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거는 민주주의 꽃이 절대 아니다
        2008년 05월 12일 10:0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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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은 ‘20대와 정치’라는 주제 아래 성공회대학교 학생들이 쓴 글 몇 편을 싣는다. ‘총선, 민주주의 그리고 나’라는 제목의 이 글들은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근현대 한국정치사 과목의 과제물이다.

    제출된 과제물 전체 중에서, 글의 완성도나 빼어남보다는 정치에 대한 20대 학생들의 문제의식을 생생히 전하고 있는 글들을 추려 뽑았다. 한창 배우고 커가는 학생들의 글이니 만큼 충분하게 숙성되지 않은 생각이 드러날 때도 있겠지만, <레디앙> 독자들이 따뜻한 애정과 조언으로 이 글들을 보아주길 기대한다. <편집자 주>

    어려서부터 받아 온 정치 교육

    나는 태어날 때 ‘민주(民主)’라는 이름을 얻었다. 내 이름을 지어주신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 세상에 민주주의가 올바르게 이룩되길 바라는 분들이다. 어머니께서는 전교조 해직교사이고 아버지께서는 교수 생활을 하다가 미군범죄 근절 운동을 20년 이상 한 사회운동가이며, 현재는 민주노동당 경기도당 대표이다.

    특히 아버지는 선거에도 몇 차례 출마하였고, 정치를 ‘업’으로 하고자 하는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반 사람들에 비해 상당히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부모님께 나는 어려서부터 정치 교육을 받아 왔다. TV나 신문에 나오는 기사 중에서도 충분히 거짓된 이야기가 담겨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고, 정치에 대한 혐오나 불신이 투표를 하지 않는 행위로 실천되는 것은 절대로 옳지 못하다는 점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배우게 되었다.

    또 어릴 적부터 윤금이씨 살해 사건 규탄 집회, 위안부 할머니 댁, 에바다 농아원 정상화 집회, 효순이 미선이 장갑차 살해 규탄 촛불집회 등에 참여하였다.

    특히 윤금이씨 살해 사건 규탄 집회는 내가 초등학생일 때 아버지를 따라 갔던 것으로 기억을 하는데, 이 문제가 그렇게 중요하다면 왜 사람들이 지나쳐가는 길거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전달하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고, 이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허공만 떠돈다고 생각하자 아주 슬펐다. 그때 불렀던 ‘님을 위한 행진곡’은 어린 내가 듣기에도 참 구슬펐다.

    이렇게 사회에 문제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것이 올바른 정치로 해결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된 나는 투표권이 없던 고등학생 때부터 투표권이 있는 것처럼 선거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내 나이에게 투표권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해되지 않았다.

    5·31 지방 선거, 첫 투표의 감동은 이내 좌절로

    그러다가 만 18세가 된 2006년, 비로소 투표권을 얻게 된 나는 5·31 지방선거에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당시 경기도지사 후보로 출마한 아버지의 선거 운동을 돕기도 하면서 내가 투표를 하는 모습이 부모님과 함께 <연합뉴스> 사진(아래)에 실리기도 했으니, 첫 투표가 꽤나 거창했던 셈이다.

       
    ▲ 오른쪽이 김민주 학생의 가족
     

    그러나 나의 첫 투표권 행사의 감동은 그날 저녁 개표 현황 방송을 보면서 이내 사라졌다. 총투표율 51.9% 중에서 20대의 투표율이 29.6%로 형편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때서야 또래 친구들이 모두 나와 같은 환경에서 성장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 친구들에게는 정치가 상당히 낯선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모두가 정치적 성향이 뚜렷한 가정에서 성장해야만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매우 일부의 경우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학교 등을 비롯한 외부적 환경에 의해 정치적 학습을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일반 학교에서 ‘정치’라는 과목을 선택과목으로 하거나 아예 가르치지도 않는 현실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내 주변 친구들에게 왜 투표를 하러 가지 않았냐고 물어도, 부끄러워 하거나 마음을 바꿔 먹는 친구들이 거의 없었다.

    투표 마감인 6시가 되기 전에 중학교 동창이자 가장 친한 친구가 투표를 아직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당장 투표를 하라고 말을 해서 간신히 투표장에 보냈는데,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지루해서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고 문자가 왔다.

