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빈곤과 차별을 넘어 사회공공성으로
        2008년 04월 23일 09:0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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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랜드, 코스콤, 기륭전자, 청구성심병원, 이주노동자, 공공노조,  민가협 회원 등이 한 자리에 모였다. 서로 소속과 이름은 다르지만 ‘차별철폐’라는 깃발 아래 모여 ‘비정규직 철폐’와 ‘사회공공성강화’를 한 목소리로 외치기 위해서였다.

    민주노총 서울본부와 민주노동당 서울시당이 주관하는 ‘빈곤과 차별 없는 서울만들기 차별철폐 서울대행진’이 올해로 5회를 맞이해 23일부터 30일까지 서울시 25개 지역에서 진행된다.

    차별철폐대행진은 시민들의 호응에 힘입어 서울에 이어 부산과 경기 등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지만, 노동자가 두 번이나 자살을 시도한 청구성심병원노동자들은 올해에도 노조탄압 등으로 인한 우울증으로 산재 신청을 내고, 기륭전자 등 비정규직의 싸움 또한 여전히 끝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청구성심병원에서 발대식을 시작한 이번 대행진은 ‘사회공공성 쟁취’를 화두로 ‘빈곤’과 ‘차별’의 근원인 ‘비정규직 철폐’를 내걸었다.

    6~7월 총력투쟁 첫걸음

    이재영 민주노총 서울 본부장은 "쓰나미처럼 닥치는 공공부분에 대한 구조조정이 바로 목전에 놓여 있고,  그 중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가장 먼저 해고될 것"이라며 "생명줄을 부여잡기 위한 6월 말 7월초 총력 투쟁의 첫 걸음을 여기서 시작하자"고 말했다. 

    외국의 노동자들도 힘을 보탰다. 국제건설목공노련 아시아 지역 대표 티마씨는 "건설연맹을 통해 한국 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상항에 대해 잘 알고 있는데, 비정규직 차별을 철폐하고자 하는 노력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면서 "노동자로서 존엄성을 누리기 위한 투쟁에 여러분과 함께 하겠다"고 연대사를 전했다.  

    궂은 날씨에 대한 우려와 달리 이날 행진에는 예년보다 30여명이 더 많은 200명 가량이 참석해 도시락이 부족한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청구성심병원에서 시작한 행진은 이랜드 월드컵점을 거쳐 연세대까지 평화롭게 진행됐으며 바람이 불기는 했으나 햇볕이 뜨겁지 않아 행진하기에는 적당한 날씨였다. 이들은 행진을 하며 확성기를 통해 청구성심병원의 인권침해를 알리고, 300일을 넘긴 이랜드 투쟁 소식등을 전하며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선전물을 배포하기도 했다.

    이들의 주된 요구는 단 하나. 사회공공성 강화와 비정규직 철폐였다. 지나가는 차 소리에 목소리가 묻힐까 싶으면 박수로 장단을 맞췄고, 선전물에도, 조끼에도, 현수막에도, 피켓에도, 얼굴의 양 볼에도 이같은 내용을 담아 시민들에게 관심을 호소했다. 

    아스팔트 길을 쉼 없이 구호를 외치며 뒤쳐지지 않게 걸어가는 것은 쉽지 않았다. 바람이 강하게 불어 제법 서늘한 날씨였음에도 불구하고 속도를 맞추느라  발걸음을 재촉하면 금방 등줄기에 땀이 맺혔다. 허리디스크 수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행진에 참여한 이랜드 노조원 이모씨는 행렬의 맨 끝에서 느리지만 또각또각 발걸음을 내딛었다.

