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치 추적기, 진보정당 공약 맞나
        2008년 05월 31일 12:0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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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4 재보선에서 경남도의원 창원4선거구에 출마한 민주노동당 손석형 후보가 내세운 공약이 논란이 되고 있다.

    손석형 후보는 이번 선거의 대표적인 공약 중 하나로 창원시의 전체 아동과 치매노인들을 대상으로 위치추적기를 보급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아동 및 치매노인들에게 위치추적기를 보급하여, 일정한 지역을 벗어나면 중앙운영실에서 이를 파악하여 부모나 보호자에게 문자로 알려주겠다는 것이다.

       
      ▲손석형 후보 공보물
     

    창원시 모든 아이들 위치추적기 달아준다고?

    얼핏 생각하면 아동대상 유괴사건이나 치매노인의 실종에 대비한 좋은 아이디어로 보인다. 하지만 이 공약은 아동인권 침해의 소지가 있거니와, 실현가능성도 별로 없다.

    원래 위치추적기는 미국 등지에서 아동대상 성범죄자의 행동을 감시하기 위한 것이며, 우리나라에서도 성범죄자를 대상으로 도입이 논의되고 있다. 위치추적기를 부착하게 되면 중앙운영실에서 그 사람의 동선을 전부 파악할 수 있게 된다. 한 마디로 중앙에 의한 일괄적인 감시가 가능한 것이다. 말이 중앙운영실이지 사실은 중앙통제실이다. 조지 오웰의 ‘1984년’이 생각나지 않는가?

    외국의 경우, 진보정당들은 아동대상 성범죄자에게 위치추적기를 부착하는 것조차 반대하고 있다. 차라리 성범죄자의 법정 형량을 더 늘려야지, 이미 법으로 정해진 처벌을 받은 사람에게 감시장치를 부착해서 중앙에서 통제한다는 발상은 인권침해이며 전면적인 감시사회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민주노동당의 손석형 후보는 이를 성범죄자도 아니고 전체 어린이를 대상으로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전체 어린이의 위치가 중앙에 의해 파악되는 사회, 좀 섬뜩하지 않은가? 유괴를 막자고 전체 어린이를 중앙통제 시스템 속에 집어넣겠다니,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태우겠다는 꼴이다.

    이 문제가 29일 열린 후보자간 토론회에서 쟁점이 되자, 손 후보는 광양에서 이미 잘 하고 있는 사업인데, 뭐가 문제냐고 주장했다. 하지만 광양에서 하는 위치추적기 사업은 그 대상이나 규모가 전혀 다르다. 광양의 경우, 어린이가 아니라 중증치매노인 300명만을 대상으로 한 사업이다.

    사실은 이것도 약간 논란의 소지가 있지만, 중증치매 노인의 경우는 어린이와 달리 어느 정도는 타당성이 있다. 대상도 많지 않거니와, 중증치매 노인의 경우 어느 한 곳에 머물러 있을 뿐 자신의 정상적인 판단으로 바깥으로 나가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특정 장소를 벗어나면 보호자에게 연락한다는 시스템이 가능하다.

    오히려 부모 불안하게 만들어

    그런데 어린이들의 경우 한 곳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활동을 한다. 그리고 그 활동이 꼭 집이나 학교 등 특정 범위 내에서만 이루어지란 법이 없다. 가령 약간 떨어진 친구 집에 놀러간다면? 민주노동당 공약에 따르면 이건 바로 부모에게 통보가 된다.

    부모는 아이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온갖 끔찍한 상상에 시달릴 것이다. 부모들 걱정 들어주자고 만든 시스템이 오히려 부모를 불안하게 만드는 셈이다.

    규모에 따른 소요예산도 문제다. 광양의 경우 300명에게 이 사업을 시행하는데 7억의 예산이 들었다. 거기다가 한 사람당 기계값 16만원과 위성추적 시스템 가입비 5만원이 추가돼 21만원이 든다. 겨우 300명에게 사업을 시행하는데 이 정도의 예산이 소요되는데, 수만명이나 되는 창원시의 전체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다면 그 예산이 도대체 얼마나 들겠는가?

    소요예산을 뽑아봤냐는 질문에 대해 손 후보는 ‘예산은 안 뽑아봤지만, 얼마 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광양에서 든 예산이 얼마인지도 모른다고 했다. 공약을 내걸면서 비슷한 사업을 하고 있는 다른 도시에서 얼마의 예산이 들었는지 최소한의 기초조사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소요예산이나 운영상의 난점을 생각해볼 때, 이 사업은 전혀 현실성이 없다. 게다가 아동인권침해의 소지가 다분하다. 성범죄자나 중증치매 노인이라면 몰라도, 전체 어린이를 대상으로 이런 사업을 실시하는 곳은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 거의 극우들이 내걸만한 공약이다. 그런데, 진보정당이라는 민주노동당의 후보가 이런 공약을 내건다는 게 말이 되는가?

    현실성 없는 공약

    손 후보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해당 지역의 국회의원인 권영길 의원은 중앙의 광우병 정국도 외면한 채 이번 보궐선거에 올인하고 있다. 이번 공약 역시 권영길 의원의 보좌진이 적극적으로 개입한 것으로 알고 있다.

    결국 손석형 후보만이 아니라 권영길 의원 등 민주노동당 전체가 이런 사안에 대해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는 것이다. 민주노동당, 그러고도 진보정당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국제 빅브라더상이란 게 있다. 발전된 정보통신기술을 이용해 시민들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것을 감시하기 위한 상이다. 이 사건이 알려진다면 아마도 빅브라더상 조직위원회 측에선 올해 전 세계의 대표적인 프라이버시 침해사례로 꼽을 것이다. 게다가 그것이 스스로 진보정당이라고 말하는 정당에서 제기되었다는데 매우 놀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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