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오른쪽 깜빡이 켜고 역주행
        2008년 06월 06일 07:1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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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2시간 연속농성’의 시작은 축제한마당으로 치러졌다. 진보 양당과 참여연대를 비롯한 수많은 단체들의 천막이 서울광장을 둘러쌌다. 시민들은 전경차를 사이에 두고 경찰과 차단된 가운데 제재 없이 농성의 첫날을 축제 분위기로 보냈다.

    하지만 자유발언과 흥겨운 노랫말 속에 숨어있는 ‘반정부 의식’는 축제분위기를 넘어 대정부 투쟁의 본격적인 시작을 눈앞에 둔, 약간의 비장함도 서려있었다.

       
      ▲경찰의 강경진압을 겪었지만 시민들은 여전히 ‘신나게’ 놀았다.(사진=정상근 기자)
     

    이전의 촛불집회와는 달리 이번 촛불집회는 다소 긴장된 분위기에서 시작되었다. 북파특공대 등 특수임무 수행자회가 현충일을 맞아 갑자기 시청광장에서 위령제를 지내는 탓이었다. 거점을 뺏긴 촛불문화제 참가 시민들은 광장 전체에 위패를 세워놓은 특수임무 수행자회와 곳곳에서 시비가 일었고 다수의 시민들이 이를 막으며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시민들은 특수임무 수행자회를 보며 “신발이나 옷이 새 거다”, “특수임무 수행자회 회장이 이명박 대통령 선거운동을 했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한편 특수임무 수행자회의 해당 홈페이지에는 원래 행사가 판교로 되어있었으며 갑작스럽게 시청으로 옮겼다는 공지들이 떠 있다. 이와 관련해 복수의 특수임무 수행자회 관계자는 “모르는 일”이라며 답변을 회피했다.

    일부 몸싸움까지 벌어졌던 험악한 분위기였지만 촛불문화제를 준비하는 시민들의 분주한 움직임은 계속되었다. 인천의 한 여고 교복을 입고 촛불을 나눠주는 자원봉사를 하던 ‘촛불소녀’ 한 모양(19)은 “오늘 졸업앨범 찍는 날이라 조금 일찍 끝났다. 친구들과 4시 30분부터 여기 와 있었다”라고 말했다.

       
    한 모씨가 시민들에게 양초를 나누어 주고 있다.(사진=정상근 기자) 
     

    그는 이어 “고 3이라 학업이 걱정은 되지만 지금은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닌 것 같다”며 “선생님들은 슬기로운 어른들에게 맡기라며 시위참가를 하지 말라고 하지만 그냥 있을 수 없어 나왔다”고 말했다.

    특수임무 수행자회와 충돌을 피해 인근 덕수궁 앞에서 시작한 촛불문화제는 여느 때와 같이 자유발언 중심으로 이어졌다. 초반 2000~3000여명에 불과했던 시위대의 규모는 각 대학 학생회에서 결합하기 시작하면서 삽시간에 3만여명의 규모로 불어났다.

    첫 번째 자유발언자로 올라온 서동진(30)씨는 “87년 6월 지금처럼 거리에 계신 분들에게 죄송하다는 말씀을 전해드리러 왔다”며 “그날 학교 선생님이 ‘거리에 나가는 사람들은 빨갱이’라고 해서 정말 그 말이 맞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생각해 보면 옳은 것을 잘못되었다고 가르치는 선생님은 선생도 아니다”라며 “광우병 이야기를 하는 시민들에게 사탄 운운하는 기독교와 뉴라이트도 큰 문제”라고 비판했다. 그는 “한 미치광이가 차를 몰고 시민들에게 달려들면 누가 막아서야 한다. 87년 그분들처럼 나라도 나서서 막겠다”고 말했다.

    이어 김유진(19)양이 무대에 올랐다. 고 3인 그는 “집에는 도서관 간다고 말했기 때문에 걸리면 안된다”라며 “어른들은 정치에 관심을 가지면 공부나 하라고 하는데 나야 고3이니 괜찮다고 해도 우리 아래세대까지 무조건 공부만 강요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문광현(60)씨는 “얼마 전 대통령의 형이 ‘촛불집회는 실직자들이나 오는 것’이란 말을 했다”며 “그런 것을 보면 이명박 정부는 촛불에 눈 하나 깜짝 안하는 것 같은데 그들이 항복할 때 까지 촛불을 끄지 말자”고 말했다.

    이어 “오늘 국회가 개원했는데 국회의원들은 국회에 가지 말아라, 국민 자존심을 팔아넘긴 이 정부에서는 국회에서도 악법만 쏟아져 나올 것”이라며 “물론 세비도 모두 국고로 반납해야 한다”고 말해 큰 박수를 받았다.

    뒤이어 민주공무원노조 중앙부처 노조 지부장들이 연단에 올랐다. 이들은 “상식적으로 잘못된 정책을 보고만 있는 것은 올바른 공무원이 아니다”라며 “대통령부터 동사무소 직원까지 ‘나라’를 위해 일하고 국민들과 함께 할 것”이라고 말했다.

