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미국까지 가서 ‘똥볼’ 차다
        2008년 04월 23일 11:42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보수 진영의 능력을 봤을 때 대한민국의 미래가 암담하다. 지난 10년간 절치부심했다는 보수 진영의 능력이 그것 밖에 안되나? 지난 대선의 참패는 진보 진영이 절실하게 반성하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상대방이 처음부터 ‘똥볼’을 너무 차니까 마치 이 쪽이 정당성을 얻은 것 같은 분위기…”

    지난 2월 대통령직 인수위를 평가하는 한 토론회에서 서동만 교수(상지대, 전 국정원 기조실장)의 지적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의 ‘똥볼 차기’는 남의 나라까지 가서도 계속되었다.

    국가주의의 포로가 되어 있다는 비판을 받을지 모르지만, 자국의 대통령이 다른 나라와의 외교에서 최소한의 ‘국익’만큼은 지켜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는 것은 숨길 수 없는 본심이다.

    그러나, 이번 이명박 대통령의 방미 정상외교는 아무리 좋게 평가를 해주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이미 ‘캠프데이비드 숙박료’, ‘로라 부시가 직접 챙긴 만찬의 대가’, ‘소탐대실’, ‘합의문 없이 공동기자회견으로 끝난 정상회담’ 등등 비판이 많았기 때문에 더 이상 시시콜콜하게 지적하고 싶지는 않다.

       
    ▲ 사진=청와대
     

    미국까지 가서 ‘똥볼’을 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정상회담이 ‘준 것은 확실한데, 받을 것은 불확실한’ 결과를 낳았다는 점은 분명히 지적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이것은 현 정부가 그토록 강조하는 ‘실용’과 직결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와 여당, <조선>, <동아> 등이 정상회담의 ‘가시적인 성과’로 드는 대표적인 것이 첫째, 비자면제 양해각서 체결과 한미FTA 연내 비준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약속을 한 것. 둘째, 주한미군 유지를 통한 든든한 안보의 확보이다.

    우선, 비자면제 양해각서 체결과 한미FTA 연내 비준과 관련된 것이다. 한미FTA와 관련해서는 그동안 워낙에 많은 논쟁이 있었기 때문에 접어두자. 그러나, 미국 국내에서 한미FTA가 연내 비준되는 것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는 현실적 여건은 지적해 둘 필요가 있다.

    게다가, 최대 협상 지렛대라고 할 수 있는 쇠고기 개방을 ‘가져다 바친’ 꼴이 되어 버렸다. 국민의 건강권과 생명권을 대가로 지불했다는 점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명박 정부는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대가로 지불하는 문서에 서명하면서도 불투명한 약속만을 받아 온 것이다. 협상의 ABC도 모르는 행태다.

    비자면제 양해각서 체결도 마찬가지다. 설사 비자면제가 한미 교류의 증진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전제를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비자면제를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처리해야 할 일이 조건으로 붙어 있다. 바로 생체인식기능이 부착된 전자여권 도입이다.

    그러나, 국회 법안 상정 과정에서도 전자여권도입은 인권침해와 개인정보유출 등 논란이 있었다. 특히, 지문을 포함하는 문제는 최대의 논란거리였다. 외교통상부는 지문정보를 내장하는 것은 슬그머니 법안에서 빼버렸지만(<서울신문>, 2월5일자), 연내 비자면제 추진을 위해 법안을 졸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는 비난을 면하기는 어렵게 되었다.

    우리가 전제조건을 충족시킨다고 할지라도 연내 비자면제 방미가 가능할 지는 불확실하다. 미국 측이 준비해야 하는 입국자 확인시스템 설치가 지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2월28일 미 의회에 국토안보부가 제출한 보고서에서 확인되고 있는 부분이다(<내일신문>, 3월12일자). 그야말로 떡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혼자서 김칫국만 열심히 들이키고 있는 상황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어쩌면, 대통령에 당선되어 처음으로 행한 대미 특사 외교에서 “한미동맹을 강화하겠습니다”는, 듣도 보도 못한 ‘친서’를 전달하는 현 정권에 협상의 ABC를 요구하는 것 자체가 무리일지도 모를 일이다.

    다음으로는 주한미군의 유지 문제이다. 이미 우리 국민들의 대다수가 알고 있듯이, 미군의 감축은 미국의 세계전략에 따른 사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태여 우리가 바짓가랑이를 붙들어 눌러 앉히고, 게다가 막대한 대가까지 제공하겠다는 것은 이명박 정부의 ‘실용’에도 맞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중장기적 관점에서 냉전적인 쌍무적 동맹의 틀에서 벗어난 한미관계의 정상화, 주한미군의 단계적 철수,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과정 속에서 한미 군사동맹의 해소까지도 시야에 두는 한반도의 미래전략을 세워나가야 하는 시점에서, 막대한 비용을 지불해 가면서 주한미군을 눌러 앉히는 것이 타당한지 근본부터 다시 질문해봐야 할 것이다.

