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저 낙찰에 파리목숨인 사람들
        2008년 05월 13일 09:1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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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일 12시 서울메트로 신정기지 앞. 원인도 모른 채 해고된 60세 안팎의 지하철설비용역 남성 노동자 4명이 은박지 돗자리를 깔고, 그 위에 덩그라니 어색한 표정으로  복직을 촉구하는 ‘집회’를  하기 위해 앉아있었다. 집회장에는 투쟁가 가사와 부당 해고 내용이 적힌 A4용지만이 4명의 노동자 손에 쥐어져있을 뿐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는 사이 점심 밥도 먹지 않은 채 쉬는 시간을 쪼개 청소용역 아줌마들이 하나 둘 달려나와 집회장에는 어느 새 사람이 20여명으로 늘어났고, 어색한 팔뚝질과 투쟁가로 집회가 시작됐다.  

    시간이 갈수록 임금은 낮아지고, 해고의 위협은 상시적으로 존재하며, 노조를 만들면 그나마 일자리를 빼앗기는 노동자들. 서울메트로(지하철 1~4호선)가 용역계약을 맺으면서 최저가 낙찰제를 채택함으로써 이들의 임금은 최저 이하 수준일 수밖에 없고, 고용 승계 의무도 지워지지 않아 해고 위협을 달고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마지막 선택한 투쟁이다.      

    집회가 끝나자 청소용역 아줌마들이 다시 일을 하러 급히 들어가고, 해고된 설비용역 남성노동자 4명이 벤치에 앉아 ‘수다’를 떨었다. 그들은 해고의 ‘원통함’은 잠깐 제쳐 둔 채 갑자기 ‘아줌마’ 예찬론을 꺼내들었다.

       
    ▲ 사진=김은성 기자
     

    뉴스도 되지 않는 사람들

    ㄱ씨 "여자들은 정말 강해… 어떻게 그렇게 죽기 살기로 싸우는지 정말로 신기해"
    ㄴ씨 "남자들은 ‘욱’ 할줄만 알지 진짜로 중요한 위기 상황 속에서는 약하잖아"
    ㄷ씨 "이말에 흔들리고 저말에 흔들리고 정말 오락 가락 핫바지들 같애, 남자들이라는 게"

    내내 말없이 한숨만 교환하며 수심에 짓눌렸던 남성 노동자들의 표정이 아주 잠깐 밝아진 순간이었다. 이들은 스스로를 ‘투명인간’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서울메트로 지하철 역 어딘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전기나 수도 배관을 점검하고, 폐수를 조절하고, 냉난방을 관리한다.

    이들은 자신들을 ‘비정규직에도 못들어가는’ 용역직이라며, 그저 고용승계만 유지된다면 임금유지, 작업안전 등 다른 노동자들이 ‘평범하게’ 누리는 그런 ‘까마득한 일’은 바라지도 않는다고 했다. 해고된 ㅁ씨는 "우리 같은 사람들 백명이 짤려나간들 그게 무슨 문제가 되냐?"고 씁쓸히 반문했다.

    함께 노조를 만들며 피를 나눴다고 믿었던 동료들마저도 외면한 해고였다. 노조 활동에 적극적이었던 ㄱ씨는 "그렇게 친하게 지냈던 동료들에게 전화 한 통차 오지 않는다"면서 "나이 60에 세상이 그런 줄 몰랐다"는 말만 반복했다.

    이들이 믿었던 노조 대표자 지부장도 용역업체에 넘어갔다는 소문만 남긴 채 연락이 끊겼다. ㄱ씨는 업체에 남은 동료와도 멀어지고 어느 새 사람이, 세상이 무서워졌다고 했다. 행여 남은 자식들에게 해가 될까 자신이 겪은 일은 입밖으로 꺼내지도 못한다.

