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른들의 슬픈 코미디
        2008년 05월 26일 12:1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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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간고사가 끝나고 벌써 5월이 막바지를 향해간다. 학교는 행사로 수업이 널널하게 진행되었지만, 바쁘고 뜨거운 5월이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로 계속된 촛불 문화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사실 작년에 FTA 투쟁을 하면서 이미 지쳤기 때문에 뒤늦게 사람들이 쇠고기 문제로 떠들썩한 것이 좀 식상했다.

    내가 작년에 그렇게 떠들 때는 모르는 척 하더니 아니 이런 걸 몰랐단 말인가? 그리고 자기 몸에 들어간다니까 이제야 나서는 사람들이 좀 이기적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래도 촛불이 많이 모인다니까 촛불 구경을 하러 갔다.

    내가 모였으면 할 때는 그렇게 안 모이던 사람들이 모여서 무슨 얘기들을 하는지 궁금했다. 내가 처음 참여한 촛불 집회가 5월3 일이다. 그 때만 해도 높은 중앙 무대도 없었고 그야말로 작은 마이크와 엠프가 있을 뿐이었다. 사람들은 누가 먼저라고 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한 사람씩 나와서 자기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이기적’인 그들이 뭐라 하는지 궁금해서

    그들이 기분 나쁜 것은 미국산 쇠고기가 위험해서 그런 것도 있었겠지만, 대부분 "그렇게 중요한 일을 결정하면서 국가의 주인인 국민의 허락을 받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특히 놀라웠던 것은 교복 입은 많은 학생들이 "사회 시간에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라고 배웠는데 왜 대통령은 자기 맘대로 하냐?"며 분통을 터뜨리는 것이었다.

    죽고 싶지 않다는 이들의 절규는 어떤 면에서 이기적으로 보이기도 했지만 ’이제 참지 못하겠다‘는 한계점을 넘어선 어떤 외침같기도 했다. 내가 고무받았던 것은 이들의 대담함이다. 2005년 내신 등급제가 시행되기 시작했을 때 내신 등급제 반대 집회만 해도 아이들은 얼굴을 가리며 기자들에게 "찍지 마세요"라고 자신들의 신분이 노출되는 것을 극구 두려워했다.

       
     
     
     

    그런데 올해 무대에 서는 아이들은 자신들의 신분을 떳떳이 밝히며 자신들의 주장을 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마스크 속에 스스로를 감추는 아이들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이 촛불 집회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아이들도 촛불집회에 가고 싶다고 말하기도 하고, 실제 약속을 했다가 결국 부모님을 이기지 못하고 못나오기도 했다.

    나는 집회에 나갔던 후기를 학급 신문에 싣기도 하고, 모두가 10대를 무서워할 때, 나는 아이들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너희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너희가 두려워서 어른들이 너희를 누르려고 하는 거’라고. 이렇게 아이들은 저만치 커가는데 학교에 오면 아침부터 반복되는 두발, 복장 검사를 하고 있는 교문 앞을 지나가야할 때마다 어제 촛불집회에 나갔던 그 아이들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할까 싶었다.

    친구 신고하면 상 주는 학교

    남부의 아이들이 여의도집회에 많이 나갔다고 공정택이 남부에 전교조가 많아서 그렇다고 운운한 날 학생부장 선생님의 방송이 있었다. 천장을 깬 사람이 있는데, 그걸 본 사람이 신고하면 상점과 특별한 선물을 주겠다고, 지금 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아이들이 믿고 따라야 할 학교와 어른들과 사회가 우스워지고 있다는데 있다.

    아이들이 조용히 공부를 하기엔 너무나 웃기게 돌아가는 것이다. 중학교 1학년 2학기 교과서에 ‘먹어서 죽는다’라는 법정 스님의 글의 학습활동에 보면 ‘광우병’도 결국 소가 육식을 하면서 시작된 거라는 것이 답으로 나온다.

    교과서에서 가르치는 그러한 국민상식이 통하지 않는 세상을 이대로 놔두면서 아이들에게 너희들은 공부만 하라는 것이 말이 되는가? 아이들은 공부하면 할수록 세상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그런 면에서 "공부하면 뭐하나요? 언제 죽을 지도 모르는데"라는 말은 비단 광우병 괴담이 만들어낸 오바가 아니라 "공부하면 뭐 하나요? 돈 없으면 물도 못 먹고, 교육도 못받는 세상에서 일자리도 없는데…희망이 있어야 공부도 하지요. 이렇게 우습게 돌아가는 세상에서"라는 말인 것이다.

    적어도 내가 어렸을 때는 "빨리 어른이 되어서 이 감옥을 빠져나가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자", 이런 마음으로 입시 고통을 견딜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 대학을 가도 캠퍼스의 낭만이 아닌 등골 빠지는 등록금과 취업준비가 있으며 대학을 졸업해도 ‘독립’이 아닌 끝도 보이지 않는 실업 상태가 기다리고 있다. 아이들은 장학사나 생활지도부장보다 ‘미래없음’이 더 무서운 것이다. 더 이상 학교와 사회와 어른들이 슬픈 코미디를 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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