    나는 그날, 나의 투표 행위가 스스로를 설득하는 행위이기만 할 뿐, 다른 사람들, 특히 가장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마땅한 내 또래들에게 전혀 설득력이 없다는 사실에 좌절감을 톡톡히 느껴야 했다.

    민주노동당 선거참관인이 되다

    총선이 있기 전에 있었던 대선의 결과에 이런 저런 생각이 많았다. 너무나 분명하게 한나라당 이명박과 이회창이 표를 다 가지고 갔기 때문에 총선 결과가 매우 중요했다.

    총선에서도 같은 상황이 벌어질 것 같기도 하고, 반대로 어떤 견제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야당이 많은 표를 받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또 실제로 이제까지 대통령이 당선된 당의 견제 당으로 표심이 많이 기울어졌다는 소리에 조금은 희망이 있었다.

    우리 지역구 선거에 민주노동당 선거참관인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전날 밤에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내일 한나라당 참관인과 통합신당 참관인도 올 텐데, 그 사람들과 내가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선거 당일이 되어 새벽 6시부터 만난 각 당의 참관인들과의 만남은 내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처음 보는 사람의 정치적 성향을 알고 있다는 것은 참 신기한 경험이었다. 그 사람들의 행동이나 말투마저도 그런 정치적 성향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이상한 편견을 갖게 되기도 했고, 그 사람들이 기분 나빠 할 것 같은 말은 미리 삼갈 수 있었다.

       
      ▲나는 민주노동당 투표참관인이 됐다.
     

    나는 선거장에서 여러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다. 각 당의 참관인들은 물론 선거인명부를 확인하는 등 일을 돕는 분들은 거의 모두 40대 아주머니였고, 나 혼자 대학생이었기 때문에 주목을 많이 받은 것이기도 할 테지만 사실은 다른 이유에서 더 주목을 받았던 것이라고 짐작한다.

    그 이유는 바로 우리 지역구에 민주노동당 후보가 출마하지 않았다는 것이다(통합신당, 한나라당, 평화통일가정당에서 출마하였다). 민주노동당 후보가 출마하지도 않았는데 왜 당에서 선거참관인을 보냈으며, 그리고 원하는 후보가 없을 텐데 왜 투표를 하느냐는 것이다. 심하게 말하는 사람은 “그냥 집에 있지, 뭐 할라고 왔어?”라고까지 말했다.

    사실 나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어느 누군가가 자신이 원하는 후보가 출마하지 않아서 무효표를 만들 것이라면, 그냥 집에서 편안하게 기권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지 않나 하고 잠시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역시 유권자가 투표장에 와서 무효표로 투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유권자가 집에서 기권하는 것과 투표장에서 기권하는 것은 그 의미가 하늘과 땅 차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유권자가 집에서 기권하는 것은 “어느 누가 당선되어도 좋다”는 뜻으로, 선거에서 결정된 뜻에 자신은 모두 동의한다는 뜻이다. 반면 유권자가 투표장에 와서 무효표를 만들어 기권하는 것은 그 의미가 정반대이다. “어느 누가 당선 되어도 싫다”는 뜻이다. 실제로 내가 그랬다. 이 중에서 누구 하나가 뽑힌다고 해도,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 아니라 싫었다.

    새벽 6시부터 낮 12시까지 여섯 시간 동안 참관인으로서 참여하면서 선거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는지 알 수 있었고, 유권자들의 다양한 반응을 볼 수 있었다.

    정치인의 역할은 정치혐오 조장?

    제18대 총선은 전체 투표율 46.1%로 마무리되었다. 연령대별 투표율이 정확하게 집계된 것은 아니지만 그 중에서도 20대 투표율이 현저하게 낮을 것이라고 예상되고 있다. 이렇게 사상 최저 투표율이 나오게 된 원인에 대해서 말들이 많다.

    20대 투표율이 낮은 것은 처음에 언급했듯이 정치 교육의 부재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번 총선은 20대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투표를 하지 않은 사람이 53.9%로 절반 이상이다. 이것은 정치 교육의 부재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지 않은가.