    그런데 자신보다도 더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청소용역 아줌마들이 ‘투명인간’과 같이 싸우겠다며 들고나섰다. 점심 시간을 쪼개, 앰프도 카메라도 하나없는 해고자만 덩그라니 있는 작은 집회장에 찾아와 연대 투쟁을 벌였다. 이유가 뭘까. 청소용역 아줌마들은 "바로 우리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투명인간 도우러 온 청소 아줌마들

    ㄱ씨를 비롯한 설비용역 및 청소용역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속 사각지대’인 간접고용 중 하나인 용역도급 노동자이다. ㄱ씨는 최저낙찰을 통해 새롭게 선정된 용역업체가 원청인 서울메트로와 계약을 맺으면서 갑자기 월급 40만원이 삭감될 상황에 처했다. 그러나 항의 한 마디 할 수 없다. 

    ㄱ씨와 청소용역노동자는 2년마다 최저 낙찰가를 제시해 원청인 서울메트로와 계약을 맺은 용역업체에 따라 고용 여부와 임금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원청인 서울메트로는 사용자로서 법적인 책임을 질 필요가 없고, 인건비도 절감되는 효과를 얻게된다. 반면, 노동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상식적이고 양심적인’ 용역업체가 선정되기를 바라는 것 뿐이었다.   

    2년전 계약을 맺었던 ‘S’ 용역업체는 67.3%를 제시했다. 이는 행정안전부가 지하철 청소 용역의 경우 낙찰률 하한선으로 정한 기초금액의 87.7%에 비해 20%포인트 낮은 금액이다. ㄱ씨 같은 설비 용역의 경우 낙찰률 하한선이 없지만, ‘최저인건비’ 등을 유지해야하기 때문에 매번 관례적으로 67~70% 정도에서 용역업체가 낙찰됐다. 

    ㄱ씨는 용역 입찰 때마다 최저가 낙찰제로 고용이 불안해지고 임금이 삭감되자 2년 전에 노조를 결성해 임금을 올리고 작업 환경을 개선시키는 등 적극적인 활동을 벌였다. 그러나 올해 ‘S’업체의 계약기간이 만료되자 지난 4월 18일 (주)태광실업이라는 곳이 사상 최저가인 48.2%를 써내고 들어와 그에 따른 감원과 감봉이 강행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닥쳤다.

    2년 전 낙찰가 67.3% 에 비교하면, 이번 낙찰로 인해 한 사람당 30~40만원 정도가 감봉돼 100~120만원 사이의 임금을 받게된다. 임금 삭감에 그치지 않고 태광실업은 전 용역업체 노동자들의 고용승계 의무가 없는 것을 근거로 ㄱ씨를 비롯해 노조에 적극적이었던 조합원 10명에 대해 ‘계약 만료’를 선언, 사실상 해고를 통보했다.

    해고된 노동자들이 기존에 유지해왔던 고용승계 보장을 촉구하며 집회를 열자 그 중 숙련된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폐수처리 부문 노동자 3명과 뒤늦게 신규 계약을 맺기도 했다.

    남의 일이 아니다

    이같은 유례없는 사상 최저의 낙찰가, 기존에 유지해왔던 고용승계 관례를 깨고 노조 활동을 적극적으로 했던 사람들에 대한 해고가 다른 지하철 내 사업장에 ‘선례’가 돼 도미노처럼 확산될까봐 청소용역 아줌마들이 발벗고 나선 것이다.

    이날 점심도 먹지 않은 채 신정기지 앞 집회에 참석한 청소용역 아줌마 이모씨는 "보통 새 용역업체가 들어오면 5월 1~2일 경 근로계약서 작성이 끝나야 하는데, 이번에 새로 계약을 맺은 우리 쪽 용역업체도 태광실업 사태를 지켜보느라 아직도 근로계약서 작성을 하지 않고 있어 정말 불안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씨는 "태광실업이 밀어붙이는 대로 된다면, 우리같은 사람들은 향후 상식적으로 말도 안되는 낮은 낙찰제를 제시한 용역업체에 고용돼 감원과 감봉에 시달릴 것이고, 상황은 자꾸만 더 나빠지는데 반해 노조활동은 불가능하게 될 수 밖에 없다"며 거듭 ‘우리 일’이라고 강조했다. 

