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들의 무지를 용서하소서”
        2008년 06월 09일 12:4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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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C <100분토론>에 출연한 뉴라이트 전국연합 임헌조 사무처장은 촛불집회를 운동권이 주도한다고 주장했다. ‘5월 3일까지는 자발적인 시민들이 참여하면서 집회가 진행됐지만 5월 3일부터 6일 사이에’ 운동권들이 주도세력으로 등장했다는 것이다. 그 운동권이란 진보연대와 참여연대를 말한다.

    조갑제도 비슷한 주장을 했었다.

    배후(背後)에는 親北·左派의 집요하고 조직적 선동이 있다. … 놀랍게도 5월 6일 이후 촛불집회를 주도하는 狂牛會議 역시 주도단체는 진보연대進步連帶이다. 소위 市民社會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는 進步連帶와 유기적(有機的)으로 연결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위 글은 조갑제의 5월 30일자 글에서 인용한 것이다. 이 글의 제목은 「“쇠고기촛불집회⇒進步連帶⇒전국연합” [총력분석] “촛불집회 배후(背後)세력은 바로 이들이다!”」였다. 이 글의 중간문단에서 진보연대는 이렇게 규정된다.

    골수 親北·左派단체를 계승한 進步連帶

    바로 이런 주장을 6월 5일까지도 뉴라이트 전국연합이 되풀이한 것이다. 이런 시각은 ‘그들’의 나라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대통령이 촛불집회 배후에 주사파 운동권이 있다고 발언했다는 보도를 부인했어도, 많은 사람들이 그 보도 내용에 ‘개연성’이 있다고 여기는 건 ‘그들’의 나라에서 계속 이런 주장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김홍도 목사와 추부길 비서관도 비슷한 추문에 휘말렸다.

    여기서 골수, ‘친북좌파 진보연대’가 주도하는 광우병대책위 천막을 보자. 아래 사진들은 6월 7일 72시간 연속집회에서 내가 찍은 모습들이다.

       
    ▲ 왼쪽부터 광우병 국민대책위, 여성민우회 천막과 “배후가 누구냐고? 우리 엄마다!”라는 벽보
     

    대책위 천막 모습이 빨갱이 음모의 발원지요, 10만 시민의 배후조종 거점 같은가? 이번엔 여성민우회의 천막이다. 빨갱이 냄새가 나나? 친북세력의 배후조종을 받는 것 같은가? 천막 규모도, 분위기도 대책위와 별반 다르지 않다. 두 천막 사이에 위계는 없다.

    ‘그들’은 대뇌구조상 이런 ‘수평적 권력관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가와 나가 어깨동무하고 있는 그림을 상상하지 못하는 것이다. 가가 나를 지배하든지, 나가 가를 지배하든지, 반드시 지배예속서열이 정해져야 속이 시원한 것 같다. 그러니 이들은 촛불문화제 구성원의 수평적 권력관계를 영원히 오해하며 ‘봉창’을 두드리게 된다.

       
     
     

    위 사진은 진보신당 천막이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일인데, 진보신당은 민주노동당의 남북문제 우선 노선에 반발해 새로 꾸려진 정당이다. 그러므로 친북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런 진보신당도 천막을 쳤다. 이뿐만이 아니다. 무수한 사회단체와 일반시민이 자유롭게 천막을 치거나, 퍼포먼스를 하거나, 일인시위를 했다.

    이명박 대통령을 둘러싸고 있는 집권층이 국민을 배후조종이나 받는 ‘무뇌집단’으로 인식하는 한 현 정권과 국민 사이에 벌어진 간극은 절대로 좁혀질 수 없을 것이다. 이는 국가의 불행이다.

    분리됐던 시민-운동권-노조 화해 소통 중

    운동권 배후조종 문제에 대해선 간단히 판단할 수 있다. 진보연대 등 운동권은 김대중, 노무현 정권 내내 반정부투쟁을 해왔다. 노무현 정부 말기엔 정권규탄 및 퇴진운동을 극력 펼쳤다. 그때 일반 시민이 아이들 데리고 나와 가세했는가? 운동권의 배후조종 역량이 이명박 대통령 집권 이후에 갑자기 강해지기라도 했는가?

    국민이 스스로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에 나온 것이고 운동권은 늘 하던 대로 하고 있을 뿐이다. 누가 누구를 조종하고 지령을 내리는 지배 피지배 관계가 아니다. 그동안 분리됐던 운동권, 노조와 일반 시민이 이번 촛불문화제라는 축제를 통해 비로소 화해하고 소통하고 있다. 이 소통에 굳이 ‘조종’이라고 딱지를 붙이는 ‘그들’의 무지가 참으로 애처롭다.

       
     
     

    어느 한가로운 봄날 소풍의 풍경이다. 자전거 매니아의 모습도 보인다. 이들이 친북좌파의 조종을 받아 이러고 있을까?

    이번 촛불집회는 인터넷의 수평적 의사소통을 통한 집단적 결단의 소산이다. 지령을 내린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지령을 내린들 들을 사람도 없다. 진보연대고 뭐고 모두가 N분의 1이고 모두가 결단의 주체들이다.

    토론게시판에서 나오고, 시민기자단이 꾸려지고, 의료봉사단이 만들어지고, 시민을 지키는 예비역이 나오고, 시민들은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촛불로 의사표시를 하고 있다.

    <레디앙>에서 눈물이 나오는 기사를 읽었다.

    이 자리에서는 한 전경의 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내 아들이 전경인데 지방에서 이쪽으로 차출되어 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어제 2박 3일 외출을 받아 이곳에 시민 편으로 구경 왔다 갔다는데 많이 괴로워하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눈물을 글썽이던 전경의 아버지는 “정부가 빨리 이 일을 끝내줘야 한다. 위에서 못 끝내면 이건 안 끝난다”며 “군대 가서 차출당한 것인데 왜 이런 일이 있는지 모르겠다. 이명박 찍으라고 자고 있는 것을 깨워서 투표소로 데려갔는데 너무 미안하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
    <레디앙>, 2008. 6. 7

    기사를 읽는데 눈물이 흘렀다. 이렇게 국민들이 고통받고 있는데 아직도 친북 배후조종 운운하는 이들은 과연 한국인이 맞는가? 그렇게 국민들을 부화뇌동이나 하는 멍청이로 몰아세워야 이 정권이 유지될 수 있는가?

    정답은 시위대가 제시하고 있다. ‘닥치고 재협상’이다. 그리고 사죄다. 그리고 지금까지 국민을 무시하던 국정기조의 전면 재조정이다. 지금 우리는 국민을 상대로 ‘딱지붙이기’ 놀음을 하는 무모한 집권층을 보고 있다. 왕조시대에도 이렇게까지 백성을 무시할 수는 없었을 일이다.

    추부길 청와대 비서관은 촛불을 든 사람들을 ‘사탄’ 세력이라며 천벌을 내려달라고 하는 가 하면, 김홍도 목사는 빨갱이를 잡아들이면 촛불집회 들어가고 지지율 올라간단다. 아아, 저들의 무지를 용서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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