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긴 하루 지나고 언덕 저 편에
        2008년 05월 13일 10:0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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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10일 오후 우연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구로공단에서 1000일째 싸우고 있는 기륭전자 여성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시청 앞 16m 조명탑에 다칠 각오를 하고 올라가기로 했다는 얘기였습니다.

    641,850원을 받던 노동자들입니다. 최저임금보다 10원 많이 받던 분들입니다. 64만 원으로 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던 여성노동자들이었습니다. 300명 공장노동자들 중 정규직은 15명, 직접고용 계약직비정규노동자들은 40여 명, 그리곤 200여 명에 이르는 노동자들을 불법파견업체를 통해 음성적으로 고용했던 공장입니다.

    정규직은 상여금이 700%고, 직접고용 비정규직은 400%인데, 200여 명에 이르는 불법파견 비정규직들은 0%였다고 합니다. 퇴근하고 있으면 문자가 들어오곤 했다고 합니다. “내일부터 나오지 마시오.” 유명했던 문자해고입니다. 파견직노동자들은 사람도 아니어서 뚱뚱하다고 해고시키고, 작업대에서 잡담을 했다고 해고시켰다고 합니다.

    월급 64만 원, 상여금 0%, 뚱뚱하다고 해고 …

    상식이 없는 사회입니다. 더 문제는 구로공단 전체 노동자의 97%가 이런 비정규 노동자들로 채워지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구로공단을 넘어 이런 비정규노동자들이 900만 명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정규노동자들의 투쟁은 더욱 어렵습니다. 어느 한 곳이라도 정규직화 요구를 받아들이고 나면 사회 이곳저곳에서 ‘나도 정규 인생’이라는 정규직화 요구가 봇물처럼 쏟아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야기를 전해 듣는 순간 가슴이 서늘했습니다. 뭐라도 도와야 했습니다. 마침 인천에서 열린 박영근 시인 2주기 추도식에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이곳에 참석한 한 민변 변호사님도 기륭전자 문제를 알고 함께 도우려는 분이셨습니다. 둘이서 이 곳 저 곳으로 연락을 해 보았습니다. 무엇보다 언론이 관심을 가져주어야 겠기에 <프레시안>과 <한겨레>와 <경향신문> 등 연락이 가능한 기자 분들을 수소문했습니다.

    벌써 시간이 저녁 8시를 넘어 9시로 가고 있었습니다. 고스란히 휴일을 뺏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것도 새벽 6시까지는 나와주어야 한다는 부탁이었습니다. 다행히 흔쾌히 와주시겠다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다음엔 인권단체들과 민교협 등 사회단체들이었습니다. 다행히 모두 비정규직 문제가 나의 문제고, 우리 전체의 문제임을 잘 알고 계시는 분들이었습니다. 평소 기륭과 여타 비정규직 투쟁들에 함께 해주시는 문화단체 분들에게도 연락했습니다.

    80년대 이후 모두 사라져 버린 것 같지만 지금도 여전히 삶의 현장과 함께 하며 문화예술을 고민하는 분들이 우리 주변엔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에게 알리기엔 시간이 충분치 않았습니다.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도 여러 번 고심 끝에 내가 얘기를 전해 듣게 된 그 시간 무렵에야 각오를 내릴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한낱 3류 시인이 무슨 힘이 될까 싶었지만, 새벽 5시 30분 집을 나섰습니다. 서늘한 새벽 바람. 모두가 잠들어 있는 연휴 새벽, 어디에선가 여성노동자들 몇이 죽음의 길일지도 모를 배낭을 꾸려 길을 나서고 있을 것이었습니다.

    모두가 잠든 새벽, 배낭을 꾸리고

    그간 얼마나 많은 이들이 그렇게 고공농성에 들어갔는지 모릅니다. 며칠 전에는 그렇게 부평역 앞 CC카메라탑 위로 고공농성에 들어갔던 GM대우비정규직 노동자들이 130여 일만에 땅 위로 내려오기도 했습니다. 한 번 올라가면 언제 내려올 수 있을지 모를 길입니다.

    2년여 전 올림픽대교 위로 올라갔던 건설일용노동자는 50여 일만에 아무런 사회적 답도 받지 못한 채 기진해 내려와야 하기도 했습니다. 한강에 매달렸던 이들도 많습니다. 코스콤 노동자들처럼 230여 일째 거리에서 천막을 치고 사는 이들도 많습니다.

