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보정당은 왜 ‘불량’ 판정을 받았나?
        2008년 05월 09일 02:5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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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9일 한나라당, 자유선진당, 친박연대에게 70%가 넘는 지지를 보내준 민심이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청계천에서, 여의도에서 굴욕적인 대미쇠고기협상을 규탄하고 의료보험 민영화를 걱정하며 부자감세의 조세정책을 비난하고 나섰다.

    넉 달 사이에 두 차례의 선거에서 압승한 이명박 정부의 지지율은 취임 석 달도 안 돼 25% 수준으로 떨어졌다. ‘보수화’된 유권자들이 총선 한 달 만에 탈보수화된 것인가?

    제 18대 총선은 범 한나라당 계열의 압승, 구 집권세력인 통합민주당의 참패 그리고 진보정당들의 패배로 귀결되었다. 4개월 전에 치러진 17대 대선의 결과가 반복되어 나타난 것이다.

    이로 인해 당분간 현실정치의 정치지형은 수구 보수세력이 지배적인 지위를 확보하는 것으로 후퇴하였다. 17대 대선과 18대 총선의 이 같은 결과는 수구 보수세력을 압도적으로 지지한 유권자들의 투표행위로부터 비롯된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를 유권자들의 보수화로 해석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다.

    총선 결과는 진보의 공급 부족 때문

    오히려 10년 이상 지속된 사회양극화의 그늘에서 진보적 대안에 대한 수요는 점증하고 있는데 반해 이를 충족시킬 공급이 부실한데서 오는 수요와 공급의 질적 불일치가 빚어낸 현상이 바로 17대 대선과 18대 총선의 결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실제 ‘서민 친화적인’ 정부가 내리 10년을 집권하는 사이에 고용체계가 무너지면서 비정규직은 8백만을 웃돌고 자영업자 비율은 미국의 5배로 늘어났으며 대부분의 농가는 파탄 직전의 상태에 놓여 있다.

    선거현장에서 가장 많이 들을 수 있는 목소리는 “서민도 좀 먹고 살게 해 달라”는 절규이다. 진보적 대안을 요구하는 수요는 이처럼 광범위하며 강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진보정치세력이 외면당한 것은 이제까지 공급된 진보가 ‘짝퉁’이었거나 ‘불량’으로 평가받았기 때문이다. 왼쪽 깜박이를 켜고 오른쪽으로 돌아간 짝퉁진보는 그렇다 치더라도 노동자 서민의 유일한 벗을 자칭한 진보정당은 왜 ‘불량’ 판정을 받았는가?

       
    ▲ 진보신당 현판식 모습 (사진=진보신당 사진게시판 이상엽)
     

    1. 과거

    2000년 1월 30일 창당한 민주노동당은 1987년 6월 항쟁과 7, 8, 9월 노동자대파업투쟁으로부터 시작된 노동자정치세력화의 성과이다. 동시에 민주노동당은 그 이전에 시도된 민중당의 실패를 극복하려는 노력 속에서 출범하였다.

    민중당은 1992년 총선의 패배와 지도부의 와해로 소멸하였지만 민중당 실패의 근본원인은 민주노조운동의 조직적 지지를 얻지 못한 것과 진보운동 내 일부 정파만의 참여로 제한된 한계로부터 비롯되었다.

    이에 따라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의 조직적 결의와 진보진영 내 우파인 전국연합의 참여가 이뤄지면서 안정적인 출발이 가능하게 되었다.

    민주노동당은 창당 두 달 만에 치러진 제 16대 총선에서 한 석의 의석도 얻지 못하고 2% 득표에도 미치지 못함으로써 정당등록이 취소되는 위기에 봉착했으나, 2002년 지방선거에서 정당득표율 8.1%를 기록하고, 2004년 총선에서 13.4%, 10석의 의석을 확보함으로써 현실정치의 벽을 뚫고 제도권 정당으로 안착하였다.

    동시에 7천 명으로 출발한 민주노동당의 당원은 2001년 1만5천 명, 2002년 3만 명, 2003년 5만 명, 2004년 7만 명을 기록하면서 대중적 기반을 넓혀나갔다.

    민주노동당이 창당 4년 만에 이룩한 비약적인 발전은 창당 초기에 쟁취한 1인2표제를 적극 활용한 결과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정당투표제가 첫 도입된 2002년 6월 지방선거에서 8.1%의 득표로 광역비례대표의원 9명을 당선시키고 국고보조금을 받는 등 정치적 시민권을 획득하였다.

    또 이를 바탕으로 2002년 12월 제16대 대통령선거와 2004년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TV토론에 참여하는 기회를 얻고 당을 대중적으로 알려내는데 성공하였다.

    특히 ‘부자에게 세금을, 서민에게 복지를!’, ‘부유세 도입’, ‘무상교육, 무상의료 실시’와 같은 민생의제로써 사회양극화시대에 서민정당, 정책정당으로서의 면모를 인정받으며 원내진출을 이루어 내었다.

    제 17대 총선 이후 10석의 의석으로 원내 진출한 민주노동당에 대한 기대감의 상승은 그해 말 당지지율을 20%까지 끌어올리는 기록을 세웠으며, 진성당원 10만 명을 돌파함으로써 대중정당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20%까지 치솟았던 민주노동당 지지율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민주노동당의 역사적인 원내진출은 당의 한계와 문제점이 표출되고 누적되는 시발점이기도 하였다. 2002년 말 20%까지 치솟았던 당지지율은 2005년 초부터 하강하기 시작하여 그해 중반에는 8%까지 후퇴하였다.

