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 와서 고리타분한 정치 이야기라니”
        2008년 05월 09일 08:0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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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은 ‘20대와 정치’라는 주제 아래 성공회대학교 학생들이 쓴 글 몇 편을 싣는다. ‘총선, 민주주의 그리고 나’라는 제목의 이 글들은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근현대 한국정치사 과목의 과제물이다.  

    제출된 과제물 전체 중에서, 글의 완성도나 빼어남보다는 정치에 대한 20대 학생들의 문제의식을 생생히 전하고 있는 글들을 추려 뽑았다. 한창 배우고 커가는 학생들의 글이니 만큼 충분하게 숙성되지 않은 생각이 드러날 때도 있겠지만, <레디앙> 독자들이 따뜻한 애정과 조언으로 이 글들을 보아주길 기대한다. <편집자 주>

    내 나이 22살. 20대의 초반으로서 감히 20대를 대표하여 20대를 위한 변명을 쓰기로 했지만, 보고서를 쓰면서도 고민하였던 것이 ‘과연 내가 20대를 대표할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이었다. 20대에 갓 진입 한 나는, 단지 20대의 대학 문화 안에 살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대학문화는 20대의 문화 중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믿기에 감히 이러한 보고서에 도전해 볼 뿐이다.

    얼마 전 18대 총선이 끝이 났고, 20대의 투표율은 19.2%라는 저조한 기록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20대 53.1%가 한나라당을 지지한 것으로 조사됐다. 30대에서는 한나라당 41.8%, 민주당 27.7%였고 40대에서는 한나라당 43.7%, 민주당 26.2%였다.

    그 이후, 17대 총선과 마찬가지로 ‘20대의 보수화’라는 타이틀의 기사들이 또 다시 터져 나왔다. 그리고, ‘20대의 보수화’에 대해 엇갈린 논쟁이 다시 시작되었다. 그러나 20대는 늘 그렇듯이 침묵했다.

       
      ▲젊은이들의 투표 참여를 독려하는 지난 총선 당시의 인터넷 만화
     

    20대 없는 ‘20대 보수화’ 논쟁

    88만원 세대, 빈털터리 세대, 1000유로 세대, 막장 세대… 우리는 그렇게 불렸다. 우리는 스스로 인정하여 명명하기보다는 다른 세대에 의해 명명되어질 뿐이었다. 현재의 20대는 ‘4·19세대’, ‘6·3세대’, ‘긴급조치 세대’, ‘386세대’ 등으로 분류되는 선배들과 달리 정치적 사건에 의해 시대 구분이 이뤄지지 않는 최초의 세대다.

    그러므로 20대를 정치적으로 해석하려는 태도는 다소 무리가 있다고 본다. 보수화라는 잣대를 들이대기엔 애매한 세대이며, 또 18대 총선의 결과로 보기에도 ‘20대의 보수화’라는 말을 꺼내기에 다소 무리가 있다는 것을 20대의 한 사람으로서 증명해 보려 한다.

    ‘증명’이란 말이 다소 거창하긴 하지만, 단순히 나의 경험과 주관적 시각을 통해, 내가 생각하는 20대의 특징적 문화를 분석해보고, 왜 20대의 18대 총선의 선택이 보수화의 양상처럼 보이는지, 또 왜 저조한 투표율을 기록할 수밖에 없었는지 등을 20대가 처한 환경과 문화를 통해 새로운 해석과 변명을 해보고자 한다.

    패배주의

    “최근 한 시사 주간지는 구매력도 없고 상상력도 없이 세상으로 등 떠밀려 나온 대한민국 이십대를 염려하는 특집기사를 썼다. ‘빈털터리 세대’, ‘1000유로 세대’, ‘88만원 세대’, ‘막장 세대’.

    소설가 박민규가 ‘너무 눈에 띄지 않아 세상이 깜빡한 존재들’이라고 표현한 그들은 어쨌든 이 세상과 한 번 부딪혀보던 이십대의 특권조차 엄두를 내지 못한 채 삼십대 문화를 동경하거나 십대 문화를 그리워하며 살고 있었다.

    저항할 기력도 없고 분노할 의지도 없는 이십대. 편의점과 원룸에서 한 평짜리 희망에 안도하는 청춘들. 그들과 함께 슬그머니 스크린에서 자취를 감춰버린 우리시대 청춘 영화는 너무 눈에 띄지 않아 세상이 깜빡한 <My Generation>, 그들이 맥없이 놓쳐버린 ‘젊음의 짱돌’이다.”

