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괴력, 시간을 30년 뒤로 돌리다
        2008년 05월 09일 11:4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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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년의 반복

    광우병 논란으로 나라가 시끄럽다. 물론 이 문제에 대해서 찬반 양론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필자의 경험으로 볼 때 정부 당국자들의 태도는 분명히 석연치 않다. 촛불시위의 배후가 있다는 둥, 유언비어 유포를 엄단하겠다는 둥 하는 태도는 20~30여 년 전의 정부 당국자들의 발언과 유사하여 타임머신이라도 타고 과거로 돌아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28년 전 한 정부 당국자의 담화와 현 정부 관계자들 및 일부 언론의 발언이 놀랍도록 유사한 것을 보면 역사는 역시 희극이라는 생각도 든다.

    “지난 18일 수백 명의 대학생들에 의해 재개된 시위가 오늘의 엄청난 사태로 확산된 것은 상당수의 타 지역 불순인물 및 고첩들이 사태를 극단적으로 유도하기 위하여 여러분의 고장에 잠입, 터무니 없는 악성 유언비어의 유포와 공공시설 파괴, 방화, 장비 및 재산약탈행위 등을 통하여 계획적으로 지역감정을 자극, 선동하고 난동행위를 선도한데 기인한 것입니다”
    – 1980. 5. 21. 이희성 계엄사령관의 담화

    “정부는 허위사실을 유포하거나 불법집회로 국민을 불안하게 하는 행위는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대처하겠다” – 2008. 5. 8. 한승수 국무총리 담화

    “출처가 불명확한 괴담에 혼란을 겪거나 국가 미래가 조직적이고 악의적인 유언비어에 발목 잡히는 일이 없도록 사이버 폭력 척결에 검찰 역량을 집중하라” – 2008. 5. 8. 임채진 검찰총장, 민생침해사범 전담 부장검사회의

    “중고생들의 시위 배후에 전교조가 있다” – 2008. 5. 7. 공정택 서울시 교육감, 전국시도 교육감 회의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청소년들에게 유언비어를 뿌려 꼬드기는 세력이 있다면 반드시 찾아내 그에 따른 응분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러면 요 며칠의 어처구니없는 ‘광우병 드라마’를 막 뒤에서 감독하고 연출하는 사람들의 정체도 드러나게 될 것이다.” – 2008. 5. 7. <조선일보> 사설

       
    ▲ 긴급조치 9호를 보도한 74년 5월 14일자 <조선일보> “유언비어, 학생 정치관여 불용”. 오른쪽은 “선량한 시민은 불순분자들의 데모로부터 이탈하라”는 80년 5월 계엄사령관 경고문
     

    법률에서도 사라진 ‘유언비어’

    게다가 유언비어라니. 이 얼마나 오랜만에 들어본 용어인가. 이제는 법률에서도 사라진 유언비어라는 용어가 다시 등장하여 마치 유신 때나 5공 때로 회귀한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유신시대와 5공시대의 희극적인 법률 중의 하나가 유언비어 관련 법률인데, 이제 정부와 수사기관은 다시 30년 전으로 돌아가 유언비어 단속에 총력을 기울일 모양이다.

    1973년 박정희 정부는 총통적 대통령답게 경범죄 처벌법을 개정하여 “공공의 안녕질서를 저해하거나 사회불안을 조성할 우려가 있는 사실을 왜곡 날조하여 유포한 자”를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할 수 있도록 하였다. 구류는 30일까지 가능하니 지금 이러한 법률이 있었다면 아마 광우병 괴담은 모두 단속(?)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한국 형법사에 국가보안법을 능가하게 희극적인 범죄가 하나 더 있었다. 이는 75년에 삽입된 국가모독죄이다. “내국인이 국외에서 대한민국 또는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을 모욕 또는 비방하거나 그에 관한 사실을 왜곡 또는 허위사실을 유포하거나 기타 방법으로 대한민국의 안전, 이익 또는 위신을 해하거나, 해할 우려가 있게 한 때에는 7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에 처한다.”

    이 국가모독죄는 박정희의 오른팔이었던 모 인사가 해외에 나가 박정희를 비판하여 신설되었다고 하는데 거의 왕조시대에나 통용될만한 법률이었다. 이 범죄가 있었다면 외국에 나가서 광우병 괴담을 퍼뜨리는 네티즌까지 모두 단속할 수 있었을 것이니 현정부의 당국자들이 한결 수월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해법은 10월 유신 뿐

    그러나, 현 정부 당국자들 입장에서는 매우 아쉬운 일이지만 유언비어 유포 금지를 규정한 경범죄 처벌법과 국가모독죄는 1988년 모두 폐지되었다. 그래서 현재는 유언비어를 어떻게 엄단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해진 것은 이들의 인식은 30년 전의 정부 당국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타임머신에서 나온 것 같은 정부당국자들의 발언을 듣고 내가 내린 결론은 단순하다. 불법 운운하면서 유언비어 엄단 등을 이야기하는 권력자들의 발언은 우리의 역사적 경험으로 보아 상당 부분 거짓이고, 무언가 켕기는 것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지 않다면 왜 공권력을 동원하여 애꿎은 사람들을 때려잡으려고 하는가 말이다.

    사실 민주주의라는 것은 별 것이 아니다. 정부는 사실을 주권자인 국민들에게 명백하게 밝히고, 그래도 국민이 납득이 되지 않는다면 정책을 바꾸든지 아니면 정부를 바꾸든지 해야 하는 것이다.

    이 단순한 해법을 모르고, 국민은 유언비어에 노출되어 선동되는 정서적이고 무책임한 존재이니 유언비어만 엄단하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그 귀결은 ‘10월 유신’과 같은 것 뿐이다.

    AI를 능가하는 권력자들

    유언비어는 항상 있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해소하자고 만우절이라는 날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유언비어가 유포되는 그 이유를 해결할 생각은 하지 않고 유언비어 유포자만 엄단하고자 하는 권력자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한 유언비어는 더욱 확산되기 마련이다.

    이들 권력자들이 실제로는 유언비어 유포의 결정적인 주범이고, AI를 능가하는 병원체인 것이다. AI는 그래도 조류들만 통제하면 된다고 하지만, 이들은 말 한 번으로 전 사회를 전염시킬 수 있기 때문에 통제불능인데다가 그 해악은 자자손손에게까지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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