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친소, 미친교육 한꺼번에 때려잡자
    5만여 촛불 훨훨, 집권층 간담 서늘케
        2008년 05월 18일 01:10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청계천을 훨훨 불태운 촛불들. 그것은 분노의 불빛이었고, 희망의 불꽃이었다.(사진=뉴시스)
     

    촛불의 물결이 요원의 들불처럼 타올랐다. 혹시나 꺼지지 않을까, 제발 꺼졌으면 하고 바라는 세력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고 있다.

    촛불, 요원의 들불

    정부의 온갖 미봉책, 미국의 거들어주기, 보수언론의 ‘괴담’, 경찰의 협박들이 전혀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점을 촛불들은 분명히 보여주었다.

    정부가 교장과 교감 선생님들 그리고 장학사들을 1천명 가까이 현장에 ‘급파’하기로 한 행동이 얼마나 허튼 짓이었는지 금세 드러났다.

    학생들은 오히려 어른들의 책임을 물으며 함께 할 것을 권유하고 나섰다. 이들에게 욕을 하는 어른도 있었지만 부끄러워 하며 동참하는 이들이 더 많았다.

    이날 청계천과 전국 각지에서 타오른 촛불들은 아이들의 분노였고, 우리 사회의 희망이었다.

    17일 토요일 오후,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재직 당시 만들어 놓은 청계천. 청와대로 가는 고속도로로 불렸던 그 청계천 광장에 5만여 명(주최측 추산, 경찰추산 1만5천~2만)의 시민 학생들이 모였다.

    그리고 그들은 이 대통령의 ‘업적(?)’ 위에서 “광우병 쇠고기 2MB 너나 먹어!”를 외쳤다. 본격적인 문화제가 시작되기 전인 6시부터 청계광장은 이미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팔장 끼고 나타난 연인들과 아이를 안고 참여한 젊은 부부들, 대학생들, 넥타이 부대에 ‘담임쌤’을 따돌리고 나타난 중고등학생까지.

    본격적인 행사가 시작될 때에는 이미 앉아 있을 곳은 고사하고 주변으로 사람이 너무 많이 서 있는 바람에 안전사고를 걱정할 지경까지 됐다.

    “교과서에 나온 대로 우리 권리를 찾으려 한 것”

    촛불은 7시가 넘어 타올랐지만 이미 문화제는 5시 경부터 시작되었다. 미친소닷넷에서 주최한 길거리 자유발언 참석차 명동 입구 아바타몰 앞에 모여 앉은 100여명의 중고등학생들은 손수 제작한 ‘톡톡 튀는’ 피켓을 들고 명동거리를 한 바퀴 돌았다.

    ‘교감쌤’과 ‘장학사쌤’이 잡으러 온다고 했지만 그들은 당당했다. 행진에 참가한 김한기(17, 가명)군은 “선생님들도 위에서 자꾸 뭐라고 하는지 왠만하면 가지 말라고 당부했다”며 “하지만 우리는 정말 단순하게 교과서에 나온 대로 우리의 권리를 찾으려 한 것 뿐”이라고 말했다.

    그토록 당당한 그들의 행진을 보는 대다수의 어른들은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그들을 응원하는 어른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른 데 가서 떠들라”고 소리지르는 한 음식점의 주인도, 위에서 학생들에게 물을 뿌리는 한 중국집 종업원도 있었다.

       
     ▲청계천을 거니는 시민들에게 촛불문화제 참여를 권유하는 학생들(사진=정상근 기자) 
     

    김 군은 “저런 어른들 볼 때마다 너무 실망감이 든다. 정말 우리보다 못한 어른들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어른들은 박수 쳐주고 격려해주고 좋아하신다. 촛불문화제 가면 그런 분들이 훨씬 많다”고 말했다.

    김 군의 말은 사실이었다. 명동거리를 지나 청계광장으로 들어서자 위풍당당한 아이들의 모습에 이미 모여 있던 수많은 어른들은 환호를 보냈다. 학생들은 어른들이 비워놓은 가운데 자리로 들어가 이내 그들과 어울렸다.

    ‘미친소’를 넘어 ‘미친교육’으로

    본격적인 문화제가 시작되고 촛불이 이내 하나씩 밝혀지면서 참가들의 윤곽도 잡히기 시작했다. 사회자의 신호에 맞춰 시작된 파도타기는 광장을 넘어 모전교 까지 이어졌다. 이날 파견된 27개 중대(2,700여명)의 갑작스런 문화제 참석자의 증가에 교통통제를 하며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자리가 모자라 무대에서 떨어진 곳에 자리잡은 시민들도 많았다.(사진=정상근 기자) 
     

    그리고 이날 ‘미친소’와 함께 ‘미친교육’도 전면에 등장했다. 자유발언에 참석한 수원에서 온 중학생들은 “일찍 죽기 싫어 여기 왔는데 제 친구가 싸이월드에 촛불문화제 참석하자고 올리니까 경찰 사이버 수사대가 학교에 전화를 했다고 한다”며 “우리는 좋은 일 하는데 왜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함께 올라온 한 고등학생은 “우리 학교는 아침 7시 10분에 0교시를 시작해 끝나면 밤 11시가 넘는다. 앞머리 뒷머리는 9mm, 윗머리는 11mm를 유지해야 한다. 군대처럼 억압받고 있는데 주체적인 학생이 어떻게 나오느냐”고 외쳤고 학생뿐만 아니라 학부모들까지 열광적인 박수를 보냈다.

