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희들은 나의 '배후'였다"
    By mywank
        2008년 05월 18일 12:4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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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엊그제는 스승의 날이었다. 카네이션을 보면 ‘저 꽃이 불편하다’고 노래했던 고 박영근 시인의 시집 제목이 떠오른다. 참스승이 되지 못한 나는 이제 꽃만 봐도 불편하다. 어느 교사는 촛불문화제에 참석한 학생을 조사하겠다는 경찰에게 수업 중인 제자를 넘겨주었다. 어떤 교육청은 촛불문화제에 참석하는 학생들을 제지하기 위해 ‘학생 집단행동예방 상황본부’를 차렸다.

    교사들의 앙상한 자존심을 뭉개는 짓들

    교사라고 입을 떼기조차 어렵게 얼굴이 화끈댄다. 최소한의 성찰 능력조차 상실한 우리 교육의 치부가 만천하에 드러나는 중이다. 게다가 반성은커녕 군사독재시절 학생 운동을 탄압할 때나 있을 법한 ‘상황실’을 학생들의 안전을 염려해서 만들었다고 둘러댄다. 비겁한 이런 행태가 우리 교사들의 앙상한 자존심마저 짓뭉갠다.

    미안하다. 자꾸 부끄럽고 미안하다. 누리꾼들은 학교에서 그런 선생을 쫒아내라고, 교육청을 없애라고 하더구나. 학교 안에서라면 얼굴을 마주하고 대신 사과라도 할 수 있으련만, 지금 상황은 그럴 여유도 없이 진행 중이다.

    당장 오늘(17일) 저녁, 청계천에는 수많은 교사들이 나올 것이다. 교육청의 지시를 받고 학생을 지도하러 나온 교사들이 있을 테고, 학생들과 촛불을 함께 들기 위해 나온 교사들이 있을 것이다.

       
      ▲청계천에 나온 학생들의 외침은 사회를 향한 경고음이다.(사진=레디앙)
     

    받은 지시에 따라 너희들을 돌려보내려는 교사들과 학생들에게도 표현의 자유가 있다고 하는 교사들 사이에서 곤혹스러울 너희들의 표정이 그려진다.

    너희들이 맞닥뜨리게 될 이 모습이야말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우리 교육의 현주소다.

    하지만 희망은 늘 새로운 세대의 몫이다. 지난 2일, 청계천에서 촛불을 치켜든 후, 너희들이 주축이 된 집회는 새로운 민주주의로 가는 전환점을 열었다. 혹자는 직접민주주의의 부활을 봤다고 썼다.

    촛농에 시비를 건 언론을 의식한 행동일지라도 집회 후 광장은 시작할 때보다 더 정갈했다. 학교 안에서 한없이 어린양하던 그 학생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학생들은 청계 광장 문화제를 통해 놀랍게 사회화되었다.

    우리를 환호하게 만든 너희들

    너희들은, 가르침은 누가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깨닫는 것이라는 사실을 수만 시민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입증해냈다. 우리는 그런 너희들의 성장 앞에서 미래를 읽으면서 환호했다. 학교 안에서 숨어 지내던 천덕꾸러기 희망이 거리에 쏟아져 나와 제 빛을 드러내고 있다.

    그런 너희들이 촛불을 들고 있는 것은 여러모로 상징적이다. 촛불은 오랫동안 희생의 상징이었다. 종교적 엄숙함을 보태주는 성물이기도 했다. 스스로 몸을 살라 자신의 부피를 덜어가면서 세상을 밝히는 모습이 사람들의 영감을 자극했을 것이다. 그 촛불에 민주주의의 역사가 얹힌 것이 요 근래의 일이다. 몇몇이 들었다가 제 풀에 꺼지지도 했지만 한두 명이 시작해 수십만 개의 촛불로 번지기도 했다.

    촛불은 쉽게 꺼지기도 하지만 그 하나가 밝힐 수 있는 넓이는 어두울수록 광대하다. 그런 촛불이 이제 춤을 추고 있다. 엄숙함 위에 발랄함이 더해졌다. 그동안 민주주의가 희생을 먹고 자라왔다면 이제 너희들의 민주주의는 즐거움 위에 축제의 집을 지을 것이다.

    바라건대, 촛불이 타는 데에는 바람의 역할도 있다. 그걸 긍정하길 바란다. 바람은 촛불을 끌 수도 있지만 바람 없이는 촛불이 타오르지 않는다. 파들대며 흔들리지 않는 촛불은 곧 사그라지고 만다. 촛불이 꺼진 후에는 버려진 초와 종이컵을 돌아볼 일이다. 우리가 버려지는 것들의 배후가 되려 하지 않고서는 즐거운 민주주의는 더 진화하지 않는다. 꺼진 초를 주워 담으며 나는 누구의 배후가 되어 줄 것인가 생각할 것이다.

    고백하자면, 청계천에서 너희들은 나의 배후였다. 이수호 선생님의 시구처럼 ‘누구에게나 배후가 있다… 너는 언제나 고우면서도 빛나면서도 쓸쓸하면서도…넉넉하고 당당하다’ 그래서 ‘나의 배후는 너다.’ 그러므로 나는 오늘, 기꺼이 청계천에 있을 것이다. 서로 배후가 되고 싶어 안달이 나야 그게 교육이 되는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 * *

    *임병구 선생님은 현재 전교조 기획국장을 맡고 있으며, 학교는 휴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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