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탄핵' 외치며 한때 청와대로
        2008년 05월 25일 01:2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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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대통령의 “송구스럽다”는 사과도 성난 민심을 잠재우지 못했다. 오히려 재협상은 언급도 없이 장관고시가 2~3일 가량 남은 것으로 각 언론이 보도하면서 분노한 시민들은 촛불문화제 후 종로 길가로 쏟아져 나와 “이명박 탄핵”을 외쳤다.

    24일 열린 17차 촛불문화제는 2만여 명(경찰 추산 7천명) 청계천에서 열렸으며, 일부 참여자들은 청와대로 행진을 시도하며 도로를 점거하는 등 시위를 벌이고, 밤샘 농성을 하는 등 그 동안의 문화제 때보다 더 격렬한 모습을 보여줬다. 경찰은 15일 새벽 6시께 전경을 동원해 농성 중이던 사람들을 강제 해산했으며 35명을 연행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최초로 발생한 대규모 연행이다.

    촛불 문화제가 이처럼 강력한 시위로 전환된 것은, 연일 계속되는 촛불 시위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가 대통령의 ‘송구’하다는 말 한마디 이외, 재협상을 위한 움직임을 전혀 보이지 않은 채 정부 고시를 강행하는데 따른 대중의 분노가 폭발된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11시 20분경 경찰의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지자 눈이 부신 시민들이 뒤로 돌아앉아 농성을 계속하고 있다.(사진=정상근 기자)
     

    이날 촛불문화제의 시작은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이 알렸다. 23일 국회에서 정운천 농수산식품부 장관의 해임안이 부결 된 이후 “청계천에서 청와대까지 매일 3보 1배를 하겠다”고 외친 강기갑 의원은 24일 오후 5시 소라광장 앞에서 무소속 임종인 의원과 함께 3보 1배를 시작했다.

    강 의원은 “국민들은 재협상을 하지 않으면 식탁 안전을 보장 받을 수 없음을 다 알고 있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밝힌 추가협의는 검역주권 6개 가운데 단 1개도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국회에서도 정운천 장관의 해임안이 부결된 만큼 나는 청계천의 민심을 청와대에 전달하기 위해 3보 1배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함께 참여한 임종인 무소속 의원은 “이제 17대 국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끝났다. 어제 강기갑 의원의 자유발언을 듣고 의원으로서 가만있을 수 없다고 생각해서 함께 나왔다”고 말했다.

    강기갑 의원의 3보 1배가 출발한 뒤 청계광장엔 곧 시민들이 모여들었다. 약 2만여 명이 참석한 촛불 문화제는 여느 때와 같이 시민들의 자유발언과 사회자에 의한 노래 등 문화제 행사가 한참 진행되었다.

       
    ▲3보 1배를 시작한 강기갑 의원과 임종인 의원(사진=정상근 기자)
     

    연단에 오른 시민들은 하나 같이 이명박 대통령의 대국민 성명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고 계속 투쟁해 나갈 것을 다짐했다. ‘두 아이의 엄마’라고 밝힌 한 시민은 “벌써부터 우리 아이가 급식에 쇠고기가 나오면 안 먹는다고 한다”며 “고시가 시행되면 이미 들어와 있는 쇠고기가 뿌려진다고 하는데 나부터 가서 일인시위라도 막겠다”고 말했다.

    이어 정진후 전교조 수석부위원장은 “저번 집회에서 학생들이 ‘교과서에서 배운대로 할 뿐’이라고 했던 말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라며 “우리 전교조 선생님들은 청소년들이 아니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도록 여러분과 함께 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대운하반대에 앞장서고 있는 ‘생명의 강을 모시는 순례단’이 연단에 올랐다. 이들은 국민과 농민들을 위해, 한반도의 강과 산을 위해, 이명박 장로의 회개와 참회를 위해 총 3회의 절을 올렸다.

    우석균 수의사연대 정책국장은 “재협의를 했다고 해서 내용이 대단할 줄 알았는데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다”며 “우리가 먹는 도축장 승인권이 우리한테 없고 광우병이 문제되도 전수검사를 못하는데 이런 협상을 한 이명박 정부가 한국의 정부냐 미국의 정부냐?”라고 되물었다.

    이날 문화제에는 캐나다에서 왔다는 데이비드 맥컬리 요크대 정치학과 교수가 올라 눈길을 끌었다. 그는 “캐나다와 미국의 FTA 체결 이후 캐나다 국민들은 고통스런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며 “FTA는 정부와 자본가들의 배만 불려 줄 뿐 일반 서민들에겐 건강을 해치고 노동자를 탄압하는 나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연단에 오른 17살 한 여고생은 “어른들의 일에 관심도 없었고 미래를 위해 공부만 했는데 이명박 정부의 등장 이후 우리들의 희망이 바닥으로 던져졌다”며 “수업시간에 선생님들은 ‘집회나가는 사람은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라는 말을 서슴없이 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 계신 어른들을 보니 희망을 다시 줍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이 학생은 또 한나라당에 대해 “어제 장관해임 건의안이 부결된 것은 한나라당 아저씨들이 자유선진당 아저씨들을 매수해서 그런 것이란 얘기가 있는데 한나라당 아저씨들은 우리 부모님들이 피땀 흘려 벌어온 돈을 더러운데 쓰지 말라”고 외쳐 큰 박수를 받았다.

