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력 갖춘 21세기형 혁명가로"
    지도부 신속한 결단이 필요할 때
        2008년 05월 05일 09:3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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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지방선거로 시작된 정치 순환의 한 과정이 2007년 대선과 18대 총선을 경과하면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구보수인지 신보수인지 논란이 있긴 하지만, 시장지상주의로 무장한 보수세력의 국가권력 장악 프로젝트가 지방권력과 행정권력과 의회권력의 일치를 통해 완성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름다운 패배’로 총선을 마무리한 진보신당 안팎에서 선거 평가와 재창당(제2창당)을 둘러싼 이러저런 이야기들이 흘러나온다. 강조점에 따라 미묘한 온도 차이도 느껴진다.

    한편에서는 진보에 대한 대중적 냉소주의가 위세를 떨치고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진보의 혁신적 재구성을 통해 위기의 돌파구와 희망의 거처를 찾고 있는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한국의 한 대표적 보수논객의 말처럼, “구조적으로 한국에서 좌파적 진보는 이제는 마지막”인가?

    위기의 민주주의, 희망 부재‧신뢰 상실의 정치라는 말로 집약되는 오늘의 시대 상황은 민주주의와 정치의 제 자리를 찾기 위해 진보의 깊은 사색과 운동의 새로운 모색을 요구하고 있다.

    ‘두 개의 4월’ : 역사에서 배우기

    2000년 4월 13일 16대 총선. 1월 말 창당 뒤 몇 달만에 맞이한 민주노동당의 2000년 4월은 기억하기도 싫은 가슴쓰린 시간이었다. 물론 그 한 복판에는 그토록 갈망했던 1석의 의석, 그것을 스스로 잃어버린 울산 북구의 참혹함이 있었다.

    며칠 뒤인 4월 18일 선관위에 의해 민주노동당은 정당 등록이 취소되었다. 선거 패배에 대한 책임을 지고 당 지도부 총사퇴 의견이 제기되고 있었고, 울산이 과연 진보정치의 희망인가 질곡인가를 묻기도 하였다.

    무기력과 실망감과 패배주의가 일반 당원들과 지지자들 사이에, 그리고 지역과 중앙의 주요 당 활동가들에게조차도 팽배했다. 갈등과 분란이 장기화될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힘든 상황에서,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1박2일 날새기 토론을 통해 ‘지도부 사퇴 없는 당의 유지 및 강화와 혁신’의 입장을 신속하게, 욕 얻어먹을 각오를 하고 채택했다.

    곧바로 당 조직 정비 작업이 시작되었다. 이와 함께 4․13총선 평가와 향후 당의 진로에 관한 의견 수렴을 위해 지역순회 간담회와 부문 간담회를 진행하였다.

    4월 28일 민주노동당 제4차 중앙위원회는 ‘당의 외연 확대를 통한 재창당’ 기조를 확인하였다. 5월 20일 임시 당대회가 성원 미달로 무산된 뒤 6월 11일 임시 당대회를 통해 대의원들의 결의로 당의 유지, 강화를 어렵사리 확정짓게 되었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해를 넘겨 2001년 2월 24일 1차 정기 당대회에서 ‘진보진영의 총화와 외연 확대를 통한 재창당’ 기조 및 이를 적극 추진하기 위한 ‘재창당추진위원회’ 설치를 결의해내게 되었다―이 과정에서 진행된 주사파의 집단적 입당 러시에 대해서는 여기서는 논외로 한다.

    내부 정비와 재창당을 향한 지도부의 결단

    8년 전의 경험으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가? 정치는 타이밍의 예술이라고 할 때, 지금/여기서 지도부의 신속한 결단이 무엇보다 요구된다는 것, 즉 당 조직 내부의 정비와 강화, 그것과 병행해서 진행되는 재창당 선언과 행동 돌입이 바로 그것이다.

