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신청에 문 걸어잠근 근로복지공단
    2008년 04월 28일 06:21 오후

Print Friendly

"산재 접수를 하러 온 우리들을 왜 막았는지 누구 답해 줄 분 없나요?"

삼성반도체 천안 공장에서 퇴사 후 급성백혈병이 발병해 현재 투병 중인 김옥이씨는 아픈 몸을 이끌고 산재 접수를 하러 왔음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문을 열어주지 않는 근로복지공단의 태도에 ‘말문’을 잇지 못했다.

김씨는 28일 오후 ‘삼성반도체 집단 백혈병 진상규명 및 노동기본권 확보를 위한 대책위원회'(이하 삼성대책위) 등과 영등포 근로복지공단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근로복지공단에  집단 산재 신청을 하려고 했으나, 복지공단이 명확한 이유를 밝히지 않은 채 문을 열어주지 않아 20분 간 뜨거운 태양 아래 서있어야 했다.

   
 
 

김씨 뒤에서는 전국운수산업노동조합이 운수산업 노동자들의 산재통계를 바로 잡고, 화물노동자에게 산재 보험 적용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었다. 이날은 산재로 사망한 노동자들을 추모하며 전 세계에서 촛불을 드는 산재사망노동자 추모의 날이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문을 걸어잠근 채 담당 공무원이 ‘모시러 온다’기에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철문 앞 전경들의 행렬이 소리없이 불어났다. 십여 분 후 담당 공무원 두 명이 오더니 "절차상 관할 지사에 접수해야 한다", "들어갈 사람 손 한 번 들어봐라", "서류를 접수하는데, 노무사가 왜 같이 들어오냐?"는 등의 핑계를 대며 계속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민원이 있으면 국민 누구나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곳이 관공서임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이유없이 출입을 통제한 것이다. 결국 20여분간 공무원과 대책위의 말싸움 끝에 식은땀을 흘리고 서있던 김씨는 유가족 두 명, 노무사 두 명과 함께 들어가 산재신청을 했다.

접수를 하는 동안 김씨는 "만약 아이들이나 직계 가족에 이런 일이 생겼다면 지금처럼 수수방관하고 있을 수 있나요?"라며 "너무 기가 막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울분을 토했다. 이같은 반응에 공무원들은 다른 곳을 보며 못 들은 척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행여 삼성과 관련된 일을 하는 남편에게 해가 될까 싶어 오랜 고민 끝에 어렵게 찾아온 김씨였다. 산재 접수에 앞선 기자회견장에서도 김씨는 "지금 이 자리에 서 있으면서도 굉장히 갈등하고 있다"며 "삼성이 아기 아빠 측에게 어떤 압력이나 탄압을 가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빈다. 삼성이 저와 아기 아빠의 일을 확실히 구분했으면 한다"면서 떨리는 작은 목소리로 울먹였다.

접수를 마친 김씨는 "근로복지공단이라는 곳이 턱이 있는 곳이냐? 왜 산재접수를 하러 온 것조차도 막았는지 그것만 말해 달라"며 연신 담당 공무원에게 질문을 던졌으나, "저희들이 말씀드릴 부분이 아니다", "다음에 얘기하자"는 답변만 받았다.

   
 
 

이에 유족의 가족들도 "회사도 병든 사람을 내팽개치고 억울해서 정부에 호소하러 왔는데, 정부마저 우리를 버리면 우리는 그냥 죽으라는 말이냐?", "근로복지공단의 턱이 이렇게 높은 줄 몰랐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이를 지켜보다 못한 이종란 노무사는 "근로복지공단의 턱이 무슨 빌딩처럼 높다. 대리인인 제가 옆에서 보기에도 너무 부끄럽다"면서 “청와대도 이런 식으로 일반 국민의 민원을 막지는 않는다. 공무원으로서 시민들의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최소한의 자세조차도 돼있지 않다"며 공무원들에게 사과를 요구했다.

그러나 담당 공무원들은 사과 대신 "접수된 문서는 절차에 따라 각 공장이 있는 지부에 배달될 것"이라고 밝혀, 사실상 집단산재신청에 따른 본사 차원의 조사를 실시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이에 이종란 노무사는 "그 절차를 모르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봤을 때 삼성이라는 공장에서 똑같은 일을 하다가 일어난 사건으로 본사에서 같이 해결해야 할 중대한 문제여서 본사에 접수를 했다"면서 "오히려 지사에서 제각각 따로 하는것이 더 인력을 낭비하고 비효율적이다. 이미 노동부가 13개 반도체 제조 업체 등에 대해 역학조사를 하고 있는 마당에 본사의 의지가 있다면 충분히 조사할 수 있는 사안이며, 그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특별한 이유없이 문을 열어주지 않은 것에 대해 공식적으로 근로복지공단에 문제 제기를 하겠다며 유가족들과 노무사가 해당 공무원의 명함을 요구했으나, 공무원들은 목에 걸려 있는 신분증을 끝내 꺼내지 않았고, 명함도 주지 않은 채 구두로만 소속과 이름을 밝혔다.

왜 백혈병에 걸렸는지 몰라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신청을 하러왔건만, 이들은 또 다시 근로복지공단이 문을 열어주지 않은 이유를 모른 채 그렇게 떠났다.

   
 
 

이와 관련 해당 공무원은 처음에 문을 열지 않은 것에 대해 "기자회견과 집회 등을 벌여서 상황이 어떻게 될 지 몰라 문을 열 수 없었다"면서, "오늘 접수된 서류는 각 지부로 넘어가고, 본부는 가이드 라인이나 참고 자료를 제공할 수 있는 것 정도만 하게 된다. 노동부의 역학 조사가 나올때까지  그 사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밝혔다. 

떠나는 삼성반도체 노동자들 뒤에는 ‘산재보상 찾아가는 서비스 희망드림’이라는 근로복지공단의  재활서비스 사업을 알리는 유리간판이 배웅하고 있었다.

                                                                        *   *   *

천안에 있는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 2007년 백혈병을 얻은 박지연씨가 오는 4월 골수 이식 수술을 받는다. 이를 위해 대책위는 치료비 모금과 헌혈증 기부를 호소하고 있다. 후원계좌는 국민은행 489701-01-472635 예금주 김재천(삼성반도체대책위)이고, 헌혈증을 보낼 주소는 (우442-847) 수원시 팔달구 매산로2가 40-4 골든프라자5층 이다. 격려 메시지는 http://cafe.daum.net/samsunglabor에 남기면 된다.

필자소개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