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치자금인가, 눈먼 돈인가?
        2008년 05월 30일 11:1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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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5월 2일, 국회 교육위원회 회의에 보고차 참석한 김도연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사진=뉴시스)
     

    말로는 한국교육의 수장이란다. 하지만 이주호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이 실세라는 건 웬만한 사람은 다 안다. 광화문 정부청사에서 한국교육을 총괄한다고 하나, 지근거리 청와대의 입김이 모든 걸 좌우한다. 더구나 이주호 수석의 사람이 장관의 정책보좌관으로 청사에 앉아있으니 그 틈새에 있는 김도연 장관의 존재감은 크지 않다.

    사실상 한국교육을 좌지우지하는 이주호 수석과 장관 정책보좌관은 KDI 교수와 학생이었다. 그리고 2001년 「학교 대 과외」라는 논문을 통해 평준화 지역의 과외비가 비평준화 지역의 그것보다 많다는 결과를 발표하여 세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물론 한 해 뒤에 이주호 당시 교수가 다른 사람과 함께 똑같은 데이터를 다시 한번 돌려보았지만 같은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고 하여, ‘이건 뭐야’라는 생각이 잠깐 들기도 했다.

    이 두 사람 사이에 김도연 장관이 있다. 법적 권한과 실제 권력과의 엄청난 괴리 속에 앉아있다. 이명박 정부 들어 야심차게 발표한 4․15 학교자율화 조치도 장관이 직접 브리핑하지 않았다. 그래서 한편으로 장관 뿐만 아니라 장관을 바라보고 있을 교육부 직원들의 발걸음에서 씁쓸함이 보이기도 한다.

    이랬던 장관이 모처럼 움직인다.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휘하 직원들에게 모교를 방문하라고 한다. 덤으로 특별교부금도 안긴다. 그런데 언론을 비롯하여 여기저기에서 문제란다. 분명히 모교를 가라고 했는데, 어떤 직원은 ‘자율적으로’ 아이 학교에 갔단다. 더 난리다. 대통령이 사과하라고 하여 유감을 표명했지만, 그 놈의 ‘관행’이라는 표현 때문에 영 말발이 먹히지 않는다. 하지만 관행, 맞다.

    ‘통치자금’과 ‘눈먼 돈’으로 불리는 특별교부금

    김도연 장관이 선물로 안기려고 했던 특별교부금은 교육부에만 있는 게 아니다. 행정안전부(예전 행정자치부)에도 ‘특별교부세’라는 이름으로 있다. 공식 명칭이 무엇이든 간에, 사람들은 달리 부른다.

    중앙에 있는 사람은 ‘쌈짓돈’이나 ‘통치자금’이라 말하고, 지역은 ‘눈먼 돈’이나 ‘로비로 따내는 돈’이라고 한다. 국회의 예산 심의 없이 중앙정부에 짱박아둔 돈, 합법적으로 중앙정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 그게 특별교부금이고 특별교부세다.

    중앙정부 편한대로 쓸 수 있다보니, 중앙정치에 활용되기도 한다. 지역 입장에서는 먼저 따먹는게 임자다. 당연히 지역구 국회의원의 정치력을 가름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지역구 국회의원이 “예산을 따오겠습니다”, “저 다리, 제가 놨습니다”, “이 학교 강당을 누가 지었을까요?”라고 할 때, 특별교부금이나 특별교부세가 한 몫 한다. 그러다보니 특별교부금을 다룰 수 있는 교육위, 행자위, 예결위는 꽤 북적인다. 여야나 진보/보수를 초월한다.

    특별교부금에 대한 문제제기는 크게 두 번 정도 있었다. 2002년 10월에 경실련이 교육위 소속 국회의원들의 지역구와 교육부 특별교부금의 관계를 밝혔고, 2007년 7월에는 공무원노조가 행정자치부 특별교부세 현황을 백서로 발간하여 ‘공직사회 개혁을 위한 공무원노조’의 의미를 다시금 보여줬다. 하지만 문제제기는 곧바로 특별교부금 사용 세부내역의 비공개로 이어졌다. 그렇지 않아도 투명하지 않은 돈에다가 정부가 검은 보자기를 덧씌웠다.

       
     
     

    교육부 특별교부금은 2004년에 법이 바뀌면서 줄었으나, 그 이후 꾸준히 증가한다. 국민이 낸 세금의 일정 부분을 재원으로 하기 때문에, 세금이 많이 걷히면 자동적으로 특별교부금도 늘어난다. 올해 들어서는 드디어 1조원을 넘어서 2003년 수준을 회복했다.

    이제 잘 쓰기만 하면 된다. 특정 정치인을 길들이려고 하던, 말 잘 듣는 특정 지자체에게 선물을 안겨주려고 하던 간에,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심정으로 ‘관행’적으로 잘 쓰면 된다. 어차피 선정기준이나 사용 내역이 공개되지 않지만,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는 마음으로 ‘표 안나게’ 잘 쓰면 된다.

    하지만 김도연 장관은 관행이었다고 하면서도, 표를 확 냈다. 5월 22일 <문화일보>가 1면 탑으로 이 문제를 처음 보도하자, 교육과학기술부는 “그 예산은 교과부 특별교부금으로서, 정식 학교예산에 편성하여 집행되는 것으로 발전기금 용도는 아니”라고 공식 해명자료를 내버렸다.

