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의 향수가 아니라 그 숙제를 직시하자
        2008년 04월 23일 02:2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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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에 일하던 당에서 <이론과 실천>이라는 제목의 월간지를 창간한 적이 있었다. 그 때 몇 분의 외국 좌파 필자들께 ‘해외자문위원’ 역할을 부탁드렸었다. 엉성한 영어 문장으로 메일 하나 툭 띄웠을 뿐인데, 다들 성의 있는 답장을 보내주었다. ‘살아 숨쉬는’ 국제주의를 실감하는 순간이었다고 할까.

    그 때 그 답신자들 중에 ‘타리크 알리’라는 이름도 있었다. 그는 답장에서 원고료 같은 것 신경 쓰지 말고 자신의 글을 번역해서 실으라고 허락했다. 그러면서 한국에 자신의 책과 자신이 편집자로 일하는 격월간지 <New Left Review(신좌파 평론)>의 글들을 소개할 가능성을 물었다. 진정한 전도사의 자세가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아무튼 이게 벌써 7년 전 이야기다.

    파키스탄 출신 영국 운동가가 쓴 1968년의 회고록

       
     
     

    이번에 그 타리크 알리의 책이 한 권 나왔다. 1968년 세계혁명운동을 정점으로 60년대의 자화상을 담은 『1960년대 자서전 : 열정의 시대 희망을 쏘다』(안효상 옮김, 책과함께). 68년 40주년을 맞는 올해, 68년의 의미를 묻는 책으로는 첫 포문을 연 번역서다.

    사실 68년에 대한 알리의 저작으로는 국내에 이미 다른 책이 소개된 바 있다. 1998년에 68년 30주년을 맞아 알리가 그의 반려 수잔 왓킨스와 함께 쓴 『1968 : 희망의 시절 분노의 나날』(안찬수 외 옮김, 삼인, 2001)이 그 책이다. 『1968』은 1968년 한 해에 걸쳐 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운동과 혁명의 시도들을 1월부터 12월까지의 일지 형식으로 정리했다.

    그런데 본래는 이번에 나온 책이 초판 발행년도는 더 앞선다. 1987년에 68년 20주년을 앞두고 나왔던 것. 하지만 저자는 21세기의 새로운 상황에 대한 숙고를 담아 꽤 긴 분량의 서론을 덧붙였고, 국역본은 이 새 판본을 번역한 것이다. 그래서 결코 20년 전에 초판이 나온 책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타리크 알리는 무슨 68년 전문 집필가 같기도 하다. 평자가 그의 이름을 처음 접한 것도 68년 관련 기사에서였으니까. 고등학교 다닐 때 우연히 아버지가 읽고 놓아둔 <주간 조선>에서 68년 20주년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 주간지의 성격상 기사 내용은 별로 호의적이지 않았다.

    한데 그 기사에서 영국 쪽 취재원으로 나온 이름이 바로 ‘타리크 알리’였다. 처음에는 상당히 의아했다. 영국 학생운동의 지도자였던 사람의 이름이 ‘타리크 알리’라니! 누가 봐도 무슬림 이름이 아닌가?

    그 후에 알리가 글을 쓴 『만화로 보는 트로츠키』(정연복 옮김, 책벌레)를 보고서 트로츠키가 존경할만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신좌파 평론> 편집위원 명단에서 ‘타리크 알리’라는 이름을 다시 발견하기도 했지만, 파키스탄 출신 유학생이 영국 신좌파의 선두에 섰던 사정은 여전히 안개 속이었다. 『근본주의의 충돌』(정철수 옮김, 미토, 2003)같은 그의 다른 저작에 단편적인 언급이 나와 있기는 했지만, 책의 주제가 그게 아니었기에 별로 자세하지는 않았다.

    평자의 이 오랜 궁금증은 『1960년대 자서전』을 보고서야 시원하게 풀렸다. 이 책에서 알리는 파키스탄의 한 좌익 가문에서 태어나 군부 독재에 맞선 학생 시위 때문에 자의반 타의반 영국으로 유학가게 된 사연을 소상히 밝힌다. 그리고 유학 생활의 끝이 귀향이 아니라 숱한 나라들의 입국 금지자 명부에 이름을 올리는 것으로 귀결된 이유도.

    사실 흔한 이력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기이하기만 한 삶도 아니다. 그의 경우는 어쩌면 구 제국과 과거 식민지 사이의 흔하디흔한 인구 이동 중 하나에 불과하며, 그런 이주자가 세계자본주의의 실상에 눈 뜨게 되는 낯설지 않은 사례 중 하나일 따름이다.

    즉, 알리의 젊은 시절의 회고는 결코 그 혼자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그것은 1968년의 폭발을 낳은 세대의 보편적 이야기와 합류한다.

    그 시절의 전 세계적 돌파 지점 – 베트남

    이렇게 68세대의 성장 과정을 저자 자신의 지적, 정치적 편력을 통해 구체적으로 접근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이 이 책의 커다란 미덕이다. 하지만 이것 말고도 이 책에는 68혁명에 대한 통상적 저작들과 구별되는 장점들이 많다.

    그 중에서도 특히 주목할만한 것은 60년대 말의 전 세계적 반란들의 도화선이 무엇이었는지 새삼 분명히 확인해준다는 점이다. 그것은 바로 베트남 전쟁, 즉 베트남의 민족해방혁명이었다.

    레닌은 1917년 10월 혁명을 “자본주의 전선에서의 전 세계적 돌파”라고 불렀다. 제국주의와 전 세계 민중 사이의 전선에서 참호전의 교착 상태를 깬 과감한 돌격이라고 본 것이다. 60년대에 그 ‘전 세계적 돌파’는 베트남 혁명전쟁이었다. 타리크 알리는 이 점을 실감나게 부각시킨다.

