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정부 ‘패배’의 이유
        2008년 06월 03일 03:0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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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촛불시위 현장과 여의도 정가를 오가는 기자들 몇 명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은 ‘쇠고기 파동’ 정국에서 이명박 정부의 ‘패배’가 ‘대세’라고 한다. 

    그 패배의 후과마저도 이 나라에서 살아가는 우리네 서민들이 짊어지게 될 가능성이 있어, 이명박 정부의 패배를 곧 ‘시민의 승리’라고 주장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난 그 말에 크게 이의를 달고 싶지 않다. 승자가 없다고 패자가 없는 것은 아니다.

    승리와 패배의 요인은 각기 따로 있는 가운데, 무엇이 먼저 더 강하게 작용하느냐에 따라 승자가 먼저 있을 수도, 패자가 먼저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는 왜 분명한 승자가 나오기도 전에 먼저 패자가 되었는가?

       
     
     

    대통령의 치명적인 질문

    평소 친분이 있는 ‘30대 중반의 젊은 엘리트’가 있다. 그는 ‘주요 국가기관’에서 일하며 나라의 녹을 먹고 있다. 그가 며칠 전 만난 자리에서 이야기를 하나 들려주었다. 아마도 언론에 보도된 것이긴 할 터인데, 최근 기껏해야 모 방송국의 24시간 TV 뉴스 정도만 보는 나로서는 처음 듣는 것이었다.

    촛불시위 현황을 보고받는 자리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보고자에게 했다는 말에 관한 것이다. 몇 명이 참가하고 있는지, 무슨 구호를 외치고 있는지, 그야말로 ‘현황’을 보고한 그에게 이 대통령은 “내가 그런 보고를 듣고 있어야 하느냐…. 누가 주동하고 있는지 등을 보고해야 하는 게 아니냐”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대통령은 아마도 단순 ‘현황 보고’가 아니라 보다 심도 있는 ‘현황 분석 보고’를 원했던 것이다. 뭐 대통령으로서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보다 적절한 상황 판단을 할 수 있는 보다 ‘핵심적인’ 정보, 즉 ‘배후’에 관한 정보를 원할 수 있겠다 싶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 젊은 엘리트는 그런 대통령에 대해 ‘한심하다’고 평하며, 그런 태도로 사태 수습이 되겠냐고 반문했다. 왜 한심하다는 것일까?

    “새 시대를 여는 첫차인줄 알았더니 구시대의 막차였다.” ‘노간지’가 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임시절 했던 말이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시대’에서 민주화 운동세력마저 ‘낡은 세력’일 수밖에 없었던 ‘변화’. 그 변화를 이명박 대통령이 ‘CEO답지 않게’ ‘민주화 이전의 산업화’ 시대의 사고틀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그러하냐고? 대통령이 그토록 알고 싶어하던 그 ‘누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이다. 대통령이 좀 더 시대를 ‘영민하게’ 읽어내는 ‘고품격 CEO’의 자질을 갖고 있는 자였다면, 그는 보고자에게 이렇게 물어봐야 했다. “왜 ‘운동권’들이 힘을 못쓰냐”라고. “왜 ‘어여쁜 아이들’이 그리 난리냐”고.

    좋은 질문이 좋은 답을 만든다

    “좋은 질문이 좋은 답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누가 배후냐”라는 대통령의 질문은 사실상 ‘권위에 의존한 일방적 지시’에 다름 아닌 ‘가장 질 나쁜’ 물음이다. 그 질문 하나가 세상의 변화를 읽을 여유를 잃게 하면서, ‘강경진압’과 같은 ‘민주화 이전-이전(pre-pre) 시대’의 공권력 운용방식-질 수 밖에 없는 싸움의 기술-을 다시 불러냈다는 사실. 이 대통령은 그것을 알고 있을까?

    이명박 정부의 이번 패배가 ‘기나긴 패배의 여정’으로 이어질지는 아직 모른다. 만약 그들이 이번 촛불시위로부터 ‘낡은 틀에의 의존’이 얼마나 커다란 폐해를 가져오는지에 대한 배움을 갖고자 한다면, 패배는 일시적인 것이 될 수도 있다.

    그들이 ‘촛불을 끄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는 것을 상기해낸다면, 그나마 패배의 파급적 효과를 줄일 수 있을런지도 모르겠다. 아직은 그들의 경쟁자들-야당과 진보 개혁 운동 세력 등 정부에 비판적인 세력들-이 좋은 질문에 걸맞는 좋은 답을 구하지는 못한 것 같으니 말이다.

    정부는 ‘질문 던지기 놀이’에 몰입하라

    하지만 집권의 목적이 패배의 최소화를 위한 것이 아니라면, 이명박 정부는 대통령부터 시작해서 ‘좋은 질문 던지기’에 몰입해야할 듯하다. 새로운 시대에의 적응을 위해, 정부가 궁금한 것이 많은 어린 아이의 끊임없는 질문 던지기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그리 나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촛불 시위 자체가 어여쁜 아이들의 나라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질문 던지기에서 시작된 것이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아빠, 나라가 왜 이 모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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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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