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만히 서있는 것’만 허용하는 선거법
        2008년 05월 19일 03:3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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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총 대선승리 조합원 결의대회, 선거법 위반 판결받아

    2008년 4월 11일 부산지방법원 제6형사부는 민주노총 부산본부 최용국 전 본부장에 대한 2007년 대선 당시 선거법 위반 건에 대해 벌금 200만 원의 유죄판결을 내렸다.

    유죄판결의 이유는 2007년 11월 22일 민주노총 부산본부가 대선기간을 맞아 민주노동당 권영길 대선후보 및 관계자들을 초청하여 부산일보 10층 강당에서 조합원 300여 명과 함께 ‘대선승리 조합원 결의대회’를 개최했다는 혐의다. 최용국 전 본부장은 이로 인해 선거사범으로 향후 5년간 선거권을 박탈당하게 되었다.

    노동조합이 실내행사를 개최하여 투쟁방침을 공표하고 방침에 대한 단결을 호소하는 것에 대해 선거법 위반으로 유죄판결을 내린 것은 이례적인 것으로 이는 노동조합의 일상적 정치활동을 명백히 탄압하는 행위다.

    노동조합의 설립목적에 따른 당연한 행사

    노동조합의 설립목적은 근로조건의 유지 개선을 통한 근로자의 경제적, 사회적 지위향상이며, 이러한 목적은 근로자들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국회의원, 대통령이 당선되는 것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

    헌법이 보장한 노동자의 단결권이란 바로 이러한 목적으로 설립 운영되는 노동조합의 존재를 보호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이 사건을 담당한 변호사는, 일반인이 옥외에서, 일반선거구민을 상대로, 집회 등을 통해 특정 정당과 후보를 지원하는 행위를 할 수 없게 한 현행 선거법도 사실 표현의 자유 등을 억압하는 위헌적인 소지가 다분한 상황에, 노동조합이 실내에서 그 소속 조합원을 상대로 근로자의 경제적, 사회적 지위향상을 위한 조합의 지침을 결의하는 행위까지 선거법이 정한 금지행위에 포함된다고 해석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한 근로자의 단결권, 정치활동의 자유의 본질적인 내용에 대한 침해라 볼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헌법 제33조는 근로자의 단결권을 보장하고 있고, 헌법 제8조, 제24조, 제25조 등은 정치활동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노동조합의 정치활동을 금지하고 있었던 구 노동조합법(1996.12.31 법률 제5244호로 폐지되기 전의 것) 제12조가 폐지되었다.

    현행 공직선거법 제10조 제1항 제6호는 노동조합이 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규정을 두고 있고, 같은 법 제87조 제1항은 선거운동이 금지되는 단체에 노동조합을 규정하지 않고 있으므로, 헌법과 공직선거법은 노동조합의 정치활동 내지 선거운동을 원칙적으로는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선거관리위원회와 법원은 ‘노동조합이 선거운동을 할 수 있음은 인정하나 공직선거법의 범위를 벗어난 선거운동을 해서는 안된다’며 민주노총 부산본부의 결의대회가 선거일 180일전부터 선거운동을 할 수 없는 기간에 진행되어 이를 선거법 위반으로 규정하고 있는, 소위 사전선거운동으로 해석하고 있다.

    선관위와 법원은 이 행사가 ‘선거운동 기간과 인접하여 개최되었다’는 것에 혐의를 두고 있으나, 노동조합이 근로자의 경제적, 사회적 지위향상을 위한 정치 방침을 선거시기가 아닌 다른 시기에 결정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다.

    아무도 빠져나가지 못하는 선거법 위반

    현행 공직선거법은 사실상 모든 정치활동을 금지할 수 있도록 확대 적용이 가능하다. 실제로 선거관리위원회는 이러한 잣대로 민주노총의 표현물과 조직체계 등 모든 관련 사안에 대해 불법혐의로 고발하고 있다.

    부산광역시 선거관리위원회는 민주노총 부산본부가 “모든 노동자에게 단체협약을, 행복 8010”이라 적힌 버튼을 조합원에게 배부하였다고, 이에 대해 공직선거법 제90조(시설물 설치 등의 금지)를 적용 선거법 위반으로 고발하였다.

