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들 패기를 죽인 국가 "기분 좋은가"
    "이게 뭡니까, 어른들 힘이 필요해요"
        2008년 05월 17일 05:1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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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가 거꾸로 가는 것 같다"

    광우병 국민대책회의가 주최하는 열번 째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문화제가 열린 16일.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촛불문화제에 참석한 어른들은 학생들에게 ‘미안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말로만 듣던 문화제’를 직접 보기위해 경기도에서 온 박효영(55)씨는 "어른으로서 정말 부끄럽다. 오늘 처음 왔는데, 꼭 프랑스에서 열리는 축제같은 성숙한 시위를 보는 것 같다"면서 "또 기성세대로서 이같이 똑똑한  새로운 10대들을 보니 든든하기도 하다. 요즘은 시대가 거꾸로 가는 것 같은데, 새로운 세대인 뒷물이 앞물을 밀어내는 것이 역사의 순리"라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중고등학생들은 모두 얼굴을 가렸다.(사진=김은성 기자) 
     
     

    하지만 진화된 10대들과는 달리 정부의 대응은 박정희 독재시대로 퇴행하고 있다. 경찰과 교육 당국이 촛불문화제에 참석한 학생들의 인적 사항을 조사하고 징계 위협을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날 문화제에서는 중, 고등학생들의 모습을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그나마 참석한 학생들조차도 모자, 마스크, 종이로 최대한 얼굴을 가리며 주위를 살피는 등 사뭇 긴장된 모습이었다. 김아무개(17)씨는 “신문에 사진이 나간 후 학교 홈페이지에 전면 공개돼 선생님들께서도 다시는 문화제에 나가지 말라고 저에게 말씀을 하시는 등 곤혹스러웠다”면서 “남은 학교 생활이 있기에 얼굴을 공개할 수 가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청계 광장 주변에서는 학교 이름 등이 적힌 손바닥만한 수첩이나 메모지 등을 들고 양복을 차려입은 20여명의 사람들이 ‘침묵’을 지키며 서성거렸다. 촛불문화제 초반 당당하게 얼굴을 드러내고 아무런 거리낌없이 자신의 존재를 알리며 문화제를 이끌었던 그 생동감의 흔적이 엷어졌다.

    대신 10대 중고등학생들의 빈 자리를 20대 대학생들이 메웠다. 40여명으로 시작된 이날 문화제는 전국 48개 대학 총학생회와 22개 학생단체 등으로 구성된 ‘광우병 대학생 대책위원회’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저지와 검역주권 회복을 위한 대학생 행동의 날’ 행사를 갖고 대거 합류하고, 퇴근하는 시민들이 동참하면서 금세 400여명으로 불어났다.

    20대 대학생도 10대 학생들에게 ‘사과’ 했다. 대학생 박승화(25)씨는 "중요한 문제인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문화제를 10대가 주도할 동안 아무것도 한 것이 없어 20대로서 부끄럽다. 20대를 대표해서 죄송하다고 사과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제가 촛불문화제에 나간다고 하니, 주위 친구들이 왜 그런 곳을 가느냐면서 저를 생각없는 사람으로 봤다. 안타깝지만 이게 바로 20대의 현실"이라며 "지금이라도 이같은 20대를 포함해 국민에게 진실을 알려낼 때까지 힘을 모으겠다"고 다짐했다.

    대학생 새내기 장수연(19)씨는 "프랑스에서는 대학등록금이 한국 돈으로 5만원 올랐다고 대학생들이 거리에 나서기도 하는데, 우리는 갑자기 30만원이 그냥 올라가도 가만히 있다"면서 "정부가 국민을 두려워할 수 있게 우리도 거리에 나서자"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상계동에서 온 조용철(60)씨는 "행동하는 젊은 양심들을 보니 가슴이 떨리고 벅차오른다"면서 "우리 모두가 ‘내가 나서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심정으로 한 사람 한 사람 힘을 모아 앞으로 다시는 이명박 정권과 같은 권력을 허용하지 않도록 하자"며 어른들의 동참을 호소했다.

