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아니라 용역깡패였다"
    2008년 06월 03일 07:1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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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결혼식이 끝난 후 양복과 구두 차림으로 찾아간 광화문 앞. 잠깐만 들러야지란 맘으로 지난 토요일(5월 31일) 밤 10시경 촛불시위대에 합류했다. ‘이젠 그만 가야지’란 생각을 수 없이 했지만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땅이 젖어, 어디 앉지도 못한 채 다음날 아침 7시까지 나를 꼬박 서 있게 한 건 시시각각 나온 경찰의 막장 짓이었다.

시위대 얼굴에 뿌려진 소화기. 미묘한 차이였지만 이 행위를 기점으로 경찰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야 말았다. 시위대 얼굴에 소화기를 뿌림으로써 경찰은 용역깡패와 자신을 구분지어 주는 얇은 벽을 무너뜨렸다. 과연 우리나라의 어떤 법이 경찰이 직무집행 과정에서 사람 얼굴에 소화기를 뿌릴 수 있다고 적고 있단 말인가? 경찰관 직무집행법 어디를 찾아봐도 그런 규정은 없었다.  

경찰관직무집행법
제10조 (경찰장비의 사용등) ①경찰관은 직무수행중 경찰장비를 사용할 수 있다.
②제1항의 "경찰장비"라 함은 무기, 경찰장구, 최루제 및 그 발사장치, 감식기구, 해안감시기구, 통신기기, 차량·선박·항공기등 경찰의 직무수행을 위하여 필요한 장치와 기구를 말한다.
④제1항 단서의 경찰장비의 종류 및 그 사용기준, 안전교육·안전검사의 기준등에 대하여는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제10조의2 (경찰장구의 사용) ①경찰관은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에는 그 사태를 합리적으로 판단하여 필요한 한도내에서 경찰장구를 사용할 수 있다. [개정 91·3·8, 99·5·24]
②제1항의 "경찰장구"라 함은 경찰관이 휴대하여 범인검거와 범죄진압등 직무수행에 사용하는 수갑·포승·경찰봉·방패등을 말한다.

제10조의3 (분사기등의 사용) ①경찰관은 범인의 체포·도주의 방지 또는 불법집회·시위로 인하여 자기 또는 타인의 생명·신체와 재산 및 공공시설안전에 대한 현저한 위해의 발생을 억제하기 위하여 부득이한 경우 현장책임자의 판단으로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안에서 분사기(총포·도검·화약류등 단속법의 규정에 의한 분사기(주:이거 칙칙이지 소화기 아니다)와 최루등의 작용제) 또는 최루탄을 사용할 수 있다.

제10조의4 (무기의 사용) ①경찰관은 범인의 체포·도주의 방지, 자기 또는 타인의 생명·신체에 대한 방호, 공무집행에 대한 항거의 억제를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에는 그 사태를 합리적으로 판단하여 필요한 한도 내에서 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 …
②제1항의 "무기"라 함은 인명 또는 신체에 위해를 가할 수 있도록 제작된 권총·소총·도검등을 말한다. [신설 99·5·24]

경찰이 용역깡패와 다른 게 뭔가? 딱 하나. 법이 폭력사용을 정당화해 주는가 아닌가의 차이 뿐이다. 그런 경찰이 법에 의한 물리력으로도 임무 달성을 못해 찌질하게도 용역깡패들이나 하는 짓을 하고 말았다. 정권의 신세가 알량하기만 하다.