    짱박아둔 돈의 규모가 상당하고 투명하지 않은 문제가 있지만 그래도 정부 예산이고 국민 세금인데, 그걸 개인 용도로 사용했다고 대놓고 밝힌게다. 순간 ‘장관이 관두고 싶은가 보다’라는 생각이 스쳐지나간다.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기획예산처 장관 시절 10억원의 행자부 특별교부세를 개인적으로 사용하여 옷벗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실세 이주호 수석도 가만히 있는데

    특별교부금에 대한 지적은 사회단체나 노조만 하는 게 아니다. 특히, 감사원은 자주 지적한다. 교육부의 경우, 2005년과 2007년 재무감사를 받았는데 매번 ‘문제있다’고 통보받았다. 비교적 최근인 2007년 감사에서는 연말 멀쩡한 보도블럭 새로 까는 것처럼 몰아치기 하지 말라고 했는데도 또 그런다며 한 소리 들었고, 시도교육청을 경유하여 연구비를 지원하는 등 집행이 부적정하다고 주의 조치를 받았다.

    하지만 감사원 재무감사도 한계가 있다. 특별교부금이 괜찮은 돈인지, 적정한 규모인지에 대해 다룰 수 없기 때문이다. 1조 원이 넘는 돈을 장관 마음대로 합법적으로 쓸 수 있다. 관련 법에서는 국가시책사업에 60%, 지역교육 현안사업에 30%, 재해대책에 10%를 사용하도록 하고 있지만, 궁색하다.

    국가시책사업이나 지역교육현안 사업은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예산으로 편성하면 되고, 재해대책은 예비비로 두면 되기 때문이다. 물론 갑작스럽거나 예상하지 못한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를 위해 추경예산이라는 게 있다.

    그런 만큼 특별교부금은 필요없다. 지금까지의 관행처럼 ‘통치자금’, ‘쌈짓돈’, ‘눈먼 돈’, ‘로비나 전화하라는 돈’, ‘누이좋고 매부좋은 돈’이라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폐지되거나 최소한 대폭 축소되어야 한다.

    더구나 1조 원이면 학부모의 부담을 어느 정도 줄일 수 있다. 학교발전기금이나 불법 찬조금을 바치지 않아도 되고, ‘의무교육은 무상으로 한다’는 헌법에도 불구하고 내야 한다는 중학교 학교운영지원비를 안 내도 되며, 초등학생 자녀의 특기적성교육활동비를 납부하지 않아도 된다. 또는 학교급식비에만 사용하면 초등학생 무상급식을 할 수 있다.

       
     
     

    그래서인가 정치권에서도 특별교부금을 없애거나 축소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 바 있다. 특히, 이주호 수석은 한나라당 의원으로 있던 지난 2005년 9월에 특별교부금을 반으로 줄이자는 법안을 내기도 했다. 이 법안을 발의한 11인에는 현 청와대 정무수석인 박재완 의원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니까 이주호, 박재완 수석이 2005년에 ‘특별교부금 절반’ 법안을 발의했다. 그러면서 “주요정책사업은 중앙정부에서 예산을 편성해서 집행하도록 하여 지방교육재정의 규모와 그 재량권을 확대하여 지방교육의 자율성을 신장하고자 한다”고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이주호 수석과 한나라당의 ‘반값 등록금’이 실종된 것처럼 ‘특별교부금 절반’ 입장은 보이지 않는다. 덕분에 교육청이나 학교는 답답하다. 교육부의 특별교부금이 줄어들면 그만큼 교육청이나 학교로 내려오는 돈이 많아져 숨통을 틔울 수 있는데, 그럴 기미가 영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이주호 수석과 교육부가 교육청이나 학교에 선물한 것은 “지방교육재정 10% 절감하여 영어공교육 완성 등 국정과제에 투자”(대통령 업무보고, 2008년 3월)하는 거다. 중앙정부의 쌈짓돈은 그대로 둘 터이니, 너희는 허리띠를 졸라매라고 한다. 정말, 타의 모범이 되는 나라님들이시다.

    나름 억울할 것 같은 김도연 장관

    힘없이 앉아 있다가 모처럼 움직였는데, 잘못 했단다. 휘하 직원이 ‘자율적으로’ 잘못한 것도 장관 책임이 더 크단다. 관행이었는데, 관행대로 했는데, 왜 뭐라고 그럴까.

    하지만 관행대로 했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특히, 들키지 말아야 하는데, 미처 그것까지 관행대로 하지 못해서 죄가 된다. 그러니 이제 선례에 따라 옷도 벗고 죄값을 치러야 한다. 올 3월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로 실형을 선고받지 않았는가.

    물론 특별교부금을 실제 집행하지 않아 변양균보다 가볍다는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겠다. 그러고 보니 개인 용도라는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사찰에 공금을 준 것과 학교에 공금을 주려고 하다가 주지 않은 것은 엄연히 다르므로, 현 정부의 이중잣대 관행에 비추어보면 그냥 넘어갈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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