    이어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도 연단에 올라 “그동안 우리가 나서면 조중동이 ‘우리가 선동’했다고 할까봐 뒤에서 촛불을 들었지만 노동자들도 이제 앞으로 나서겠다”며 “우리 민주노총 지도부는 청계광장에서 철야농성을 하기로 결정했고 이명박 정부에게 미국산 쇠고기를 임상실험용으로 미군에 4년동안 먹여보라고 요구한다”고 말했다.

       
     ▲이날 청계광장에는 2만여 명의 시민이 모여 다시 촛불을 들었다.(사진=정상근 기자)
     

    이어 ‘사계’와 ‘광야에서’ 등을 ‘부른 노래를 찾는 사람들’은 “여기서 바라본 촛불의 물결이 너무 아름답다”며 소감을 밝힌 뒤 “국민이란 말을 우리는 자주 안쓰지만 정치인들은 많이 쓰는데 그들이 얘기하는 국민이라는 것이 허위의 존재가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3보 1배를 마치고 돌아온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과 임종인 의원도 연단에 올라 “국민의 뜻을 청와대에 전하겠다”며 앞서 설명했던 3보 1배의 의미를 다시 설명했다. 강 의원은 “그래도 나는 몸이 가벼워 괜찮은데 임 의원은 나보다 몸무게가 두 배나 나가 고생했지만 완주해 냈다”고 말해 참가자들을 웃기기도 했다. 

    이어지는 자유발언이 끝나고 문화제가 정리되어 가고 있는 9시 20분경 문화제 중간에서 약 500여명의 시민들이 “이명박 탄핵”을 외치며 문화제 현장을 띠를 이어 돌던 중, 청와대까지 행진을 하자고 결의했다. 이 과정에서 이들과 평화시위를 주장하며 말리는 시민들 사이에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 뒤로 따라온 더 많은 시민들과 함께 도로 진입을 시도했고 이를 경찰이 급하게 제지했다. 곧 이어 연단에 누군가 올라 “청와대 까지 평화행진을 하자”고 제안하자 시민들은 경찰들을 피해 영풍문고 까지 돌아 종로대로를 점거하고 청와대로 향했다.

       
     ▲청소년들도 늦은 시간까지 종로 거리 점거에 남아 연좌농성을 벌이고 있다.(사진=정상근 기자)
     

    9시 40분경 경찰에 의해 세종로 4거리가 봉쇄되자 그때 까지 참여했던 약 5천여명의 시민들은 경찰들을 피해 청와대로 진입하려 했으나, 저지되자 곧 종로구청 앞 4거리를 점거하고 연좌농성을 시작했다. 이들은 “고시 철회, 협상 무효”, “이명박 탄핵”을 외치며 1시간 여 동안 연좌농성을 계속했다.

    10시 40분경 종로경찰서장의 선전차량과 물대포가 등장하자 시민들은 더욱 흥분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과 일부 몸싸움이 벌어졌고 여성 두 명이 압력에 의해 주저앉기도 했다. 그러나 곧 시민들은 자리에 앉아 평화시위를 하기 시작했고 경찰들도 비무장 상태를 유지하며 시민들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였다.

    시민들은 자리에 앉아 “폭력경찰 물러나라”, “미친정부 물러나라”, “독재 타도” 등을 외치며 연좌농성을 벌였지만 별다른 충돌 없이 농성이 계속되었다. 그러다 경찰의 방송이 시작되고 물대포 위의 조명이 환하게 켜지자 시민들은 다시 “이명박 탄핵”을 목청 높여 외쳤다.

    경찰은 이 과정에서 시위대를 자극하지 않으려 일부러 “집에 갈 시민들에겐 비켜드려라”, “시민들을 건드리지 말라”고 외쳤지만 점점 포위망을 좁히며 시민들의 불만을 사기도 했다. 한 시민은 “아이들이 있는 시위대를 불법으로 규정하는 것이 어디 있냐”고 불만을 터트리기도 했다.

    늦은 시간까지 돌아가지 않고 있는 한 청소년(18)은 “이런 광경은 처음 보는 것 같다. 경찰이 나를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협할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 느꼈다”고 말했다. 아이와 함께 온 주부 강 모씨도 “평화로운 시위를 하는데 저 많은 경찰들이 둘러 싼 것 봐라, 이명박이 우리를 거리로 몰았는데 이제 탄압하려는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경찰은 25일 새벽 6시에 이들을 강제 해산시켰다.

    촛불문화제가 일부 참석자들을 중심으로, 도로 점거 농성, 청와대 행진 등 ‘가투’의 성격으로 전환되면서 정부가 어떤 방식으로 대응할지 매우 주목된다. 이와 함께 참석자들 사이에 나타났던 시위 형태에 대한 이견이 국민대책회의 등 촛불문화제를 주도하는 조직과 일반 시민 참여자들 사이에서 어떤 방향으로 논의되고 정리될지도 향후 ‘투쟁’에 주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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