    물론 2008년 4월 진보신당이 맞이하고 있는 시간과 2000년 4월 민주노동당 시절의 가슴 쓰린 시간들과는 그 결을 달리 한다. 아름다운 패배와 감동의 현실 앞에서 막중한 책임과 역사의 무거운 짐을 짊어진 진보신당 지도부는 고뇌의 시간들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보금자리를 떠나온 아니 버림받은 사람들이기에, 8년 전에 비해 심적 부담도 크고 또 면밀하게 검토하고 고려해야 할 것도 많아진 것이 사실이다. 이전과는 달리 민주노총의 조직적 결의나 지원도 없고, ‘진보의 대중적 선택지’도 다양해졌다는 것이 힘든 조건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지도부의 ‘신중한 모색과 결정의 지체로 인한, 의도하지 않은 결과적 책임 회피’가 용인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진보신당에게 열려 있는 새로운 가능성의 공간은 어떤 면에서 지난 시기보다 더 우호적이다. 우선 정부여당의 악수가 계속되면서, 이번 광우병 사태에서 알 수 있듯이 기대-실망-분노의 악순환 현상이 벌써부터 나타나고 있다. 그 아류의 정당들이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통합민주당이 가난한 다수의 보통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줄 만한 새로운 가치나 비전을 생산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한 사람의 힘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창조한국당이 정당의 꼴을 갖출 수 있을지에 대해 여전히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민주노동당이 그 족쇄로서 두 개의 성역(북한 문제와 민주노총 문제)을 깨고 또 내부의 패권주의적 관행을 버리면서 환골탈태하기란 말처럼 쉽지 않을 것이다.

    선거 패배 뒤 진보신당은 무기력과 패배주의가 아니라 오히려 잔잔한 감동과 열정의 여운들을 남기고 있다. ‘모든 패배는 고통스럽다, 그러나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지금 진보신당 한켠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부산에서 출항한 까발리아 호의 힘찬 페달에서, 평당원이 제안하고 기획해서 추진된 ‘명랑진보의 봄나들이’에서, 스스로 조직하고 발언하고 있는 초록의 움직임에서, 지역의 다양한 새로운 실천 모색에서, 그리고 이른바 ‘지못미’ 현상의 소리 없는 확산을 통해 표상되고 있다.

       
      ▲까발리야 호 순례 중인 진보신당 부산지역 당원들과 순례길 주민들과의 만남.(사진=순례단)
     

    그 결과 2004년 이후 민주노동당의 지난 4년의 활동과는 달리, 함께 나누고 소통하는 과정이 정말로 즐겁고 보람된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울려나오고 있다. 또 축적된 정당활동의 경험을 지닌 많은 활동가들과 함께, 노회찬과 심상정이라는 대중적 명망성을 확보한 상징적 정치 인물이 존재한다는 것도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의 소중한 자산이다.

    연속 2단계 창당으로서 재창당을 준비하는 지금 진보신당에게 필요한 것은 이러한 열정을 담아내기 위한 그릇을 제대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도공이 질 좋은 도자기를 구워내는 데는 여러 조건이 구비되어야 함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도공의 의지와 능력이 그것을 만들어내는 첫 출발임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진보신당의 지도부는 재창당의 행동 프로그램과 시간표를 제시해야 할 책임이 있다. 책임을 지는 모습에서, 대중들과 소통하는 속에서, 사회정의를 향한 권력의지와 21세기형 진보의 새로운 비전을 지닌 대안의 리더십은 그 꼴을 갖춰나가게 될 것이다.

    우려스런 것은 재창당의 출발이 지지부진하면 할수록 자발적 열정은 찰나적인 것으로 점점 더 축소될 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열정만으로 살 수는 없다. 일상의 생활로 돌아간 뒤 지금의 열정이 그대로 지속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그랬을 때 필요한 것은 목표에 대한 완전한 합의를 이룬 다음 그 고지에 도착하는 순간이 재창당이 아니라, 하나하나 벽돌을 쌓는 과정 자체가 바로 재창당이라는 발상의 전환이 아닐까 싶다.

    재창당을 둘러싼 몇 가지 쟁점에 대하여

    진보의 혁신적 재구성과 함께 하는 재창당, 제2창당의 길, 관건은 그 방향과 경로와 내용을 제대로 설정하며 힘을 결집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좋은 사회,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변화하는 현실을 어떻게 보고 무엇을 말할 것인가? 누가 누구와 함께 어떻게 갈 것인가?