    ㄱ씨를 비롯해 이번에 해고된 사람 10명은 일을 잘하는 만큼 바른말 잘하기로 소문난 사람, 노조에 가장 먼저 가입한 사람 등 용역 업체를 대신해 현장을 관리 감독하는 소장들에게는 ‘눈엣가시’ 같은 사람들이었다.

    노조는 태광실업이 노조를 인정하지 않고 교섭을 거부하는 등 노조를 말살하려한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태광실업이 입찰 시 구인사이트인 워크넷 등을 통해 신규인원을 모집하고, 고용승계를 조건으로 노조 활동을 하지 말라고 발언한 점 등을 근거로 제시했다.

       
    ▲ 사진=김은성 기자
     

    노조 측에 따르면, 각 분회장과 여성연맹 이찬배 위원장, 태광실업 관계자가 함께 만난 자리에서 노조 활동 중지 각서를 써준다면 전원 고용승계를 보장하겠다고 태광실업 측이 구두로 약속해 이찬배 위원장을 제외한 다른 조합원들이 모두 노조 활동 금지 각서와 탈퇴서를 내기로 했다. 그러나 태광실업이 하루 만에 약속을 뒤집고 노조 활동에 적극적이었던 10명에 대해 정리해고를 단행했다고 주장했다.

    #. 태광실업 – "하느님 앞에 한 점도 부끄러운 것 없다".."법 위반인가요?"

    그러나 이같은 노조의 주장에 태광실업 측은 ‘자의적인 해석’이라며, "법에 위반한 것이 있느냐?"고 반문했다. 태광실업 측 관계자는 "우리는 고용승계를 한적도 해고시키는 행위를 한적도 없다"면서 "우리가 처음 인수한 현장이니 그동안 관리감독 했던 소장님들이 근로자들의 상황을 가장 잘알것같아 소장님의 판단아래 추천을 받아 ‘신규 채용’을 한 것 뿐"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우리가 대전에 있는 업체이다 보니 서울 업체들 및 현장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 잘 모르는 상태로 입찰해 기존 임금을 유지할 수 없는 최저가로 낙찰됐다"면서, 인터넷을 통해 신규 인원을 공지한 것에 대해 "삭감된 임금을 받아야하는 사람들에게 일방적으로 일해달라고 하는 것은 오히려 어불설성이다. 매번 현장을 인수하게 되면 결원이 생길것을 대비하는 차원으로 인원부터 공고를 낸다"고 해명했다.

    그는 "우리는 노조니 민주노총이니 하는 것에 대해 잘 모르고 관심도 없다. 이찬배 위원장에게 2년간만 노조를 우리에게 위탁시키주면 근로자들을 노조보다도 잘 섬기겠다고 진심을 담아 얘기한 적이 있다"며, "그런데 이 위원장이 노조를 와해시키려한다면서 이상하게 자기네들 편한대로 해석하고 왜곡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이찬배 위원장이 현장에 있는 대표자로서 노조운동을 하지 않겠다고 각서를 써주면 사람들을 채용하겠다고 말했는데, 이 위원장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서 "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사람들이 ‘우리가 각서를 쓰면 안되겠습니까?’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강압적으로 각서를 요구한 것이 아닌데, 당신들이 정 그러겠다고 하니 내가 2년간 일하면서 불안하지는 않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그는 "제가 노조나 그러한 시스템을 잘 몰라 그 과정에서 혹 실수를 한 게 있는지는 몰라도 우리는 독실한 크리스천이자 휴머니스트로 하느님을 바라보고 단 한점도 부끄러움이 없다"면서 "우리가 법을 어긴 일을 한 것이냐?"고 반문했다.

