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mB 한번 만나자, from 효도르"
    By mywank
        2008년 06월 06일 08:4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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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대도 없고, 지정된 사회자도 없었다. 그리고 그 흔한 마이크 하나 없었다. 하지만 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즉석에서 자리를 만들고, 자유발언을 했다. 또 질서를 지켜가며 거리행진에 나섰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고, 주최도 없었다. ‘72시간 릴레이 국민행동’의 둘째 날, 시청 앞에 모인 시민들은 ‘광장의 주인’이었다.

    6일 오후 12시 서울 시청 앞 광장 한 편이 시끌벅적 했다. 50명이 조금 넘는 시민들이 모여, ‘미니 집회’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찍찍 vs 야옹’, ‘이명박 오빠 왜 이래’ 등 시민들은 직접 만들어온 피켓들이 눈에 띄었다. 또 몇몇 학생들은 ‘건강하게 자라고 싶어요’란 문구를 적힌 노란풍선을 들고 나와 미니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에게 나눠 줬다. 특히 꼬마들이 풍선을 받고 싶어 길게 줄까지 섰다.

       
      ▲6일 오후 시청 앞 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집회를 연 뒤 거리행진에 나섰다. (사진= 손기영 기자)
     

    자리가 마련되자, 즉석에서 사회자가 정해졌다. 초등학생인 딸에게 ‘민주주의 현장’을 보여주고 싶어, 아침부터 지방에서 버스를 타고 올라왔다는 중년 남성이었다. 사투리가 섞인 말투로 중간 중간에 실수를 하면서 미숙한 진행(?)을 했지만. 시민들은 박수를 치며 그를 격려했다. 사회자가 정해지자, 바로 자유발언대가 마련되었다.

    시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발언권을 달라고 손을 들었다. 짤막짤막한 시민들의 말에는 ‘골계미’가 묻어났다. 한 30대 남성은 자신의 손을 시민들에게 들며 “작년 이 손으로 이명박을 찍었다”며 “정말 내 손이 부끄럽다”고 말했다. 그는 이내 고개를 떨구며 말을 잊지 못했다. 하지만 시민들은 “괜찮아 괜찮아”를 외치며 그를 위로했다.

    이어 한 여중생은 “사회시간에 민주주의라는 것을 배웠다”며 “이명박은 국민의 의견을 무시하는데, 중학교 사회부터 다시 배우라”고 다그쳤다. 여중생이 발언이 끝나자 여기저기에 웃음이 터져 나왔고, “명박이는 사회시간에 졸았을 거야”라는 익살도 들렸다.

    다음으로 발언한 한 대학생은 “그동안 대학생들이 적극 나섰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해 여기 있는 동생들이나 어르신 분들에게 정말 미안하다”며 “우리는 ‘광장의 주인’이고, 저도 오늘 하루 종일 여러분들과 함께 이 자리를 지키겠다”고 말했다.

    시간이 지나자 50여명 정도로 시작된 ‘미니 집회’는 500여명이 넘는 시민들이 동참해, 제법 규모를 갖춰갔다. 또 사회자의 권유로 집회를 취재하고 있던 모 방송국의 촬영기자가 자유발언에 참여해 시민들에게 큰 박수를 받기도 했다. 또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은 대중가요를 즉석에서 개사해 부르기도 했다. <고래잡이>를 개사한 <MB 잡이>는 집회장 주변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72시간 릴레이 국민행동’ 행사장 풍경 (사진=레디앙 손기영 기자)
     

    이날도 서울시청 앞 광장 주변에서는 특수임무 수행자들의 위령제가 진행되었다. 양측 간에 우발적인 충돌을 막기 위해서, 경찰들이 폴리스 라인을 두르고 경계근무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72시간 릴레이 국민행동’에 참여한 시민들은 최대한 특수임무 수행자회 측과의 마찰을 피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행사장 주변에는 시민사회단체들이 준비한 다채로운 이벤트들이 진행되고 있었다.

    참여연대가 준비한 ‘귀여운 머슴, 2mB에게 보내는 100人 100話’ 코너에는 많은 시민들이 몰려들어 이명박 대통령에게 남기고 싶은 말은 현수막에 있는 ‘말풍선’에 적어 넣었다. “2mB 한번 만나자, from 효도르”, “너 때문에 잠을 못 자겠다. 학생들 공부하게 제발 말 좀 들을래” 등 이명박 대통령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 문구들이 눈에 띄었다.

    또 패러디 포스터에 얼굴을 넣어 사진을 찍는 ‘I ♡ 민주주의’라는 코너는 특히 꼬마들의 인기가 높았다. 긴장하는 고양이가 그려진 포스터에 얼굴을 집어넣고 부모님에게 사진을 찍어달라는 한 꼬마는 연신 “명박아 야옹~야옹”을 외치며, 주변 시민들에게 인기를 얻기도 했다.

    오후 2시 반쯤 되자, 시청 한편에서 진행되고 있던 ‘미니 집회’ 참가자들은 어느 덧 1,000여명이 훌쩍 넘었고, 광화문 방향으로 행진을 시작했다. 앞에 나와 행진을 하자고 부추기는 사람도 없었다. 즉석에서 토론자리가 마련되었고, 다양한 시민들의 의견이 모아져 서 결정된 것이다.

