홍기빈 연구위원은 “뭐, 사람들 일부러 모을 필요 있나요”라고 말한다. 17대 국회 때 민주노동당 정책 일을 했던 오건호 박사는 “집에 계신 마나님께 상황 보고하러 나왔다”고 둘러댄다.

    교수노조와 민교협의 교수들이 둘러앉아 있는 곳을 찾으니 오히려 “지금 상황을 어떻게 봐요?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아요?”라고 되묻는데, 최고의 지식인인 그이들이 답을 내놓지 않고 질문을 던진다는 자체에 요즘 상황의 대개가 담겨 있지 않을까?

       
     ▲왼쪽부터 오건호씨 일행, 교수노조, 다함께, 김부선씨와 최현숙씨
     

    10시 30분, “사직동과 안국동 쪽에서 싸움이 시작됐습니다”라는 방송차량의 속보가 나오자마자 광화문 현장에서는 엉뚱한 싸움이 시작됐다. 방송차량 주변 사람들이 방송차량을 향해 “자유발언 시켜줘, 마이크 줘”라고 외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내려와, 차 빼라”라고 전경에게 외치던 구호를 외쳐댔다. 방송차량의 방송은 멈췄고, 가두 토론이 시작됐다.

    상황이 이런데도 이명박 대통령은 “촛불 배후에 주사파가 있다”고, 북한 관료들은 “남조선 전교조 선생님들이 교육을 잘해 학생들이 촛불시위를 하고 있다”고 황당무계한 소리들을 하고 있다니, 남북의 통치자들끼리는 세상에 눈감는 관념 통일을 이룬 모양이다.

    한심한 남북의 통치자들

    여기저기서 혼란이 계속되는 와중에도 꿋꿋한 이들 있었으니, 또다시 ‘다함께’다. 그들은 물건 사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룬 신문로 편의점 앞에 가판을 설치하고 ‘조중동 쓰레기 신문에 맞장 뜨는 거리의 진보주간지 <맞불>을 판매’하고 있었다. 무릇 운동을 하려면 이처럼 초지일관, 확고부동해야 하는 법이다.

    종로 쪽으로 나가보니 한국사회당과 진보신당의 깃발이 있다. 종로에서 국회의원으로 출마했던 최현숙씨와 영화배우 김부선씨에게 “어때요?” 물었더니 “재밌지” 답하고는, 한숨 자야겠다며 깔개에 드러눕는다. 지난 20년을 언제나 선두에 서곤 했던 인천의 노동자들은 “낯설어. 근데 부담 없어 좋아요”라며 밝게 웃는다.

    시외로 가는 막차를 타려는 사람들로 붐비는 종각역을 둘러보고 광화문 사거리로 돌아오니 12시께, 차량방송이 다시 시작되어 “노래하면 해산한다”고 전경들에게 애교성 협박 중이었고, ‘3열’에서는 율동 소모임의 재즈댄스 공연에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아무래도 ‘죽치기’에 들어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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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날 새벽까지 남은 시위대들은 경찰과 격렬한 몸싸움을 벌였으며, 강경파대 온건파의 길거리 논쟁도 뜨거웠다.

    집회 참가자들이 지역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양상을 보이고 있지만, 이날도 전국 각 지역에서 촛불문화제가 진행됐다. 촛불문화제가 진행된 지역은 대전, 천안, 청주, 광주, 전주, 대구, 부산, 창원, 송탄, 평택, 오산, 파주, 춘천, 원주 등이었다. 특히 광주에서는 프로야구 경기가 벌어지는 무등경기장에서 촛불 퍼포먼스를 연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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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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