    이랜드-뉴코아처럼 수백 일을 싸워야 하는 것은 언제부터인지 기본이 되어 버렸습니다. 근로복지공단 내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분신해 돌아가신 이용석 열사 이후 수많은 이들이 실제 죽어 가기도 했습니다. 작년 겨울 정해진 열사처럼, 요구는 대부분 근로기준법 정도의 권리라도 지켜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목숨을 걸어야만 언론도 약간의 성의를 보여 주었습니다. 사회단체들도 조금은 관심과 연대를 보내 주었습니다. 하지만 끄떡없는 것은 사주들과 정부였습니다. 80m 타워크레인 위에 목숨을 걸고 올랐는데도 교섭을 거부하는 회사 측에 절망해 끝내 목을 매단 한진중공업 김주익 열사는 금세 잊혀져 갔는가 봅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까지 나서서 노동자 신종탄압책인 손배가압류 남용을 금지시키겠다고 했지만, 손배가압류는 기본입니다. 64만 원 받던 기륭전자 여성비정규직들에게 부과된 손배가압류액은 무려 54억 원이었습니다. 실제 노동자들의 가치가 그 정도는 된다는 것을 스스로 밝히는 꼴입니다.

    부당해고 역시 기본입니다. 요즘은 계약해지라고 합니다. 파견업체와 체결한 계약만 해지하면 됩니다. 쉽게 수 백 명의 노동자들을 자를 수 있습니다. 직장폐쇄도 기본입니다. 법원은 쉽게 도장을 찍어 줍니다.

    위장도산이나 폐업, 혹은 법인 분리도 기본이고 좋은 수단입니다. 깡패용역 고용도 비용 부담이 있긴 하지만 정규직화 요구를 들어주는 것보다는 짭잘한 장사입니다. CC카메라 설치 역시 좋은 수단입니다. 거기에 더해 지난 정부는 비정규직들을 합법화시킨다는 명목으로 비정규법안을 개악했습니다. 말로는 비정규직 보호입법안이었습니다.

    결과는 1년만에 극명하게 드러났습니다. 2년 기간제를 피하기 위한 계약해지와 부당해고가 전국을 휩쓸었습니다. 이랜드-뉴코아가 전형적이었습니다. 코스콤 비정규노동자들이 희생양이 되었습니다. 탈법에 가장 앞장선 곳은 산업 현장들만이 아니었습니다.

    가장 많은 부당노동행위를 저지르고 있는 곳들에는 전국 관공서들과 대학들도 들어 있습니다. 광주시청에서 원주시청에서, 울산대에서, 청주대에서 비정규직 학살에 앞장섰습니다. 이루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새벽 6시 50분, 두 대의 차에서 여성 네 분이 내렸습니다. 등산이라도 가는 사람들처럼 보였습니다. 하이 서울 페스티벌 행사를 위해 시청 앞 잔디광장에 세워진 18m 조명탑 앞이었습니다. 머뭇거릴 틈도 없이 그들이 탑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남자들도 손과 발이 후들후들거릴 높이였습니다. 가장 공포감이 많이 느껴지는 높이라고도 했습니다. 맨 꼭대기엔 앉아 있을 공간도 없이 사각지지 철대만 가로질러져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들이 성자처럼 보이다

       
    ▲ 사진=민주노총 사진갤러리
     

    그곳에 언제까지 앉아 있어야 할지 모를 곳이었습니다. 난 그들이 무슨 성자들처럼 보였습니다.모두가 잠든 새벽에 가파른 시대의 절벽을 오르는 외로운 고행자들처럼 보였습니다.

    어떤 여성은 그나마 잘 올라갔지만 어떤 여성은 멀리서 보아도 위태롭고 힘겨운 모습이었습니다. 다행히 성공이었습니다. 그것을 성공했다고 표현해야 하는지 참 가슴이 먹먹합니다.

    구속을 각오하고, 죽음을 무릅쓰고 짐승들도 오르지 않을 철탑을 기어오른 여성노동자들의 눈물과 한숨과 억울과 분노와 투쟁을 성공했다고 표현해야 하는지 참 부끄럽습니다.

    이어 양 탑 아래로 네 개의 프랑카드가 펼쳐졌습니다. 그래도 아직 누구 하나 쫓아오는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간혹 지나가는 시민들도 바로 옆으로 지나가면서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지 못했고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고보니 서울 사람들은 하루 종일 걸어다녀도 하늘을 쳐다보지 않습니다. 땅 위의 일들에 바빠서 그런가 봅니다. 코 앞의 일들에도 지쳐서 그런가 봅니다.

