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전수출, 영웅만들기 & 한국사회
        2009년 12월 31일 10:1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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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되지도 않는 휴일이 일요일과 겹쳐 ‘달력을 찢어버리고 싶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 가운데, 지난 성탄절은 보기 드문 연휴였다. 이 소중한 연휴 마지막날 저녁. 온 국민은 갑작스러운 뉴스 속보를 접했다.

    대통령 영웅 만들기 속에 진행된 핵발전소 수출

    "아랍에미레이트(UAE)에 핵발전소 수출"
    독재정권 시절이었으면, 서울시내에서 꽃가루를 뿌릴만한 일이라는 정부 관계자의 말이 무색할 정도로 꽃가루를 뿌리지는 않았지만, 그에 버금가는 일들이 언론을 통해 벌어졌다.

    외교통상부 장관이 수주가 힘들 것 같다는 보고하자 대통령이 직접 내가 해보겠다고 뜻을 밝혀 핵발전소 수주에 성공했다거나, 9시 뉴스 시간에 맞춰 UAE 현지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모습은 십여 년 전 주인공 미화 논란에 휩싸였던 드라마 – ‘야망의 세월’을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일부 진보개혁 성향의 언론을 제외한 대부분의 언론들은 단군 이래 최대의 건설 공사수주라며 47조원에 이르는 총공사비를 강조하고 나섰고 – 단군 이래 반만 년 역사가 있었지만 외국의 건설공사를 수주하는 일이 근래 몇십 년에만 있었다는 사실을 알기는 하고 쓰는 것일까는 별개의 문제이다 – CEO 출신 대통령, 사실상 해외 수주를 이끈 지도자로 이명박 대통령을 부각시키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는 네티즌들의 의견도 마찬가지여서 진보개혁 성향의 언론들이 이에 대해 다른 시각을 제시하는 것에 대해서는 전례 없는 ‘좌파 논쟁’이 불어왔다. "좌파들이 배가 아파서 국가적 경사를 반대한다는 것"는 것이다.

    보수단체인 자유주의진보연합이 "그런 식으로 신문을 만들려면 아예 폐간을 해야 마땅하다"며 논평을 낸 것을 비롯, 한겨레와 경향, 미디어 오늘에 실린 이번 사건을 신중히 보아야한다는 기사에는 어김없이 좌파 운운하는 댓글이 달리고 있다.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핵발전소 수출을 둘러싼 궁금증

    핵발전소를 짓는 것을 찬성하고 반대하는 것은 하루 이틀된 논쟁이 아니다. 생각이 모두 다를 수 있고, 양측의 논리가 너무나 확고하기 때문에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논란이 계속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최근 기후변화 문제가 심해짐에 따라 핵발전소를 옹호하는 측은 "원자력 르네상스가 도래했다"며 치열하게 반격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핵발전소 찬반을 떠나 이번 UAE 핵발전소 수출 건은 무작정 좋아할, 특히 국가적 경사라고 이야기되기엔 문제점이 너무나 많다. 특히 호들갑스러운 언론의 대서특필 속에 정작 짚어야 할 부분들을 너무 많이 놓치고 있다. 

    무엇보다 핵발전소 건설을 둘러싼 정확한 거래 내용이 알려지지 않고 있다. 계약 성사가 발표된 26일, 모든 언론은 400억 달러(47조원)의 계약이 성사되었다고 계약 내용을 밝혔다. 그러나 UAE와 유럽의 언론들이 200억 달러의 계약이 성사되었다는 사실을 보도하면서 금액은 하루만에 절반으로 떨어졌다.

    핵발전소 4기를 건설하는데 들어가는 200억 달러만 계약이 되었고, 나머지 200억 달러는 운영상에서 계약될 금액이라는 것이다. 한전 컨소시움이 건설에 참여했고 UAE 쪽도 건설과 운영은 같은 업체가 하기를 원하니 무리없이 200억 달러짜리 계약이 성사될 것이라는 해명이 따라 붙었다.

