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촛불 든 여학생, 시대 변화의 징후
        2008년 05월 21일 09:0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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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대가 주도하고 있는 촛불 시위를 보고 놀란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90년대 이후 중남미의 새로운 사회운동은 이름없는 평범한 시민, 농민, 원주민, 실업자, 가난한 사람들, 학생, 주부들 한 마디로 ‘대중’이 주도했다. 

    남미 대중의 ‘거리 민주주의’

    그리고 그 방식은 ‘거리의 민주주의’를 통해서였다. 다만 나라에 따라 그 방식이 다양하게 나타났을 뿐이다. 아르헨티나의 경우는 2001년 12월 주부들이 5월 광장에 모여 ‘먹고 살기 위해’ 아주 평화로운 방식으로 냄비를 두드리는 시위로 나타났었다.

    아르헨티나가 극단적인 경제위기를 겪은 이유는 1990년대에 집권한 메넴 정부가 극단적인 공기업 민영화 등 소위 ‘워싱턴 컨센서스’의 구조 개혁 모델에 집착하였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빈곤의 일반화였다.

    페데리꼬 마르띤 마글리오에 의하면 2001년 하반기에는 매일 약 2,000명이 빈곤선 이하로 떨어졌다고 한다. 키치너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위기를 넘기게 되는 아르헨티나에서는 경제회복도 중요했지만 무엇보다 그 과정이 ‘자존심의 회복’이었음을 강조하고 싶다.

    칠레의 경우는 2006년 6월 공사립간의 차별적 교육정책에 항의하여 고등학생들이 무려 약 1백만 명이나 거리시위를 벌인 적이 있다. 물론 미국과의 FTA 체결로 상징되듯이 신자유주의 체제 안으로 깊숙이 포획된 칠레의 경우는 이들 고등학생들의 시위로 인해 체제 변화까지 이루어진 것은 아니지만,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 추진에 어느 정도 제동을 건 것은 사실이다.

    이들은 기성의 어느 좌파정당, 또는 계급 이념에 따라 또는 정치세력화된 노동운동의 주도하에 움직인 것이 아니다. 중요한 동력은 소위 ‘민중’이 아니라 일반 대중이 그들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함이었고 이들의 생존권이 위기에 처하게 된 구조적인 이유는 신자유주의 경제, 사회 정책이었다. 바로 우리의 광우병 파동의 맥락과 같은 것이다.

       
      ▲볼리비아의 원주민 출신 대통령 모랄레스.
     

    좌파정당도 노동운동도 주도하지 못해

    그 결과 세 가지 점에서 새로운 정치, 문화 지형의 변화가 남미에서 나타나고 있다. 하나는 이전과는 다른 차원에서 대중의 실질적인 ‘인간다운 삶의 확보’라는 사회 경제적 이익을 지키기 위한 정치 경제 체제의 변혁 또는 정부의 정책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달에 있었던 파라과이 대선 결과도 이런 흐름의 하나로 이해할 수 있다. 이를 단지 ‘좌파 정부의 도미노’라고만 인식하는 것은 표면적 이해에 지나지 않는다.

    두 번째는 문화적, 인문학적 시각에서 남미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는 다양성, 복수성의 자산이 90년대 이후 남미의 새로운 사회운동 즉 대중운동을 통해 표출됨으로써, 이 다양성이 앞으로 남미 미래의 자산이 됨을 인식하게 되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대중은 예전의 ‘민중’ 에 비해 하나의 의미로 환원시킬 수 없는 다양성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에 대한 자세한 언급은 생략하겠다.

    세번째는 새로운 성격의 느슨하면서도 유연한 그러면서도 아주 강한 네트워크와 연대의 중남미 통합이 전략적으로 구체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중남미 통합과 관련하여, 이태리의 철학자인 안토니오 네그리는 쥬셉페 꼭꼬와 같이 지은 책 <글로벌>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세계화의 시간적-공간적 틀 안에서 상호 의존의 과정이 특히 중남미에서 풍부한 정치적 혁신의 영토를 구성하고 있다."

    중남미 건설이라는 대형 프로젝트

    ‘일국 안에서의 사회주의 건설’이라든지 단순히 몇 나라에서의 ‘좌파 정부로의 선회’를 넘어 역사상 초유의 중남미 건설의 효율적인 과정이 열리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중남미 건설은 아르헨티나, 브라질, 베네수엘라가 추진하고 있는 정치, 경제, 그리고 인프라의 통합에서 아주 강력한 동력을 보여주고 있다.