내친김에 소화기 말고 물대포에 대해서도 법률규정을 찾아 보았다. 아무리 봐도, 이게 사람한테 대놓고 쏠 건 아닌 것 같아 법문을 찾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경찰장비관리규칙
제82조(특별관리) ① 진압장비 중 방패, 전자방패, 진압봉, 최루탄발사기, 최루탄, 근접분사기, 가스차, 살수차 등은 사람의 생명·신체에 위해를 가할 우려가 있는 장비로 각급 경찰기관의 장의 책임하에 특별한 관리를 요한다.
⑤ 직무수행을 위하여 제1항의 장비를 사용할 때에는 다음 안전수칙을 준수하여야 한다.
7. 살수차
가. 최루탄 발사대의 발사각도를 15도 이상 유지하여 발사되는지 확인 후 사용하여
야 한다.
나. 20m 이내의 근거리 시위대를 향하여 직접 살수포를 쏘아서는 안된다
.

   
  ▲ 사진=손기영 기자
 

허허. 포털에서 물대포로 검색해서 찾아보면 알겠지만, 20m 밖에다 대고 물대포를 쏜 게 오히려 손에 꼽을 지경이다. 쇠고기 협상팀이 영문을 거꾸로 번역하더니, 이젠 경찰까지 나서서 규정을 거꾸로 해석하고 있는 지경이다.

이 와중에 경찰 경비과장이란 작자는 한술 더 떠 "물대포를 맞고 다쳤다면 거짓말"이라고 했다는데…. 뭐 20m 규정도 외면할 정도라면 ‘살수차 등은 사람의 생명·신체에 위해를 가할 우려가 있는 장비로’라는 규정이 눈에 안 들어오는 것도 당연하다 싶다.

정말 준법의식 투철한 멋진 대통령과 그에 못지 않은 투철한 준법의식을 가진 멋진 공무원 조합이다. 멋있다. 짝짝짝. 멋있지만. 국민으로서 할 일은 해야 한다. 이런 경찰의 위법행위에 대해 효과적인 대응 방법은 대충 두 가지다

(1) 현행범 체포

적법한 법률요건을 갖추지 못한 공무원의 직무행위. 대법원 2006. 9. 8. 선고 2006도148. 형법 제136조가 규정하는 공무집행방해죄는 공무원의 직무집행이 적법한 경우에 한하여 성립하고, 여기서 적법한 공무집행은 그 행위가 공무원의 추상적 권한에 속할 뿐 아니라 구체적 직무집행에 관한 법률상 요건과 방식을 갖춘 경우를 가리키므로…. 즉, 공무집행의 외피를 둘러쓴 범죄행위를 봤을 때 어찌해야 하나? 간단하다.

형사소송법 제212조 (현행범인의 체포) 현행범인은 누구든지 영장없이 체포할 수 있다.

허나, 말이 그렇지. 일반 시민이 아무리 현행범이라지만 중무장한 경찰을 직접 잡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소화기 뿌린 애야 눈앞에 있으니 어떻게 해본다지만 살수차 안에 들어앉아 있는 애를 무슨 수로 잡는단 말인가? 뭐 법적으로 가능하긴 하지만, 현실적으로 볼 때 불가능한 방법인 거 나도 인정한다.

(2) 경찰의 약점

사실 내가 알고 있는 경찰의 약점은 하나다. 바로 수사권 독립이다. 현행 제도상 검찰에게만 있는 수사권을 경찰에게도 나눠달라는 게 그간의 경찰의 주장이었다. 뭐 검찰이 그간 뻘타를 많이 쳤으니 경찰한테 권한을 분배하는 게 제법 그럴듯하게도 여겨지기는 하나.

요즘 경찰이 하는 거 보니 검찰보다 못하면 못했지 나아보이는 게 한 개도 없다. 인권의식이 희박한 것도 모잘라서, 대놓고 법까지 어기고 있잖는가? 

게다가, 경비과장 씩이나 되는 간부가 규정도 제대로 몰라서 물대포가 위험하지 않다는 투의 망발이나 하는 판이니 상황은 더욱 절망적이다.(물대포 쏘는 거 직접 보면 말 입이 딱 벌어진다. ‘물’대포가 아니라 물‘대포’다)

"수사권 독립 어림없다" 구호가 나오기 시작하면 경찰도 앗 뜨거 할 거 같은데. 흠. 힘들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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