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 시민 '토끼몰이'…113명 연행
        2008년 05월 28일 03:2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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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정부 출범이래 가장 많은 113명이 27일 단 하루밤새 연행됐다. 경찰은 시청 앞 한 호텔 부근에서 촛불문화제 참가자들이 인도로 보행해 청계천에서 정리집회를 가진 후 해산하겠다고 얘기해 길을 비켜주는 듯하다, 돌연 태도를 바꿔 시청광장에서 토끼몰이식으로 포위한 뒤 이들을 연행했다.

    경찰은 연행 직전 미란다 원칙만 고지했을 뿐 포위 및 연행과정에서 법적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을 뿐더러 사전 경고방송도 하지 않고 연행을 단행해 시위 참가자들의 강력한 반발을 샀다. 특히 이 과정에서 중고등학생들도 일부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참석자들은 크게 분노했다.

       
      ▲28일 0시 40분경 시위대가 자진해서 경찰 버스에 오르고 있다.(사진=정상근 기자)
     

    이날 촛불문화제는 약 5,0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시작되었다. 촛불문화제는 그동안의 방식대로 자유발언 중심으로 진행됐다. 이날 문화제에서는 다음 아고라에서 시위에 참가하지 못하는 네티즌들이 성금을 걷어 준비한 물과 초 등이 제공되었고 한 시민이 초코파이 몇 상자를 기증해 이를 나누어 먹기도 했다.

    "학교 양호실서 반창고 붙이는데 10만원 내게 생겼다"

    이어진 자유발언에서 ‘청계광장의 김제동’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 남자는 “이명박과 똘마니 장관들이 의료와 교육을 영리목적으로 장사하려 하고 있다”며 “이러다가 학교 양호실도 민영화 해서 반창고 붙이는데 미보험자는 10만원 내게 생겼다”고 외쳤다.

    50~60대로 보이는 한 남성은 “낚시꾼들이 물 반 고기 반이라 그러는데 청와대에는 전부 도둑밖에 없는 것 같다”며 “특히 이 도둑질을 방관하는 원흉이 있는데 돈 받고 망봐주는 조중동, 돈도 안 받고 망봐주는 문화일보”라고 말해 큰 박수를 받았다.

    한 직장인은 “땡땡이 치고 왔으니 찍지 말아달라”며 “이 집회는 이명박이 부시의 대리운전을 하면서부터 시작되었는데 왜 대리운전 했으면 돈을 받아와야지 미친소를 받아오느냐”며 “이런 사실을 자세히 보도하는 <MBC>, <경향>, <한겨레> 등 참언론은 우리가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31살의 직장인 네티즌’이라고 밝힌 한 남성은 자신이 가입한 한 사이트의 고교생의 글을 활용해 “우리에게 자의식이 너무 강하다고 한게 어른들인데 누가 배후조종한다고 하냐, 우리는 당신들의 정책에 반대해 자발적으로 나온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한 공공노조의 조합원은 연단에 올라 “우리 이병렬 조합원이 자신 몸 하나를 불살라 이명박을 정신차리게 하고자 했는데 돌아온 것은 ‘정신 병력이 있다’는 말 뿐”이라며 “우리 이병렬 조합원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말해 잠시 장내가 숙연해지기도 했다.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청계광장엔 또 다시 5천여명의 시민이 모였다.(사진=정상근 기자)
     

    정치인으로 몇일 째 유일하게 연단에 오르고 있는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은 “오늘 야당들이 함께 국무총리를 만난 자리에서 여기 계신 시민들의 배후는 없음을 똑똑히 말씀드렸다”라며 “장관고시만 없으면 이 협상은 죽은 협상으로 여러분들이 장관고시를 막아 달라”고 당부했다.

    "다치지 말자, 잡히지 말자"

    이날 촛불문화제는 평소보다 이른 9시 20분 경 종료되었지만 시민들은 “행진”을 외치며 대열을 잇기 시작했다. 이날 행진 발언에 맞춰 시민들은 자연스럽게 대열을 만들었고 함께 하지 못하는 촛불문화제 참가자들은 “다치지 말아라”, “잡히지 말아라”며 안타까움 섞인 인사를 보냈다.

    처음 행진은 명동 방향으로 향하다 롯데 백화점 앞에 일부 농성단이 기다리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와 방향을 틀었다. 최초 3,000여명의 행진은 백화점에 도착해 농성단이 합류하고 시민들이 합류하면서 순식간에 5,000여명으로 불어났다.

    평화적으로 거리행진을 하던 이들을 경찰들도 교통통제 인원만 배치하며 최대한 자극하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행진이 계속되는 가운데 10시 25분경 을지로 2가에서 약간의 전경들과 최초로 마주쳤다. 시위대는 전경과 충돌하지 않기 위해 방향을 돌렸고 명동성당 앞길을 택해 움직였다.

    하지만 명동성당에서 롯데백화점으로 나가는 길을 경찰이 가로막자 시위대는 극심한 혼란상태를 보였다. 일부 시위대는 인도 쪽으로 올라서고 일부는 명동성당으로, 일부는 남대문 쪽으로 빠르게 흩어졌다.

