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장이 문화 다양성을 잡아먹었다”
    By mywank
        2008년 05월 21일 01:3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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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한다는 말, 이 말처럼 사람을 단박에 기분 좋게 만드는 말도 드물지. 두고두고 가슴 설레게 하는 말 또한 드물지….”

    여섯 번째 ‘문화다양성의 날’을 맞은 인사동 한편에서 ‘통한다’라는 시가 울려 퍼졌다. 하지만 촛불문화제에 대한 정부와 교육당국의 탄압, 한미 FTA의 4대 선결조건으로 내준 스크린쿼터, 공영방송의 민영화 시도가 벌어지고 있는 우리의 현실은 다양한 문화와 ‘불통(不通)’하고 있었다.

    21일 오전 11시 인사동 남인사마당에서는 세계문화기구를 위한 연대회의 주최로 ‘문화다양성의 날’ 기념행사가 열렸다. 행사장에 참석한 각계 문화예술인들의 얼굴에는 웃음 대신 “문화다양성 협약의 조속한 비준”을 외치는 무거움만이 자리 잡고 있었다.

       
      ▲ 21일 오전 11시 인사동 남인사마당에서는 제6회 ‘문화다양성의 날’ 기념행사가 열렸다. (사진=손기영 기자)
     

    이날 행사장에는 영화배우 문소리·권병길 씨, 영화감독 정지영·김대승 씨, 김영현 한국작가회의 부이사장, 원용진 문화연대 집행위원장, 정재훈 우리만화연대 사무국장, 양기환 세계문화기구를 위한 연대회의 집행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문화다양성의 날’은 지난 2002년 제 57차 UN 총회에서 제정된 뒤, 2003년 첫 기념행사를 가졌다. 이어 ‘문화다양성 협약’이 채택되었다. 현재 전 세계 80여 개 나라가 ‘문화다양성 협약‘을 비준한 상태이지만, 한국정부는 이 문제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지 않다.

    정부는 지난 2007년 말 WTO나 FTA 등 통상협정의 위협으로부터 문화다양성을 지키고, 협약이 실질적인 강제력을 갖게 하는 데 있어 핵심조항인 문화다양성 협약 제 20조(다른 협약과의 관계)와 제 25조(분쟁 해결)을 유보한 채, 국회 비준 없이 대통령 비준으로 이 문제를 처리하려고 했다.

    하지만 협약의 제 20조와 25조를 포함 국회비준을 요구하는 각계 문화예술인이 반발에 부딪혀, 대통령 비준은 현재 중단된 상태다. 이 때문에 아직 우리나라는 ‘문화다양성 협약’의 미비준국으로 남아있다.

    각계 문화예술인들은 이날 선언문을 통해 △어떠한 유보조항 없이 유네스코 문화다양성 협약의 조속한 비준 △스크린쿼터 원상복귀 및 한미 FTA 전면 재검토 △방송의 공공성 위협하는 공영방송 민영화 시도 중단 △비문화적인 4.15 학교자율화 계획 철회 및 영어몰입교육 중단 등을 요구했다.

    양기환 세계문화기구를 위한 연대회의 집행위원장은 이날 행사의 취지를 설명하며 “문화의 영역을 단순한 시장논리로 재단하지 못하도록, UN에서 문화다양성 협약이 체결되었지만, 한국정부는 FTA 문제 때문에 미국의 눈치를 보느라 아직 이를 비준조치 못하고 있다”며 “일부 문화예술인들도 이에 대한 중요성을 아직 모르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어, 참석한 문화예술인들의 자유발언이 이어졌다. 영화감독 정지영 씨는 “요즘 국민들이 광우병 위험이 있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기 위해 한 목소리를 내는 것과 같이, 문화다양성 비준 문제에도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원용진 문화연대 집행위원장은 “문화다양성의 문제 중 하나인 ‘표현의 자유’가 아직 보장받고 있지 못한 것 같다”며 “이번에 미국산 쇠고기 문제에 대해서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 것을 정부나 경찰에서 막고 있는 모습이 바로 문화다양성에 대한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용진 공공연맹 문화예술분과장은 “IMF 이후에 문화산업에도 ‘시장논리’가 적용되기 시작해, 공연비용이 상당이 많이 올랐다”며 “이 때문에 문화수요 부분의 양극화가 심해졌고, 국민들이 다양한 문화를 접할 기회가 그만큼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김영현 한국작가회의 부이사장은 “정부는 문화 다양성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지 못하다”며 “예를 들어 ‘다양하다’라는 말은 ‘아름답다’라는 말과 등치되고, 꽃도 다양하게 피어야 아름답다”고 강조했다.

    참석자들의 자유발언이 끝나자, 창작그룹 ‘LAB 39’의 ‘세 자루’란 퍼포먼스 공연이 이어졌다. 공연팀은 행사장 바닥에 분필로 ‘문화다양성 협약’을 비준한 국가들의 이름을 일일이 썼다. 그 가운데 한국, 미국,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세 개의 자루를 놓았다. 이 세 나라는 국제적으로 ‘문화 다양성 협약’을 인정하지 앉는 국가들이었다.

    이어 세 국가들은 ‘문화다양성 협약’을 인정하는 국가들 대열에 합류하려고 했지만, 이내 이를 이루지 못하고 국제사회에서 고립된다는 내용의 공연이었다. 이를 지켜본 참석자들과 시민들은 부끄러운 우리의 자화상에 고개를 떨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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