    #. 서울메트로 – "시대 흐름이 그렇다 …. 경영에 관여할 권한 없어"

    해고된 노동자들은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게 된데에는 상식 밖의 최저낙찰제를 적용해 업체를 선정한 서울 메트로에게도 도의적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민주노총 서울본부 김기범 노무사는 "굳이 책임 소재를 따져보면 용역이야 낙찰을 따야하니 저단가를 제시할 수 밖에 없는데, 그로 인한 실제 피해를 노동자가 질 수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 공공기관으로서 상식 이하의 낙찰을 한 도의적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서울메트로 측은 이번 낙찰제가 저가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시대적 흐름을 감안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서울메트로 측 관계자는 "솔직히 저희도 이렇게 싸게 되리라고는 짐작도 못했다. 낮은 금액으로 계약된 건 사실이지만, 자본주의 경쟁 사회에서 똑같은 조건이라면 가장 싼 금액을 제시한 업체를 선정할 수 밖에 없다"면서 "모두가 고용승계가 되길 바라지만 우리가 국가계약법상 용역업체에게 경영방침에 대해 관여하는 건 부당행위로 우리에게 그럴 권한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설사 새로운 용역업체가 전부 새로운 인력을 뽑아 들어온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면서 "안타깝지만, 지금 서울메트로 정규직도 대규모 감원이 되고 있듯 요즘같은 어려운 시대의 흐름을 감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 살아남았지만….파리목숨

    노조는 태광실업 본사가 위치한 노동부 대전지청에 진정서를 제출하고 지노위에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할 예정이다. 김기범 노무사는 "고용승계의 최우선 조건으로 민주노총 전국여성노조연맹 지하철 설비용역노조 활동을 중지하는 각서 제출을 요구한 것은 현행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이 금지하고 있는 황견계약"이라며 "또 노조에 적극적인 사람들을 대상으로 고용승계를 거부한 것도 노조를 사업장 내에서 말살시키려는 부당노동행위"라고 말했다.

    김 노무사는 "형식적으로 새로운 용역업체가 들어오더라도 고용승계가 관례적으로 이어져왔고 이에 따라 노동자들이 계약갱신을 기대할만한 이유와 정황이 있다면 부당한 해고로 봐야한다고 생각한다"면서 "실제 하는 일도 동일하고 그간 계속 고용승계가 이어져왔던 노사간의 과정등을 근거로 제시하면 고용 안정을 인정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행운인지 불행인지 고용승계를 보장받은 A씨는 이번 해고 사태에 대해 "이번 사태가 노동조합을 와해시키는 시범 케이스로 다른 사업장에도 도미노처럼 파급 효과를 미칠 것"이라며 "노조가 와해되고 난 후 노동자들이 어떻게 피해를 보게 되는지 예측하게 만드는 상징적인 사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A씨는 "노동조합에 가입한 가장 큰 사유는 고용승계 때문이었는데, 노조가 실질적으로 고용승계를 보장해 줄 수 없게 됐다"며 "메트로에 남아있는 사람들의 정서는 평균 나이가 62세여서 갈곳이 없다보니 고용승계만 된다면 어쩔 수 없이 모든 걸 다 감내해야 된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렇듯 설비 및 청소용역 노동자들을 포함한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임금 삭감 및 감원에 대해 보호받을 수 있는 실질적인 법적 장치가 없다. ‘최저 수준’의 근로조건은 고사하고 상시적인 고용안정에 시달리는 파리목숨인 것이다.

    최근 사업장들은 비정규직의 보호법을 피하기 위해 이같은 간접고용을 확장하고 있으며, 그 사이 ㄱ씨 같은 수 많은  노동자들은 고용 보장의 안전장치 하나 없는 구조 속에서 뉴스조차 되지 않으며 소리 소문없이 스러져가고 있다. 다른 용역업체 해고자의 고용승계를 촉구하며 점심도 안먹고 헐레벌떡 집회에 달려나온 청소용역노동자 이모씨의 간절한 정성이 어떤 결실을 맺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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