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벽의 아비규환…자해, 부상, 연행
        2008년 05월 27일 06:4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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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비규환이었다. 열아홉 번 째 촛불문화제가 진행된 27일 새벽 종각역 앞. 휠체어를 탄 여성 장애인은 전경들에게 때리지 말라고 절규하며 손목을 긋고, 20대의 한 남학생은 다리가 부러진 채 일어나지 못했으며, 40대 주부는 실신으로 호흡곤란이 오는가 하면, 다수의 건장한 20대 청년들조차도 사지가 들린 채 끌려다녔다.

    전경의 폭력은 기자도 비껴가지 않았다. 원인도 모른 채 갑자기 취재방해와 구타를 당한 기자들도 현장 곳곳에서 전경들과 뒤엉켜 몸싸움을 벌이며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이날 76개 중대 약 7천6백여 명이 투입된 경찰은 촛불문화제를 마치고 청계광장에서 명동을 거쳐 종각까지 새벽이 되도록 미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며 가두행진을 벌이던 시민 800여명을 강제해산하고, 현장에서 29명을 연행했다.

       
     
     

    이날 연행된 사람들은 서울 강북경찰서 10명, 서울 금천경찰서 6명, 서울 서대문경찰서 9명, 서울 방배경찰서 4명 등 경찰서별로 분산 연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지난 25일부터 사흘 연속 진행된 미 쇠고기 수입 반대 가두시위에서 연행된 누적인원은 96명으로 늘어났지만, 지난 25일 연행된 36명은 이날 새벽 불구속 입건 돼 전원 석방됐다.

    경찰은 이날 새벽 1시부터 진압에 나서 2시간여만에 일사분란하게 시위대를 강제 해산시켰다. 그러는 사이 촛불 집회 참가자들의 구호는 ‘비폭력’과 ‘평화’, ‘민주시민 분노한다’, ‘연행자 석방’, ‘이명박 탄핵’으로 자연스럽게 바뀌어갔다.

    하이힐에 원피스를 입고 친구를 만나러 나온 여대생, 퇴근길에 술 한 잔 걸친 넥타이 부대, 훈련을 마친 예비군, 교복 차림의 중고등학생 등 시위에 단련되지 않은 맨몸의 시민들은 전경들의 폭력에 겁먹은 채 속절없이 인도로 쫓겨났고, 거리에는 깨진 유리 병 조각과 주인을 잃어버린 신발과 모자들이 아무렇게나 널브러졌다.

    이날 도로에서 난생 처음 만난 시민들은 어느 새 하나가 돼 서로 다친 곳이 없는지 챙기고, 행여 전경들에게 맞을까 서로 인도 밖으로 급히 끌어내고 간헐적으로 벌어지는 전경들과의 몸싸움을 막는 등 질서정연한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크고 작은 부상자가 발생해 5명의 의료봉사단이 제각각 땀범벅이 된 채 정신없이 뛰어다녔지만, 정확한 부상자의 숫자는 집계되지 않았다.

    권용한씨(30)는 “오늘 진압과정에서 일부 흥분한 전경들이 쓰러진 시민들에게도 마구 방패로 가격하는 등 무자비한 진압을 벌였다”며 “도저히 이런 상황이 2008년 대한민국에서 발생된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러한 경찰의 강경진압이 자극제가 돼 결국 이명박 정부는 막을 내리게 될 것”이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이규진씨(46)는 “과거 독재 정권보다 더 강력히 시민들을 탄압하는 것 같다”면서“이명박 대통령이 국민을 섬기기겠다고 하는데 모두 거짓말이고, 국민을 무시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새벽 3시 30분 경찰이 최소한의 인원만 남겨둔 채 병력을 철수시키고, 시민들에게 한 개 차로를 개방하자 시민들이 다시 청계광장까지 행진해 4시께 마무리 문화제를 갖고 해산했다.

    이에 앞서 26일 오후 7시에 청계광장에서 열린 19번째 촛불문화제에는 1만 여명의 시민들이 참여해, 정부의 거짓 선전과 엄단 협박에도 촛불은 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특히 이날 문화제 참가자들은 지난 주말에 벌어진 경찰의 강경진압에 대한 시민들의 강도 높은 비판들이 쏟아졌다.

    대학에 다닌다는 한 여성은 “우리와 똑같은 친구들이고 위에서 시켜서 한 것일 뿐이라, 학우들을 진압한 전경들을 욕하진 않는다”며 “하지만 어제와 같은 일이 다시 벌어진다면, 내 친구들 동생들은 때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대다수 대형 언론은 정부의 눈치 보기 바빠서, 광장에 나온 친구들을 폭도로 몰고 있다”며 “대형언론사 기자들은 자존심도 없는 사람들이고, ‘당신들 펜대를 꺾고 촛불을 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영등포에 사는 대학생이라고 소개한 남성은 “어제 거리에 나온 사람들은 폭도가 아니고, 평화를 사랑하는 평범한 시민들이다”며 “단지 이명박 정부에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 것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시민들의 평화적인 행동에 대해서 정부가 강경하게 몰아 부칠수록 평화를 사랑하는 시민들이 ‘행동파’가 될 가능성이 클 것”이라며 “그런 정부는 시민들의 저항 때문에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노당 강기갑 의원은 “어제 37명의 소중한 촛불들이 경찰에 연행되었다”며 “경찰이 풀어주고 안 풀어 주고를 결정할 수 없는데, 이는 이명박 대통령이 결정한다. 앞으로는 더 잡혀가는 사람들도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노총 이석행 위원장은 “어제 밤에 이 자리에서 이명박 퇴진을 외쳤던 국민들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며 “이럴 때 민주노총이 있는 힘을 다해 총파업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조직을 다지고 있다. 쇠고기 수입을 막도록 확실하게 준비해서 사랑받는 민주노총 되겠다”고 밝혔다.

    국민대책회의는 오는 31일까지 촛불문화제를 매일 저녁 7시 청계광장에서 계속할 예정이며, 28일과 31일에는 대규모 집중문화제 형식으로 진행키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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