    재창당을 둘러싸고 거론되는 몇 가지 쟁점들에 대해 어떤 방향이 좀 더 나은지 개인적인 단상과 의견을 말하면서 함께 고민을 나누고자 한다. 한 논자의 말처럼 재창당 문제를 둘러싼 우리의 “논쟁과 토론이 이기고 지는 싸움이 아니라, 함께 하는 상대방을 새로운 영역으로 안내하는 즐거운 축제와 같은 것”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원외정당은 사회운동단체에 가깝다?

    우선, ‘원외정당은 정치적 시민단체, 사회운동단체에 가깝다’는 지적과 관련된 것이다. 현대 민주정치는 정당정치이고 의회를 중심으로 정치활동을 한다는 원론으로 본다면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럼에도 한 가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원내 의석이란 것이 정당 활동의 필요조건이자 가속변수이기는 하지만 충분조건까지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2004년 원내 진출 이후 민주노동당의 경험은 기성의 정당 활동을 대체하는 새로운 모형 창출과 ‘거대한 소수’ 전략이 실패했음을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기왕에 새로운 길을 떠난 마당에 정당 활동에 대한 관성과 타성에서 벗어나 민심의 흐름과 대중의 욕망, 변화하는 현실의 꿈틀거리는 결을 읽고 해석하면서 새롭고도 풍부한 실험을 하는 것이 소중하다.

    예컨대 재창당 후 새 진보당은 정치의 운동적 확장과 운동의 정치적 확산을 동시에 추구하는, 이른바 ‘사회운동정당’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요구된다.

    즉 사회운동정당으로서 새진보당이 꿈꾸는 것은 사회적 힘 관계나 운동의 단순한 전동벨트로서의 정당이 아니라 의제의 기획과 창출을 통해 계급투쟁을 비롯한 사회적 투쟁을 새롭게 조직화하면서 ‘운동을 만들어내는 정당’을 의미한다. 또 적절한 긴장과 균형의 유지 속에서 운동정치와 의회정치간의 쌍방향 소통의 정치를 이루어내는 것을 의미한다.

    그 과정에서 노동자와 가난한 보통사람들의 정치적, 사회적 주체 형성을 촉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새삼 강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원내 진출 이후 지난 4년의 민주노동당 경험이 잘 말해주고 있는 것처럼, 문제는 이러한 활동이 의회 외부의 생활 진지들을 구축함 없이는, 그리고 두 활동과의 지속적인 연계와 소통 없이는 이루어낼 수 없다는 사실이다.

    새롭게 경험할 원외정당의 활동이 무척 힘들기는 하겠지만, 결국 새 진보당이 진보의 이름으로 추구해야 할 새로운 대안 정당의 상은 단순히 원내 활동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에 대한 더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함께 나누고 소통하고 실험하면서, 새로운 깨달음 속에 함께 길을 걷다가 보면 그 힘듦의 시간도 어느 정도는 보람의 시간이 될 수 있으리라고 본다.

    재창당은 다양한 세력을 규합해서 나가는 외연의 확장?

    다음으로, 재창당은 다양한 세력을 규합해서 나가는 외연의 확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역시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전한 정답은 아니라고 본다. 진보의 재구성의 핵심이 주체의 재구성이라고 할 때, 문제는 ‘누구와 함께 할 것인가’라는, 즉 외연 확장의 경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에 대해 단순한 선언이 아니라 깊은 사색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통상 우리는 외연의 확장을 기성의 조직 단위로 환원해서 사고하는 경향에 익숙해져 있지 않나 싶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당, 노동자의 힘, 해방연대, 사회주의노동자연합 등 진보를 표방해온 기성 정치조직들과의 당적 통합을 재창당을 관통하는 핵심 사업으로 설정하는 관성이 존재한다.

    그것은 어떤 면에서 위험을 회피하는 쉽고도 안정적인 길일 수 있다. 그러나 지금 필요한 것은 안정적인 위험 회피가 아니라 오히려 도발적이고 모험적인 위험 감수 전략이 아닐까 싶다.