       
    72시간 투쟁 첫날, HID에게 광장을 뺐겼음에도 거리에 3만여개의 촛불이 나왔다.(사진=정상근 기자)
     

    5일 ‘동맹휴업’을 결의한 성신여대 유승현(23) 총학생회장은 “이제는 한두 사람이 아닌 대학생들도 참여하는 상황에서 이 정부가 뭐하는지 모르겠다”며 “많은 사람들이 재협상을 위해 자기 몸을 불사르는데 그들은 우리에게 폭력을 사용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행진이 시작되었다. 약 5만여 명으로 불어난 긴 행렬이 이어졌고 출발한지 10분이 넘었지만 그때까지 시청에서 출발 못한 시민들이 많았다. 이전 거리행진과는 달리 유독 각 대학 깃발들이 많이 나부꼈고 이날 행진 선두는 계속 대학생들의 몫이었다.

    광우병 국민대책위원회는 ‘72시간 연속시위’를 위해 대형 방송트럭을 마련해 행렬을 안내했다. 광화문역에 도착한 시위대는 청와대 방향 이순신 동상 앞에 빈틈없이 세워진 전경버스를 빠르게 둘러쌓고 “불법주차 차 빼라”를 연호했다. 이어 대치가 길어지자 그 자리에 삼삼오오 모여앉아 거리의 축제를 시작했다.

    대학생들은 민중가요에 맞춰 춤을 추고 회사원들을 둘러 앉아 다과를 하며 야유회처럼 서로 노래를 시켰다. 교복 입은 10대들은 축제 사이사이를 누비며 구경하기 바빴고 기타소리, 노래소리 드럼소리까지 묘한 하모니를 이루며 교보문고 앞 4거리를 축제의 장으로 만들었다.

    회사에서 동료들과 함께 왔다는 방형기(43)씨는 “예전에 대학에서 시위할 때는 이런 모습 상상도 못했다”며 “지금은 시위를 하러 온 것이 아니라 놀러온 것 같다. 저 전경버스 뒤에 전경이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과 있으니 두려운 느낌은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K대학교 2학년 조민희(20)씨는 “지난 주말 평화로운 시위대를 강경진압 하는 것을 보고 마음에 욱하는 기분이 들어 ‘내가 가만있을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며 “시민들이 광장에 쏟아져 나온 것이 오랜만인데 나 역시 평생 기억에 남을 수 있는 역사적인 자리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밤 늦게까지 이번 촛불시위의 ‘배후’였던 중고등학생들도 많이 볼 수 있었다.(사진=정상근 기자)
     

    삼삼오오 모여 벌어지던 축제는 서울대 학생들을 중심으로 경찰청-청와대 행진을 시작하면서 잠시 끊어졌다.

    5천여명의 학생대열은 경찰청 앞으로 진출해 “우리 친구 왜 때렸냐”, “어청수 나와라”를 외쳤다. 이 자리에는 학생 뿐 아니라 많은 시민들도 동참했고 그 자리에서 약 30여분간 연좌농성을 이어갔다.

    농성도중 학생회장단을 중심으로 발언시간을 이어갔고 이 때 인터넷 스타가 된 이른바 ‘승리의 진중권’이 진보신당 칼라TV 방송을 위해 학생대오 사이로 들어오자 “진중권”을 연호하며 진 교수에게 발언을 요구했다.

    이에 진 교수가 간단한 발언을 했지만 학생들은 이어 “노래해”라고 연호하며 진 교수를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다.

    경찰청 앞 시위를 정리한 대학생 별동대는 다시 독립문 방향으로 이동하며 청와대 진입을 시도했다. 그러나 경찰이 경찰버스로 청와대 길목을 물샐틈없이 막아 놓은 것을 확인하자 다시 발길을 돌려 본대가 있는 광화문으로 향했다.

    새벽 1시 20분경 도착한 광화문 본 대열에는 노래와 자유발언이 한창이었다. 이들은 다시 ‘광화문 축제’를 열고 곳곳에서 볼거리를 연출했다. 광우병 국민대책위원회에서 방송차를 이용해 틀어주는 민중가요 ‘처음처럼’에 맞춰 20대 대학생은 물론이고 양복 입은 왕년의 운동권도 어깨동무로 함께 율동을 했다.

    시민들은 ‘집회에 참가는 못하고 미안한 마음에 응원만 한다’는 ‘국내외 배후세력’이 나눠주는 김밥과 물을 나누어먹으며 타악기 공연을 듣고 다른 시민들의 자유발언을 들었다. 시민들에게 김밥을 나눠준 한 자원봉사자는 “따로 정해져서 온 것은 아니고 이 자리에서 자원봉사자를 모집한다길래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시민자유발언은 새벽시간 동안에만 약 30~40여명의 시민들이 참여했다. 임영박이란 이름을 가진 한 시민은 “5초 동안만 할 수 있는 가장 심한 욕을 하라”며 큰 웃음을 샀고 한 남성은 “노무현은 좌측 깜빡이 켜고 우회전 했다는데 이명박은 오른쪽 깜빡이 켜고 역주행 하고 있다”고 말했다.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진짜 ‘배후시민들'(사진=정상근 기자)
     

    새벽 6시 경, 광화문 광장은 여전히 축제 겸 농성 중이었다. 광화문 교차로 한가운데 세워져 있는 텐트 두 동과 삼삼오오 모여 기타를 치고 확성기 주변에서 시민들의 자유발언을 듣는 시간이 계속되었다. 쌀쌀한 날씨에 촛불을 모아놓고 모닥불을 켜 놓고 잠을 청하는 시민들도 있었다.

    몇몇 시민들은 계속 전경 쪽으로 가 먹을 것을 주며 “같이 먹자”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일부 시민들은 술을 먹고 전경과 다투려고 했고, 이를 말리는 예비군 복장의 시민과 약간의 실랑이가 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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