狂牛를 위한 촛불 & 진혼곡
    2008년 05월 28일 10:3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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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주말을 맞아 집에 놀러온 여섯 살 된 조카와 뉴스를 본다. 대형마트에 진열된 소고기가 화면에 가득하다. 그때 조카의 반응. “맛있겠다.” 하지만, 뒤를 이어 나온 소들이 적나라한 죽음의 모습이 텔레비전 화면 속에 나타난다. 껍질이 벗겨진 소의 살점들. 가죽이 벗겨진 채, 거꾸로 매달려 지방과 살점이 다 드러난 소의 모습.

“삼촌 저게 소야?”
“응. 규현아. 소가 죽었어.”
“소가 불쌍해. 삼촌.”

어떻게 안 미치고, 어떻게 안 아플 수 있나

요즘은 뉴스보기가 거북하다. 갈고리에 걸려 거꾸로 매달린 소의 주검이 여과 없이 방영된다. 비단 조카 녀석만 충격을 받았을까. 광우병에 걸린 소가 쓰러져 가는 걸 텔레비전 화면에서 본다. 모두가 끔찍하다고 생각한다. 저런 소를 먹으면 나도 죽는다는 공포가 그곳에 있다.

   
  ▲일어서지 못하는 소.(사진=SBS)
 

광우, 미친 소. 미친 소 수입반대. 그런데, 미친 소가 맞는 말일까. 미친 소가 아니라 아픈 소는 아닐까. 인간의 탐욕으로 인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아파하는 소. 그래, 광우는 미친 소가 아니라 아픈 소다.

미친 소. 아픈 소. 어찌 미치지 않을 수 있는가. 어찌 아프지 않을 수 있을까. 동료의 주검을 사료로 먹어야 하는 소가 어찌 정상적인 상태겠는가. 인간이 인간을 먹는다면, 이런 말은 너무 끔찍한가.

그렇다면, 돼지가 돼지를 먹고, 개가 개의 내장으로 된 사료를 먹고, 닭이 동료의 살점을 쪼아 먹으며 자라야 한다면, 어떻게 미치지 않을 수 있을까. 아프지 않을 수 있을까.

온 나라가 촛불을 들며, 미친 소를 몰아내겠다고 한다. 미친 소는 공포의 대상이다. 하지만, 한번쯤 우리는 미친 소를 위해, 아플 수밖에 없는 소를 위해, 그들의 형용할 수 없는 고통에 대해서도 촛불을 들어야 한다.

미친 소는 그냥 미친 걸로 끝나지 않는다. 미친 소는 처절한 고통 속에서 죽어간다. 그들은 아무 잘못도 없다. 인간이 주는 먹이만 열심히 먹었을 뿐이다. 그런데 왜 뇌에 구멍이 숭숭 뚫려가며 고통스럽게 죽어야 하는가.

동물의 병과 인간의 그릇된 욕심

초식 동물인 소는 곡물을 먹어도 문제가 될 수 있다. 그것 역시 자연을 거스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풀을 뜯어먹고 살아갈 소에게 곡물을 먹이는 건 인간의 그릇된 욕심 때문이다.

미 대륙을 정복한 사람들은 소를 키울 수 있는 목초지를 확보하기 위해 인디언과 버펄로를 몰아냈다. 그런데 풀을 먹고 자란 소는 결정적으로 맛이 없다. 넓은 목초지에게 맘껏 뛰어 다니기 때문에 근육이 많기 때문이다.

곡물을 주면 소가 빨리 자란다. 넓은 곳에서 사육할 필요도 없으니 일석이조다. 세계 곡물생산량의 3분의 2가 가축사료로 쓰인다는 통계도 있다. 그래서 인간에게 돌아오는 건 무엇인가. 1년에 기아로 죽는 사람들이 남한 인구만큼 된다는데, 곡물은 동물에게 쓰이고, 그렇게 빠르게 살이 찌워진 동물은 가난하지 않는 사람들만 맛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댓가로 사람들은 이름 모를 질병에 시달린다.

동물적 감각. 뛰어난 감각을 가진 인간에게 우리가 흔히 쓰는 말이다. 맞다. 동물은 최소한 인간과 비슷한 감각을 가졌거나, 아니면 이 말에서 뜻하는 것처럼 인간보다 훨씬 감각적으로 뛰어나다. 그래서 고통을 감지하는 감각 역시 최소한 인간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들에게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안겨주며 살고 있다.

“미국에서는 1억 백만 마리의 돼지가 도살되고, 3천7백만 마리의 소와 송아지가 도살되고, 4백만 마리가 넘는 말과 염소와 양이 도살된다. 그리고 80억 마리가 넘는 닭과 칠면조가 도살된다. 매년 미국 농부들이 총 325억 킬로그램의 소와 돼지고기, 230억 킬로그램의 닭고기와 칠면조 고기 그리고 8백억 개가 넘는 계란을 생산한다.”  <도살장 : 미국산 육류의 정체와 치명적 위험에 대한 충격고발서 중에서>

닭, 평균 수명 20년인데 항생제 맞고 한 달 안에 죽음

도대체 우리는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가. 자연 상태에서 10년을 사는 돼지, 그러나 돼지는 인간의 먹이가 되기 위해 무섭게 살이 찌워지며 고작 160일 정도의 짧은 생을 고통 속에서 살다가 마감한다.

