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들은 마스크 매니아?
    2008년 05월 19일 11:3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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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에 다닐 때의 일이다. 학생의 날이었다. 시내 한 대학 운동장에서 학생의 날 기념행사를 청소년들이 했다. 관제 행사가 아니라 청소년 단체가 자발적으로 마련한 행사였다.

이웃 고등학교에 다니는 친구들과 함께 갔다. 행사장에 있는데 친구들이 갑자기 긴장하기 시작했다. 저 멀리 학생주임이 보인다는 것이다. 적극적인 학생지도를 위해 청소년 행사장까지 방문한 학생주임의 보호를 받게 된 내 친구들.

암울한 추억

아무도 보호받는다고 좋아하지 않았다. 오히려 두려워했다. 그리고 학생주임의 눈을 피해 도망쳤다. 그 대학은 산을 끼고 있는 학교였다. 친구들은 산을 타고 올라가 무사히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촛불집회에 선생님들이 떴다. 서울시교육청이 학생들의 안전지도를 위해 장학사와 교사 8백 50여 명을 동원해 행사장 주변에 배치했단다. 이렇게 학생들의 안전을 걱정해주다니 눈물이 날 지경이다.

그들은 숨바꼭질 중이었다. 약 850명의 교감, 장학사가 촛불 집회가 열리는 청계 광장으로 들어오는 길목마다 눈을 부릅뜨고 학생을 감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 중 일부는 집회가 열리는 곳곳을 누비며 10대 학생의 참여 여부를 따졌다. – 「“중고딩 꼭꼭 숨어라!”…10대 사라진 촛불 집회」, <프레시안>, 2008. 5. 10

   
▲ 마스크도 불안해 아예 가면을 쓴 학생들
 

교육청 관계자는 “수많은 군중이 모이는 집회에 어린 중고등학생들이 대거 참여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뜻하지 않은 안전사고에 대비하기 위한 것일 뿐, 참가 저지 목적은 아니다”라 했다고 한다.

참가 저지가 목적이 아니라니 소가 웃을 말이다. 교사가 뜨면 학생은 주눅 든다. 행사장에 교사를 보낸다는 것 자체가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일종의 협박이다. 이런 일을 하면서 단지 안전사고 대비용이라고 하는 것은 거짓말이다. 공권력 차원에서 안전사고가 염려되면 119 구호요원을 배치하면 된다. 사고 터졌을 때 교사가 인공호흡할 건가?

미국 축산업 제품은 꼭 광우병 문제가 아니라도 위험하다. 가장 적은 돈으로 가장 많은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호르몬제 과투입 등 ‘못된 짓’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유제품도 좋은 평가는 못 받는다. 가능하면 안 먹는 게 좋다. 이건 상식이다. 자라나는 학생들의 안전을 정말로 위협하는 건 이런 산업화된 먹거리들이다.

그렇게 학생안전이 걱정된다면 교육자들이 앞장서 미제 쇠고기 반입 반대 운동을 펼쳐야 한다. 하지만 우리 교육청은 집회 안전지도에만 몰두하고 있다. ‘어이상실’이다.

학생들에게 얼굴 가리지 않을 자유를

최근 지방의 한 고등학생 모임에 갔었다. 입시교육을 거부하는 모임이었다. 난 별다른 생각 없이 사진을 찍으려 했는데 학생들이 거부했다. 얼굴 찍히는 것이 무섭다는 것이다.

학교 측에서 그 학생들에게 압력을 가하고 있다고 한다. 대입 원서 쓸 때 불이익을 주겠다는 분위기도 풍겼다고 한다. 그래서 그 학생들은 사진 찍히는 것도, 자신들이 외부로 알려지는 것도 두려워했다.

무슨 역적질을 한 것도, 비행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왜 우리 학생들이 두려움에 떨며 숨어 살아야 하나.

외국인들이 보면 참 이상할 것이다. 옛날 내신 관련 청소년 집회 때도 그랬다. 왜 한국 청소년들은 시내에 나오면 마스크를 쓸까? 한국 청소년에겐 마스크 애호증이 있나? 왜 한국 청소년들은 카메라를 들이대면 피켓으로 얼굴을 가릴까? 부끄러움을 너무 많이 타나? 그때 주최 측은 애타게 외쳤다. “사진을 찍지 마세요! 청소년을 보호해 주세요!”

외국인들은 또 이상할 것이다. 그런 한국 청소년들이 왜 축구 응원하러 나와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 세계에서 가장 개방적이고 활기찬 태도를 보일까? 마스크는 다 어디로 갔을까? 왜 카메라를 두려워하지 않을까?

한국 학생들이 국가의 지시에 따라, 학교당국의 보호 정도에 따라 얼굴을 드러냈다 감췄다 한다는 걸 그들은 상상도 못할 것이다. 알려지면 나라망신이다. 우리나라가 민주주의 국가라고 선전했던 것 몽땅 취소당하고 국제적 웃음거리로 전락한다. 해외토픽에 나올 것이다. ‘한국 학생들이 마스크 애호증자가 된 까닭은?’

마스크는 해외토픽감

쇠고기 촛불집회에 또다시 그 안전보호강박증이 발동했다. 퇴학, 경찰처벌 등의 협박성 괴담이 학교 측에 의해 유포됐다고 한다. 정부도 사법처리 등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그리고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보호하겠다고 직접 촛불집회장까지 출동했다. 우리 아이들을 마스크 매니아에 카메라 공포증자로 만드는 그놈의 보호강박증 발동이다.

과거엔 아이들이 입만 가리는 마스크를 썼었는데 이번엔 얼굴 전체를 다 가리는 마스크도 등장했다. 카메라공포증이 스타일리쉬한 퍼포먼스로 승화됐다. 그래봤자 마스크는 마스크다. 집회할 때 마스크를 써야만 하는 나라는 집회의 자유가 없는 나라다.

국제적으로 마스크 쓰고 다니는 정치행위자들은 멕시코의 사파티스타 같은 무장투쟁단들이다. 도대체 우리 학생들이 무슨 무서운 짓을 했다고 마스크로 얼굴을 감춰야 하나?

이런 괴이한 학생 스토킹은 이제 그만 두는 게 교육청 어른들의 정신건강에도 이로울 것이다. 미제 쇠고기 수입에 동원되는 교육자의 양심이 온전하겠는가?

아이들한테 숨 쉬고 의사표현할 공간을 주자. 아이들 얼굴에서 마스크를 벗겨주자. 지금은 21세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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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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