    2005년 10월 재보궐선거에서 울산북구에서의 패배는 당 안팎에 큰 충격을 주었으나 당은 퇴행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였다. 결국 2007년 제17대 대선 결과 3%를 획득함으로써 2002년 대선 결과보다 후퇴하는 참패를 기록하였다.

    민주노동당이 2004년부터 2008년 초까지 지속된 퇴조기를 반전시키지 못하고 위기국면에까지 이른 것은 첫째, 무능과 실책에 기인한 전략적 오류, 둘째, 정파간의 과도한 패권다툼, 셋째, 조직 내부의 모순과 오류를 극복하고 시정할 자정능력을 상실한 것이 주된 이유이다.

    민주노동당은 2004년 원내진출 이후 강화된 영향력과 고조된 기대 지지율을 바탕으로 대중적인 진보정당으로 발돋움할 기회를 소중한 기회를 확보했지만, 이를 스스로 방기하였다.

    부유세 도입, 무상교육, 무상의료 공약으로 대중적 기대를 모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추진하는 기구는 총선 1년 뒤에나 발족하였고 그나마 이렇다 할 활동 없이 소멸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필요조건이 걸림돌로

    ‘자주와 평등’이라는 당의 이념적 지표는 생태, 여성, 청년 등의 새로운 영역으로 지평을 넓히지 못했으며, ‘자주와 평등’조차도 80년대 운동권식의 낡은 관념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민주노총의 조직적 지지와 정파연합은 민주노동당의 출범을 가능케 한 필요조건이었지만 민주노총의 조직적 지지는 대기업노조에 대한 일방적 의존으로, 정파연합은 낡은 정파들에 의한 패권주의적 쟁투의 일상화로 당 발전의 걸림돌로 작용하기에 이르렀다.

    이른바 친북정당, 민주노총당과 같은 부정적 이미지는 보수언론 등에 의해 덧씌워진 측면도 있지만 당 내부의 정치적 의지가 낳은 결과이기도 하였다.

    민주노동당의 거듭된 후퇴와 내홍은 비록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른바 자주파, 평등파로 불리우는 양대 세력 어느 쪽도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제 17대 대선 참패 이후 당의 위기 상황은 마지막 심판대에 올려졌다. 당은 혁신을 거부하는 완고파와 혁신파 그리고 선도탈당파로 나뉘어졌고, 2008년 2월 임시 당대회에서 혁신안이 부결되면서 분열되었다.

    2. 미래

    지난 20여 년 간 역대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이 관철되면서 사회양극화는 날로 심화되고 교육양극화, 건강양극화로 확산되면서 진보정당의 역할은 더욱 요구되고 있다.

    그러나 지난 10년의 역사가 가르쳐주는 것처럼 진보에 대한 수요의 증가가 곧 진보정당의 지지로 이어지진 않으며 미래를 보장해 주지도 않는다.

    진보의 재구성과 새로운 진보정당운동을 내건 진보신당 역시 아직 검증되지 않은 모색단계에 머물러 있다. 새로운 진보정당운동이 대중 속에 뿌리내리기 위해 거쳐야 할 여정과 극복해야 할 과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새로운 진보정당운동은 지난 10년의 진보정당운동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성찰 위에서 자신의 이념과 활동양식을 재정립해야 한다.

    현존하는 여러 정파세력을 꿰어 맞추는 방식으로는 제2의 민주노동당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당과 정파를 넘어서는 범진보진영의 참여하에 엄정하고 심도 있는 평가가 선행될 필요가 있다.

    정파 모으기로는 제2의 민주노동당

    둘째, 자주와 평등의 이념이 재구성되어야 한다. 이제까지 진보정당운동에서 진보의 가치로 추구되었던 자주와 평등은 80년대 변혁운동에 기반한 통일운동과 노동운동의 관성적 조합을 넘어서지 못하였다.

    그 결과 자주는 평화를 다 껴안지 못했고 평등은 연대를 제약하여 왔다. 생태환경에 대한 재인식 없이 진보의 미래를 담보할 수 없으며 문화에 대한 새로운 천착 없이 젊은 세대를 포괄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셋째, 노동운동의 위기가 지속되는 한 진보정당운동의 위기가 온전히 극복되기 어렵다. 노조 조직율이 10% 수준으로 하강하는 반면 비정규직이 급속히 늘어가는 상황에서 그리고 형식적인 산별체제가 영세노동자들을 포괄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대기업 노동운동에 기반한 과거의 진보정당운동을 극복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넷째, 당의 근간이 엘리트 당관료와 당내 평론가들로부터 지역 주민 속에 뿌리내리는 일선활동가들로 옮겨져야 한다. 동시에 당운영에서 운동권 동창회를 방불케 하는 낡은 정파 체제를 타파하고 다양한 조류가 공조하는 다원주의를 제도화해야 한다.

    다섯째, 선거를 통해 권력에 접근하고, 확보된 영향력을 기반으로 대중 속을 파고드는 전략을 구체화해야 한다.

    진보진영의 복수정당체제가 언제까지 유지될 지 현 상황에서 가늠하기는 어렵다. 진보진영의 속성상 3개 이상의 진보정당 출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그러나 통합은 협상의 결과로 성사되지 않는다. 치열한 혁신과 검증만이 그것을 가능케 할 것이다. 흘러간 물로는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다.

    * 이 글은 5월 9일 개최되는 한국정치학회 춘계학술회의에서 발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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