       
      ▲이날 행사에는 ‘광우병 대학생 대책위원회’ 대학생들이 많이 참석했다.
     

    딸과 함께 나온 주부 박아무개(45)씨는 "딸이 상황이 이렇게 될 동안 어른들은 도대체 그 동안 뭘 했느냐고 묻는 질문에 할 말이 없었다"면서 "무엇보다도 시대를 거꾸로 돌려놓고 학생들 뒤에 배후가 있다느니, 전교조 선생님이 조정을 한다는 등의 이념 공세에 참을 수 없이 화가 났다"고 말했다.

    그는 "경찰 등이 학생들을 계속 말도 안되는 기준으로 탄압하는데, 결국 근거가 없어 실제적으로는 사법처리가 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니겠느냐"면서 "손바닥으로 해를 가릴 수 없듯 진실은 가릴 수 없다. 오늘의 촛불이 점점 변화를 이끌어낼 것이라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오는 17일 예정된 대규모 집중 문화제에서 자유발언을 하기 위해 ‘리허설’차 참석했다는 이연우(17)씨는 최근 논란이 된 경찰의 고등학생 수사 파문에 대해 "정말 기가 막힌다”면서 “도대체 무슨 근거로 어떻게 수업중인 학생을 불러내 조사를 할 수가 있냐”며 분통을 터트렸다.

    그는 "교과서를 통해 배운대로, 잘못됐을 경우 다시 올바로 잡기 위해 실제로 이를 실천하고자 거리로 나왔는데 왜 우리를 막는지 모르겠다"면서 "분명히 말하지만 우리의 배후는 우리 자신이며, 그 원동력은 교과서"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꾸 경찰이 학생들에게 시비를 거는데, 그렇다면 집에 계시는 부모님 등 어른과 함께 문화제에 나서면 해결 될 문제 아니냐?"면서 "도대체 상황이 이렇게 될 동안 어른들은 왜 나서지 않는가? 어른의 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광우병 국민대책회의는 촛불문화제에 앞서 이날 오후 서대문 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의 고등학생 수사 파문과 관련 "학생의 인권과 수업권 방해 등에 대해 인권사회 및 법률단체들과 연대해 고소고발, 인권위 진정, 손해배상청구 등의 법적 대응을 준비하겠다고"고 밝혔다. 

    또 대책회의는 촛불문화제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이에 따라 주최자와 네티즌을 처벌할 경우 현행 집시법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청구도 진행할 예정이다.

    17일 청계광장에서 열리는 11회 촛불문화제 4.15 교육공대위와 국민대책회의가 공동 주최해 청소년과 부모님이 함께 어울리는 문화마당의 형식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이날 대회에는 윤도현밴드, 김장훈, 레이시오스(전시나위보컬 김바다), 정태춘, 문소리, 손병휘, 신해철 등 영향력이 큰 대중연예인이 참석해 촛불문화제 이래 최대 규모의 집회가 될 것으로 관측된다.

    이어 그간 한정된 공간에서 했던 문화제를 벗어나 이날 오후에는 가두행진이 진행될 예정이다. 이명박탄핵연대는 이날 오후 4시부터 7시까지 여의도 문화광장에서 가두행진 집회를 벌이고, 미친소닷넷은 명동역에서 시청광장까지 청소년 거리행진을 진행하다가 모두 저녁 촛불문화제로 합류한다.

       
     
     

    또 특히, 이날은 중고등학생 사이에서 ‘미국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로 휴교한다’는 소문과 문자가 돌았던 날인만큼 그간 잠잠했던 중고등학생들이 대거 참석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에 맞서 경찰과 교육당국은 중고등 학생들의 대규모 참가에 대비, 9백 여명의 교직원들을 촛불화제 현장에 투입해 인적사항을 파악하는 등 만전을 기할 방침이어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한편, 새로운 방식의 저항 운동이 자발적으로 진행돼 화제가 됐던 과천시내 현수막 달기 운동이 과천시가 ‘옥외광고 관리법’ 위반을 이유로 철거 지시를 한것이 알려지자, 오히려 현수막 달기 운동이 인터넷 등을 통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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