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과 우리는 똑같다"
        2008년 04월 30일 06:3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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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교인과 시민운동가 등으로 구성된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 순례단이 지난 2월 12일 김포 애기봉을 출발해 한강과 낙동강, 영산강과 새만금을 거쳐 현재 금강을 따라 길을 걷고 있다. 순례단은 지금까지 4대 강을 따라 걸으며 그 길에서 수많은 종교인과 지역의 시민, 노동자와 농민을 만나고, 생태와 정치가 하나 되는 길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 사진=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
     

    순례단 이외에도 운하와 관련해 다양한 활동들이 활발히 진행 중이다. 진보신당에서는 부산에서 서울까지 네발자전거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으며, 미래세대가 주역이 된 ‘강강수원래’ 모임은 지금 이 순간에도 강을 따라 서울에서 부산까지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보수와 진보의 이념적 구분을 넘어 약 2,000명의 전문가들이 모임을 구성하고 활동 중이다.

    지역마다 관련 대책위가 구성되어 있고 저마다 지역 상황에 맞게끔 다양한 활동을 진행 중이다. 종교계에서도 종단의 차이를 넘어 공동 대응 혹은 개별적 대응이 계속 진행 중에 있다. 오죽하면 사회 현안에 대해 지극히 말을 아끼던 선방 수좌들까지 운하 사업의 백지화를 촉구할 정도이다.

    선방 수좌들까지 운하 백지화 촉구

    그러나 사실 순례단은 운하에 대해 뭐라 이야기하지 않는다. 다만 그동안 운하와 관련해 무엇인가를 말하고 행동하고자 했던 사람들을 만나, 강을 둘러싼 우리 사회 제 구성원들의 관계와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뿐이다.

    또 운하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할 것도 없다. 대통령의 선거공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뭐 하나 딱히 명확한 내용과 계획도 없고, 운하를 해야 한다는 사람들조차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강을 어떻게 관리하겠다는 것인지 밝히는 내용 자체가 없으며, 그동안 주장하였던 내용 대부분이 허구임이 드러난 상황에서 최근에는 ‘국민여론수렴’ 혹은 ‘민관위원회 구성’ 등의 정치공학적인 추진 방법만 제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순례길에서 우리는 무수한 ‘운하’를 보았다. 방조제 물막이 공사 2년이 되지 않아 어느새 죽음의 땅이 되어버린 새만금. 검붉은 물결만 일렁이는 영산강. 무수한 골재채취가 진행되며 곳곳마다 폐수가 합수되는 낙동강. 생태적인 모습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한강. 구체적인 상황과 조건, 실상은 조금씩 다르지만 ‘토목건축’으로 생태계를 관리하겠다는 ‘또 다른 이름의 운하’는 도처에 널려 있었다.

    이러한 ‘또 다른 이름의 운하’로 상징되는 개발주의에 대해 우리 사회는 매우 우호적이다. 사실 이명박 정부의 운하 추진정책은 비판하기 쉽다.  앞서 이야기 했지만 운하와 관련돼 공개돼 있는 내용 자체가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을 정도로 위험하고 부실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명박표 운하’와 다를바 없는 앞서의 사안이나 이슈, 수많은 지역 차원의 개발주의의 병폐와 잘못된 국토관리, 사회 운영 패러다임의 문제에 대해서는 운하 논쟁 이전과 이후가 다르지 않은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을 배경으로 운하 계획은 여전히 진행형이며 추진 중이다. 국토해양부 장관은 ‘청와대 지시’가 없었다는 지극히 당연하면서 황당한 이유로 운하 관련 준비를 예정대로 추진하겠다고 하고 있으며, 환경부는 각종 규제완화를 추진하겠다고 하고 있다. 추부길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라는 사람은 한술 더떠 "운하와 관련한 홍보를 다음달부터 추진하겠다"고 한다.

    운하 추진과 관련한 수많은 비판과 문제점 지적에도 이들은 전혀 수그러들지 않는 기색이다. 수많은 사회적 논란 및 불확실한 계획과 대비되게, 확실한 것은 운하 추진 정책과 관련한 절차적 민주주의 문제도, 경제성 논란에 따른 혈세낭비도, 상수원 오염이라는 치명적인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운하 정책을 강행하겠다는 것이다. 운하 정책과 관련한 사회적 갈등과 이로 인한 역량의 소진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러한 자신감의 근거는 무엇일까? 

    사실 우리 사회에 환경을 걱정하는 시민들과 그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자연생태계와 국토관리의 패러다임이 전환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많지만, 새만금에서처럼 구체적인 지역 상황으로 돌입하면 운하는 매우 현실성 있는 정책으로 돌변한다. 각 지역마다 동일한 현수막과 홍보물, 동일한 내용을 가지고 ‘우리 지역이 발전한다면, 혹은 다른 지역과 달리 우리 지역은’이라는 단서는 만병통치약으로 등장할 것이다.

    운하가 문제는 아니다

    상황이 이러하다면 실상 운하가 문제는 아니다. 운하를 추진하는 측에서는 이제 대운하라는 논쟁은 피하고, 지역별 운하 혹은 유사한 건설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지역의 토호들과 함께 지역 개발주의를 전면에 내세워 구간별로 운하를 추진하겠고 할 것이다. 그러한 상황이 발생한다면 핵폐기장 유치경쟁에서 볼 수 있듯 암울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사실 ‘운하’는 이명박 정부만의 문제는 아니다. ‘운하’는 우리 사회에 잠재돼 있는 ‘박정희식 토건사회’에 대한 향수이자, 누구도 쉽게 이야기하지 못하였던 우리 내부에 잠재돼 있는 개발주의를 노골적으로 표명한 정책 산물에 불과하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이명박표 운하’는 우리 모두를 대표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운하 계획을 지우고 또 지운다는 것은 이명박 정부의 운하 백지화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지역마다 지역 사회가 나아갈 생태적 대안을 마련하고 새로운 비전을 모색하는 일이 시작되어야 한다. 이는 모두가 동일한 그림으로 제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노동자와 농민이 그리는 생태적 대안과 비전, 실천 프로그램. 시민이 구상하는 지역 사회의 생태적 전환의 구체적 구상 등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내용의 교집합과 공집합에 대한 무수한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한 대안과 비전을 가지고 ‘이명박 운하’와 ‘운하라는 이름의 토건사회’에 대한 저항이 전 사회적으로 조직되어야 할 것이다. 그럴 때 비로소 운하라는 이름의 유령이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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