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집 같이 살 수 있는 큰집 새로 짓자"
        2008년 05월 01일 06:5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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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일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창립 13주년을 맞아 여의도 국민일보 빌딩에서 ‘노동자 정치세력화 버릴 것과 살릴 것’이라는 주제로 개최한 토론회에는 양대 노총과 진보 양당 관계자 그리고 시민단체와 학계가 총선 이후 처음으로 한 자리에 모여 토론 내용에 관심을 모았으나, 뜨거운 공방은 없었다.  

    진보정치 위기 봉착 모두 동의

    이날 토론회 참석자들은 그 동안의 진보정치 활동을 평가하며 ‘진보정치’가 위기에 봉착했다는데 의견을 같이 하고 불씨를 살리기 위한 다양한 의견이 개진됐다.

    그러나 노동자 정체세력화를 위해 쟁점이 됐던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방침이나, 두 진보정당의 재결합 가능성 등의 현안에 대한 발언이 단편적으로 나오긴 했으나, 구체적인 토론이난 논쟁으로 진전되지는 않았다.

       
      ▲사진=김은성 기자
     

    주제 발표에 나선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선거 논리와 운동 논리에 대한 차이를 인식하고 노조 활동 시 시민들의 반응을 고려한 ‘전략적 행위’가 필요하다"면서 "공장과 기업별 체제를 넘어 지역사회 의제를 활성화시키고 ‘사회문제 해결’을 주도하는 노조 조직의 개혁 및 노조원 교육 강화 등을 통한 진보 이미지의 혁신"을 주문했다.

    그는 "노조와 당이 깊이 연계돼 있을 경우, 노조의 잘못이 당의 지지도 하락으로 곧바로 나타나 노조와 당의 고립으로 이어질 수 도 있다"면서 "장기적으로 봤을 때 현재의 노동조합에게만 의존하는 전략으로는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성공하기 힘들다"고 밝혔다.

    노조 의존 정치세력화 성공 힘들어

    박상훈 도서출판 후마니타스 대표는 정치 현실과 유리된 채 진보세력이 과도하게 도덕성과 당내 민주주의에 대한 규범을 강조해왔으며, 평가받고 책임질 줄 아는 강력한 리더십 부재가 정파의 폐해 및 진보정치의 위기를 불러왔다고 진단했다.

    그는 "강력한 정치적 지도력을 발휘해 분열을 극복하고 기존 정당들에 대해 불만과 비판을 갖고 있는 유권자들에게 대안을 공급할 능력을 갖춰야한다"면서 "민생, 비정규직, 88만원 세대 등 웬만한 이슈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보수양당의 영향력을 벗어나 새로운 제3당의 대중적 입지로 진보정당이 밀고 들어갈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고 경고했다.

    이어 진행된 지정토론에서 이영희 민주노총 정치위원장은 신광영 교수가 노조와 당의 관계에 대한 우려와 관련해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은 친구나 부부 관계인데, 친구나 배우자가 잘못한다고 해서 같이 안 할 수 없다"면서 "둘 중 하나만 잘해도 곱배기인데, 그러한 면을 보고 이해했으면 좋겠다"고 반박했다.

    이 위원장은 또 미리 배포된 토론 자료를 통해 한국노총이 현 노동운동을 구식 이데올로기에 매몰된 전투적 운동으로 변질됐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 "아직도 단체협약을 하려면 분신을 해야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전투가 아니라 더한 것이라도 해야 된다"며,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노동자 이익을 대변한다는 한국노총의 주장을 비판했다. 

    그는 또 토론회 자료집에서 전재환 진보신당 인천시당 공동대표가 배타적 지지방침을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 "아직 제대로 시작도 안 했는데, 이 방침의 한계를 얘기하는 건 성급하다"면서 "배타적 지지 방침은 10년간의 성과로 여전히 지켜야할 원칙"이라고 주장했다.

    배타적 지지 "철회" 대 "고수"

    양정주 한국노총 대외협력본부장은 "정치세력화의 가장 좋은 방법은 독자정당을 건설하는 것이지만, 한국노총은 독자정당이 없고 현실적으로 독자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희박한 상황에서 차선책으로 노동자 이익을 대변할 후보를 선택해 조합원 총투표로 정책연대를 정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노총의 정책연대 사업에 대한 다양한 평가와 비판이 존재하지만, 소중한 경험을 바탕으로 2012년 정책연대사업의 도약을 거쳐 2017년 영구 정책연대로 나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수호 민주노동당 혁신-재창당준비위원장은 "민주노동당이 너무 많은 잘못을 저질렀지만, 그렇다고 해서 중요한 시기에 당을 박차고 나갔어야 했는지, 이번 총선 패배의 주요한 원인으로 분열이 갖는 의미와 이로 인해 진보진영에 우호적이었던 분들이 투표를 포기했던 점에 대한 분석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앞서 지적한 박 대표의 과도한 당내 민주주의에 대해 “너무 완벽하고 엄청난 당내 민주주의적 절차로 인해 가끔 본말이 전도된 것이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며 공감을 표하고 "이같은 부분에 대해 어떻게 답하고 진보정치의 희망을 버리지 않기 위한 진지한 정답을 써가겠다"고 말했다.

