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정규노동자, 학생 하나가 되다
    By mywank
        2008년 05월 01일 03:5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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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일 저녁 7시 반부터 상암동 홈에버 월드컵점 앞에서는 ‘118주년 세계노동절 맞이 4.30 투쟁문화제’가 열렸다. (사진=손기영 기자)

     

     

    노동절을 하루 앞둔 30일 저녁 7시 30분부터 서울 상암동 홈에버 월드컵점 앞에서는 차별철폐대행진 조직위원회·전국비정규노조연대회의·전국학생투쟁위원회 공동주최로 ‘118주년 세계노동절 맞이 4.30 투쟁문화제’가 열렸다.

    이날 문화제는 ‘신자유주의 반대’, ‘비정규직 철폐’, ‘사회공공성 강화’를 3대 의제로 삼았으며, 연대와 투쟁을 통해 메이데이의 의미를 되살리고자 마련되었다.

    “살찐 돼지를 잡자. 잔치~ 잔치를 하자. 이제 잡아먹을 때가 됐어”

    투쟁문화제가 시작 전 행사장에서 흘러나오는 노동가요 한 소절이 귓가를 스쳤다. 한 편에서는 문화제에 참석한 학생들과 노동자들이 도시락을 먹고 있었다. 주변에서는 구속노동자들의 석방을 촉구하는 서명운동과 ‘탈시설 권리 공동투쟁단’의 기금모금 운동이 진행되고 있었다.

    또 행사장 주변에는 투쟁문화제에 참석한 학생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홈에버 매장으로의 진입을 막기 위해, 경찰버스들이 길목 구석구석을 둘러싸고 있었다. 또 주변을 감시하고 있는 전경들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이날 투쟁문화제는 비정규직노동자들과 학생들이 함께 어울리는 자리로 마련되었다. (사진=손기영 기자)
     

    “기륭전자 투쟁은 1000일이 조금 못되었고, 홈에버·뉴코아 투쟁은 300일이 넘었습니다. 또 코스콤 투쟁은 230일을, GM 대우 투쟁은 180일이 지났습니다. 우리는 또 거리로 나가야 합니까? 우리가 있어야 할 곳은 저기 매장 그리고 사업장 안입니다”

    저녁 7시 30분. 서울경인사무서비스노동조합 김호정 위원장의 절박한 외침으로 이날 투쟁문화제는 시작되었다. 행사장에는 홈에버·뉴코아, 기륭전자 등 장기투쟁사업장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각 대학에서 나온 학생들이 자리를 함께했다. 하지만 학생들에 비해, 참석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수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비정규직 철폐하고 인간답게 살아보자”
    “반드시 승리하여 현장으로 돌아가자” 

    이어 ‘꽃다지’의 공연이 이어졌다. 특히 꽃다지의 노래들은 행사 참석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노래가 끝나자 여기저기서 “앵콜~ 앵콜”이 터져 나왔다.

    꽃다지의 공연이 끝나고 이날 문화제의 3대 의제 중 하나인 ‘사회공공성’에 대한 발언이 이어졌다. 서울지하철노조에서 나온 박정규 수석부위원장은 “우선 자아비판부터 해야 겠다”며 “지난 10년 동안 저희 노조는 투쟁다운 투쟁을 하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그는 “오세훈 시장은 지하철에 에어콘과 환풍기를 줄이고 있는데, 이게 사회공공성 강화인지 창의시정인지 반문하고 싶다”며 “사회공공성 강화를 위해, 그동안 제대로 못했던 것을 앞으로는 제대로 투쟁해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다양한 공연장면. (사진=손기영 기자)
     

    전교조에서 나온 송원재 서울지부장은 “4월 15일 학교자율화 조치는 ‘공교육 포기’ 선언이나 다름없다”며 “공공의 이익을 위해 어느 정도의 규제는 필요한 것인데, 앞으로는 서민들의 동등한 교육기회 마자 빼앗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명박 정부는 앞으로 ‘자율화’란 명분으로 무한경쟁을 벌이려고 한다”며 “초·중·고등학교와 대학 등 이제 우리 아이들은 무한경쟁 시대에 놓이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이런 무한경쟁의 이익은 과연 누구를 위한 이익인지 반문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전교조 송원재 서울지부장의 발언이 있는 내내, 학생들이 많이 모인 행사장의 분위기는 조금 무거워졌다. 송 지부장의 이야기가 바로 그들의 문제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행사장의 분위기는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사물놀이패의 신명나는 공연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노동자들과 학생들은 손뼉을 치며 사물놀이패 공연에 호응했고, 행사장 주변을 지나는 시민들도 “잘 한다 잘해”를 외치며, 발걸음을 멈추고 공연을 관람했다.  멀리서 행사장을 바라보고 있던 전경들의 표정에서도 긴장감이 사라진 듯했다. 