    좀 더 긴 호흡으로 볼 때, 이와 같은 익숙한 관행으로는 지난 시기 민주노동당 활동의 근본 문제, 즉 당 활동이 사회에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는 것, 일상의 생활과는 거리를 두고 진행되었다는 것을 넘어서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것은 거칠게 말하면 대중에게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하는 정당이 아니라 운동‘권’ 동창회나 친목단체로 전락하는 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노동자 중심의 정당 건설과 진보의 다원주의

    이와 관련해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진보의 다원주의에 기초한 진보의 재구성과 재창당 과정이 노동자 중심의 정당 건설이라는 기본 노선, 즉 노동자를 정치의 중심으로 세워내고 노동자들이 더 많은 것을 표현하도록 만들어내야 하는 기조를 해쳐서는 안 된다는 견해이다.

    새 진보당이 노동의 이해와 열정에 기초해야 한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의 영역은 누가 뭐라고 해도 핵심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두 가지 문제가 남는다. 하나는 노동의 이해와 열정에 기초한다는 것과, 생태와 평화와 연대 등 새롭게 구성하려 하는 진보의 가치들 간의 관계가 선후의 문제나 수직적인 위계의 문제로 다루어져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진보의 다원주의, 즉 중심은 있되 수평적인 관계맺음을 통한 화학적 결합이야말로 앞으로 새 진보당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하나의 문제는 지금/여기서 노동으로 호명되는 사람들이 구체적으로 과연 누구일까 하는 점이다.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 민주노총 특정 정파에 속한 사람들?

    진보신당이 재창당 과정에서 조직하고 대표해야 할 노동의 이해와 열정, 그것은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에 속한 10%의 조직노동자, 또는 정파에 속해 있거나 정파가 직접적으로 대표해 온 일부 노동자들의 이해와 열정을 넘어선다. 오히려 그동안 조직이나 정파가 대표하지 못해 온 소외된 다수의 노동자들,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비롯한 90%의 미조직 노동자들의 이해와 열정이 핵심이다.

    노동계급 내부의 다양한 이해 갈등과 긴장과 충돌은 회피하거나 무시한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계급투쟁은 계급간 투쟁이기에 앞서 계급 내부의 투쟁”이라는 말에 대한 진지한 사색 속에서, 자본과 정권에 대한 공격의 화살 일부는 노동진영, 진보진영 내부로 돌려져야 한다.

    스스로에게 책임을 묻지 않은 채 비판의 상대를 외부에서만 찾는 것, 그것은 책임을 회피하는 구실이자 내부의 무임승차자만을 양산하는 것이며, 스스로 사회적 고립을 자초하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진보신당과 재창당을 바라보는 노동대중들, 특히 현재의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다수가 미래의 비정규직 노동자일 수밖에 없는 이른바 88만원세대는 일종의 ‘확신의 딜레마’에 빠져 있다. 민주노동당이 아닌 건 알겠는데, 그렇다고 진보신당이 오늘의 고단한 삶을 넘어서서 미래의 희망을 줄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인 것이다.

    계급적 대중정당, 사회주의 정당이라는 간판만으로는, 노동자계급은 하나이며 단결만이 살 길이라고 외치는 것만으로는 이들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일 수는 없다. 그것이 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은 현실에 눈 감은 채 자기만의 폐쇄회로에 갇힌 지식인의 관념에 다름 아니다.

    주체의 재구성, 진보정치의 재구성을 향한 새로운 접근은, 생산활동과 생활이 만나는 시공간으로서의 지역사회에 뿌리를 내린다는 시각을 통해 비로소 가능하리라고 본다. 노동의 영역 역시 마찬가지이며 오히려 훨씬 더 깊고 넓게 나아가야 한다.

    이념과 가치와 노선의 재구성이란 것이 주체의 재구성과 지역 활동의 재구성과 결합되어서 고민되지 않으면 또 다시 쉽게 허물어지는 모래 위 성쌓기가 되기 때문이다. 기존의 특정 정파를 같은 편으로 끌어들여 세를 불리고 그것을 통해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꾀하는 우회적 접근보다는, 평범한 다수의 보통 노동자들과 직접적으로 소통하면서 새로운 진보정치의 확신과 희망을 함께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면에서 이 경로는 자정능력을 상실 또는 포기해 온 민주노총에 대해 외부적 충격을 통한 혁신과 거듭나기를 요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지금의 민주노총은 과연 누구를 대표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그리고 소외된 다수의 노동자들에게 물어야 한다.

