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확률이 문제가 아니다”
        2008년 05월 16일 10:04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로또에 당첨된 후 벼락 맞을 확률

    광우병 문제로 전국이 시끄럽다. 연일 방송에서는 광우병 문제를 다루고 있고 촛불집회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러던 중 한 TV 토론프로그램에서 어느 경제학자가 “광우병에 걸릴 확률은 로또 1등에 당첨된 후 은행에 가다가 벼락맞을 확률”이라고 발언하는 것을 들었다. 순간 머릿속에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다.

    발언자는 분명 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47억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는 일본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이런 발언을 했을 것이다. 또 얼마 전 정부관계자가 “광우병에 걸릴 확률은 골프 홀인원을 하고 벼락 맞을 확률”이라는 발언도 했기에 그 연장선에 있을 것이다.

    토론프로그램에서 조차 위험심리학에서 지적하는 위험 노출의 자발성 여부가 중요하다는 반론이 바로 이어졌고 이후 언론에서는 만약 10억분의 1 확률이라도 4천만 명이 100번만 쇠고기를 먹을 경우 40억번을 시도한 셈이어서 결국 4명은 광우병에 걸린다는 친절한 확률수업(!)까지 해주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나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런 표현은 과학기술이 낳고 있는 위험성에 맞서 싸우는 이들이라면 흔히 들을 수 있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반핵운동을 필두로 GMO 문제, 수돗물 불소화 문제 등 거대하거나 새로운 과학기술이 갖고 있는 위험성, 다수 대중을 향해 위험성이 노출된 문제들에서 “확률”문제는 빠지지 않고 나오는 문제이다.

    광우병 논쟁에서도 몇 차례 언급되었지만 핵발전소의 폭발사고 확률이 3650만분의 1이라든가, 이는 비행기 사고 확률보다 낮다는 식의 발언은 핵발전소 안전성 논란이 있을 때마다 나오는 표현이다. GMO 식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 원자력문화재단이 만든 홍보용 전화카드.
     

    현재까지 GMO 식품의 안전성은 충분히 검증되었으며 간혹 이상체질이 있는 사람이 GMO 식품을 먹을 확률은 매우 적다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관념적으로 광우병, 핵발전, GMO 등의 문제를 과학기술과 사회의 문제로 이해하고 있지만 문제를 폭넓게 보지 못하였고 이는 나 역시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너무 닮은 광우병과 핵발전 안전성 논란

    핵발전을 둘러싼 안전성 논란을 보자. 폭발사고 확률이 3650만분의 1 확률로 극히 낮고 체르노빌과 같은 원자로는 국내에 없지만 인근 지역주민들이 막연한 두려움으로 발전소 건설을 반대하고 있다고 정부는 언제나 이야기한다.

    이에 대해 발전소에 대한 투명한 정보공개를 요청하면 몇몇 홍보자료를 내 놓으며 정작 중요한 안전성 보고서는 영업상 비밀을 이유로 공개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발전소 설계상 문제, 내진설계 대비, 방사선 방재, 발전소 운영상 문제, 수명연장시 문제점 등 해외에서 있었던 유사사례에 대해 지적하면 그것은 외국의 사례이며 국내는 이에 대해 충분한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항변한다.

    그러면서 선진국에서는 모두 핵발전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잠시 건설이 주춤하기는 했으나 다시 핵발전을 확대하고 있다는 설명을 놓치지 않고 넣는다.

    이러한 모습들은 현재 광우병 논쟁에서 한-미간 쇠고기 협정문 공개를 둘러싼 공방, 일본의 검역체계에 대해 우리 정부가 취하고 있는 태도, 그리고 97년 이전 출생 소와 이후 출생 소를 구분하는 것과 너무나 비슷하다. 핵발전에 86년 체르노빌이 있다면 광우병에는 97년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정부의 논리는 가만히 듣고 있으면 “정말”처럼 들린다.

    유명한 대학의 교수와 수십년간 이 문제를 다룬 과학자들이 TV에 나와 이야기하는 것을 촛불집회에 참가하고 있는 일반시민과 중고생들이 반박할 수 있는 근거는 너무나 빈약해 보이고, 우리 사회에서 “전문가”란 전문가 사회에서의 인정여부와 상관없이 “진실”을 이야기하는 대변자같은 역할이기 때문이다.

