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 큰 사고 치기 전에 '리콜'하자"
        2008년 05월 06일 08:3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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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선동하기 위한 글이다. 이 글에서는 미국산 쇠고기가 정말 위험한지를 분석하지 않는다. 이처럼 많은 정보가 주어졌는데도 아직 검증이 필요하다면, 그 검증은 앞으로 10년이나 20년 후, 광우병으로 인한 사망자가 나올 때에나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그 때는 이미 검증의 의미를 잃는다. 따라서 지금 현시점에서 미국산 쇠고기가 위험한지를 따져 묻는 것은 공정한 일이 아니다. 이만큼의 상황이 밝혀졌다면, 이제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성은 국민들이 증명할 문제가 아니라 정부가 해명해야 할 문제다.

    하지만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하다는 증거는 나올 리 없다. 안전하다고 “생각한다”며 말끝을 흐리는 관료형 발언에 일일이 시시비비를 가릴 때가 아니다. 그 공방에서 논리의 우세를 점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지만, 논거를 다 찾아두고 행동에 나설 만큼 여유 있는 시기가 아니다.

    상황을 쫓아가고 앞질러야 할 시기다. 지금 가지고 있는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근거로 행동의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논리는 행동이 보강한다. 그리고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다.

       

      ▲청계천을 태우는 촛불이 어디까지 번져나갈 수 있을까.(사진=뉴시스)

     

    탄핵은 공동의 언어다

    첫째, 공동의 언어는 ‘탄핵’이다. 지금 끓고 있는 감정들을 하나의 에너지로 모아내려면 공동의 언어가 필요하다. ‘재협상 요구’는 그 언어가 될 수 없다. 그 언어는 상황이 조금이라도 바뀌면 사태는 해결되지 않았는데도 기능을 잃고 만다.

    ‘수입 반대’도 아니다. ‘반대’가 아니라 마음에 진 응어리를 풀어주면서도 상황을 아우를 수 있는 적극적인 말이 필요하다. 자신에게 힘을 복돋우면서 서로가 한 데 섞일 수 있는 말이 필요하다. 그래서 공동의 언어는 탄핵이다.

    둘째, 관건은 ‘독재냐 탄핵이냐’이다. 독재는 시대에 뒤처진 말로 들린다. 그래서 현상황을 담아내기에는 적합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 낡은 말이다. 그만큼 현상황은 낡았다. 독재란 무엇인가. 여러 가지 정의가 있겠지만, 특정 개인이나 집단이 나라를 사유물 다루듯 한다면 그게 독재일 것이다. 내용보다는 형식에서 드러난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이외에도 대운하 건설, 의료보험 민영화, 과거사위원회 폐지. 내용은 다르지만 모두 닮아있지 않은가. 국민의 의사를 묻지 않고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닮았고 반대 여론이 등장하면 묵살한다는 점에서 닮아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은 한 가지 단면일 뿐이다.

    저 항목들이 늘어갈수록 외쳐야 하는 소리도 통일되어 간다. ‘독재 타도’다. 그리고 이상의 문제들은 해결하기 위한 문턱의 높이가 같다. ‘탄핵’이다. 관건이 ‘독재냐 탄핵이냐’라는 점은 탄핵을 외치면 현실로 등장할 것이다.

    리콜은 소비자로서의 권리일 뿐

    셋째, 탄핵을 말하는 데에 심리적 장벽이 높을 필요는 없다. 이명박 정권은 역주행은 기본이고 에어백도 장착되지 않은 채 브레이크도 먹히지 않는다. 이런 차는 바꿔야 한다. 탄핵이라는 말은 부담스럽다. 하지만 탄핵을 요구하기 위해서는 리콜을 요구하는 만큼의 소비자로서의 권리가 필요할 뿐이다.

    미국산 쇠고기를 먹을 것인지 먹지 않을 것인지를 선택하는 일이 소비자의 권리는 아니다. 미국산 쇠고기가 들어오면 그것을 먹는 일은 알게 모르게 선택사항이라기보다 준의무사항이 되어버린다. 진정한 소비자의 권리는 그 전에 발휘해야 한다.

    지금 우리가 이명박 정권을 버리지 않으면, 이명박 정권이 우리 머리 꼭대기에서 우리를 운전할 것이다. 탄핵은 대단한 일이 아니다. 앞으로 일어날 치유할 수 없는 상처에 비하건대 대단하지 않다.

    넷째, 탄핵은 ‘방법’이다.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다. 수세에 몰려있는 것은 이명박 정부가 아리라 우리 쪽이다. 5월 30일이면 18대 국회가 시작된다. 한나라당이 과반의석을 점유한 국회다. 그리고 2/3의 국회의원이 몰표를 행사할 수 있는 국회다. 독재의 요건이 충족되는 셈이다. 법과 제도를 원하는 대로 뜯어고칠 수 있는 시기가 온다.

    물론 우리는 경우에 따라서 반대할 것이고 미디어도 비판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꿈쩍하지 않는 정부가 그 때라고 거만한 태도를 바꿀 리 없다. 그래서 탄핵 요구는 시간을 아껴 쓰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 분노를 얼마나 지속할 수 있을지 우리 자신도 자신할 수 없다.

    우리는 6월이 오기 전에 너무나 많은 사안에 반대해야 한다. 하지만 목소리가 나뉘는 만큼 각각 세부사항에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동력은 떨어진다. 그래서 탄핵 요구는 방법이다. 여러 사안들을 한꺼번에 끌어안을 수 있는 방법이다.

    탄핵, 실패를 기록하고 기억하는 뜻

    다섯째, 탄핵은 ‘효과’다. 지금의 정치적인 환경 속에서 탄핵이 이루어지리라는 기대를 갖기는 힘들다. 시간은 너무 짧고 밟아야 할 절차는 복잡하다. 그래서 탄핵은 요원하게 느껴지고 탄핵을 요구하자니 현실의 사정을 감안하건대 맥이 풀린다.

    하지만 탄핵은 결과가 아니라 효과로서라도 요구해야 한다. 탄핵은 지금 얽혀 있는 여러 사안들이 응결되어 있는 한 점이다. 그것을 말하지 못한다면 어떤 사안이건 그것을 막아내기 위한 힘이 비축되지 않는다. 소고기 안정성 공방도 탄핵 요구의 국면으로 넘어가야 비로소 힘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탄핵 요구가 실패하더라도 6월이 오기 전에 거대하게 일어나 실패하여 그것을 하나의 ‘상징’으로 만들어야 한다. 누가 어떻게 실패시켰는지를 기억하고, 앞으로 그들이 보여줄 망동을 제어하기 위한 ‘상징’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두고두고 써먹어야 한다.

    그래서 탄핵은 결과가 아니라 효과로서도 필요하다. 현상황에서 ‘탄핵 요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요건의 최대치이자 최소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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