    맨 먼저 달려 온 이들은 아니나 다를까 용역들이었습니다. 용역깡패들이었습니다. 하이 서울 페스티발 행사를 지키는 이들까지 이들일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그들 역시 무슨 죄가 있을까마는 인성이 파괴된 건장한 떡배들을 고용해 지키는 하이 서울 페스티발 행사가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물론 이들에게도 참다운 삶을 되찾을 기회가 주어져야겠지만 이런 방식은 아니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관공서에서도 자주 이런 경비용역업체를 이용해 자신을 지키거나 사업을 진행합니다. 이렇게 고용된 용역깡패들이 수많은 삶의 현장에서 공무수행이라는 이름으로 평민들을 짓밟습니다.

    위로 가나 아래로 가나 깡패 막가파 공화국입니다. 작년 일산시청에서는 이런 사업비로 30억 원 여를 책정했었습니다. 노점상 정화사업이었습니다. 이들에게 붕어빵틀과 리어카를 짓밟힌 이근재 씨가 가로수에 목을 매달았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법 위에 있었습니다. 물을 올려주려던 우리는 폭력적인 언행을 퍼붓고 불법 사진 채증을 하는 그들과 맞서 먼저 싸워야 했습니다. 그때야 달려 온 경찰도 별반 다를 게 없었습니다. 반말에 욕설은 기본이었습니다. 미란다 원칙 같은 것은 어디 책에나 쓰여 있는 말이었습니다. 경찰은 사회단체 회원들 모두를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했습니다. 범죄자들에게는 물도 주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아침부터 재수 없어"

    곧이어 우루루 전경들을 몰고 달려 온 경찰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내뱉는 말이 “아침부터 재수 없어”였고, “스트레스 받으니 말하지 말고 꺼져. 자꾸 말하면 연행할 거야”라는 반말이었습니다. 지휘관으로 보이는 경찰이 더했습니다. “아니 어떻게 안전조치부터 할 생각은 않고 사회단체 사람들 연행할 생각부터 하십니까”하자 나온 얘기들이었습니다.

    “지들이 제 발로 내려오면 되지. 뭘 보호해줘”였습니다. “불법을 저지른 사람들한테 해줄 것은 아무것도 없어.” 매트리스라도 깔아달라고 하자 나온 대답이었습니다.

    실제 수많은 경찰들이 출동해서도 정작 안전장치를 깔기 시작한 것은 오후 한 시가 훨씬 넘어서였습니다. 만약에라도 절망한 노동자들이 뛰어내리기라도 한다면 어쩔른지 물어봐도 대답도 없었습니다. 오후에 깔기 시작한 것도 조삼모사였습니다.

    탑 뒤쪽엔 덤블링장이 설치되어 오전 해가 뜨면서는 어린 아이들이 놀고 있었지만 그곳엔 안전장치를 깔 생각도 안했습니다. 웃기는 경찰들입니다. 왜 앞쪽만 자꾸 치겠다고 하냐, 우선 아이들이 놀고 있는 뒤쪽부터 안전장치를 깔면 앞쪽에 까는 것도 협조하겠다고 했더니 계면쩍은 듯 돌아가더니 오후 4시경 노동자들이 자진해서 내려올 때까지도 안전장구 설치는 앞 뒤쪽 어느 쪽에도 하지 않았습니다.

    코메디였습니다. 노동자들이 위험하게 오른 탑 주위 안전장구 설치는 끝내 하지 않으면서도 시민들 눈을 의식해 주변에 이동 긴급치료소 천막만 하나 세워두었습니다. 가서 보니 전경들 먹일 밥상자만 가득 쌓여 있고, 사복 경찰들과 출동한 소방서 관계자들 휴게소 노릇만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런 비인간적인 경찰들에 맞서 여러 번이나 싸워야 했습니다. 정당한 자신들의 사회적 권리 존중을 위해 저항권을 행사한 노동자들에겐 대소변을 치룰 생리적 권리조차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임시로 만든 소변통을 올려 보내주자는 요구를 했다고 여러 명의 사회단체 회원들을 연행하려고 했습니다. 간신히 구했습니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였습니다. 최소한 양보하더라도, 죄의 유무는 법정에 가서 다투어진다는 것이 법치사회의 기본 윤리입니다. 그전까지는 누구의 인권도 함부로 다루어져서는 안 됩니다. 설령 죄인이라 하더라도 법정에서 결정된 죄의 댓가 이외로는 어떤 기본적인 인권 침해도 있어서는 안되는 것이 법치사회의 윤리입니다. 그 윤리를 앞장서 지켜야 하는 경찰이 맨 앞에서 법을 어기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미 범법자로 취급받고 있었습니다. 경찰들의 눈엔 그런 기본 인권을 지키기 위해 나와 있는 사회단체 성원들도 덩달아 범법자고, 공범이었습니다. 때려 잡아야 할 악충들이었습니다.