    전재환 진보신당 인천시당 공동대표는 "민주노동당은 다양한 진보적 이념과 노선을 묶어내지 못하는 등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실패했다"면서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방침은 민주노총 내 조직 내부까지도 분열시킬 수 있는 위험성이 다분해 현실적 상황에서 유지하는 것이 것이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는 "신자유주의로 인해 절망하는 노동자 민중들에게 파고들어갈 지점이 있어 결코 진보정치가 절망적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면서 "비정규직 등 조직화되지 않은 노동자들을 흡수하고 이들의 정치세력화를 고민해 당원들과 조합원들을 정치적 주체로 내세워 노조 활동과 당 활동이 일상적으로 서로 녹아나게 만들어야한다"고 말했다.

       
     
     

    참여연대 김민영 사무처장은 "그간의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한 구체적인 노력이나 과정을 잘 알지 못해 평가를 하는 것은 적절치 않은 것으로 보이나, 급변하고 있는 사회를 따라가지 못하고 노동자 정치 세력화가 제조 생산 노동자에게만 몰입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면서 "지금 현재 진보정치의 자양분이 어디에 있는지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자정치세력화 생산직 노동자에게 몰입

    그는 "분당 과정에서 원내 진입 후 4년간의 반성, 대선 실패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 게 가장 뼈아픈 지점"이라며 "향후 이 과업을 선점해 힘을 얻는 쪽이 진보세력의 중심이자 주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향후 진보 운동 전반에 리더십을 형성하기 위해 각자 책임을 져야 하고, 또 아무리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다고 해도 국정 경험이 있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 세력을 진보의 자산으로 끌고 올것인지 현실적으로 고민해야 할 지점이 있다"면서 "혁신된 진보정치세력, 사회운동세력, 전문가그룹, 생활기반의 풀뿌리 조직 등을 기반으로 정책적 네트워크를 구축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조희연 교수는 오히려 신자유주의 정권에 맞서 진보정치가 성장할 기회라며, 진보정당의 분화가 두 진보세력 내 ‘현실변화’를 내부화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진보정당과 노동조합 운동의 동맹관계는 유지돼야 하고, 현 배타적 지지와 부문 할당제 구도를 유지하는 바탕 위에 선택적 진보정당 지지에 따른 진보적 개방투표 같은 형태로 문제를 보완해가자"며 “뉴타운 개발 등의 이익에 따라 투표하는 서민들의 욕망을 어떻게 진보정치의 욕망으로 전환할 수 있는지가 향후 과제”라고 말했다.

    지정 토론이 끝나자 객석에서도 다양한 제언이 이어졌다. 민주노동당 과천시 비대위원장은 “현 단계에서는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아니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어떤 대안이 있겠는가? 조합 간부들 및 당원들이 정치적으로 무장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자”고 했으며,전교조 이병우 정치위원장은 “시민권 확보 차원에서 교원 공무원의 정치적 자유 문제를 큰 의제로 삼아달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두 집 같이 살 수 있는 더 큰 새집 지어야

    또 민주노동당 이해삼 전 최고위원은 “조직의 민주주의 원칙을 훼손하면서 일을 행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며 “노동자의 정치 세력화를 위해서는 지식인 먹물들의 독선적이고 분열적인 이중적 태도를 버리고 배타적 지지 방침과 진보대연합등의 실천을 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영희 민주노총 정치위원장은 “민중, 조합원을 주인으로 섬기는 당내 제도적 정치가 없으면 오늘 토론도 의미가 없으며 당원 대중을 주인으로 참여시키는 것부터 시작돼야 한다”고 했고, 이수호 위원장은 두 진보정당의 재결합에 대해 “지금 당장은 어렵지만, 두 집이 같이 살 수 있는 더 큰 새로운 집을 빨리 지어 같이 일하다 보면 다시 정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신광영 교수는 사회 변화 속도를 읽어내고 선거논리에 대한 이해를 촉구했으며, 박상훈 대표는 결정하고 틀리면 교정하고 책임질 수 있는 리더십의 주체를 세우자고 거듭 강조했다.

    한편, 김민영 사무처장은 “너무 느긋하다. 그저 하던 일을 열심히 하자는 의견이 주류를 이루고 있어 실망스럽다”면서 “양 노동 조직과 양 진보정치 세력들의 변화 혁신이 뭘 하겠다는 것인지 잘 보이지 않아서 아쉬움이 있다”고 토론회 소감을 밝혔다.

    이날 토론회는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당직자 및 당원 등 120여명이 참석해 토론회에 쏠린 관심을 반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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