    또 “보수정치 쌀이 나오나 밥이 나오나”라는 문구가 들어가 포스터에 대해 공직선거법 제93조(탈법방법에 의한 문서-도화의 배부-게시 등 금지)를 적용 선거법 위반으로 고발하는가 하면, 민주노총 지역본부의 회의체계인 산별대표자회의를 ‘민주노총 부산선거대책본부’로 전환한 것에 대해서는 공직선거법 제89조(유사기관의 설치금지)를 적용 선거법 위반으로 고발했다.

    물론 법원이 선거관리위원회의 모든 고발 사안에 대해 손을 들어주지는 않았으나, 기본적인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현행 선거제도 자체를 문제시 삼고 있지 않음은 동일하다.

    실제로 선거관리위원회는 현행 선거법을 무리하게 확대 적용하여 국민의 기본적 표현권을 제약하고 있다. 민주노총 부산본부를 상대로 선관위가 고발한 공직선거법 제87조(단체의 선거운동 금지) 제89조(유사기관의 설치금지) 제90조(시설물 설치 등의 금지), 제93조(탈법방법에 의한 문서도화의 배부게시 등 금지) 제105조(행렬 등의 금지)와 소위 사전선거운동 금지를 현행과 같이 해석 적용 할 경우, 대한민국 어떤 개인이나 단체도 그들의 정치적 의사 표시를 공개적으로 할 수 없는 처지에 빠지게 된다.

    이번 2008년 총선시기에 정부의 대운하 공사에 대한 반대 집회에 대해 선거법 위반이라고 해석한 사례는 대표적인 사례라 볼 수 있다.

    무리한 정치활동의 규제, 최저 투표율로 이어져

    자발적 정치참여와 공개적 정치토론의 장을 무리하게 틀어막는 이러한 선거제도가 관례화된다면 당연히 투표율은 저조해질 수밖에 없다. 현행 선거제도는 ‘선거시기 누구든지 어떠한 정치적 표현도 해서는 안된다’는 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선거운동의 방식에 있어서도 제한된 인원수의 유급 선거운동원을 제외하고서는 2명 이상이 연달아 소리 질러도, 인사를 해서도 안된다. 피켓이나 유인물 등은 원천적으로 금지되며, 옷 색깔도 맞춰 입어서도 안된다는 것이 선관위의 입장이다.

    후보를 지지하는 연설을 하려 해도 미리 신고된 연설대담장에서 등록된 2~3명의 인원 이외에는 할 수 없다고 규제하고 있다. 정당 혹은 선거운동을 하려는 자원봉사자의 경우 단지 ‘가만히 서 있는 것’ 이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모든 것을 선관위가 불법화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선거운동 방식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안에 대해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금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직접적 선거운동이 아닌 것에까지 선관위는 몽땅 불법화하고 있다.

    선거관리위원회는 불법 탈법 금품선거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조처라고 변명하고 있으나, 실지로 금품선거를 막기 위해 ‘돈선거’를 조장하고 있는 것이 선거관리위원회이다. 현재 선거제도 속에서 시민들의 자발적인 정치활동과 선거운동에의 참여는 봉쇄되고 있다.

    단지 방송과 신문을 통한 정치광고, 그리고 법정 공보물과 현수막만이 가능해진 상황이다. 방송과 신문을 통한 정치광고의 경우 그 비용이 천문학적인 액수이며, 공보물과 현수막 또한 비용 지불의 크기에 따라 그 형태가 천차만별인 상황이다. 부정한 방식의 돈선거가 합법적 방식의 돈선거로 바뀌었을 뿐인 셈이다.

    다양한 형식의 정치참여는 원천적으로 봉쇄되었고, 선거시기 대중의 정치토론은 실종되어 버렸다. 선거는 TV와 라디오 그리고 대규모 신문사가 하는 것이다. 정책은 후보만이 말할 수 있지 다른 이들이 이에 대해 찬반을 공개적으로 말할 수 없다.