    저 가난한 동아시아의 작은 나라가 세계자본주의의 종주국에 맞서 싸워 저렇게 버틸 수 있다면, “그럼 우리도 가능하지 않겠는가?” 스톡홀름 국제 전범 재판소에 참여하고 영국 전역에서 베트남 전쟁 반대 시위를 벌이고 심지어 베트남에 직접 갖다 오기까지 하면서 알리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 이것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그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파리 라탱 구역에서 바리케이드를 쌓으며 100년 전 코뮌을 떠올리던 프랑스 청년들에게도, 세계 최대 규모의 총파업을 성사시킨 1969년 ‘뜨거운 가을’의 이탈리아 노동자들에게도, 1년 전 숨진 체 게바라가 결코 ‘개죽음’을 한 게 아니라고 확신하던 라틴아메리카의 투사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을 사로잡은 것은 “그럼 우리도? 그렇다, 우리도!”라는 분연한 깨달음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특별히 셈해 넣어야 할 또 다른 투쟁의 현장이 있다. 그 해 여름 체코의 프라하가 그곳이다.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를 외치며 스탈린주의 체제에 저항한 프라하의 민중도 68년의 전 세계적 전선의 일부라는 것은 68세대들 사이에서도 그렇게 분명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저자는 그 당시부터 이 점을 놓치지 않았다.

       
    ▲ 1968년 봄, 파리와 프라하
     

    사실은 이것이 알리로 하여금 마오주의자나 정통 공산당 추종자가 아니라 트로츠키주의자가 되게 한 결정적 사건이었다. 맞서 싸워야 할 대상은 서방의 자본주의-제국주의만이 아니었다. ‘사회주의’를 내건 또 다른 비인간적 체제 역시 예외가 될 수 없었다. 우리로 치면 ‘북한’ 문제에 해당할 그 뼈아픈 진실에 타리크 알리와 그의 동지들은 눈 감지 않았던 것이다. 실제 이 책에는 북한에 대한 비판적 언급들이 나온다.

    68년의 어두운 교훈도 잊지 말자

    저자가 눈 감지 않는 게 그것만은 아니다. 알리는 68세대의 오류들도 가감 없이 지적한다. 특히 ‘조그만’ 스탈린주의를 반복하면서 운동을 파편화하고 수많은 게토들을 만들었던 극좌 정파들의 행태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그 중 한 대목을 직접 인용해보자.

    “그 후 그들[미국의 트로츠키주의 정파인 ‘사회주의노동자당’]은 모든 면에서 [그들이-인용자] 싸우고 있던 스탈린주의와 실질적으로 구별되지 않는 당 내 규율을 채용할 것이었다. 조그만 조직(하나의 인쇄소, 10여 명의 전업 활동가, 하나의 건물)에 대한 통제로 권력과 권위를 얻은 남자들(그들은 주로 남자들이었고, 이런 권력과 권위를 남용했다)에 의해 이런 방식으로 수천 명의 청년 이상주의자들의 희망과 열망이 사라지고 분쇄되었다. 그것은 치명적인 바이러스였다.

    이 모든 것에 대한 유일한 해독제는 대중 행동이었지만, 운동이 후퇴할 때 질병은 급속히 확산되며, 상대적으로 면역이 된 조직(내가 속했던 곳도 그 중 하나다)조차 약간이나마 감염되었다.” – 520~521쪽

    알리 자신도 엇비슷한 극좌 정파(제4인터내셔널 영국 지부)에 속해 있었다. 당시 그는 “1970년대에 우리는 영국에서 소비에트의 부활을 목격할 것”이라고 호언장담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혹은 70년대가 그 시대는 아니었다.

    다만 알리는 누구보다 빨리 68세대의 한계와 단점을 직시하고 방향전환을 촉구했다. 70년대 말부터 그는 대중정당의 건설을 주장했다. 그리고 그 연장선에서, 토니 벤 하원의원을 중심으로 한 당시 영국 노동당 내 좌파 운동에 합류했다. 『1960년대 자서전』의 마지막 부분에도 이러한 문제의식이 잘 드러나 있다.

    “프랑스, 이탈리아, 포르투갈에서 결여되어 있었던 것은 투쟁하고 있는 수백만의 노동자들에게 사회민주주의의 실상을 보여주고 사회 질서를 내부로부터 해체하면서 대중의 열기를 파악하고 반영할 수 있는 잘 준비된 목표였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사회주의 국가로 한 번에 도약하는 것은 선진 자본주의 사회의 운동으로는 불가능했다.

    레닌은 당을 그가 ‘전제의 그늘과 헌병의 지배’라고 묘사한 특유의 러시아적 상황에서 만들었다. 차르의 러시아가 아니라 우리가 활동하는 사회를 반영하는 새로운 유형의 당을 만드는 데, 이탈리아 극좌파의 부분적인 예외를 제외하면 좌파 가운데 어느 그룹도 성공하지 못했다.” – 536~537쪽

    우리가 68혁명의 기억들로부터 길어내야 할 것은 그 시대의 영광에 대한 향수가 아니다. 오히려 그 시대가 던져준 숙제, 즉 “형식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리고 소비대중문화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다수 대중의 지지와 참여에 따른 사회 혁명은 과연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물음을 직시하는 게 더 중요한 것 아닐까?

    이 쉽지 않은 결론으로 1960년대의 자서전을 끝내길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타리크 알리는 68년의 가장 정직하고 진지한 기록자임에 분명하다. 그리고 이 『1960년대 자서전』은 우리 시대의 ‘돌파’는 과연 어디에서 시작될 것인지 고민하는 모든 이들에게 필독서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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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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