    비록 아직 초기단계이지만 ‘남미 가스관 공사’ 또는 ‘남미은행’ 프로젝트 그리고 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가 IMF와 합의한 외채의 전액 상환 등에서 이와 같은 새로운 남미 건설의 물질적 기초가 이미 나타나고 있다.

    위의 세 나라 외에 볼리비아까지 포함하여 중남미 통합운동이 새로운 것은 기존의 ‘민족 국가의 선진화’를 위한 통합이 아니라 탈민족주의적 열린 네트워크 형태의 상호 의존적 연대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각국 일반 대중의 구체적인 삶의 사회경제적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급진적 민주주의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 성격은 미국 주도 FTA 추진의 기본 구도인 ‘워싱턴 컨센서스’의 약화를 의미한다.

    그리하여, 이들 나라들의 변혁의 의미는, 네그리에 의하면, “민족적 과업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복수의 운동의 표현”이다. 이들 다양한 복수의 사회운동의 주체는 다름 아닌 ‘대중’인 것이다. 즉, 대중으로부터 역내의 새로운 지역 통합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네그리의 통찰력

    이런 언급을 하면, 차베스의 포퓰리즘과 룰라의 온건한 실용주의 노선은 서로 거리가 먼 길을 가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무슨 상호의존적 연대냐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얼마 전에 어느 논자가 베네수엘라 혁명뿐 아니라 남미 좌파 정부들의 남미 통합에 관한 연설 등은 미국과의 상호 교역의 현실적 긴밀함에 비춰보면 선동적인 수사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편 일도 기억난다.

    그러나 네그리에 의하면, “현재의 남미의 통합 운동은 고립주의적인 반제국주의적, 배타적 옛 구도로의 복귀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 남미의 통합을 시작으로 전 세계 지역과 블럭 시장들과의 통합을 전개하는 기초 전략”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브라질의 엘리트 그룹이 룰라 정부의 사회정책의 소극성에 대해 그리고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 고수 등 정책 추진의 애매함에 대해 무능과 불안 등을 들면서 비판하고 있으나, 네그리는 이것은 “신노예적 과두지배계급과 연합한 테크노크라트의 위선적 인종주의”로서 이들 기득권 계급은 사회의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신자유주의 기법의 사회 정책에만 초점을 맞추는 시각을 가지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네그리는 지적하길 “우리는 지금 역사적으로 왕권의 궐위기를 살고 있다. 마치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에서 나타났던 특징과 같이 주권적 권력의 위기가 나타나고 있다. 그러므로 모든 개념적 또는 현실적 주장에 대해 열린 자세를 요구받는 과도기에 있다”고 한다. 매우 통찰력 있는 지적이라고 본다. 이 위기에 맨 먼저 적극적인 대응을 펼치는 지역이 바로 남미라는 의미다.

    현재 남미의 다양한 성격의 좌파적 흐름들 중에서 가장 눈여겨 보아야 할 대목이 ‘남미 통합운동’임을 지적하는 셈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 정부도 장기 비전을 세우면서 탈민족주의 시각에서 동아시아의 연대와 평화에 기여할 수 있는 전략을 마련하는 게 시급함을 알 수 있다.

    한국 젊은 세대들 남미 문화에 관심 가져주길

       
      ▲사진=레디앙
     

    우리 사회의 진보진영에서도 기존의 남미에 대한 고정관념을 가진 사람들은 현재 남미의 변화의 잠재적 동력과 그 파급력의 흐름의 방향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신자유주의 가치관에 매몰된 기득권층 사람들은 장기 비전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남미에는 아예 관심도 없는 것같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현상 뒤에 숨어있는 흐름들까지는 보지 못한다.

    그런데, 이번 10대 여자 중고생이 주도하는 촛불 시위로 드러난, 우리 사회가 잠재적으로 가져온 부드럽고 유연한 다양성의 흐름을 중시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쪼록 이같은 다양성, 복수성이 다치지 않고 ‘쌍무지개 뜨는 언덕으로’ 퍼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건 사족이지만 젊은 세대가 더욱 남미 문화에 관심을 가져 주길 바란다. 예를 들어, 남미의 댄스 음악과 ‘살사, 메렝게’ 등의 춤에 대해서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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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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