    그 많던 ‘실용’은 누가 다 먹어버렸을까

    특히, 한국군의 대북억지력 증대와 주한미군의 신속기동군화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방위비 분담금 압력을 감수하면서까지 주한미군의 ‘머릿수’를 유지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정부는 해명해야 한다.

    이번 정상회담 과정에서 구체적인 얘기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이미 미국은 방위비 분담금을 50대50수준으로 분담할 것을 노골적으로 요구해오고 있다. 그것이야말로 이중삼중의 비용 지불인 것이다.

    바로 이 부분은 이명박 정부가 주창하는 ‘21세기 전략동맹’의 문제점과도 직결되어 있다. 현재미국의 ‘세계경영전략’의 핵심은, 단적으로 말해 헤게모니 유지에 드는 인적, 물적 비용을 동맹국들에게 전가하는 것이다.

    이것은 영국이나 나토동맹국들, 일본과의 관계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21세기 전략동맹’ 개념은 그와 같은 미국의 세계 전략에 ‘무비판적으로’ 편승(bandwagoning)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명박 정부의 외교안보라인에 포진하고 있는 인사들의 면면을 본다면, ‘편승도 하나의 국가전략이다’라고 주장할 듯하다. 백보양보해서 편승을 택한다고 하더라도, 그 편승에 따른 이해득실은 분명히 따져봐야 하는 것이 그러한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의 기본이다. 그러나, 과연 이명박 정부의 ‘21세기 전략동맹’ 개념의 손익계산서가 플러스인가라는 점이다.

    ‘21세기 전략동맹’이, 그 표현만 바뀌었지 전임 노무현 정부의 ‘포괄동맹론’과 별반 다를 바 없다는 점은 차지하고서라도, 찬찬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물론, 노무현 정부의 그것과 별반 다를 바 없다는 점이 문제의 심각성이 덜 하다든지, 이명박 정부 대미 정책의 위험성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청와대와 정부에 따르면, 21세기 전략동맹의 핵심은 가치동맹, 신뢰동맹, 평화구축동맹 세 축으로 이루어져 있다.

    가치동맹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가치를 공유하고” 있으며 “동맹은 이런 가치와 비전을 공유할 때 더욱 힘을 발휘 한다”는 것이다. 신뢰동맹은 “양국이 군사, 정치외교,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에서 상호 이익을 공유함으로써 구축하는 동맹을 의미 한다.” 평화구축동맹은 “한미동맹을 통해 국제 평화에 대한 기여도를 높이겠다”는 것이다.

       
    ▲ 사진=청와대
     

    겉으로만 보면, 진부할 정도로 그럴싸한 말들이다. 우선, 가치동맹이라는 말은 이미 미국의 부시행정부가 사용해 온 말이다. 미국이 가치동맹의 개념을 고안해 낸 것은, 냉전시기 공동의 적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로서의 동맹 개념이 동요하기 시작한 데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다.

    빅터 차(부시행정부 전 NSC 아시아담당보좌관)에 의하면, 가치동맹은 동맹의 존립 근거를 ‘공동의 적’에서 ‘공동의 이념적 기반(ideational grounding)’으로 전환시킴으로써 동맹의 지속을 담보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미국이 추구하는 가치동맹은 군사적 요소가 중심에 놓여 있고, 오히려 더욱 강화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군사변환이 동맹재편의 강력한 추동력이었다는 사실은 이것을 방증한다. 실정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가치라는 말을 앞세우는 가치동맹의 논리는 전형적인 ‘알리바이 이론(alibi theory)’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가치동맹에서 내세우는 가치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점에서 가치동맹론은 냉전시대의 진영논리로 회귀할 위험성이 있다. 동맹국들끼리의 가치의 공유를 강조하는 것은, 그 가치를 공유하지 않는 행위자들과의 차별화를 통한 ‘정체성의 정치’를 강화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가치를 둘러싼 공방, 특히 가치의 해석 문제를 두고 불필요한 갈등을 유발할 수도 있다.

    21세기 전략동맹, 2mb형 ‘탈아입구론’(?)

    예컨대,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식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가치에 두말 않고 동의할 수 있는 국가는 한국과 일본 뿐이다. 달리 말해서, 중국, 러시아, 북한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배제’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냉전시기의 ‘한미일 남방 삼각동맹’ 복원을 위한 근거 만들기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부시 대통령은 캠프 데이비드에서 개최된 공동기자회견에서 중국과의 관계를 언급하면서 “중국 문제가 한미 양국이 건설적인 방식으로 협력할 수 있는 기회임을 인식하는 것이 21세기 동맹관계에서 대단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것은 한미 간의 전략동맹이 중국을 의식하고 견제하는 기능을 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함축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2005년 경주 한미정상회담(노무현-부시)과 미국의 동맹이론을 ‘베껴 쓰기’ 하면서 거기까지 생각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한국이 중국과 러시아 등을 배제하는 논리를 구사하게 된 것이다.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지정학적 환경을 고려할 때, 과연 합리적인 선택인지 재고해 봐야 한다.

    또한, 중국과 미국, 중국과 미일 양국, 중일, 중러, 미러, 중러와 미일 등 복잡하게 얽혀 있는 동북아시아의 정치구도 속에서 한국이 ‘한-미-일 가치동맹 라인’을 구축하는 것이 스스로 외교적 입지를 축소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의문이다.

