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타운, 과연 속았을까?
        2008년 04월 20일 09:1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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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몇 글에서 사람들이 뉴타운 따위 부동산에 열광하는 것이 한국 자본주의에서 살아남고자 하는 ‘자구 노력’이고, 돈벌이 되는 데 몰리는 ‘합리적 경제행위’라 썼었다. 또, 정치를 이용해 한몫 잡고자 하는 ‘투기동맹’이라고도 썼다. 다음으로 넘어가 보자.

       
      ▲총선 기간 중인 지난 4월 5일 은평 뉴타운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사진=청와대 홈페이지)
     

    “총선 때 국민이 ‘네다바이’ 당했다는 느낌이 퍼져 있는 것 같다. … 뉴타운만 하더라도,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만, 한마디로 뉴타운 공약 문제는 가난한 국민을 속였다는 데 문제가 있다. 집 때문에 서러워하고 어려운 사정에 있는 서민들에게 뉴타운 만들어주겠다, 약속 받았다, 이렇게 해서 표를 얻고는 나몰라라 하는. 집문제 갖고 가난한 서민들을 속였다.

    그리고 또 중요한 것은 속였다는, 허위사실 유포는 당선 무효에 해당하는 중죄에 해당하는데, 이미 검찰에서 일부 당선자 수사 착수했다는 보도 있지만 철저한 수사 촉구하고 특히 해당 당선자, 한나라당, 서울시장, 국민을 상대로 해서 정말로 참다운 반성과 진실된 고백이 있어야 할 것이다.” – 손학규, 통합민주당 27차 최고위원 회의, 2008 4. 18

    ‘네다바이 당했다’라거나 ‘속았다’는 진술은 피해자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민주당은 뉴타운 따위 헛공약을 내걸지 않은 깨끗한 당이란 말인가? 그래서 졌단 말인가?

    민주당이 속았다고?

    물론 그렇지 않다. 정동영, 김근태, 유인태, 김희선 등 민주당의 대표적 정치인 대부분이 뉴타운을 공약했었다. 추미애, 최규식 등 민주당 서울 당선자 일곱 명 전원이 뉴타운을 공약했으므로, 당선자 40명 중 29명이 뉴타운을 공약한 한나라당보다 더 재미를 본 셈이다.

    사기면 사기지, 한나라당의 성공한 사기, 민주당의 실패한 사기, 따질 일이 아니다. 민주당과 손학규에게 필요한 ‘참다운 반성’은 왜 같이 사기 쳤으면서도 유독 민주당만이 국민들에게 믿음을 주지 못했을까 하는 점이다.

    “선거 과정에서 뉴타운 공약에 들떠 있던 지역 주민들은 ‘속았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서울 노원구 상계5동에 사는 이아무개(57)씨는 15일 <한겨레> 기자와 만나 ‘주민들이 뉴타운 된다고 해서 들떠 있다가 오세훈 시장 발언 뒤 의기소침해졌다’며 ‘주민들끼리 만나면 ‘속았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 「주민들 “속았다” 부글」, <한겨레>, 2008. 4. 16

    물론, 분위기에 휩쓸려 부화뇌동한 유권자들도 적지 않겠지만, 뉴타운 같은 특정 물건에 ‘사업 투자’한 유권자들이 정보가 부족하여 속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자신이 찍는 후보의 전력에 대해서는 몰라도, 주가 시세나 부동산 동향에 대해서는 정치인들보다 더 잘 알고 있는 게 요즘 사람들이지 않은가.

    현 시점에서 그리고 당분간 뉴타운 추가 지정 계획이 없다는 사실은 오세훈 시장 발언 이전과 이후에 전혀 다름이 없고, 그런 사실은 대부분의 유권자들이 익히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왜 유권자들은 뉴타운에 ‘투자’했을까?

    동업자끼리의 질책

    그들이 믿은 것은 단 하나, 박정희 때부터 노무현 때까지 부동산 정책은 객관적 행정이 아니라 주관적 정치에 의해서 결정돼왔다는 경험적 진실이었고, 그에 따라 ‘투기’한 것이다. 따라서 최근의 반발이라는 것은 ‘왜 속였냐?’는 문책이 아니라, ‘말 바꾸지 말라!’는 동업자끼리의 질책에 가깝다. 동업에는 뒷말이 나오는 법이니까. 

    이제 뉴타운 물 건너갔다는 둥의 이야기도 지나친 속단이다. 그것이 옳든 그르든, 그 정책의 실현 여부에 이익을 건 사람들의 동기가 사라지지 않았다는 점은 서울 전역의 뉴타운화가 여전히 진행 중임을 말한다.

    재선을 노리는 한나라당 의원들은 ‘사기꾼’이라는 낙인을 피하려 할 것이고, 추가 계획 없다는 한 마디에 지지도가 3.6%P나 하락한 오세훈은 대권 도전의 장애물을 없애려 들 것이다. 천정부지로 오른 집값에 달콤한 꿈을 꾸었던 주민들은 언론의 부추김 그대로 ‘민란’을 불사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토건 자본이 이 호기를 놓칠 리 없다.

    그래서, 배신한 공범 손학규의 ‘사기’라는 말보다는 확신범 정몽준의 ‘선견지명’이라는 말이 더 솔직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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