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신당 재창당, 원탁회의부터 통째로 바꿔보자
    2008년 04월 23일 04:3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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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9일이 남겨준 과제

작년 12월, 대선 결과가 나온 이 후 진행된 4개월의 폭풍과 같은 실험은 4월 9일로 일단락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만든 ‘진보신당’은 한국 사회에 새로운 진보라는 화두를 던지면서 주목을 받았지만 짧은 기간이 가진 한계와 현실정치의 무거운 벽을 뚫어내지는 못했고, 결국 ‘국회의원은 없지만 국고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정당’으로 만족해야 했다.

많은 분들이 이번 패배에 대해서 의견을 제시하고 있지만, 지금 상황에서 과거에 대해서 자세하게 이야기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다. 2개월밖에 안 되는 짧은 시간동안 진보신당은 수십 년 동안 진보진영이 실패해왔던 일에 도전했고 기대에는 못 미치지만 나름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물론 선거기간 동안 창당 후 ‘진보신당’이 던진 메시지가 거칠고 추상적이며 중구난방이었다는 지적도 있었고 ‘노심 당’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었다. 나름대로 올바른 지적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일련의 과정이 ‘진보의 재구성’이라는 우리의 목표를 흔들어버릴 정도로 잘못된 과정이었나에 대해서는 분명히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이에 대해서 나를 비롯한 상당수의 당원들은 이번 선거 과정에서의 잘못은 분명히 있지만 불가피한 것이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가건물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은 오히려 가건물을 견고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선거 패배 후 평당원들이 온라인에서 춤을 추며 떠들썩하게 하고 있고, 중앙당에 입당 전화 러시가 이어지고 있으며 선거 현장에서 만난 새로운 지지자(민주노동당 당원이 아닌)들이 자발적으로 입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다시금 우리는 ‘희망’을 이야기 할 수 있게 되었다.

과거 민주노동당 창당 시기에도 이와 비슷한 일은 있었다. 2000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시 민주노동당 당원이었던 나에게도 비슷한 절망의 과정이 있었다. 울산 북구에서의 어이없는 패배와 권영길 당대표의 창원에서의 도전이 실패한 후 당 관계자들은 절망에 빠졌었다.

하지만 이 후 수많은 당원들이 입당을 했고 당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도 급격하게 높아졌다. 이어 2002년 지방선거와 2004년 총선을 거치면서 민주노동당은 진보진영의 대표자로서 우뚝 설 수 있게 되었는데, 지금 회상하면 당시 과정이 이번보다도 훨씬 암울했다. 비록 이제 다른 살림을 차리게 되었지만 민주노동당의 창당 실험은 우리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

진보신당도 역시 이와 비슷한 과정을 거칠 것이며, 2010년 지방선거와 2012년 총선이라는 산을 넘으면 길은 열릴 것이다. 다만 과거 민주노동당 창당 때와는 근본적으로 달라진 점이 하나 있다. 바로 ‘진보의 재구성’이라는 넘기 힘든 어려운 과제가 함께 주어졌다는 점이다.

대외적인 목표와는 별개로 오직 ‘진보진영의 의회 진출’이라는 목표를 향해 나아갔던 민주노동당과는 달리 진보신당에게 주어진 ‘진보진영의 재구성’이라는 과제는 대단히 부담스러운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이는 현재 진보신당의 구성원만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당 언저리에 있는 교수들이 모여서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더구나 당에서 처음 시작했던 원탁회의에 참가했던 명망가들이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새로운 조직에 맞는 새로운 틀,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의제, 새로운 진보에 맞는 새로운 담론을 중심으로 우린 ‘진보의 재구성’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진보의 재구성’은 ‘진보신당’을 부수는 데서 시작하자.

며칠 전 청년환경센터 이헌석님의 글을 읽으면서 나 역시 이 분의 입장에 크게 공감했다. 나 역시 ‘진보의 재구성’을 위한 첫 과제로 ‘진보신당’을 부수는 것을 제안하고 싶다. 이는 실제로는 얼마 되지 않지만 밖에서 보면 괜히 큰 것처럼 보이는 ‘진보신당의 기득권 포기’에서부터 출발하자는 선언이기도 하다.

‘진보신당’은 국고보조금을 받는 정당이며 과거 민주노동당 당직자 출신들이 포진한 관료 조직으로서는 나름대로의 완결성을 갖는 건실한 조직이다. 이에 반해 새로운 진보정당을 외곽에서 고민하는 분들은 본격적인 정당 경험이 없거나 개인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어 현재의 ‘진보신당’이 아무래도 부담될 수밖에는 없다. 하지만 이분들은 각자 현장과 지역에서 폭넓은 네트워크를 갖고 있으며 이를 중심으로 하는 잠재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다.

이러한 잠재력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진보신당에서부터 함께 식탁을 꾸밀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하며 밥상을 함께 차리기 위한 노력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만약 우리가 차린 밥상에 이들을 위한 수저와 그릇이 준비되어 있지 않고 노회찬 심상정과 당 내부 관료들을 위한 것만이 차려져있다면 ‘재창당’은 결국 형식적으로 될 수밖에 없고 ‘진보의 재구성’의 길은 요원해질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재창당 과정에서는 지난 2월에 했던 형식의 ‘원탁회의’는 지양해야 한다. 원탁회의가 소위 명망가 중심의 경직된 테이블이 된다면 결과적으로는 민주노동당이 추진하는 혁신 재창당보다 못한 수준의 재창당이 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중앙과 부문으로 이원화된 원탁회의를 구성하자.