    동북아시아의 신냉전 구도 도래와 같은 단순 예측을 얘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동북아시아 강대국들 사이에서는 협력과 갈등의 다양한 요소들이 교차하고 있다. 그 속에서 한국이 취해야 할 스스로의 외교적 입지, 생존전략의 확보, 더 나아가서는 바람직한 역할에 대한 것이다.

    이미 그 전초전은 지난 2005년 12월 ‘동아시아정상회의’에서 있었다. 동아시아 공동체의 성격과 내용을 둘러싼 논의 과정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인권을 공유하는 동아시아 공동체를 주장하는 일본과 그에 반발하는 중국이 정면으로 충돌하면서 동아시아 공동체 논의는 요원해진 바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19세기-20세기 초엽에 일본의 비참한 말로를 결과했던 탈아입구론(脫亞入歐美論)을, 21세기에 한국이 국가전략으로 택하고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2메가바이트적 사고의 한계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평화구축동맹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글로벌 코리아와 글로벌 동맹을 서로 연결지어 홍보하고 있다. 한국이 국제평화에 기여하는 것을 누가 반대하겠는가? 그러나, 평화구축동맹은 동맹의 역할을 지역적 차원으로, 더 나아가 글로벌한 차원으로 확대해 가겠다는 것이다.

    이는 ‘전략적 유연성’으로 대변되는 한미동맹의 재편을 기정사실화하는 것이다. 또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위반하는 것이기도 하다. 달리 표현하면, 한국이 글로벌한 차원에서 미국 세계전략과 대테러전쟁의 하위파트너로 기능하겠다는 선언에 다름 아니다.

    이미, PKO파병, 아프간 재파병, 미사일방어(MD),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 방위비 분담금 문제 등 뜨거운 이슈들이 부상해 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이러한 민감한 문제들은 대부분 모호하게 남겨두었다. 그러나, 전후 돌아가는 사정을 볼 때 이명박 정부가 하나둘 내어주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기우만은 아닐 듯 하다. 벌써, 아프간에 대한 ‘경찰병력 파견’을 결정한 상황이다.

    짝사랑의 결과는 …

    진짜 문제들은 지금부터 불거져 나오기 시작할 것이다. 전략동맹의 이름으로 한국이 지불해야 할 대가들이 속속 드러나게 될 것이다. 국제적으로 비난받고 있는 미국의 대테러전쟁의 하위파트너로 자리매김함으로써, 국제적인 이미지를 실추하게 될 것이다.

    영국의 토니블레어가 ‘부시의 푸들’로 불렸던 것을 상기해보자. 또한, 한국군의 만성적인 해외 파병을 야기할 것이며, 그에 따른 인적, 재정적 부담은 온전히 국민들에게 돌아오게 될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한미관계에서 이러한 길로 접어들고 있는 것은 지난 정부들, 특히 ‘민주정부 10년’을 ‘좌파정권 10년에 의한 한미동맹 훼손 10년과 대북퍼주기 10년’으로 평가하는 이념적 폐쇄회로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한미관계가 새롭게 정립될 수밖에 없었던 탈냉전, 남북관계의 진전, 한국의 민주화 진전 등에 대한 객관적 평가가 없는, ‘잘못된 평가’에 기반 한 ‘잘못된 해법’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북핵문제와 관련해서도 이명박 정부의 입장은 ‘미국 따라하기 정책’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었다. 북핵문제와 관련해서는 북미대화와 6자회담을 지켜보겠다는 것 이상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다만, 그 잘못된 해법이 의도하지 않은 ‘긍정적(?)’ 결과를 낳은 것은 대북정책이 방미 중에 그래도 유연성의 ‘징후’를 보였다는 점이다.

    일본의 고이즈미 전 총리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생가를 방문해, 엘비스의 노래를 부르면서 우스꽝스런 모습을 보이는 ‘생쑈’를 하면서 최소한 미국 언론의 주목은 끌었다. 그러나, 이번 이명박 정부의 방미는 미국과 서방 언론의 주목도 별로 끌지 못했다.

    ‘21세기 전략동맹’에 집착하는 이명박 정부를 향해, 임기가 1년밖에 남지 않은 부시행정부는 최대한 이익을 취하려고 할 것이다. 7월 부시의 답방까지 진행될 각종 실무협의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한, ‘미국 따라하기’가 외교의 기조에 다름없는 이명박 정부는 미국의 신정권이 출범하면 또다시 거기에 코드를 맞추기 위해 분주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자국의 헤게모니 유지를 위해 동맹국의 비용분담과 희생을 요구하는 기조는 공화당이든, 민주당이든 다름이 없다.

    우리는 이번 한미정상회담을 계기로 향후 한미관계 재정립과 한반도 미래에 대한 대안적 비전 제시를 둘러싼 담론 투쟁을 준비해 가야 할지도 모른다. 특히, 21세기 전략동맹 개념이 한미관계의 진로를 규정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러하다.

    필자소개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