    이제 막 논쟁을 시작한 광우병과 달리 수십년간 논쟁을 이어온 반핵운동의 입장에서 보면 향후 10년 이내에 진행할 홍보 전략은 눈에 뻔히 보인다. 이미 진행하고 있는 “미국산 쇠고기는 안전합니다”라는 신문광고를 필두로 각종 매체에 쇠고기의 안전성을 홍보하는 광고를 사용할 것이며, 필요하다면 원자력문화재단처럼 “쇠고기문화재단” 같은 것을 만들어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을 알리는 중고생 글짓기, 사생대회, UCC 경연대회를 할 것이다.

    각 언론사 기자, 교수 등 소위 여론 주도층을 모아 각국의 쇠고기 검역 실태를 검증한다는 이름으로 세계 여행을 다녀올 것이고, 이들의 여행 이후에는 선물보따리와 함께 미국산 쇠고기 안전하다는 기사들이 언론에 실릴 것이다. 그리고 “체험 삶의 현장”이나 “VJ 특공대”류의 프로그램에 미국 소 사육현장 체험, 미국식 소고기 요리법과 식당이 나올 것이고, 과학프로그램에는 광우병 퇴치의 역사와 함께 인류의 위대한(!) 전염병 퇴치 기록이 방송될 것이다.

    지금이야 반대가 너무나 월등해서 하지 못하겠지만, 한 10년즈음 뒤에는 객관적인 입장에서 찬,반을 논의한다는 이름으로 중고생들을 둘로 나누어 한 그룹은 임의로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도록 만들 것이다. 그리고 지금과 같이 촛불집회 경험이 없는 그들은 – 자신의 실제 생각과 무관하게 – 토론에서 자신의 논리를 펴기 위해 지금은 아무도 믿지 않는 정부의 홍보자료들을 찾아 인터넷을 뒤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몇몇 학자들은 2008년 지금의 국면을 식품안전에 대해 국민 의식이 아직 미성숙했던 당시 있었던 헤프닝처럼 소개하는 일들이 생길 것이다. 혹자들은 이러한 일들이 너무 지나친 상상이 아닌가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유럽을 필두로 70년대 핵발전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은 80년대 광우병, 90년대 생명윤리와 GMO 문제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들 논란은 매우 비슷한 패턴으로 서로를 닮아가는 양태를 보여왔다.

    국민들의 무지를 깨우치면 더 안전해질까?

    지금도 정부는 국민들이 “오해”하고 있으며 “소통”이 되지 않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촛불집회에 참여하고 있는 모든 국민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이는 “오해”도 아니며, “소통”의 문제는 더욱 아니다. 과학적 사실에 기반해 위험을 피할 수 있다는 생각에 대해 현재 우리 국민은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수십억분의 1이라도 위험할 확률이 있고, 이것이 비자발적인 형태로 불특정다수인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그리고 매우 빈번한 위험에 노출된다면 이는 확률과 전혀 상관없다는 위험심리학의 가장 기초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위험 문제는 결코 ‘소통’이라는 정상적인 과학커뮤니케이션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광우병 문제를 둘러싸고 현 정부가 미국과의 협상에서 국민의 안전을 뒷전으로 내팽겨쳤다는 점은 당연히 비판받아야 하겠으나, 과학기술을 국가정책에 점목시킴에 있어 아직도 국민들을 우매한 집단을 보고 있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국민들은 자신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매일 저녁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오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아직 제대로 밝혀지지도 않은 광우병에 대한 과학적 지식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수천년 이상 살아오면서 터득한 생존법에 의한 매우 정당하고 합리적인 처신에 따른 것이다.

    최근 정부 스스로도 인정하듯이 ‘오해’가 풀린다 한들 쇠고기 안전성 문제는 달라질 것이 없다. 이미 잘못된 협상 내용이 있으며, 이는 수정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것에만 그쳐서는 안 될 것이다. 광우병 사태를 계기로 과학기술과 사회에 대해 근본적인 변화가 있지 않는다면, 사안을 달리해 제2, 제3의 광우병 사태는 다시 나타날 것이다. 이미 핵발전을 둘러싸고 수십년간 싸우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필자소개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