민주노동당이 혁신 재창당을 하려고 하고 있다. 국회의원 5명을 갖고 있는 민주노동당의 재창당 추진은 분명 위협적일 수 있다. 특히 시민사회에도 나름의 발을 갖고 있는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재창당을 위해 나선다면 민주노동당의 재창당은 우리가 예상한 것보다 더 좋은 모양새를 갖출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기존의 정당이나 운동권 조직이 추구하는 ‘재창당’의 모습은 조직 대표들을 모아놓고 줄서기를 시키는 고전적인 방식일 것이다. 통합민주당이 통합 과정에서 그랬고 진보신당을 준비하는 첫 원탁회의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함께 모인 이유조차도 제대로 공유하지 못한 상태에서 각 조직의 대표급을 모아놓고 책상 위에서 각자의 상황을 이야기하는 전근대적인 문화에서 벗어나지 않고서는 ‘진보의 재구성’을 이야기 할 수 없다.

원탁회의란 무엇인가? 원탁회의의 진정한 취지는 격식을 가리지 않는데서 출발한다. 구성원들에 대해서도 자발적인 참여를 기초로 하고 의견에 있어서도 격식에 구해 받지 않고 말할 수 있게 하는 문화를 만드는데 의미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만 명을 넘어서는 당원을 가진 당 구조의 한계 상 이상적인 형태의 원탁회의는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지금의 방식처럼 원탁회의 참가자를 정하고 논의 할 내용의 수위도 조절하는 형식적인 원탁회의를 진행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재창당을 위한 자발적인 동력을 소실시키지 않고 제대로 된 원탁회의를 구성하는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 3월 12일에 있었던 ‘초록과 진보의 새로운 정당을 위한 집담회’는 이러한 체제를 만드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중앙의 원탁회의는 핵심 구성원으로 운영하되 각 부문과 평당원을 중심으로 다양한 형태의 집담회와 토론회를 조직해서 원탁회의에 제안할 내용과 원탁회의에 진출할 대표자를 정하고 중앙 원탁회의에 전달하는 방식으로 이원화된 원탁회의 체제를 진행하자는 제안을 여러분께 드리고 싶다.

각 부문이나 자발적인 당원들의 모임들은 각자 ‘진보의 재구성’과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토론회’를 열고 밑에서부터 의견을 수렴하면서 제대로 된 원탁회의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을 밟을 수 있다. 아울러 중앙원탁회의는 이들의 대표자에게 문호를 개방하고 보다 다양한 그룹이 참여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도록 하여 형식적인 원탁회의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중앙과 자발적인 부문의 협조체계가 완성되면 네트워크의 폭은 넓어질 것이며 재창당의 그릇은 보다 커질 것이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초록과 진보의 새로운 정당을 위한 네트워크(이하 초록진보네트워크)’는 이러한 고민을 직접 실천에 옮기려고 준비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초록진보네트워크는 중앙의 원탁회의가 명망가들의 탁상공론이 되지 않도록 전 사회적으로 통용될 ‘녹색의제’를 정하고 진보신당이 ‘진보의 재구성’에 걸맞는 정당이 될 수 있도록 견인하는 역할의 네트워크 조직 구성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진행 할 예정이다.

이 과정에서 빼먹지 말아야 할 것은 중앙이건 부문이건 적/녹 구분 없이 ‘진보의 재구성’이라는 목표에 걸맞는 ‘의제’를 만들어나가는 일이다. 특히 노동조합 활동가가 모여서 모인다고 해서 ‘적’이 되는 것이 아니며 환경단체 활동가 출신들이 모여서 모인다고 ‘녹’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대운하 이슈에 갇혀있는 현재 구조에서 한국 사회를 바꾸기 위한 의제를 전면에 제기할 수 있는 논의가 밑에서부터 진행되어야 한다. ‘진보의 재구성’은 새로운 의제와 함께 전면화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우리를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는 학자그룹과 현장 활동가, 평당원들이 함께 모여서 ‘진보의 재구성’의 과정에 동참하게 만드는 중계 역할을 하는 것도 중앙당 원탁회의 몫이다. 밑에서 부터의 원탁회의와 중앙의 원탁회의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가운데 ‘진보신당’이라는 가건물은 서서히 허물어질 것이다.

이제 ‘진보의 재구성의 길’로 모두 모여라!

막상 멍석은 깔았는데 사람들이 모이지 않는다면? 지금의 진보신당이 겪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가 바로 이것이다. 녹색 비례후보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있었지만 결국 무산되었다. 아직까지 시민단체의 정치참여에 대한 두려움은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다.

반면 진보신당의 사람들은 초록이 새로운 브랜드인 것 마냥 열심히 쓰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많은 후보들이 민주노동당과 차별화를 하기 위해 초록 의제를 사용했다. 하지만 급조된 초록 이미지는 전문가들이 보기에 많이 엉성했고 정작 비판을 해야 할 분들은 뒷짐을 지고 있었다. 바로 이번 선거에서 드러난 ‘가건물’이 가진 한계가 그것이다.

이제 더 이상 추한 ‘가건물’이 보기 싫다면 여러분들의 직접적인 참여가 필요하다. 새로운 원탁회의를 만들기 위해서는 관심 있는 모든 분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절실하다.

지난 ‘초록과 진보의 새로운 정당을 위한 집담회’가 남긴 메시지는 아직도 우린 서로에게 많은 ‘차이’를 느끼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인지 집담회 이후 신명나게 엑셀이 밟혀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는 않다. 다가오는 선거 일정은 정당을 견고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제 우리 모두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할 수 있는 새로운 정당을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면 먼저 참여해야 할 것이다. 자신이 속한 조직의 이해관계는 버리고 ‘진보의 재구성’이라는 과정에 동참했으면 한다.

‘진보신당’이라는 가건물을 부시듯 각자가 속한 ‘이해관계’의 허물도 이제 벗어버리자. ‘진보의 재구성’이라는 긴 여정 속에서 과거는 결코 중요한 것이 아닐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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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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