    죽음을 각오하는 마음으로 그 물음과 사색 속에 깨달음을 얻을 때, 민주노총은 다시 부활할 수 있고 전체 운동의 생기를 되살릴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그 꽃을 피우지도 못한 채 중단된 사회국가론과 사회연대전략을 둘러싼 토론과 논쟁은 새로운 출발을 위한 하나의 실마리가 될 수 있으리라 본다.

    재창당은 완전 백지상태에서 새롭게 시작?

    한편 ‘진보신당이 해체될 필요는 없지만 재창당은 완전 백지상태에서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3월 16일의 창당은 총선대책기구이며 총선 후 정당은 새롭게 시작되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와 관련해 민주화 이후 20년, 진보정치 10년에 대한 ‘선 평가, 후 재창당’의 경로가 제시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틀린 말은 아니더라도 해답이 될 수는 없다. 두 사안은 선후의 문제가 아니라, 재창당의 일정 속에서 지난 활동에 대한 평가가 진행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진보의 재구성을 둘러싼 여러 갈래의 무성한 논의가 이전에 경험한 것처럼 소모적인 과정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그 힘들을 모아내고 묶어내는 역할을 자임할 수밖에 없다. 신뢰가 쌓이지 않은 불편한 상태에서 책임져야 할 몫이 똑같다면, 그것은 말만 무성하게 될 뿐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결과를 낳게 될 가능성이 크다.

    남는 것은 실패에 대한 쓸데없는 책임 공방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진보신당이 재창당의 주역을 맡을 수밖에 없으며, 그것은 기득권 유지나 강화의 문제가 아니라 사태를 진전시키기 위한 정치적 책임 차원의 문제인 것이다.

    칙칙한 운동‘권’ 엄숙주의에서 함께 호흡하는 대안 정치의 문화로

    한 가지 더 덧붙일 것은 진보신당의 재창당 과정이 칙칙한 엄숙주의, 자기들끼리만의 폐쇄적 집단주의, 문화적 보수주의, 기계적 근본주의와 나만이 옳다는 오만함 등으로 상징되는 운동‘권’ 문화와 활동방식으로부터 벗어나서 현실 속 대중들과 함께 호흡하는 새로운 운동의 문화, 대안 정치의 문화와 활동을 창조하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이 과정은 익숙한 낡은 것을 파괴하는 것과 동시 병행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아름다운 패배 직후부터 진보신당은 그 희망의 싹을 지금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조금씩 보여주고 있다고 할 것이다.

    새 진보당은 ‘선거용 정당’이 아니라 ‘선거정당’

    다시 민주노동당의 2000년대 초반의 경험으로 되돌아가보자. 눈여겨 볼 것은 민주노동당이 앞서 말한 조직 정비와 재창당 과정에서 모여진 힘들을 선거로 이어갔다는 점이다.

    즉 재창당의 과정은 당에 대한 인지도와 호감도를 높이고 그것이 지지도로 연결되면서, 결국 선거에서의 득표 결과를 통해 정치적 존재감과 영향력을 대중들로부터 확인받는 것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을 소중한 교훈으로 얻을 수 있다.

    현대 민주정치가 대의제 민주주의라는 작동 원리를 거부할 수 없다면, 그것의 핵심 요소가 정당정치와 선거정치라는 것을 회피하거나 부정할 수는 없다.

    이런 점에서 새진보당은 ‘선거용 정당’이 아니라 ‘선거정당’일 수밖에 없으며, 선거를 통한 대중적 인정투쟁과 영향력의 확산을 깊게 고민할 수밖에 없다. 이른바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시대, 우리가 선거의 위력을 뼈저리게 느껴왔음을 과연 부정할 수 있겠는가.

    이 지점에서 사민주의냐 사회주의냐, 개량이냐 변혁이냐가 논쟁의 핵심이 되는 것은 적절치 않다. 혁명으로 가자는 요구가 대중에게 공허하게 들리면서 반향 없는 메아리에 불과하게 되고, 또 선거를 민주정치의 핵심적인 제도적 장치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다수를 점할 때, 선거는 결코 회피하거나 우회할 수 없는 불가피한 선택을 넘어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성과를 내야 할 어떤 것이기 때문이다.