    시민들의 자유로운 거리행진은 광화문 앞, 안국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길목이 막혔다. 항상 그렇듯이 경찰 버스가 청와대로 향하는 길을 봉쇄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부 ‘매파’ 시민들은 경찰버스 틈새를 지나 “청와대로 가자”고 외치기도 했고, 경찰버스를 발로 차며 “적극적인 행동을 보여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대다수 시민들은 “다친다. 그만하자”, “평화적으로 행진하자”를 외치면서 이들의 행동을 말렸다. 또 행진대열이 지나가는 곳에 종로경찰서가 나타나자 “너희들 때문에 우리가 고생 한다”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고, 헌법재판소 주변을 지나자 한 고등학생은 건물을 가리키며 “여기서 그분 탄핵시킬 수 있다”며 옆에 있는 친구에게 헌법재판소를 소개하기도 했다.

       
     ▲오후 3시 40분 경 거리행진 후 광화문 주변에 도착한 시민들의 모습 (사진=손기영 기자)
     

    거리행진 동안 경찰은 길목을 봉쇄하며 집요하게 시민들이 움직임을 방해했지만, 시민들은 이에 동요하지 않았다. 또 행진 방향을 결정할 때도 중간 중간에 즉석 토론을 벌이며, 서로의 의견을 모았고, 자발적으로 주변 교통을 정리하며 다른 시민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시민들의 거리행진 대열이 오후 3시 40분 다시 광화문에 이르자, 1,000여명인 시민들의 숫자도 4,000명이 훌쩍 넘었다. 광화문에 도착한 시민들은 길목을 막고 있던 경찰버스 앞에서 둘러 앉아, 즉석 공연과 자유발언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또 일부 여고생은 민들레 등 들풀을 꺽어 와 경찰버스 창살에 끼워 넣으며 ‘평화시위’를 강조했고, 경찰버스 위에 있던 전경들에게 직접 준비해온 빵을 던져주기도 했다.

    거리행진에 참여한 박관식 씨(29)는 “지금까지 2번이나 연행되었는데, 이젠 오기가 생겨서 그런지 거리에 나오지 않으면 좀이 쑤신다”며 “집에서 부모님이 여기에 나오지 못하게 지갑하고 핸드폰도 몰래 숨길 정도”라고 말했다. 이어 “이명박이 시민들의 말을 자꾸 씹으니깐, 시민들이 휴일에도 ‘우리의 말을 들어 달라’며 거리로 계속 나오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양다현 씨(17)는 “지금 국민들이 들고 일어난 상황인데, 휴일이라고 집에서 쉬고만 있을 수 있냐”며 “정부에서 국민들의 당연한 권리를 챙겨주지 않으니깐, 누가 시키지 않아도 시민들이 스스로의 권리를 찾기 위해 행동 하고 있다”고 말했다.

    염원철 씨(34)는 “시민들은 누가 만들어 놓은 자리에 모여, 시키는 데로만 따라가는 존재들이 아니”라며 “스스로 자리를 만들고, 우리의 다양한 의견을 모아 자발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민주시민’의 모습”이라고 강조했다.

       
      ▲오후 4시부터는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국민대책회의 주최로 ‘이명박 정부 심판 범국민대회’가 열렸다. 행사 후 바로 시민들은 시청 앞까지 거리행진에 나섰다. (사진=손기영 기자)
     

    오후 4시부터는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주최로 ‘이명박 정부 심판 범국민대회’가 열렸다. 하지만 3,000여명의 시민들이 모이자, 주최 측은 별다른 행사 없이 오후 4시 20분 경 바로 거리행진을 진행했다.

    대학로에서 출발한 시민들의 거리행진 대열에는 다함께․노동자의 힘․보건의료 노조․공공노조․서울지역 대학생 연합회 등 운동권 단체의 깃발이 눈에 많이 띄었다. 종로 5가를 거쳐 시민들의 거리행진이 종로 3가 부근 종묘공원에 이르자, “빨갱이들 잡아야 한다”라고 말하며 주변에서 있던 노인들의 항의가 이어졌다. 흥분한 한 노인은 소주병은 손에 있던 소주병을 거리행진을 벌이고 있던 한 시민을 향해 던지기도 했다.

    하지만 거리행진의 길목마다 다른 시민들의 격려 박수가 이어졌고, 주변을 지나는 많은 시민들도 대열에 합류했다. 또 주변에서 노점상을 하는 상인들도 잠시 일손을 멈추고 거리행진을 벌이고 있던 시민들을 격려했다.

    홍성표 씨(27)는 “아까 종로 근처에서 약속이 있었는데, 그냥 인도에서 거리행진을 지켜볼 수 없어 같이 동참하게 되었다”며 “낼 휴일인데 오늘 한번 날을 세보겠다”고 말했다. 이어 종로주변에서 노점상을 운영하고 있는 이영순 씨(56)는 “나도 같이 했으면 좋겠는데, 장사 때문에 그렇지 못해 미안할 따름”이라며 아쉬운 마음을 나타냈다.

    대학로에서 출발한 거리행진 대열은 저녁 6시 경 서울시청 앞 광장에 도착했고, 어느 덧 1만 여명이 넘는 시민들이 행진에 동참하고 있었다. 또 광화문에 있던 5.000여 명의 시민들도 같은 시간 서울시청 앞 광장에 도착해, 저녁 7시에 진행될 촛불대행진에 합류했다.

    한편, 이날 오후 청와대 수석비서관 전원은 6일 ‘쇠고기 파동’ 등과 관련, 책임을 통감하고 류우익 대통령실장에게 일괄사의를 표명 했다. 청와대 참모들의 일괄사표는 한승수 국무총리를 비롯한 내각의 거취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여, 정국의 중대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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