    이어 컨소시움의 주 기업인 한전은 경영공시를 통해 22조 원, 186억 달러짜리 계약이 이루어졌다고 밝혔다. 기술적인 문제로 14억달러의 차이가 생겼을 뿐 큰 차이는 없다는 것이다. 186억 달러 역시 작은 금액은 아니지만, 단군까지 거론하며 이야기하던 400억 달러에 대한 책임은 정부의 이야기를 100% 믿은 ‘그대로 받아쓴 언론’의 몫으로 남아버렸다.

    이후 186억 달러의 실체도 하나씩 밝혀지고 있다. 한겨레는 29일 기사를 통해 “이번 원전계약에는 전력판매 부분이 빠졌다”며, “한전이 경영자문에 대한 수익을 가져간다고 하지만 그것이 1%가 될지 10%가 될지는 알 수 없다”고 이번 수주에서 400억 달러는 ‘착시’라고 꼬집었다.

    이면 합의가 더 큰 문제

    공기업 한전의 해외수주 내용이 투명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는 것도 문제이지만, 더 큰 문제는 이면에서 합의된 내용들이다. 외신들에 따르면 이번 수주 경쟁에서 마지막까지 경합을 겨루었던 프랑스의 경우, 역시 UAE에서 진행 중인 라팔전투기 구매협상에서의 이점과 핵우산문제를 포함한 ‘옵션’을 내걸어 한국에 비해 가격이 30%나 비쌌지만 수주에 우위를 점했던 것을 알려지고 있다. 이후 한국이 싼 가격을 제시하자 뒤늦게 10%를 인하했으나 UAE의 마음을 돌릴 수 없었다는 것이다.

    상황이 그러면 궁금증은 당연히 ‘한국의 카드’가 무엇이었는지로 쏠릴 수 밖에 없다. 한-UAE간 전략적 군사동맹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는 것 이외에 관련 내용은 일체 공개되지 않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미국하고만 상호방위조약을 맺고 있으나, 군사동맹 수준의 협상이 진행될 경우, 우리나라가 중동사태에 군대를 파견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이 문제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이에 대해 정부와 청와대는 다른 나라의 원전수주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를 들며 내용을 밝히지 않으며, “어느 나라나 원전은 군사보완 시설이니 우리가 좀 도와야 하지 않겠냐”는 식의 안일한 답변을 내놓기도 했다. 그나마 군사동맹에 한 내용은 국방장관이 UAE에 방문하는 일들이 있으면서 알려진 부수적인 내용에 불과하다. 앞으로 밝혀지지 않은 UAE 수주를 둘러싼 거래 내역은 더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한편 수주가격과 각종 건설과정에서의 다양한 변수에 대한 문제 역시 짚어지지 않고 있는 부분이다. 원자력계는 UAE는 가격보다 한국 원전의 안전성을 더 높게 산 것이다고 이야기하고 있으나, 국내 증권가와 중동권 언론은 이번 거래가 예상낙찰 금액의 50%선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번에 수주한 APR1400과 마찬가지로 신형원자로인 EPR을 핀란드에 건설하고 있는 프랑스의 아레바(Areva)가 건설 기간이 최소 3년 지연되고 건설비용도 애초 38억 달러에서 60억 달러로 늘어난 문제점에 봉착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할 때 이 문제 역시 그냥 넘어갈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아레바의 핀란드 오킬루오토(Olkiluoto) 3호기의 경우 핀란드는 아레바의 기술력을 탓하고 있지만, 아레바는 핀란드의 복잡한 핵발전 관련 규제 때문에 일이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현재 핀란드는 아레바를 대상으로 20억 유로의 피해보상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핵발전소 건설 – 특히 자국내 건설이 아닌 해외건설의 경우, 인력 및 자재수급, 다른 법과 제도 문제로 인해 수없이 많은 변수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오킬루오토 핵발전소가 유럽지역 원자력 르네상스의 대표적 사례로 언급되었다는 점이다. 체르노빌 사고 이후 프랑스를 제외하고 사실상 신규 핵발전소 건설이 없었던 유럽권에서 핀란드의 핵발전소 건설 재개 소식은 핵산업계의 희망을 불어넣어주는 소식이었고, 국내 핵산업계에서 많이 언급하던 사례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핀란드 오킬루오토가 신형원자로(EPR)의 문제점과 변수와 난관이 많은 핵산업계의 모습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핵발전소 수출이 가져올 한국사회의 변화