    이화여대 총학생회장도 연단에 올라 “우리는 등록금과 학원자율화와 관련해 40일째 천막농성에 4일째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며 “이미 전국에서 제일 가는 등록금을 내는 마당에 학원자율화는 학교의 주인이 학생이 아닌 학교로 넘어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참교육을 위한 전국 학부모회 윤숙자 회장은 “학생이 나서 학부모가 나섰고, 선생님이 나섰다. 이제 이 정권이 뭘 할 수 있겠느냐? 엄마들이 미친소와 미친교육을 한꺼번에 때려잡겠다”고 말해 역시 큰 박수를 받았다.

    한편 이날 서울교육청에서 900여명의 교사와 장학사가 파견되었고 주최 측이 확인한 결과 A부터 J구역까지 나누어 학생들의 인적사항을 조사해 오라는 임무를 부여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주최 측은 행사진행 중 교육청이 나눠준 배치도를 공개했다.

    노래와 비트박스, 연극까지

    이날 문화제에는 다양한 참가자들의 퍼포먼스가 이어지며 시민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앞서 자유발언에 참석했던 고등학생은 멋진 비트박스를 하며 박수를 받았고 ‘참교육을 위한 전국 학부모회’ 회원들은 ‘아이들’과 함께 노래에 맞춰 율동을 선보였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노래동아리 회원들은 교육의 현실을 지적하는 노래를 불렀고 그보다 앞서 고등학생 3인방이 무대에 올라 유명가수의 대중가요를 열창해 큰 박수를 받기도 했다. 시민들은 촛불과 피켓을 흔들며 이들을 응원했다.

    또한 청소년문화예술센터 연극 동아리 회원들이 무대 위로 올라와 ‘미친소’를 주제로 하는 연극 공연을 펼쳐 보였다. 대미는 대중연예인들이 장식했다. 메탈그룹 블랙홀을 시작으로 배우 김부선, 가수 트랜스픽션, 이승환, 김장훈, 윤도현 밴드가 연이어 참가해 노래로 흥을 돋았다.

       
    ▲엄마와 아이들이 함께 하는 율동.(사진=정상근 기자) 
     

    블랙홀은 “쇠고기 협상으로 한국이 한밤중으로, 깜깜한 밤으로 접어든 줄 알았다”며 “그러나 이 자리를 보니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기분이 무척 좋다”고 말했다. 영화배우 김부선 씨는 “내일이 5.18인데 나라를 위해 죽어간 분들을 위해 투쟁해야 한다”며 “이 나라 정부는 누구를 위한 정부냐? 미국 축산업자냐? 싹 갈아치워야 한다”고 말했다.

    트랜스픽션은 “우리는 정치에 대해 잘 모르지만 우리가 먹는 것, 우리의 입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고 또 안전한 것이면 좋겠다”며 “그런 안전한 나라가 될 때까지 열심히 멈추지 않고 노래하겠다. 여러분들도 그 날까지 동참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승환씨는 “갑자기 나오게 됬는데 가수가 아닌 시민의 한 사람으로 나왔다”며 “이기적이지만 나는 내 가족과 친구들이 걱정되어서 이 자리에 섰다”고 말했고 김장훈씨는 “아름답게 행사가 진행되니 기분이 좋다”며 “이 시간에 이런 가창력을 보여주는 가수가 흔치 않다는 말을 듣고 싶다”고 농담을 던졌다.

    마지막 공연은 YB의 몫이었다. 윤도현씨는 “미선이 효순이 추모공연 이후 욕을 많이 먹었지만 욕먹어도 이런 무대 서고 싶고 이런 얘기 자꾸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10대 친구들에게 나이 많은 아저씨로서 너무 부끄럽고 창피해서 이 자리에 섰다”고 말했다.

       
      ▲사진=정상근 기자
     

    24일, 다시 모이자

    공연 중간 무대에 오른 국립국악고 1학년 이연우(16)양과 박원석 국민대책회의 상활실장은 대국민호소문를 발표했다. 이양은 “우리는 교육받은 대로 실천하고 싶어 이 자리에 나왔다. 그러니 막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다.

    이어 “우리 청소년들은 이 사회가 교과서에 나오는 데로 정의롭고 아름다운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이 정부가 강대국에 굽실거리는 정부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면서 "국민을 아끼는 정부, 당당하게 주권을 행사하는 정부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박 실장은 대국민 호소문을 통해 “군사 독재를 물리친 40, 50대가 자녀들의 호소에 동감하며 촛불을 들고 있다”며 “이 정부가 잘못을 인정하고, 쇠고기 재협상을 선언하는 날까지 촛불을 밝혀 달라”고 호소했다.

    2부 사회를 맡은 최광기 씨는 “25일이 무슨 날인줄 기억하느냐? 정부가 7~10일 연기한다고 했던 장관고시가 나올 수 있는 날이다. 우리는 24일에도 이 자리에서 다시 모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참가자들은 큰 환호와 함성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모든 행사가 끝나고 나니 11시가 넘었다. 긴 시간동안 자리를 뜨지 않던 촛불들이 그제서야 하나씩 꺼져갔다. 평일, 고등학생들이 야자가 끝나는 시간이었다. 이 시간 학교 근처에서 보았던 학생들의 축 쳐진 어깨가 이날 만큼은 친구들과 함께한 신명남과 어른들을 광장으로 이끌어 냈다는 으쓱함이 깃들어 있었다.

    필자소개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