    때려 잡아야 할 악충들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늘 차별과 소외가 있는 곳에 함께 해온 헌신적인 사회단체 사람들과 함께 맨 먼저 달려 온 이들은 역시 고통받는 노동자들이었습니다. 이랜드-뉴코아 여성노동자들, 코스콤 비정규직들, 며칠 전 고공농성을 마친 GM대우 비정규직들, 재능교육 비정규여성노동자들, 전국해고노동자투쟁위원회 회원들, 그리고 시청 앞에서 성람재단비리 해결을 위해 끈질기게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는 장애우들 등 우리 사회 가장 밑바닥에서 자신의 권리를 넘어 전체 차별받는 이들의 권익을 위해 싸우고 있는 이들이었습니다.

    경찰 병력들도 시간이 갈수록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조명탑 너머 잔디 광장에도 인파들이 넘쳐나기 시작했습니다. 900만 비정규직들의 설움을 알리기 위해 여성노동자들이 18m 고공에서 목숨을 걸고 점거농성을 하고 있어도 하이 서울 페스티발의 노래 소리는 높아만 갔습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나서라"는 노동자들의 목숨을 건 고공농성이 펼쳐지는 현장에서 아무런 일도 없는 듯 흥겨운 노래를 트는 서울시청이 도대체 누구를 위한 시청인지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무대장치만 40억 짜리라는 페스티발 음향에 묻혀 고공에서 노동자들이 외치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 소리에 현혹되어 도통 조명탑 쪽을 바라보지 않는 사람들이 밉기도 했지만, 그들을 나무랄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누구든 나 하나의 삶조차도 힘겨운 세상이 우리 사회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본격적인 하이 서울 페스티발 저녁 행사를 준비하고 있는 서울시와 조급해진 경찰들이 예상 외로 협상안 마련에 적극성을 띠었습니다. 중간에 청와대까지 얘기가 전달되었고, 대통령이 빨리 정리(?)시키라고 했다는 얘길 흘려들었습니다.

    서울 경찰청장이 현장에 나와 있다는 얘기가 들렸고, 진압 예정 시간은 오후 3시가 마지노선이라고 했습니다. 거의 협박이었습니다. 저녁엔 대규모 광우병 소 수입 반대 촛불행사가 청계천에서 열릴 예정이라 경찰과 정부 역시 압박을 받고 있는 듯 했습니다.

    다행히 언론들도 관심을 표명해 현장엔 KBS, MBC, SBS, YTN 방송카메라 상시 대기 중이었습니다. 들리는 얘기로는 라디오에서도 시간대 별로 점거 현장 이야기를 내보내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 첫 점거 농성이었습니다. 그것도 서울 한 복판 서울 시청 앞에서, 서울시가 주최하는 하이 서울 페스티벌 마지막 날 밤 하이라이트 공연을 앞둔 행사장 조명탑에서 이루어진 일이었습니다.

    어려운 순간들이었고 긴장된 순간들이었습니다. 진압이 들어온다면 조명탑에 오른 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 연대를 위해 달려 온 모두가 연행될 판이었습니다.

    물론 기륭전자 비정규여성노동자들과 연대를 위해 달려 온 모든 이들은 연행을 각오하고 있었습니다. 현 정부는 어떤 불법집회도 허용치 않겠다고 정권 초기부터 엄포를 놓고 있는 정부입니다. 근로기준법이 노동자들을 너무 과보호하고 있다고 망발을 일삼는 이를 노동부 장관으로 앉혀놓은 정부입니다.

    초등학생 때부터 우열반과 열등반을 나눠 차별을 사회화하자는 정부입니다. 초등학생 때부터 초과 근로를 생활화하기 위해 0교시 수업, 날새기 수업을 시키자는 정신 나간 정부입니다. 30개월 미만이든 아니든 광우병 소를 수입해 제 나라 국민들에게 먹이고, 대신 미국 정부의 지지나 받자는 얼빠진 정부입니다.