    2002년 6월 13일과 2010년에 다가올 그날

    재창당 이후 민주노동당은 2002년 6‧13지방선거를 통해 거듭날 수 있었다. 즉 민주노동당의 경험을 반추해볼 때, 2002년 6․13 지방선거의 성과야말로 2002년 16대 대선에서 ‘진보정치 100만표 시대’의 개막과 함께, ‘2004년 4월 15일의 기적’을 가져온 탄탄한 밑거름이었다.

    특히 지방선거의 성공으로 인해 진보정치의 실현을 꿈꿔온 사람들은 ‘노력하면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함께 꾸는 꿈은 언젠가는 현실이 된다’는 희망을 되찾게 되었던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창당 2년만에 6․13 지방선거에서 218명의 후보가 출마하여 기초단체장 2명, 광역의원 11명, 기초의원 32명 등 총45명이 당선(당선율 20.6%)되는 성과를 거두었다. 또한 당락과 관계없이 출마지역에서 광역단체장 12.80%, 기초단체장 15.35%, 광역의원 19.92%, 기초의원 30.68% 등 10% 이상의 의미 있는 득표율을 얻기도 했다.

    특히 사상 처음 실시된 정당명부 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은 전국득표율 8.13%, 1,340,376표를 득표하였으며 16개 광역시도 가운데 9곳에서 광역비례대표 의원을 당선시키는 약진을 이루어냈다. 더군다나 정당투표에서는 전국적으로 고른 득표로 자민련(1,072,429표, 득표율 6.5%)을 앞섬으로써 비록 지방선거 수준이긴 하지만 ‘제3당’으로 부상하였다.

    나아가 광주(14.79%), 울산(28.70%), 전남(14.99%), 전북(12.77%) 등 일부 지역에서는 2위를 기록하였으며, 또 제주지역에서는 10.60%, 강원지역에서는 8.64%의 정당 득표율을 획득함으로써 전국정당으로 뿌리내릴 기반을 확인하기도 했다.

       
      ▲민주노동당의 2006년 5.31 지방선거 대책위 출범식. 
     

    이러한 성과는 기성의 보수정치, 부패정치, 무책임정치에 대한 증폭된 대중적 불신과 실망감, 정당투표제의 실시에 따른 제도적 효과의 결과였다. 그러나 득표 결과라는 것이 ‘긴 과정의 마지막 기념행사’라고 할 때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은, 그것이 무엇보다도 지속적인 정당적 실천의 결과물이었다는 사실이다.

    활동가와 당원들의 헌신적인 실천, 창당 2년만에 다소 무리하게 강행한 218명의 출마와 그에서 비롯된 당의 인지도와 지지도의 상승, 서울과 울산이라는 전략적 지역에서의 적극적인 후보전술을 통해 당에 대한 대중적 이미지의 제고 등이 그것이다.

    4년은 길다. 그러나 2년은 견딜 만하다

    그렇다면 새진보당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재창당의 과정이 2010년 지방선거를 준비하는 분위기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

    2년의 ‘긴 과정’을 미리미리 준비하는 자세로 지방선거에 출마할 인물들을 발견‧발굴하는 것, 지역 차원에 걸맞는 비전과 정책을 생산하는 것, 삶의 현장인 지역을 통해 다수의 보통사람들과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관계맺는 것이 그것이다.

    새진보당의 활로와 관련해 2010년의 성패는 그 자체로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이 2012년 총선과 대선의 결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 역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당원들과 지지자들로부터 올라오는 자발적인 열기를 놓고 본다면, 2000년보다도 지금 2008년의 분위기가 훨씬 더 좋다. 다시 강조하지만 무엇보다도 지도부의 신속한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로부터의 칭찬이나 동의에 기초하여 떠날 수 없는 길이 자명하다.

