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사랑 정부, 땅을 사랑한 게 죈가요?
    2008년 04월 22일 01:2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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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의 소재인 ‘환경부장관 내정자’, 박은경씨는 검증 과정에서 중도 사퇴하였습니다. 아래 글이 포함된 단행본이 쓰여진 시점에 맞추어 ‘환경부장관 내정자’라는 표현을 그대로 둡니다. – 편집자 주

환경부 장관 내정자가 농지를 불법적으로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해명한답시고 한 말이 바로 “땅을 사랑한다”는 것이었다. 환경부 장관 내정자가 땅 투기 의혹을 받으면서도 땅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고 얘기한 것은 자본주의적인 욕망의 맥락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는 개발주의, 성장주의를 모토로 한 자본주의적 진보의 노선을 따라 토건형 신자유주의를 만들어내겠다는 것을 기획하고 있다. 국토를 개발하는데 무슨 이유가 있겠냐고 말하겠지만 땅을 개발하면 당연히 환경이 파괴되고 그 개발의 후유증은 고스란히 미래세대의 몫이 된다.

국토를 개발해서 시장가치를 만들어내겠다는 발상에는 건설회사의 이해관계도 큰 몫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이 ‘땅사랑’의 마음은 농부가 가지고 있는 땅사랑의 마음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농부는 땅에 생명을 순환시켜 가치를 생산하지만 땅 부자들은 땅을 개발하여 가치를 생산하려고 한다.

우리 집도 사실 어릴 적에는 땅이 조금 있었다. 우리 땅이라고 찾아가서 캠핑을 하기도 했다. 우리 땅에서 어떤 농부들이 고구마 농사며 옥수수 농사를 짓고 있었는데 수확을 할 때면 고구마, 옥수수를 부대자루에 담아주고는 했다. 그래서 어린 마음에 으쓱하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땅의 진정한 주인은 그 농부들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흙은 먹을 수 있다

땅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땅은 아스팔트와 같이 생명이 살 수 없는 환경이 아니라 무기질과 유기질이 배합되어 수많은 박테리아, 곤충, 지렁이가 살고 숨 쉬고 있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토지』라는 소설에 나오듯 기근에 시달리던 농부들이 흙을 끓여서 먹었다는 얘기도 가능한 것이다. 땅은 수 만 년 동안의 순환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땅의 역사는 백년을 채 살지 못하는 인간보다 유구하며 그 속에서 많은 생명들을 살려냈다. 농부가 땅을 사랑하는 마음은 생명을 일구고 순환시켜내는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선순환적인 활동과 욕망은 지구를 살리고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욕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땅 위에 리조트다, 콘도다 하면서 일단 개발되고 나면 그것의 시장가치는 높아지겠지만 생명가치는 매우 낮아진다고 할 수 있다.

   
 
 

이 땅사랑의 욕망은 끊임없이 성공의 신화로 달려가는, 증대하는 욕망을 만드는 자본주의적 욕망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모든 욕망이 자본주의적인 것은 아니다. 성 에너지를 발산하는 욕망은 끊임없이 생성되면서 생명과 활력을 약속하는 선순환적 욕망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술욕망은 꿈 가치를 만들어내면서 두뇌에 활력과 자극을 주는 선순환적 욕망이다. 이러한 욕망들은 증대되고 강렬도가 높아져도 환경을 파괴하거나 생명을 죽이는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땅사랑의 욕망은 매우 다른 욕망이다. 도착적인 욕망이며 자본의 영원성에 대한 메피스토펠레스의 약속에 넘어간 파우스트처럼 생명을 볼모로 가치를 생산하려는 욕망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사람이 환경부 장관을 한다는 것은 매우 아이러니한 일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생명을 죽이는 욕망

이것은 이명박 정부가 하나의 독단적인 시장가치의 욕망의 구조 속에서 사회시스템을 설계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명박 정부는 대운하를 통해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땅사랑의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희망의 태양이 되고 있다.

그러면서도 진정한 땅사랑의 욕망을 갖고 있는 농민들이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은 매우 취약해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진정 땅을 사랑한다면 땅의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을 바라볼 수 있는 통찰력이 필요하다. 땅에 흙 한줌, 풀 한포기가 되기 위해서 자연은 어떤 순환을 하였고 이 땅에서 살고 있는 지렁이들은 어떤 욕망 속에서 살고 있는가라는 것에 대해서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자본주의 소유권은 매우 도착적인 욕망을 유발한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이 소유한 땅에 대해서 무소불위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착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개발주의와 성장주의가 마치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근본적인 것으로 생각될 것이다.

그러나 땅을 소유한다고 해서, 지도상으로 구획지은 땅에 등기부등본을 했다 해서 진정으로 땅을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변태성욕의 행위양식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 물론 관음증, 노출증, 사도-마조흐, 페티시즘 등 변태성욕의 근원에는 도착적 욕망이 발현된다.

진짜 변태성욕이라면 훨씬 나은 결과를 가져다줄지 모른다. 적어도 변태성욕자들은 자연을 파괴하거나 환경을 훼손하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땅사랑의 마음이 갖고 있는 변태성욕적 도착은 세상을 파괴하면서 쾌감을 느끼고 자연이 자신이 생각한 대로 인공의 것으로 바뀔 때 자신도 영원할 수 있다는 판타지에 사로잡히는 데 문제가 있다.

변태성욕은 파괴하지 않는다

이 사람들도 땅에 묻혀서 아주 작은 양의 흙의 부산물이 될 것이다. 욕망의 순환과 자연의 순환의 질서를 거스르는 이러한 자본주의적 욕망덩어리는 암 덩어리와 마찬가지로 스스로 자라서 증식하고 가치를 증대시키는 부분의 욕망이라고 할 수 있다.

암은 자기 증식하는 자본의 속성의 비유로 많이 쓰여 왔지만 땅사랑의 욕망과 같은 암 덩어리는 지도를 펼쳐 놓고 자위를 하는 매우 희한한 변태성욕적 암 덩어리로 분류될 수 있다. 물론 지도 위에서 자위행위를 하든 신문 위에서 자위행위를 하든 그것을 상관할 바는 아니겠지만 그 자위행위를 현실화시키려는 데 문제가 있다.

즉 지도 위에서 자위하던 땅 사랑 졸부들이 콘도, 리조트, 골프장이 만들어지는 것을 보면서 자위하겠다고 나서면 문제는 심각해지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땅사랑 장관이 환경부장관을 한다는 것은 환경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생각이 어떤 것인가를 여실히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가 정말 땅을 사랑하는 정부라면 진정한 땅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농부들의 욕망에 대해서 생각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욕망을 순환시키고 생명을 순환시키는 모든 행위에 나서는 것은 매우 유쾌하며 생태계를 살리고 인간을 살리고 욕망을 가진 풀, 꽃, 돌, 새, 나무를 살리는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대안적 욕망들이 숨쉴 수 있는 새로운 욕망의 정치가, 기성정치인들의 변태적인 자본주의적 도착의 욕망을 대체할 수 있도록 누군가가 진정한 땅사랑이 무엇인가를 말해야 할 시점이다. 그 일에 욕망과 생명을 순환시키는 농부들이 나서서 발언할 때가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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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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