    이씨는 "우리 문제를 풀려면 무엇보다도 시민들의 관심이 절실하다는 걸 알리기 위해 나섰다"면서 "모든 자식들이 정규직으로 취업하는 것도 아니고 이민을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니만큼,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혼자 힘들어하지 말고 잘못된 것에 대해서는 함께 올바르게 고쳐나갔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모두 정규직 되는 것도 아니고, 이민 갈 수도 없고

    이날 행진은 각자 떨어져 싸우고 있는 서로가 ‘하나’임을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연대의 자리이기도 했다. 민가협 회원들은 이날 ‘남몰래’ 십시일반 모은 후원금을 주최측에게 전달해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민가협 유민호 총무는 "우리가 집회할 때면 항상 같이 하며 뒤에서 힘을 주는 사람들인데, 조금이라도 힘이 되고 싶었다"면서 "끝까지 같이 걷지는 못해도 얼굴이라도 봐야 마음이 편할 것 같다"며 쑥스러워했다.

       
     
     

    평화롭게 행진하는 긴 행렬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등록금은 나날이 올라 천만 원에 다다르는데, 청년들의 취업률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그나마 취업된 사람들 중 다수는 88만원을 받아 미래를 책임질 수 없는 ‘이상하고 불안한 시대’임을 낌새라도 챈 걸까.

    대부분의 시민들은 선전물을 마다하지 않고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이들을 바라봤다.

    속 깊은 얘기를 하지는 않았지만, "모든 직장을 정규직으로 해야 된다는 거냐?", "공공부분에 대한 적당한 경쟁은 필요한 것 아니냐?", "저 사람들이 맞는 건지 이명박 대통령이 맞는 건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교육 정책 좀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 "우리 아이들도 비정규직이 될까봐 걱정된다"는 등 행진에 대한 호불호에 무관하게 다양한 반응을 쏟아내며 ‘관심’을 보였다.

    농성이 뭔지도 모른 채 점거가 시작된 홈에버 상암점에 이르자 이랜드 조합원들의 얼굴에는 만감이 교차했다.

    윤송단 이랜드일반노조 여성국장은 "어금니를 깨물고 입술을 바들바들 떨며 함께 바닥에 누운 ‘여자’라는 서러운 이름, ‘비정규직’이라는 서러운 이름을 동료와 나누며 상암 마당을 지켰다"면서 "이 땅의 모든 자본가들과 박성수 회장에게 사람이 한이 맺히면 얼마나 무서운지 보여주겠다"며 전의를 불살랐다.

    행진에 참가한 사람들은 모두가 이랜드 노조원이었다. 이들은 끝모를 빈곤과 차별을 잉태한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이름 아래 설움을 나누며, 이랜드를 상징하는 자본의 몸짓에 대항하는 ‘짱돌’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이같은 자신감 뒤에는 ‘종교'(?)가 하나 있었다. 그들은 ‘사람’과 ‘역사’를 믿었고, 언젠가는 곳곳에 있는 수많은 제2, 제 3의 이랜드 노조원들이 함께 투쟁할 것이라고 꿈꿨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투쟁과 행진은 멈출 수 없다.

    ‘여자’라는 ‘비정규직’이라는 서러운 이름

    어느덧 투쟁한 지 1000일이 되가는 기륭전자 윤종희씨는 "기륭도 이랜드도 어디에나 다 있다. 다만, 목구멍이 포도청인지라 용기가 없고 자신감이 없어 싸우지 못하는 것 뿐"이라며 "그들의 작은 희망을 놓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미래를 지켜내는 우리들의 싸움은 중요하다"고 말했다.

    윤씨는 "보이지 않는다고 세상이 변화하지 않는 건 아니다. 어느 순간 이런 작은 움직임들이 쌓여 폭발한다"면서 "시민들이 홈에버에 한 번 덜 가는 것만으로도 세상은 변한다. 어디에서 무얼하든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희망을 놓지 않았으면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끝을 알 수 없는 투쟁의 막막함을 힘찬 함성과 함께 부르는 투쟁가로 날려버리고 그들은 그렇게 서로를 믿듯 세상을 신뢰하며  당당히  발걸음을 내딛었다. ‘우리’가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를 알리기 위해.    

       
     
     

    차별철폐대행진은 전빈련, 전철연, 사회진보연대, 공공운수연맹, 범민련, 다함께 등 40여개의 단체가 함께 하고 있으며, 이들은 다양한 문화 마당 및 선전전 등을 통해 비정규직 철폐 및 공공성 강화에 대한 문제를 시민들에게 전하고 소통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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