    나는 한국의 정치인들이 의도적으로 정치에 관심을 갖지 못하도록 정치를 해 왔다고 생각한다. 정치에 혐오감까지 갖게 만들려고 하지는 않았을지라도, 적어도 정치에 관심이 집중되지 않도록 했던 것만은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그 중에서도 나는 정치와 떼어 놓을 수 없는 언론에 대한 정책에서 이 의도가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고 본다. 시청료 인상을 막으려고 하고, 특정 방송사를 민영화하려는 움직임 등 언론에 대한 정책을 보면 언론이 기업이나 정치 세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구조로 만들려는 것이 역력하다.

    이렇다 할 정책 토론 한 번 없이 선거는 잘만 치러졌다. 대선에서 이명박이 당선된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는 대선 때 후보 간의 토론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후보가 자신을 일방적으로 홍보하는 것이나 사회자의 질문에 몇 분 동안 대답하는 것은 토론도 아닐뿐더러 선거 기간에 이루어져야 할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분위기는 대통령 후보가 공식적인 토론 자리를 거부해도 용인해주는 분위기이며, 토론을 거부하는 것이 왜 잘못된 것인지에 관심이 없다.

    이번 총선도 마찬가지였다. 후보들은 정책으로 싸울 생각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신이 찍은 당이 어떤 지향점을 가지고 있는지 잘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 이 상황은 아주 심각하다.

    ‘1인 2표제’의 진실

    일단 많은 사람들이 1인 2표제에 대해 인지하고 있지 못해서, 선거참관인을 하는 동안 한 종이에는 후보자를, 한 종이에는 정당을 투표한다는 1인 2표제에 대해 헷갈려하는 유권자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비례대표제를 시행한 지 몇 년이 지났는데도 사람들에겐 익숙하지 않다는 것은 정부의 홍보가 미미했다는 것밖에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홍보도 규칙만 설명할 뿐이지, 왜 비례대표제가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홍보가 잘 됐다, 잘 되지 않았다 하는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현재 시행되고 있는 것이 ‘1인 2표제’가 아니라는 사실일 것이다. ‘1인 2표제’라는 말의 의미는 마치 1인이 온전하게 2표를 행사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전체 국회의원 299명 중에 54명만 비례대표로 앉히는 것이므로 사실은 ‘1인 1과 1/5표제’이지 않은가.

    만약 ‘1인 2표제’라는 의미가 그대로 시행된다면 어떤 한 정당이 10%의 지지율을 얻었을 때 그 정당은 30석을 얻는 것이 맞지만, 현재 시행으로 보면 5석을 얻게 되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다양한 형태 중에서 한국은 다수결주의에 입각한 선거 민주주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초등학교 도덕시간에서부터 선거가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지만, 그것이 피부로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간단했다.

    한국의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 전혀 아니기 때문이었다. 내가 현재 세 번의 선거를 치르면서 느낀 것은 선거가 선거로 끝난다는 점이다. 선거 후에 당선자의 정치 활동에 대해, 요구하거나 지적하거나 증명할 수 있는 통로가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다.

    이번 총선도 다를 것이 없다. TV나 뉴스에서는 당선자들의 명단만 계속 이야기할 뿐 이런 당선 결과가 어떤 의미를 가지며, 이 당선자들이 앞으로 어떤 정치를 펼칠지를 예상하고, 그것이 옳은 방향일 것인가를 증명해보려는 시도는 전혀 하지 않는다.

    내 이름은 민주

    내 이름이 ‘민주(民主)’이고 내 여동생 이름은 ‘하나’이다. ‘하나’는 통일을 바라는 마음에서 지은 이름이다. 아버지 친구분께서 우리 자매의 이름을 듣더니 아버지께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셋째 이름은 ‘마나’로 지어라. 민주 하나 마나!”

    이명박 정부와 그를 뒷받침해줄 많은 수의 국회의원이 함께 이끌어나갈 한국의 향후 4년은 그리 희망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권이 바뀐 지 겨우 4개월이 지났을 뿐인데 벌써부터 대운하 공사가 시작되고, 쇠고기 수입이 타결되었다.

    민주주의 국가라는 한국에서 반민주적인 정책들이 보란 듯이 활개를 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정말로 ‘민주주의 하나 마나’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정치적 회의주의에 빠지면 손해 보는 것은 저들이 아니다. 계속해서 정치에 관심을 갖고, 우리 정치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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