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우익 겨우 이 정도였나?
        2008년 05월 23일 03:4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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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지율 급전직하의 이명박 정권에게 “그럴 줄 몰랐어”라는 이야기가 횡행하는 것은 기대만 못하다는 실망을 드러낸 것이기도 하겠지만, 그 최저 교집합은 좋은 방향이든 나쁜 방향이든 주도권을 행사하리라던 예상이 완전히 빗나간 데서 비롯된다. 이제, 국민의 실망은 이명박을 떠받드는 우익 주도층 안으로도 전염되고 있다.

    “이명박, 박근혜, 이회창 진영을 막론한 전체 보수 정파들의 정치적 리더십이 흔들리고 있다. … 박근혜씨와 이회창 진영은 광우병 괴담과 관련해 공격의 표적을 좌파보다는 이명박 정부에 돌리고 있다. 우리 사회의 주전선이 어디 있는가가 흐려진 이념적 혼미라 할 수 있다. … 이 정부를 탄생시킨 ‘애국 보수층’이 자신들의 그간의 ‘이명박 지지’를 급속히 철회했다.

    … 국무총리 한승수씨 같은 이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 … 그런데 그는 국무총리 인준 청문회 때 “(5공 때 받은) 훈장을 반납할 용의가 있느냐?”는 질문을 받자 그것을 즉각 반납해 버렸다. … 이명박 정부와 ‘보수’에는 이런 유형의 인물들이 너무나 많다.” – 류근일, 「어떻게 되찾은 세상인데」, <조선일보>, 5. 12

       
     
     

    “한나라당 박근혜 의원이 광우병 선동 사태에 대하여 선동세력이 아닌 정부를 비판하고 나섰다. … 과장하는 방송, 반미단체, 정치세력, 여기에 부화뇌동하는 철부지들에 대한 비판 정도는 해야 균형이 맞을 터인데 그는 자신이 몸 담고 있는 정권을 비판했다. … 선동세력을 편드는 듯한 박근혜 의원의 자세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 2002년 그가 김정일을 만나고 온 뒤로는 희대의 학살자를 거명하여 비판하지 않았다.

    … 박 의원은 중립적 위치에서 시시비비를 가리는 논설위원이 아니다. 여당의 한 지도자인 그는 선동세력을 누르고 속아넘어가는 국민들을 설득해야 할 당사자이다. 당사자가 구경꾼처럼 차갑게 행동한다면 그가 위기에 처했을 때 이명박 세력이 어떻게 나올 것인가?” – 조갑제, 「박근혜는 논설위원이 아니다」, <조갑제닷컴>, 5. 7

    "더 오른쪽으로"

    우연인지 조갑제와 류근일의 판단, 해법은 똑같다. 한승수가 5공을 배신했다는 류근일의 타박, 박근혜가 김정일을 비판하지 않는다는 조갑제의 독려는 ‘더욱 더 우익화’라는 한 곳으로 모인다.

    그렇다면 지금까지는 우익적이 아니었다는 말인가? 영어몰입교육과 ‘어륀지’ 사태, 미국 쇠고기 개방 강행,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의 중단은 현실 정치세력이 시도할 수 있는 가장 우익적인 정책이거니와, 굳이 전문가들의 분석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이런 우익 정책들로 인해 이명박 정권이 곤경에 처했다는 것은 ‘초딩’도 아는 상식에 속한다. 조갑제와 류근일의 바람대로 하자면 북한과의 전쟁 정도밖에 안 남는다.

    두 우국지사의 다음 해법은 ‘대동단결론’쯤 된다. 그들은 왜 이명박과 박근혜, 이회창이 힘을 합쳐 좌익을 척결하지 않고 저희들끼리 싸우는지 도통 이해되지 않는다. 하지만 정치공학적으로 보자면 박근혜와 이회창의 야당 노릇은 민주당을 있으나마나 한 군소야당으로 전락시키면서 우익의 정치적 영향력을 넓고 두텁게 만들고 있다. 조갑제와 류근일의 푸념은 정치적 방책이라기보다는 전두환 때처럼 서열 정해 충성주 따르자는 노인정 객담에 가깝다.

    두 우익 논객의 진짜 논지는 우익화나 대동단결이 아니다. 그들은 한승수, 박근혜, 이회창을 비판하면서 “이명박은 무죄”라는 결론을 이끌어내고 싶은 것이다. 영어몰입교육도, 미국 쇠고기 수입도 이명박이 강한 소신을 가지고 손수 밀어붙인 것이지만, 대통령에게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된다는 구닥다리 충성심이 그들로 하여금 책임을 뒤집어씌울 희생양을 찾도록 한 것이다.

    방송 탓하고, ‘초딩’ 탓하고, ‘괴담’의 귀신 사냥에 나섰다가 이도저도 안 되니 대통령 아닌 우익 정치인 누군가를 매도하는 데로 방향을 튼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글에선 다른 모든 것은 잃어도 대통령 자리는 꼭 사수해야 한다는 불안과 초조감이 엿보인다.

    우익의 무능력, 한국 정치의 장기파동

    지금의 상황은 류근일의 분석대로 “이 정부를 탄생시킨 ‘애국 보수층’이 지지를 급속히 철회”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애국 보수층’은 한승수나 김정일에는 별 관심이 없고, 그저 이명박이 미덥지 않을 뿐이다. 영어 공포증과 쇠고기 불안감이 그들을 더 이상 ‘애국 보수’ 아니게 만든 것이다.

    취임 세 달밖에 안 된 이명박 정부, 10년 만에 되찾은 우익 정권이 때 이른 위기에 처한 것은 조갑제와 류근일의 분석처럼 우익결핍증 때문이 아니다. 지켜보건대, 한국 우익에게는 세상을 읽는 눈도, 헤쳐나갈 능력도 없다는 사실이 진짜 원인이다. 조갑제와 류근일의 황당무계한 칼럼이야말로 우익 무능의 적나라한 증표다.

    어찌어찌 몇 편 쇼로 집권했으나, 국정능력 없음이 금방 폭로되었다는 점에서 이명박 정권은 노무현 정권의 진정한 계승자이다. 개혁우익이 망해간 것처럼 지금 수구우익이 망해가고 있다. 이명박과 그 후계자들이야 계속 권좌에 앉아 있겠지만, 한국 우익 전체의 무능력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으므로, 이제 한국 정치는 장기파동에 들어선 듯하다.

    나는, 한국 우익들이 잘하길 기대했거나 잘하라 책망하지 않는다. 어차피 잘하지도 못할 것, 그저 이대로 두라 말하고 싶다.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노무현처럼 그만 두겠다 찡얼거리지나 말아 달라. 안 그래도 불안한 국민 더 불안하게 하지 않는 게 지금 한국 우익이 할 수 있는 최고 최대의 공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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