    대운하 공사를 반대하는 시민단체는 ‘선거에 영향을 미치므로’ 선거법 위반이며, 노동조합이 조합원들과 함께 정치방침을 결의하는 실내행사마저 선거법 위반이다. 도대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탈법 편법의 선거관리위원회 운영

    선거관리위원회는 헌법 제114조에 따라 모든 선거와 국민투표의 공정한 관리를 위하여 설치된 헌법기관으로, 입법 행정 사법기관이 각각 추천하는 자들로 위원회를 구성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공정하고 투명한 선거업무라는 선거관리위원회의 목적에 비해 그 운영이 매우 폐쇄적이며 또한 위법 탈법한 경우조차 많은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민주노총 부산본부는 선거관리위원회의 운영 실태를 조사 연구하기 위하여 정보공개청구를 하였으나, 선거관리위원회는 대부분의 정보사항을 비공개 내지 부분공개로 하여 이를 거부하고 있다.

    부분 공개된 내용 또한 그 운영의 실태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삭제되고 가려진 내용들이다. 특히 위원들이 어떠한 사람들인가에 대해 비밀로 붙이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다.

    선거관리위원회법 4조2항은 시도선관위원회의 위원을 임명함에 있어 ‘학식과 덕망 있는 자’를 명시하고 있으며 이러한 자격을 가진 위원이 선임되었는지 확인하고자 해도 선관위는 이를 ‘신상정보’라 하여 비공개하고 있다. 입법 사법 행정부가 추천하는 헌법기관의 공인에 대해 학력과 경력을 단 한 줄도 공개하지 않는 것은 이해 할 수 없는 부분이다.

    또한, 선거관리위원회는 각 시군구 선거관리위원의 현재 직업을 부분공개 하긴 하였으나, 골프연습장 사장, 전문 골퍼, 목욕탕 경영 등 공정한 선거관리업무와 관련 있다고 보긴 어려운 직종이 비일비재하며, 무직의 경우도 상당수로 ‘학식과 덕망’에 의한 위원 선임을 신뢰하기 어렵다.

    이렇게 구성된 선거관리위원회의 연중 활동은 오직 ‘위원의 위촉과 해촉, 후보자 및 정당의 등록, 위원장 호선’ 이외에는 아무런 안건을 처리하지 않는 등, 선거관리위원회의 구성과 역할 자체가 의문이다. 일상적인 운영과 협의는 위원회에서 처리되기 보다는 행정공무원들이 모두 처리하며, 위원회는 단지 형식적 의결기관일 뿐이다.

    선거관리위원회는 헌법기관으로 입법사법행정부가 동수 비율로 추천하여 구성하며 위원장은 이중 호선하여 결정한다. 이러한 구성은 각 시도 선거관리위원회도 마찬가지이며, 중앙위원장은 대법원장이 나머지 각 시도선관위원장은 각 지방법원장이 관례적으로 위원장을 맡게 된다.

    문제는 실질적 선거사무를 맡아 운영하는 각 시도선관위원회의 경우인데 지방법원장의 경우 과중한 업무로 인해 선관위원장으로서의 명예직에 가깝지 실무적 역할을 전혀 할 수 없는 상황이고, 이것으로 인해 상임위원장이 모든 실권을 갖게 되는 구조이다.

    문제는 실권을 장악한 상임위원장이 전국 공히 현직 선관위 고위 공무원이 승진 임용되어 자리를 차지하며, 이로 인해 각 지역 선관위가 독립적 헌법기관으로써 운영된다기보다는 중앙선관위의 지침과 방향을 수행하는 행정기관으로의 역할만 한다는 것이다.

    각 시도 선거관리위원회는 “법관과 법원공무원 및 교육공무원 이외의 공무원은 각급 선거관리위원회의 위원이 될 수 없다”는 선거관리위원회법 제4조 6항에도 불구하고 매년 상임위원으로 현직 선거관리위원회 고위급 공무원을 승진 임용하는 등 탈법 운영을 거듭하고 있다.

    선관위원회는 이러한 편법을 통해 전국 산하 선관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사실 이렇게 운영할 것이면 지역별로 별도의 위원회를 구성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어쨌든 선거관리위원회는 현재 ‘위원회 아닌 위원회’로 해당지역위원회의 독자성이 전혀 보장되지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각 지역의 독특한 상황을 고려한 독립적 판단 능력이 봉쇄되고, 단지 중앙지침에 따른 과도한 규제 통제만 남은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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