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리로만 나서면 사람이 불어난다
        2008년 05월 29일 07:22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미국산 수입 쇠고기 위생조건에 대한 장관고시가 초읽기에 들어간 가운데, 28일 열린 21번째 촛불문화제에서도 닷새째 연달아 거리 행진이 진행됐으나, 경찰과 큰 충돌없이 마무리됐다. 이날 국민대책회의가 주최한 문화제를 마친 시민 1만여 명 중 800여명은 경찰의 봉쇄망을 뚫고 회현동-명동-퇴계로-충무로-동대문 두타까지 가두 시위를 벌였다.

       
      ▲ 거리로 나선 시민들.(사진=뉴시스)
     

    촛불문화제를 마친 시민들은 ‘배후(?)’가 없다보니 우왕좌왕하는 모습이었다. 이들은 삼삼오오 제각기 몰려있다가 어디에선가 "나가자! 나가자!"라는 연호가 터지자 자연스럽게 가두시위 행렬에 동참했다.

    경찰은 문화제를 마친 시민들이 거리 행진에 나서는 것을 막기 위해 촛불문화제 경비 사상 최대 규모인 82개 중대, 6,000여명을 동원해 모든 인도를 막았으나 시민들이 거리 아래 청계천변 산책로 등으로 빠져나가 저지하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인도에서 경찰에 포위돼 오도가도 못하던 시민들이 강력하게 반발하기도 했다. 시민들은 제각각 "경찰이 인도를 불법으로 막았으니 112에 신고하자", "집에 가자", "잠 좀 자자", "불법주차 단속", "택시비", "인도통행 허용"등을 외치며 반발했다. 

    문화제 참석을 위해 16개월 된 딸을 엎고 인천에서 온 주부 김모(25)씨는 막차가 끊긴다고 화를 내다가 전경이 꿈쩍도하지 않자 결국엔 울면서 길을 열어달라고 애원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는 김씨 뒤로 한 전경의 무선기에서는 "잘하고 있다"라는 상부의 격려가 전해졌다.  

       
      ▲ 집으로 가게 길을 열어달라며 우는 아이엄마.(사진=뉴시스)
     

    김씨는 계속 갇혀 있었고, 이를 보다못한 시민들이 한 목소리로 "애 엄마는 보내달라"며 전경들을 압박하고 기자들에게 도움을 청해 그제서야 김씨는 간신히 집에 갈 수 있었다.

    또 전경은 길을 지나가는 시민들까지 막아 거센 항의를 받았다. 교보문고에서 소설책을 사고 집에 가는 길이었던 이연호(34)씨는 "롯데호텔 앞에 11시 10분에 오는 수서가는 막차 752번을 타고 집에 가야 한다"면서 "왜 그냥 길을 지나가는 일반 시민들마저도 시위대로 만들려 하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같은 반발에 결국 전경이 한 사람만 간신히 지나갈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주자 일부에서는 "우리가 전쟁 포로냐?", "시민들이 쥐새끼냐?"면서 분통을 터트리기도 했다.

    한편 청계천 산책로를 통해 먼저 빠져나간 시민들은 충무로 도로 3차선을 점거하며  가두행진에 나서 경찰을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다.

    가두 행진을 보고 즉석에서 길거리 시위에 참석하는 시민과 문화제 해산 후 간신히 경찰의 봉쇄를 뚫고 ‘게릴라’식으로 참여하는 시민들의 합류로 인해 시위대 규모는 2시간여 만에 2천여명으로 불어났다.

    새벽 12시께 동대문 두타 근방에 모인 시민들은 전경들에 의해 행렬이 끊겨버리자 한동안 실랑이를 벌였으나 안전 등의 이유로 시위대 선방에 섰던 ‘다함께’ 측이 해산을 선언해 100여명을 남긴 채 철수했다. 하지만 이를 놓고 시민들은 "누구 멋대로 해산을 선언하냐?"면서 불만을 성토하기도 했다.

