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풍 일으키는 소풍, 넘 잼있어요"
        2008년 04월 27일 09:2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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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에서 ‘까발리아호’가 출항한 27일 오전 서울의 하늘은 잔뜩 찌푸린 가운데 많지는 않았지만 비까지 흩뿌리고 있었다. 바람까지 차가웠던 이날의 날씨 때문에 과연 11시에 열릴 예정인 ‘명랑진보의 첫 소풍’이 시작이나 될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박김영희 공동대표는 “비만 안 왔어도 더 오는 건데, 바람만 안 불어도 더 많은 당원들이 함께 하는 건데”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하지만 이날 소풍에는 좋지 않은 날씨에도 200여명 가까운 당원들과 당원 가족들이 참석했다. 어차피 “비 오면 다리 밑에서라도 하자”고 했던 그들이었다.

       
      ▲림보하는 모습을 보며 웃음을 터트리는 진보신당 당원들과 가족들. 소풍을 제안한 ‘주범’인 마산사람 이장규(왼쪽 두번째)와 정태인(뒷줄 가운데) 당원의 얼굴이 보인다.(사진=정상근 기자)
     

    당원들 스스로가 계획하고 준비한, 국내 정당에서 처음 보는 그 낯선 광경에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각지에서 모여든 진보신당의 당원들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환하게 피었다. 당이 당원을 동원한 것이 아닌 당원이 당직자들을 동원한, 그래서 어쩌면 역사적인 자리일지도 모르는 자리였다.

    그 역사적인 자리 한 켠에는 이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투쟁에 쓸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음료와 물을 팔고 후원금을 걷었다. 그 옆에는 이덕우 공동대표 부부가 자신들의 이름을 딴 ‘덕우정신 가게’에서 직접 만든 가방을 팔았고, 또 그 옆에는 친환경 과일을 파는 ‘진보 군것질’ 가게가 있었다. 파는 것은 다르지만 이랜드 조합원들을 돕겠다는 목적은 하나 같았다.

    반대 편에는 지난 총선 진보신당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 뛰었던 후보들의 활동사진이 전시되어 있었다. ‘얼굴 그림’을 그리는 곳도, 삼삼오오 돗자리에 모여 얘기하는 당원들도 있었다.

       
    ‘호빵맨’으로 변장한 노회찬 상임공동대표(사진=정상근 기자)
     

    그리고 중앙 무대 뒤편에는 ‘혼자 오셨다구요? 입구에서 한 마디만 하세요, ‘뻘쭘족’입니다’라는 현수막이 눈에 띄었다.

    뻘쭘족들은 ‘뻘쭘함’을 잊기 위한 몸부림으로, 레크레이션의 바다에 풍덩 빠져 들었다. 마포, 고양, 강남, 강서 ‘뻘쭘이’들이 하나로 모여 훌라후프를 돌리고 림보를 하고 운동회를 열어 대형 풍선공을 굴렸다.

    이상엽 당원은 기자에게 은근히 다가와 “오늘은 무슨 일로 왔느냐, 당원 자격이냐?”라고 물었다. 취재차 왔다고 하자 “다음에 당원자격으로 왔으면 좋겠다”고 은근한 압박(?)을 주기도 했다.

    기자와 마찬가지로 ‘뻘쭘족’ 홍세화 당원도 당원들에게 등떠밀려 림보를 넘고 운동회에도 참여하고 춤을 추고 박수를 쳤다.

    림보의 웃음바다가 끝날 무렵, 어디선가 호빵맨이 나타났다. “경제가 어려워서 위로하러 왔다”며 만화주인공 답지 않은 말을 하던 호빵맨은 노회찬 상임공동대표, 그의 뜻밖의 등장에 소풍장소는 다시 한 번 웃음바다가 되었고 박수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날 부모 손을 잡고 함께 온 아이들은 호빵맨을 봤을 때보다 노회찬 대표를 봤을 때 더욱 소리지르며 좋아했다.

    오늘 하루 제대로 망가져야 한다며 사무실에서 일하는 상근자들이 이 옷을 입혔다는 노회찬 대표는 당원들의 소풍을 보는 소회를 묻자 “진보신당이 대풍을 일으키기 위한 소풍”이라는 그 특유의 어법으로 답했다. 그는 이어 “당원들이 총선과정에서 몸 고생 마음 고생 많이 했는데 오늘 고생을 씻고 하루 제대로 즐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이랜드 투쟁기금 마련을 위한 경매가 시작되었다. 적지 않은 돈으로 경매가 시작되었다. 경매는 소풍 거의 끝 무렵부터 시작돼 잘 진행될 수 있을지 주최측 관계자들은 고민을 한 부분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기우였다.