    앞장서서 재벌들과 일부 부유층의 배타적 프렌들리가 되겠다고 호언하는 반민중적 정부입니다. 이득을 떠나 모든 생명의 강을 파헤쳐 운하사업을 벌리겠다는 천박한 정부입니다. 무서운 정부입니다. 어디로 어떻게 튈지 예상할 수 없는 신자유주의 정신병에 걸린 정부입니다. 우리 몇 쯤 가두는 것은 꿈쩍도 않을 정부였습니다.

    성실 교섭 사인을 받아내다

    하지만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은 당당했고, 사회적 연대를 위해 달려 온 이들 역시 투철했습니다. 기세에 밀린 정부 쪽에서 협상안을 마련해 왔습니다. 서울노동청장이 직접 현장에 나와 사인을 했습니다. 서울시 국장이 배석하고, 외국에 나가 있는 기륭전자 배영훈 사장을 대신해 총무이사가 나와 성실교섭에 나설 것을 확인하고 사인했습니다.

    오는 5월 16일 오후 5시에 노동부 관악지청에서 교섭을 하겠다는 확인서였습니다. 작년 11월 이후 회사는 기륭노동자들의 정당한 교섭 신청에 단 한번도 응하지 않았습니다.

    나름대로 쾌거였습니다. 비정규노동자들의 싸움은 이렇게 처절합니다.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조항 하나를 실행하는데도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전국의 투쟁하는 노동자들 대부분이 이렇습니다. 사이비 언론들은 가끔 노동자들의 불법시위나 행동을 대문짝하게 보도하면서도 일상 속에서 하루에도 수천만 건씩 자행되고 있는 사주들의 부당노동행위는 당연하게 받아들입니다.

    이렇게 참담하게 노동자들이 싸우고 나서야 단 몇 가지 사주들의 부당노동행위가 사회적으로 드러납니다. 기실 자본주의는 불법을 먹지 않고서는 한시도 설 수 없는 광우병 걸린 소입니다. 광우병 걸린 소고기를 일상적으로 사람들에게 강제로 먹이는 불량사회입니다.

    모두들 씁쓸하기도 했지만 정부의 중재안을 받기로 했습니다. 노동자들은 이렇게 착합니다. 교섭에 응하겠다는 약속 하나에 선뜻 다시 소통의 마음을 내놓습니다. 늘상 그렇습니다. 그렇게 농성을 풀고나서 뒤통수 맞는 경우가 태반이지만, 다시 바보같이 약속을 믿어줍니다.

    바보같이 약속을 믿어주다

    약속을 받기로 한 뒤에도 한 차례 소동이 있었습니다. 기륭여성 노동자들의 요구는 단순했습니다. 고공농성에서 내려 온 노동자들을 맞는 시간을 5분만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너무도 인간적인 요구입니다. 무슨 흉악범들이라도 연행되어가기 전 마지막 순간엔 들어줄만한 요구입니다. 하지만 경찰들은 막무가내였습니다. 현행범이어서 바로 연행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머리를 빡빡 민 서른 아홉 김소연 분회장이 다시 마이크를 잡고 절규했습니다. "1000일 동안 수많은 약속들을 했지만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다시 종이짝 한 장을 쥐어주고 우리에게 믿으라 합니다. 하지만 다시 믿겠다는 우리에게 정부는 최소한 신뢰를 위한 시간마저도 허락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우리는 차라리 연행당하겠습니다. 우리를 차라리 진압하십시오. 비정규여성노동자들의 현실이 어떠한지 똑똑히 증명하겠습니다. 이깟 종이짝 차라리 찢어버리겠습니다."

    정말 오래간만에 듣는 감동의 연설이었습니다. 사람의 목소리였습니다. 자신이 울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소리들이었습니다. 차라리 우리를 탄압하라는 졀규! 아, 저런 게 해방의 소리들인데 하며 가슴이 떨렸습니다. 내 눈에도 눈물이 솟았습니다.

    하지만 경찰들은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김소연 분회장의 말이 끝나자 마자 바로 연좌해 있던 이들을 강제 연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사전 경고방송도, 무슨 죄라는 말도 없었습니다. 조금 전까지 협상하자던 양의 얼굴이 순식간에 공포스런 늑대들로 바뀌었습니다.

    간신히 막아내고 다시 협상이 시작되었습니다. 결국 타협안이 다시 나왔습니다. 분회장이 탑에 올라가 동지들의 상태를 확인하고 함께 안전하게 내려와 곧바로 병원으로 후송해 충분한 안정을 취한 후 경찰 조사에 응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모두 아쉬워했지만 후일을 위해 마음들을 낮추었습니다.