    이 과정에서 전경들이 인도까지 점령해 막아섬으로서 시위대는 물론 지나가는 시민들까지 큰 불편을 겪었다. 인도로 지나가려는 몇몇 시위대 및 시민, 막아서려는 전경들 사이에 몸싸움이 일어나기도 했다.

       
    명동역 부근을 지나는 시위대(사진=정상근 기자)
     

    경찰은 무전을 통해 “길은 모두 봉쇄하되 시민들을 자극하지 말 것, 단 먼저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은 현행범으로 체포할 것”을 지시했고 이 무전내용이 시위대에게까지 들리면서 시위대가 크게 반발했다. 이 롯데백화점 앞에서 10여명이 연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뿔뿔이 흩어진 본대는 곧 시청 앞으로 모여들기 시작했고 이들은 약 500여명 정도만이 남았다. 이들은 인도에 올라 경찰들이 모든 길을 막자 자발적 회의를 통해 차도를 점거하지 않고 인도를 통해 청계광장에서 해산집회를 하겠다고 경찰 측에 제시했고 경찰이 갑자기 횡단보도를 열어주면서 큰 충돌 없이 끝내는 것으로 보였다.

    풀어달라는 시위대 마구 잡아들여

    하지만 시청 앞 광장으로 이동한 시위대를 전경 약 1만여명이 빠르게 둘러싸고 포위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시위대를 조각조각 분리한 후 약 20여명의 그룹별로 전경으로 둘러쌓다. 이 과정에서 100여명의 시위대가 포위에 갇혔다.

    포위과정을 피한 시위대는 시청 광장 무대에 올라 촛불을 태우며 풀어달라고 농성하기 시작했고 포위망에 갇힌 사람들은 “집에 갈 테니 제발 길을 열어 달라”고 울부짖었지만 경찰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또한 이들을 풀어달라며 접근하는 시위대 중에 고등학생으로 추정되는 여학생들을 갑자기 붙잡아 포위망 안에 강제로 넣는 등 인원수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다.

    포위된 시위대는 안에서 연좌농성을 했다. 경찰은 기자들을 밖으로 불러내며 연행이 시작될 것임을 암시했고 특히 <아프리카> 등 인터넷 생중계단은 멀리 격리시켰다. 하지만 연행자 안에 <한겨레>와 <민중의 소리>, <OBS>기자가 끝까지 나오지 않아 강제 연행이 쉽게 이루어 지지 않았다.

    20여분간 경찰과 대치한 포위된 시위대는 비폭력 원칙을 고수하며 자발적으로 버스에 타기로 결의했다. 이어 12시 23분 경 버스를 타기 시작, 50분 경 105명 가량의 시민이 버스 3대와 봉고차 1대에 나눠 타 연행되었다.

    연행되는 시위대는 창문에 ‘이명박 탄핵’ 전달을 걸어 놓았고 연행되던 시위대는 버스를 타는 과정에서 “우린 잘못이 없다”, “우리가 이길 것”이라고 외치기도 했다. 포위망 밖의 시민들은 내부 사정을 몰라 기자들을 보는 대로 잡고 물어보며 발만 동동굴렀다.

       
      ▲명동 인근을 지날때 시위대가 주차된 경찰차를 발견해 ‘연행자를 석방하다’등 유인물을 올려놓고 있다(사진=정상근 기자)
     

    한편 연행 과정에서 경찰이 법적 근거를 대지 않고 포위전 경고방송도 하지 않았다며 인권운동사랑방 등 인권단체들이 강력하게 항의했다. 경찰은 인권단체들의 지휘관 면담요청에 응하지 않고 시민들을 검거한 체 그대로 버스를 출발시키고 곧 철수했다.

    "사람들 더 많이 나와야"

    집회에 끝까지 남은 한 대학생(20)은 “이런 과정들을 처음 보는데 너무 슬프고 괴롭다”며 “촛불들이 더 많이 나와야 하는데 거리시위가 되면서 사람들이 많이 참석하지 않는 것 같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남은 시위대 200여명은 자유발언대를 만들어 “이번 거리 행진은 너무 자연스럽게 경찰의 포위망 안으로 들어갔다”며 시위대 내부에 ‘경찰 프락치’가 있음을 주장하기도 했다. 새벽까지 현장에 남은 한 여고생은 “어떤 아저씨가 계속 한 쪽으로 가야 한다고 소리지르는 것을 봤다”고 말했고 증언들이 잇따라 쏟아지고 있다.

    한편 남은 시위대는 새벽 1시 30분 시청 앞 무대에서 향후 투쟁방향을 논의했다. 이들 중에는 청계천으로 돌아갈 것과 시청광장을 사수하자는 의견이 있었는데 다수의 의견이 시청에 계속 남아 ‘연행자 석방’을 외치자는 것으로 기울음에 따라 시청앞 광장에서 밤샘농성에 돌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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