    투쟁문화제의 분위기가 오르자, 김경욱 이랜드 일반노조 위원장을 비롯해, 기륭전자·코스콤 등 비정규직노조 대표들이 장기투쟁 중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한 모금활동을 벌였다. 이날 현장에서 걷힌 모금액은 약 94만원 수준.

    이어 다시 행사장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아시아 태평양 노동자 연대’ 소속 호주인 3명이 무대 위로 올라왔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눌한 한국말로 ‘투쟁’이라고 외쳤고, 행사장에 있던 학생들과 노동자들은 큰 박수로 그들을 맞아주었다.

    이들은 “우리는 자본주의 문제를 혁파하기 위해 여기에 왔다”며 “선배 동지들의 투쟁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며, 무대에서 내려왔다.

       
      ▲ 행사장 주변에 풍경들. (사진=손기영 기자)
     

    네팔 출신 이주노동자 토르나림부 씨도 무대에 올라와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유창한 한국말로 “우리는 하루하루 힘들게 살고 있지만, 한편에서는 고급아파트에 살고 외제차를 몰고 다니는 등 너무 잘사는 사람들도 볼 수 있다”며 “우리의 생존권을 박탈하는 차별적인 현실을 동지들과 함께 싸워나가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문화재의 하이라이트는 노동가수 지민주의 공연이었다. 지 씨 노래의 제목은 잘 모르더라도, 집회현장에 가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정도로 대중적인 노래들이 많다. 익숙한 멜로디와 가사가 나오자, 노동자들과 학생들은 손뼉을 치며 따라 불렀다. 분위기는 고조되었고, 어느 덧 시간은 밤 9시 반을 훌쩍 넘겨버렸다.

    시간이 늦어지자 문화제 참석자들은 오뎅·라면·떡볶이 등 야식으로 출출해진 배를 달랬다. 또 투쟁문화제 주변에서는 이랜드 투쟁승리를 위한 2000원짜리 ‘이랜드 컵라면’도 판매되고 있었다.

    이어 무대에 마련된 스크린에 장기투쟁 중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모습과 공권력에 탄압받는 모습이 상영되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들썩였던 행사장 분위기가 이내 조용해졌고, 몇몇 참석자들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영상이 끝나자 공권력에 탄압받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은 나타낸 행위극이 이어졌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전경들의 몽둥이에 맞아 쓰러지는 모습이 나오자, 곳곳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또 “나쁜 놈들…”이라며 말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패배에서 승리로 ‘반전’을 지켜본 참석자들은 함성과 박수를 보냈다. 이어 문화제가 시작했을 때 부른 인터내셔널가를 서로 어깨동무하면서 불렀고, 행사를 마무리했다.

    익명을 요청한 홈에버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는 “그동안 오랜 시간 투쟁해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쳤다”며 “오늘 문화제에 참여해서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니 잠시나마 웃음을 되찾을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밤 10시부터 학생들이 중심이 된 ‘118주년 노동절 맞이 청년학생 투쟁 문화제’가 열렸다. (사진=손기영 기자)
     

    이어서 밤 10시부터 약 3시간가량 학생들이 중심이 된 ‘118주년 노동절 맞이 청년학생 투쟁 문화제’가 열렸다. 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학생들의 문화제가 시작되기 전 대부분 자리를 떠났다.

    학생들의 투쟁문화제는 좀 더 밝고 가벼운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 투쟁구호 보다는 발랄한 율동이 문화제의 중심을 이루었다. 무대에서 율동을 선보이며 공연하는 학생들뿐만 아니라, 행사장에 앉아 있던 학생들도 삼삼오오 일어나 율동을 따라하는 등 재미있는 광경을 연출했다. 

    늦은 시간에 진행되는 투쟁문화제에 대해 주변 주민들의 불만도 이어졌다. 한 주민은 “도저히 잠을 못자겠다”며 “소리 좀 줄여 달라”고 주최 측에 요구하기도 했고, 흥분한 한 시민은 이를 말리는 주최 측과 가벼운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연세대 4학년 유하경 (26) 씨는 “이랜드 문제가 사람들에게 잊혀져 가는 것이 안타까웠고, 사회적 이슈로 다시 알리겠다는 생각에 오늘 투쟁문화제에 나오게 되었다”며 “행사장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연대의식’을 다질 수 있었던 것이 보람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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