    조명탑 위에 오른 네 명의 여성노동자들은 눈물을 흘리며 내려가지 않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차라리 이곳에서 진압당하겠다고 했다 합니다. 서로 울며 내려 왔다고 합니다. 소방차 사다리를 타고 내려오던 그들이 “비정규직 철폐하여 사람답게 살아보자”라고 외치며 울먹이는 게 보였습니다. 아, 가슴 쓰린 하루였습니다.

    모든 집회가 끝이 나고 오후 4시 그때야 남은 이들끼리 길거리에 둘러앉아 식은 밥을 나눠 먹었습니다. 모두 노숙자 꼴이었지만 오늘만큼은 부끄러움이 덜했습니다. 모두가 말없이 밥을 먹었습니다.

    오늘만큼은 부끄러움이 덜했습니다

    다시 병원으로 이동해 인사들을 나누고 헤어져 구로동으로 먼저 돌아오는 길. 한강대교를 넘는데 열린 차창문으로 시원한 5월의 밤, 강바람이 불어 왔습니다. 64만 원 받던 여성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목숨을 걸고 싸운 하루가 그렇게 저물어가고 있었습니다.

    세상은 그렇게 또 평온하게 저물어가고 있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입에서 노랫가락 하나가 흘러나왔습니다. "긴 하루 지나고 언덕 저 편에…" 하는 노래였습니다. "놀던 아이들도 모두 집으로 돌아가는데, 나는 왜 여기 서 있나…" 왠 설움이 복받쳤는지 입술을 꼭 깨물어야 했습니다.

    참 힘겨운 하루였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억압받으며 숨죽이며 차별당하며 살아가는 비정규노동자들 900만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을 것입니다. 수많은 정의들이, 평화들이 또 그렇게 어디선가 끌려가고 짓밟혀 갈 것입니다.

    우린 꼭 이렇게 살아가야만 할까요?

    우린 꼭 이렇게 살아야만 할까요?

    사랑만으로 살아 갈 수 있는 세상, 생의 환희를 맘껏 만끽하면서도 서로에게 누가 되지 않을 그런 평등하고 평화로울 세상을 꿈꿔 봅니다. 

                                                            *     *     *

       
     
     

    * 기륭전자 여성비정규직 1000일 맞이 사회공동행동이 14일부터 21일까지 열립니다. 공동행동을 위해 1000인 하루 조합원 되기 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함께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하루 조합원이 되시고, 5000원의 조합비를 내주시면 ‘비정규철폐 1000일 기원탑’에 촛불을 세워드립니다. 이 기원탑은 17일부터 내내 타오를 것입니다.

    ■ CMS 및 하루 조합원 신청 / 네이버카페 기륭전자분회 http://cafe.naver.com/kiryung
    ■ 문의 / 기륭전자분회 연대담당(016-9355-9826)
    ■ 하루 조합원 조합비 납부계좌 / [국민]362702-04-067271 김소연

    [사회공동행동 주간 일정]

    – 5.14 서울 남부지역 시민사회단체 비정규직 철폐 1000인 선언
    – 5.15 1000일 위로 연대의 자리 "함께 가자 우리 이길을"(유가협, 추모연대)
    – 5.16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인권보고대회 및 지식인 행동(민변, 민교협, 인권단체연석회의)
    – 5.17 기륭전자분회 1,000일 투쟁 승리와 여성노동권 쟁취를 위한 선언자대회(여성운동네트워크, 사회진보연대, 불안정노동철폐연대 등), 비정규직 철폐 문화예술인 연대의 밤(천막미술관 및 비정규철폐기원탑 개관식 / 민족미술인협회, 한국작가회의, 리얼리스트100, 문화연대 등)
    – 5.18 광주민중항쟁 참여
    – 5.19 범종교계 비정규노동철폐 염원 합동 기도회(천주교, 기독교, 불교, 원불교)
    – 5.20 기륭전자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 1000일 투쟁승리대회(금속노조), 1000일 맞이 연대문화제(공대위)
    – 5.21 열사정신계승, 비정규직 1000일 투쟁 승리를 위한 해방문화제, 제12회 서울남부지역 노동열사문화제
    – 5.14-21 비정규직 철폐 공단 거리문화제(마리오 아울렛 앞, 남부문예연대)
    – 6월경 비정규직투쟁 연대기금 마련을 위한 미술전(민미협, 문화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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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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