    이에 끝까지 남은 시민 100여 명은 두산타워 빌딩 앞 광장에서 자유 발언을 이어가며 연좌 농성을 진행했다. 이들은 언론을 못 믿겠다며, 시민들이 직접 동영상등을 통해 생중계하는 별도의 카페를 만들자는 의견을 개진하기도 했다.

    이처럼 새로운 시위 모습에 대해 386세대인 안윤수(38)씨는 "쇠고기 고시 철회가 촛불을 든 가장 중요한 목적이기도 하지만, 이런 새로운 시위 흐름이 어떻게 확산될지 저 또한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면서 "서로 우왕좌왕하는 것들이 오히려 에너지가 되는 것 같다. 가두 행진도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지도부 구성에 대해 자발적으로 논의를 진행하는 것도 이채롭다"고 말했다. 

    안씨는 "나또한 이같은 새로운 흐름이 어떻게 확산되야하는지 해답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제도화와 경직화는 피했으면 좋겠다"면서 "지금처럼 자율적이면서 앞으로는 좀 더 효율적일 수 있는 접점을 찾아갔으면 좋겠고, 지금과 같은 에너지라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그 해답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기대했다. 

    경찰 측도 이같은 난상 토론을 1시간 여 동안 이들을 지켜본 뒤 평화 시위를 전제로 30여분 만에 대부분의 차량과 병력을 철수시켰다. 또 이날은 이례적으로 중부서 정보과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경찰이 직접 시위대가 있는 곳에 나타나 "오늘은 검거 방침이 없다. 검거 때문에 귀가를 안하시는 것이라면 안심하시고 안전귀가하기를 바란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이는 길거리에 서있기만 해도 연행됐던 지난 27일과 분위기와는 다른 모습이다. 이와 대해 기자들이 "갑자기 하루만에 기조가 바뀐 이유가 무엇이었냐?"고 물었으나 그는 "대답할 수 없는 위치"라고만 답했다. 경찰의 과잉 대응에 대한 여론이 부정적인 것에 대한 정부 차원의 결정인 것처럼 보였다.

    연좌 농성을 마친 이들은 다시 또 인도를 통해 청계광장까지 행진을 진행하고, 정리 문화제로 새벽 6시께 이날 행사를 마쳤다. 이날 시위에서는 큰 부상자나 연행자가 없었으나 시위자와 경찰 사이에서 산발적으로 크고 작은 시비가 일어났다.

       
      ▲ 길 위의 대치선.(사진=뉴시스)
     

    특히, 충무로 도로 행진시 서울시경 정보과 소속의 형사 세 명이 사복을 입은 채 인도에서 카메라로 채증작업을 벌이며 따라오다가 시위대에 발각돼 시민들과 거센 물리적 충돌을 빚기도 했다.

    이에 앞서 진행된 촛불문화제는 연행된 사람들의 석방을 촉구하며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또 그간 ‘좋은 소리’를 듣지 못했던 노동조합의 조합원이 쇠고기 투쟁을 함께 할 것을 선포해 전례없는 뜨거운 호응을 받기도 했다.

    전국민주공무원노동조합의 홍성호(43) 수석부위원장은 "그간 공무원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오욕과 굴종의 역사를 가졌지만, 이젠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당당하게 말하겠다"고 말하고, 금속노조 기아자동차 김우용(38)씨는 "촛불문화제에 참석하는 시민들과 함께 동맹휴업, 동맹 파업을 통해 미국산 쇠고기를 기필코 막아내자"고 말해 큰 박수를 받았다.

    한편, 경찰은 지금까지 쇠고기 수입반대 시위에 참가했다가 연행된 135명 가운데 31명을 28일 추가로 석방했으며, 구금 상태로 조사를 받고 있는 104명은 29일 중 신병 처리를 결정할 예정이다.

    또 이날 오전 10시 30분 종로의 한국기독교회관에서는 범기독교인들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기자회견이 열릴 예정이며, 오는 31일에는 정부의 장관 고시 강행에 맞서 대규모 집중 촛불 문화제가 개최된다. 

    필자소개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