       
     ▲심상정 공동대표의 축구공을 향한 경매 참가자 들의 치열한 눈치전이 벌어지고 있다.(사진=정상근 기자)
     

    경매 첫 테이프는 심상정 상임공동대표가 끊었다. 그는 독일에서 받은 2006년 월드컵 기념 축구공을 기증했다. 아니 정확하게 그의 아들(이우균. 중3)이 기증했다.

    심 공동대표는 “아들에게 이 축구공을 판 돈으로 이랜드 비정규직 투쟁 기금을 마련한다 했더니 아들이 흔쾌히 공을 기증하였다”며 “비싼 값이지만 이랜드 승리에 대한 염원으로 알겠다”고 말했다.

    곧 이어 경매 시작, 10만원부터 시작된 경매가가 불려지는 그 순간 어디선가 우렁찬 외침이 들렸다. “마포 10만원!”, 그리고 이어진 치열한 경매전, 이덕우 공동대표는 최고가에 천원을 더 붙이며 경매를 유도했고 이 대표의 낚시에 많은 사람들이 걸려들어 결국 50만원에 낙찰되었다.

    이날 마포 당원들 역시 경매 바람잡이 역할을 톡톡히 했다. 번번이 초기 가격을 부르며 흥을 높였지만 낙찰에는 계속 실패하던 마포 당원들은 결국 이랜드 투쟁 티셔츠를 100만원이나 부르며 이랜드 투쟁 기금을 기부(?)했다.

       
      ▲대표 뻘쭘이 홍세화 당원이 멋진 폼으로 림보 놀이를 하고 있다. 그러나 몸이 예전같지 않아 1회전 탈락.(사진=정상근 기자) 
     

    노회찬 대표는 ‘우공이산’의 글과 그림이 담긴 액자를 내 놓았다. 박김영희 대표는 묵주, 진중권 당원은 ‘사고 한 번도 안 빤 잠바’를 내 놓았다. 진중권 당원은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집에 갈 때까지만 입고 있게 해달라"고 했지만 낙찰 받은 당원은 결국 그의 잠바를 벗기고 말았다. 김석준 공동대표는 부산지역에서 활동하는 유명 화가가 그린 그림을 내 놓았다.

    홍세화 당원은 ‘여권’을 내놓았다. 오랜 망명생활 끝에 귀국하면서 홍세화 당원이 처음 받았던 여권이었다. 티벳 평화 성화봉송에 간 홍세화 당원을 위해 세일즈에 나선 진중권 당원은 “이 여권의 가장 큰 특징은 홍세화 선생의 개인정보가 모두 들어 있다는 것”이라고 말해 사람들을 크게 웃겼다.

    여권과 함께 홍세화의 책 등을 패키지로 묶은 것이 55만원에 팔린 것을 비롯, 이상엽 사진작가의 작품이 170만원에 낙찰되는 등 이날 하루 경매수익으로 648만원이 발생했다. 이 금액은 모두 이랜드 투쟁 지원비로 나가게 된다.

       
      ▲운동회의 꽃은 역시 ‘응원전’이었다. (사진=정상근 기자)
     

    상큼 발랄했던 진보신당 당원들의 첫 나들이는 그렇게 고액(?)의 경매와 함께 끝이 났다. 한 당원은 “서로의 모습을 보며 진보로 하나가 되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며 소풍에 만족감을 표시했다.

    진보신당 홈페이지 아이디 ‘조혜원’씨는 “갈지 말지 고민이 되기도 했는데 꼭 즐길 생각이라기 보다는 내가 속한 조직에서 치르는 일이니 어찌 굴러가나 확인이라도 해 보겠다는 마음이었다”라며 “안 갔으면 서운한 것이 아니라 서운함 자체를 몰랐을 것”이라며 소풍에 만족감을 표시했다.

    아이디 ‘척탄병’은 “우리가 지난 총선에서 단 한 석이라도 의석을 배출했더라면, 오늘 자리가 얼마나 더 즐거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지만 노회찬 대표 말처럼 우공이산의 지혜로 진보신당의 승리를 위해 한걸음씩 나아가자”고 말했다.

    조대희 진보신당 봄소풍 준비위원장은 “오전에 비가 왔던 걱정보다는 약속했던 시간에 자원봉사자 2명밖에 안 왔던 걱정이 더 컸다”며 웃었다. 이어 “나는 아쉽게도 행사진행 하느라 재미있는 줄 몰랐는데 가을에도 소풍가자고 하는 당원이 있는 걸 봐서 재미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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