    이번 핵발전소의 수출은 우리사회에 많은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무엇보다 70~80년대 중동 건설 붐이 끝난 이후 국내에 토목공사가 줄지어 이어졌던 것처럼 우리나라의 핵산업은 어느 때보다 큰 탄력을 받을 것이다.

    최근 수주를 계기로 원자력 인력이 부족하다며, 원자력대학원 설립들을 검토하고 있는 것 등이 우리사회의 핵산업 종속도를 더욱 강화시킬 것이다. 이번 건설공사 등에 필요할 2000~3000여명의 원자력 인력이 이후에도 일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반대로 재생에너지 산업의 입장에서 큰 타격이 될 것이다. 이미 정부는 2030년까지 전력의 60%를 핵발전으로 수급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으며, 이번 수주를 계기로 정부조직까지 재편하면서 핵산업을 강력히 지원할 계획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의 인력과 재원이 재생에너지에 지원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중동의 건설 붐의 후과는 국내에서 많은 토목공사와 개발붐을 일으키면서 문제를 일으키기고 있으나, 국내에 자리를 붙일 수 있다.

    그러나 핵산업은 다르다. 현재 세우고 있는 전력의 60%를 핵발전으로 채우겠다는 계획도 무리한 것이지만, 그것이 달성된다면 더 이상 핵발전소가 필요 없기 때문이다. 즉 해외로 나가야 하는데, 이는 그리 녹록치 못하다.

    1990년대 구조조정을 통해 세계 핵산업계는 프랑스의 아레바, 미국과 일본의 웨스팅하우스-도시바, GE-히타치의 빅 3가 전체 시장의 72%를 선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와 캐나다가 각각 10%와 5%대의 시장점유율을 갖고 있지만, 시장력과 기술력에서 훨씬 미치지 못하고 있어 주로 자국내 핵발전소 건설을 주도할 뿐 해외 시장은 모두 이들 빅 3가 주도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가운데, 원천기술도 없고(우리는 2015년까지 핵산업의 원천기술을 획득하고자 계획을 세웠으나, 정부는 이를 2012년으로 당기라는 압력을 계속 보내고 있다.) 후발 주자에 불과한 한국이 겪을 일은 험난하기 이를 데 없다.

    부풀려지거나, 제대로 따지지 못한 것들

    최악의 경우, 세계적인 구조조정을 통해 그동안 세금과 국가의 행정력이 지원된 우리의 공기업과 산업이 해외로 넘어갈 수도 있다는 말이다. 세계경기침체와 각국의 규제문제로 원자력산업계의 바램과 달리 핵발전소 건설계획이 속속 지연되고 있는 사실은 핵산업계라는 ‘레드오션’에서 우리가 앞으로 직면해야 할 일들이다.

    규모가 크고 위험부담이 큰 핵산업과 달리 재생에너지 산업이 우리와 같은 후발주자에 더욱 유리하다는 것은 너무나도 자명하다. 또한 독일과 덴마크 등 재생에너지 선진국들의 재생에너지산업 육성책에서 보듯 단기간의 성과를 거두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계획과 점진적인 변화를 통해 새로운 산업을 만들고 키우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 역시 너무나도 분명한 사실이다.

    우리의 에너지 정책에 있어서도 ‘빨리빨리’ 정신과 ‘거대함에 대한 선호’가 이명박 대통령의 CEO 정신과 만나 UAE 핵발전소 수주와 같은 큰 일을 만들어내었다. 그 일로 인해 앞으로 생길 일들, 그리고 부풀려지고 제대로 짚어지지 않은 많은 것들이 ‘국익’이라는 그 실체가 불분명한 이름 앞에 또다시 가려지는 오늘의 현실이 너무나 안타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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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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