    욕 먹을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재창당 논의와 실천의 중심에 진보신당의 깃발이 있다는 것을 공표하는 것, 그리고 지역과 부문과 자발적인 개별개별의 흐름들과 다양한 논의 테이블을 만들어 의견을 수렴하는 것, 수렴된 의견들을 구체적인 프로그램과 행동으로 이어내는 것, 그것이야말로 오히려 새롭게 거듭나는 재창당에 책임지는 자세이며 그 시간은 짧으면 짧을수록 좋다고 본다. 아무리 좋은 일이더라도 지루한 시간의 지속은 사람들을 쉽게 지치게 만들기 때문이다.

    새진보당은 대안적 헤게모니 프로젝트의 설계자가 되어야

    재창당과 제2창당의 이름으로 비록 시작은 ‘초라하지만 희망찬’ 대장정의 길을 떠나게 될 새진보당은 민주노동당의 실패한 바로 그 지점에서 새롭게 깃발을 올려야 한다.

    왜 민주노동당을 떠났는지, 아니 왜 오랫동안 가꿔온 보금자리로부터 버림받았는지를, 그리고 낡은 것을 깨고 새로운 것을 일궈 낼 새진보당이 민주노동당과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를 솔직하게, 설득력 있게 알려야 한다.

    그 과정은 새진보당이 ‘진보의 재구성’이라는 추상화된 언어를 현실의 대중적 언어로 만들어내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것은 변화해온 세상에 대해 통찰력과 권위를 겸비한 해석자이자 대안적 헤게모니 프로젝트의 설계자로서, 새로운 가치와 비전과 희망을 사회에 뿌리내리게 하는 ‘21세기형 혁명가’로서의 역할을 새진보당이 수행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 첫 출발은 새로움에 대한 진지한 사색과 성찰과 함께, 타인을 바꾸기에 앞서 운동‘권’의 낡은 관성과 타성에 젖은 나와 우리를 먼저 바꾸는 데서 시작되어야 한다. 두 개의 성역을 깨고 그것에 기초한 자기배반적인 정파의 대결구도를 해체하는 것, 그것은 새 출발의 걸림돌이 아니라 디딤돌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운동‘권’만의 닫힌 폐쇄회로 속의 재창당 논의를 극복하고, 현재의 삶과 미래의 꿈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을 메울 수 있는 대안 리더십의 창출에서 시작되어, 대중의 구체적인 삶과 함께 하는 가운데 진보에 대한 대중적 냉소주의의 벽을 허물고 잃어버린 대중적 신뢰를 회복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사회에 뿌리 내리는 주체의 새로운 재구성을 이루기 위해서는, 진보정치의 새로운 진원지로 자리매김한 경기도 덕양과 서울의 노원, 작은 이벤트로 웃음을 계속 선사하고 있는 부산의 몇몇 지역들, 노동밀집형 도시인 울산과 거제 등에서 ‘지역’ 밀착형 정치의 크고 작은 새로운 전형을 만들어내는 것이 특히 중요하다.

    그 실험이 성과를 이루고 성공할 수 있다면, 그 경험과 실천은 ‘희망의 바람개비’가 되어 쉽게 전국 각지에 ‘따로 또 같은’ 진보정치의 뿌리를 내리게 될 것이다.

    이처럼 사회에 뿌리내린 운동의 역동성을 되살려내면서 ‘미덕과 실력을 갖춘 21세기형 혁명가’로 새 진보당이 새롭게 거듭날 때, 비로소 ‘더 나은 세상, 또 다른 세계’를 향한 주체로 대중들 스스로 나설 수 있게 될 것이다.

    1980년대 한 때를 풍미했던 독일의 혁명가 리프크네히트의 경구, ‘학습하라, 선전하라, 조직하라’를 지금 시대에 맞게 손을 본다면 이런 말이 되지 않을까 싶다. ‘사색과 성찰 속에서 배우고 고쳐라, 계몽과 선전에 앞서 열어놓고 소통하라, 금단의 성역을 깨고 삶의 현장에서 수평적으로 연대하라’. 그리고 그것을 ‘책임지고 실천하라’.

    내일로 다가온 진보신당 확대운영위원회에서 자유로운 소통을 통해 소중한 결실이 있기를, 그리하여 재창당의 한 매듭이 풀어지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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