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쟁터 방불…청와대 인접지역 접근
    6월, 1백만 뜨거운 촛불 전국 휩싼다
        2008년 06월 01일 11:3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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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혜진이가 없어요. 같이 손잡고 달렸는데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어요. 기자님이 좀 찾아주시면 안돼요?"

    장관 고시 강행 후 첫 주말인 31일. 김예지(17)씨는 여느 때처럼 캠핑 가는 설레임으로 밤샘 농성을 위해 얇은 이불까지 준비하며 촛불문화제에 참가했다. 청와대 가는 길목인 삼청동에서 전경과 대치하던 김씨는 "전경들과 그동안 미운정이 많이 들었고 몇 명은 얼굴이 친숙한 사람들도 있다"면서 "우리 오빠 불쌍하다, 우리 오빠 자게 하라"를 목청컷 외쳤다.

       
      ▲미국 쇠고기업자 이익을 대변하고, 국민을 우습게 아는 ‘브레이크 없는 불도저 정권’을 경찰력이 지켜줄 수 있을까.(사진=손기영 기자)
     

    그러던 중 새벽 4시께 시민들이 하나둘 귀가하면서 경북궁 앞에 모여있는 시위대가 위급하다는 문자를 받고 단짝 혜진이와 보탬이 되고자 그곳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김씨를 기다리는 건 인정사정 없는 물대포와, 전경의 폭력, 단짝 친구 혜진이의 실종이었다.

    "경찰이 미쳤나봐요"

    김씨는 울면서 "저 폭도 같은 그런 사람 아니에요. 우리나라가 아닌 것 같아요"라며 "경찰이 미쳤나봐요"라는 말을 연신 반복했다. 한동안 멍한 표정으로 말을 잇지 못하던 김씨는 단짝을 찾아 인도를 헤매기 시작했다.

    이는 비단 김씨뿐이 아니었다. 경북궁 앞 새벽 거리에는 곳곳에서 함께 나온 친구, 가족, 동호회 회원 등의 이름을 부르며 안부를 확인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하늘에서는 쉴틈없이 물대포가 쏟아져 내렸고, 아스팔트에는 여름 집중호우가 내린 것처럼 물이 가득 고여 그 위를 수 십개의 신발과 모자들이 떠다녔다.

       
      ▲사복경찰 시민구타, 살수차 정면 살포 등 포악해진 새벽녁의 경찰들.(사진=손기영 기자)
     

    구급차 수십대가 분주히 오가고, 전경들의 방패와 군화가 바닥을 내려치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비명과 울움이 뒤엉킨 소리는 전쟁터를 방불케했다.

    인도에서는 같은 시위대인줄 알았던 사복경찰이 갑자기 시민을 구타하고 사라지는가 하면, 도로변에서는 전경이 집단으로 한 시민에게 발길질을 가하고, 살수차 사용시 정면 살포가 금지됐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어겨 한 학생이 실명 위기에까지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사복경찰 갑자기 시민 구타…진중권, 한홍구 교수 등 연행

    이에 앞서 삼청동 앞에 모인 시위대에는 물대포와 함게 소화기 분말이 발포돼 현장이 수시로 아수라장으로 변해 시위대끼리 밀쳐 넘어지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진중권 중앙대 교수 등 222명(경찰 통계)이 이날 무더기로 연행돼 그간 촛불 문화제 이래 최고 연행 규모를 기록했으며, 그 중에는 임산부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파문이 예상된다. 하지만, 강제진압 과정에서 다친 부상자는 정확한 통계가 잡히지 않았으며, 전경들도 격렬한 몸싸움으로 인해 30여명이 다쳐 시내 주요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무차별 물대포 난사에 격분한 일부 시민이 전경 버스의 전복을 시도하면서 시작된 경찰 진압은 그간 진행된 촛불문화제 이래 가장 강도가 높았다. 이에 시민들의 시위도 점차 격한 구호와 행동으로 점차 변화하고 있다.

       
      ▲살수차에 뿌리는 물로 사람들을 잠시 주춤하게 할 수 있을지 모르나, 국민을 향해 쏘아대는 물은 쓰나미 돼 정권을 떠내려 가게 할 것이다.(사진=손기영 기자)
     

    이제 시위현장에는 ‘텔미’ 등의 경쾌한 대중 가요 대신 ‘애국가’, ‘임을 위한 행진곡’ 등의 ‘정치적 노래’가 불려지고 있다. 구호 또한 ‘고시 철회’ 를 넘어 이명박 정권에 대해 전면전익 공격을 가하며, 전경차 안의 전경을 강제로 끌어내리고 서로를 프락치로 의심해 잦은 싸움이 일어나는 등 행동 또한 격해지고 있다.

    이와 관련 김동준 (39)씨는 “지금까지 계속 이명박 정부에게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지 말자고 줄기차게 이야기해도 들어주지 않았다”며 “우리가 스스로 후퇴하는 모습을 보이면, 정부에서 국민들을 우습게보기 때문에,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 때까지 이 자리를 지킬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금 후퇴하면 국민 우습게 볼 것

    인터넷 생중계를 보다가 막차를 타고 급히 자정에 시위대에 합류한 대학생 하정태(23)씨는 "이명박 정부는 국민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회사에 고용된 직원으로만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 잘못된 인식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반드시 바꿔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게다가 벌써 20회가 넘도록 촛불 문화제를 열며 국민이 할 수 있는 것은 전부 다 했지만 정부는 무시로 일관하고 있다. 이 열기와 저항이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확산돼 나갈지 저 또한 예측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이날 촛불문화제에 참여한 10만여 명(주최측 추산)은 예정보다 1시간 먼저 문화제를 끝내고, 청와대를 향해 행진에 나섰다. 이들은 광화문 4거리에서 경찰에 의해 진출이 봉쇄되자, 그 전처럼 동대문, 명동 등 여러 곳으로 흩어지지 않고 청와대를 향해 우회 진출을 선택했다.

    시민들은 경복궁역 앞, 효자동, 삼청동 등 청와대를 지척에 둔 세 곳에서 경찰과 대치했다. 청와대를 향해 세 갈래로 가두시위를 벌이던 시민들이 광화문의 경찰 저지망을 뚫고 처음으로 세종로를 통해 청와대로 들어가는 양쪽 입구인 경복궁역과 동십자각까지 진출해 경찰을 당혹케 했다.

    경찰은 시위대의 위력적인 진출에 맞서 비상체계로 돌입해 경비병력 102개 중대 9천여명을 배치하고, 물대포와 폭력적 진압을 선택했다. 이명박 정부는 어느덧 국가의 폭력적 힘이 아니면 자신을 보호할 수 없는 가장 약한 정권이 돼버렸다. 잠못 이루는 5년 계약 청와대 세입자의 머리 속이 궁금해지는 새벽이다. 주인들은 벌써부터 나가라고 하는데.

    한편 광우병 대책회의는 오는 6월 3, 5, 7일 연이어 촛불 집회를 열고, 6.10 항쟁 21돌인 10일에는 전국적으로 100만명이 모이는 대규모 행사를 벌인다. 또 효순이 미선이 6주기, 6·15 공동선언 8돌 등 역사적 계기와 부시 대통령이 방안을 앞두고 있어 촛불시위가 더 거세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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