닭은 어떤가. 20년은 넉넉히 사는 닭은, 온갖 항생제를 맞아가며 한 달 만에 생을 마감한다. 소도 역시 20년이 자연이 정해준 수명이지만, 겨우 2살이 되기도 전에 생을 마감한다. 그나마 30개월이 넘기는 소는 인간의 먹이가 될 송아지를 생산할 소다. 그리고 30개월이 넘으면 역시 폐기처분 당한다. 그 소를 수입하느냐 마느냐가 또 지금 관건이다.

“자연적이지 않은 것, 자연을 위배한 것은 반드시 고통을 낳는다. 살아 움직이고 싶어 하는 것, 살아 뛰어다니고 싶어 하는 것들을 억지로 비좁고 더러운 공장식 축사에 가둬 키우고 더 많은 고기를 얻기 위해 성장촉진제와 병이 들지 않도록 항생제를 먹인다…(중략)…

세상의 모든 것은 그물망처럼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 인간이 다른 동물 그리고 지구 환경에 가한 행동은 부메랑처럼 우리 자신에게 되돌아온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 (초록먹거리로 우리의 식탁이 전환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채식동호회들의 성명서 일부)

   
  ▲살처분이라는 이름의 생매장. 오리 거위가 땅에 묻히고 있다.(사진=뉴시스)
 

얼마 전 조류 인플루엔자(AI)로 수많은 닭과 오리들이 살처분 당했다. 2년 전 일이 생각난다. 전북 익산시의 한 농가에서 닭 6,031마리가 죽었는데, 조류 인풀루엔자로 AI로 판정됐다. 인간은 살처분에 돌입하였다.

감염농가에서 반경 500m 이내의 닭 18만6,700마리, 개 677마리, 돼지 300마리의 도살을 끝냈다. 그걸로 끝내지 않았다. 2차 살처분도 신속하게 진행됐다. 반경 3km 이내 닭 21만6,000여 마리, 돼지 4,000여 마리, 개 2,900여 마리 등이 추가 살처분 됐다고 보도됐다.

단 한 번만이라도 죽어간 동물들을 위해 촛불을

기르던 강아지가 하루아침에 살처분 당할 때, 동네 아이들은 울부짖었다고 보도됐다. 동물과 인간, 그 아픈 마음을 어떻게 달랠 수 있을까. 그랬다. 조류뿐 아니라, 인근 지역 모든 동물들이 연좌제를 당했다. 죄 값은 오직 죽음뿐이었고, 그것도 명예롭고 고결한 죽음이 아니라, 동물의 비명이 난무한 고통에 찬 생매장이었다. 난 그 즈음부터 고기를 못 먹게 됐다.

오늘 우리의 촛불은, 단 한 번만이라도 미친 소를 위해 밝혀줘야 한다. 미친 소가 될 위험에 처해 있는 ‘동물공장’에서 고통받는 소를 위해 밝혀져야 한다. 연좌제에 묶여 인간에게 피해가 오는 걸 차단하기 위해 오직 죽음으로 동료가 병에 걸린 값을 갚아야 하는 닭과 오리와 돼지와 개들에 대한 애도를 위해 밝혀져야 한다.

정말 한 번쯤은 인간탐욕과, 생명도 상품으로 만드는 자본주의에 대한 숙연한 자성의 의미를 담은 촛불이여야 한다. 다른 종에 대한 처참한 학살. 오직 인간의 식탁에 오르기 위해 자연의 법칙이 무시된 채 사육되고 도축된 그들을 위해, 실험용으로 죽어간 천문학적 수의 동물들을 위해 밝혀져야 한다.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준엄한 경고를 무시하면, 스페인 독감이 다시 우리를 방문할 수도 있지 않을까. 

                                                    * * *

<참고>

스페인 독감 (출처 – 위키 백과사전)

스페인 독감은 1918년과 1919년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A형의 변형인 H1N1 바이러스에 의해 유행한 독감이다. 감염된 사람은 6억명, 사망한 사람은 4천만~5천만명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에서도 740만명이 감염되어 14만명 이상이 사망했다.

발생원은 1918년 3월 미국 시카고 부근, 고병원성이 된 곳은 1918년 8월 15일, 아프리카 서해안의 영국보호령 시에라리온의 수도 프리타운 부근으로 추정된다.

스페인이 병원체의 발원지는 아니지만, 제1차 세계 대전 연합국은 "스페인 독감"으로 부르게 되었다. 이는 스페인이 제1차 세계 대전의 참전국이 아니라 전시 보도 검열이 이뤄지지 않아 스페인의 언론에서 깊이있게 다뤄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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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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