    위 글은 <이주연의 영화음악>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20대의 한 단면을 그린 청춘영화 <MY GENERATION>을 소개하면서 디제이가 따라 읽었던 대본의 일부이다. 무엇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패배주의 속 20대를 생각하기에 좋은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패배주의는 어디서 오는가? 상상력 없는 입시제도, 입시제도를 벗어나면 우리를 기다리는 경쟁 사회.

    나는 사회 초년생인 20대가 약자로서 사회에 들어갔지만 절대 약자로 살아서는 안 되는 그런 세상에서 패배주의가 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이러한 패배주의는 정치권에 어떤 기대도 할 수 없는 경향을 보인다.

    상상 속의 승리자

    늘 빈곤하고, 늘 바빠야 하는 20대. 고등학교에서 엄청난 수업량을 채워가며 나는 대학교에 왔다. 그리고 내 친구들은 전문대에 가기도, 혹은 취업노선으로 뛰어들기도, 혹은 공무원시험이나 재수를 하기도 하였다.

    입시제도를 버티게 해주었던 건, 아마 그때의 순수함과 대학이라는 신세계였다. 대학은 그런 스트레스의 해방구였던 것이다. 그런 대학에까지 와서 고리타분한 정치 이야기라니. 이건 어울리지 않는다.

    인터넷 N 포털사이트에 ‘20대’라는 키워드로 검색을 해보면, 나오는 책들은 무엇일까? 「대한민국 20대, 재테크에 미쳐라」, 「20대의 여자가 꼭 알아야 할 돈 관리법」, 「20대, 똑똑한 사회생활 스타트」, 「단 한번뿐인 20대를 위한 직장생활법칙」…. 각종 처세술이다. 앞으로 닥쳐올 커다란 경쟁에서 우리는 또 소수의 강자로서 살아남기 위해 버텨야 한다.

    20대가 동경하는 것은 성공한 사람들이다. 그러니 자신들은 ‘노동자’라는 개념과 멀어질 수밖에 없다. 수많은 지방대학생들은 왜 학벌사회의 모순에 대하여 목소리 내지 않는가? 그럴 힘도, 그리고 그것이 바꿔질 거라는 믿음도 없고, 자신들이 학벌사회의 부조리 속에서 희생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어쨌건 경쟁의 세계 속에 우리는 승리자다. 승리자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승리자에 가까운 영향력을 펼치는 한나라당에 표가 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20대의 보수화의 책임은 20대에게로?

    ‘20대의 보수화’라는 말은 20대에게 책임은 물으려는 의도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은 20대의 탓이 아니다. 앞서 지적했다시피 문화적 요인에서 20대가 비정치화될 수밖에 없었고, 20대의 눈길을 이끌지 못했던 현 정치판에 책임이 있다. 20대 정치적 무관심과 비정치화의 핵심은 다양한 이해관계를 대변하지 못하는 정치판에 있다.

    “20대 대학생 통일에 가장 저해되는 국가는 미국. 흥사단 2006 대학생 의식 설문조사. 5일 흥사단 민족통일본부에 따르면 최근 서울지역 대학생 1천224명을 대상으로 통일의식에 대한 설문조사를 한 결과 통일에 가장 방해가 되는 나라를 묻는 질문에 미국을 꼽은 학생이 51.4%로 가장 많았다.” – <연합뉴스> 06. 12. 5

    위의 자료는 대학생 보수화라는 언론의 보도와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 현재 20대 대학생과 관련한 논쟁의 본질은 미래의 대한 불안정성의 확대, 개혁세력의 무능, 진보세력의 대안 부재로 인해 정치적 대안세력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실제 한나라당에 대한 20대의 지지율이 타당에 비해 높은 것에 반해 정치에 대해 그 어느 세대 보다 부정적인 결과가 나오는 것은 한나라당에 대한 희망이 아니라, 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냉소 속에 전반적인 한나라당의 독주 분위기가 20대 여론조사 결과에 반영되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20대는 진보도 보수도 아니다

    20대는 스스로 보수라고 혹은 진보라고 일컫지 않는다. 그것을 나누는 자체도 의미가 없다. 그만큼 우리는 비정치화 되었다.

    등록금이 비싸지만, 그것이 등록금 투쟁으로 이어지지 않고, 우리에게 안정된 직장의 미래는 없는데도, 비정규직 투쟁에 눈을 감는다. 20대는 사회를 보는 것을 철저히 차단당했고, 앞으로도 그 현상은 심해질 것이다.

    그리고 더욱이 문제인 것은, 앞으로도 20대가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가 불충분하다는 점이다. 20대가 보수화 되었느냐 혹은 아니냐는 논쟁보다는 20대가 왜 정치에 관심을 가질 수 없었는지, 왜 우리의 현 정치판이 20대의 눈길을 끌지 못하는지, 20대의 책임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현실정치의 문제점을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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