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왜 영어몰입교육에 열광하나?
    2008년 04월 17일 05:0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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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인수위에서는 “영어만 잘 하면 군대를 안가도 된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군대 대신 영어교육을 담당하는 공익요원으로 선발하겠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청년들에게 영어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서 선전포고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 파격적인 발상에는 세계화, 국제화, 지구화의 시대에 영어는 이제 필수적인 능력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나는 비행기 타고 가본 곳은 제주도뿐이고 길 가는 외국인이 길을 물으면 손짓발짓으로 길을 알려주곤 하는 사람이다. 중요한 것은 ‘영어를 잘 사용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것이다. 그것은 한국이라는 영토적 공간에서 벗어나 국제적 시각을 갖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잘 들여다보면 그 속에는 하나의 미묘한 욕망의 흐름이 존재한다. 영어를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사람만이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자격을 갖게 될 것이라는, 배운 자들만이 대우받게 될 것이라는 전쟁선포가 이 속에는 담겨 있다.

한 시대에 주류언어는 그 시대의 문화, 습성, 삶의 형태에 기반하고 있다. 언어는 말글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몸짓과 욕망의 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다수자들의 표준적인 주류 언어가 생기면 소수자들의 비주류 언어도 존재한다.

   
▲ 새벽 다섯시, 모닥불 옆에서 백인 고용주를 기다리는 노스캐롤라이나의 일용 노동자들. 이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영어’와는 다른 언어를 쓴다.
 

한문에 탄압받았던 한글

이제 한글은 다수자들의 언어에서도 변방으로 밀리고 있다. 곳곳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어학학원의 기본적인 골격은 바로 영어로부터 시작된다. 영어만이 절대선이라는 생각은 절대적인 권력과 가치기준을 갖고 있는 강대국인 미국의 문화와 가치, 습성만이 최고라는 생각을 의미하는 것이다.

애초부터 한글은 주류언어와의 대결로부터 시작했다. 중국을 모국으로 생각하는 사대주의적 선비들만이 한문을 읽고 쓸 줄 알던 시절, 서민들도 언어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세종대왕의 깊은 뜻에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한글이었다. 유교사대주의 세력의 주류언어에 대한 비주류 소수언어로 시작된 것이 창제 당시의 우리 한글이었다.

그런 굴곡의 역사를 거치고 주류언어로서 언어적 생활의 기본골간을 형성하고 있는 한글이 이제 영어교육 열풍이라는 욕망의 지도 앞에서는 비주류 소수언어로 전복될 위기에 놓여 있다.

이명박 정부의 친미적인 발상이 이런 현상을 만들었다고 치부하는 것은 이 현상의 원인을 너무 단순화하는 것이다. 물론 그런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영어를 상용화하겠다는 발상의 저변에는, 너도 나도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역군으로 일할 준비가 되어 있는 전사로 동원될 준비가 되어 있으라는 전시준비태세와 같은 것이 깔려있다고 할 수 있다.

또 이명박 정부는 인수위 시절 고등학교 교육을 전부 영어수업으로 하겠다는 선포를 한 바 있다. 물론 각급단체들의 반발에 없던 일이 되기는 했지만 영어가 이 시대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를 가감 없이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같은 영어라고 다 영어가 아니다. 내가 알기로는 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의 식민지였던 나라들이 사용하는 영어와 미국 내부에서 게토지역에서 주변부를 떠도는 흑인들의 영어는 완전히 주류영어에서 배제된다.

미국 내부의 흑인영어를 연구하는 한 친구를 아는데,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흑인영어를 사용하는 것을 눈치 채면 깡패나 양아치, 히피, 부랑아를 보듯이 한다고 한다. 이 흑인영어를 널리 보급하는 것은, 영어 광풍이 불고 있는 한국의 주류에 편입되고 싶어 하는 욕망에 대한 반역이라고 할 수 있다.

남들 따라 멋모르고 웃다

물론 흑인영어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내뱉는 욕설과 비밀스럽게 의사소통을 하려는 비어, 상대방이 알지 못하게 의사를 전달하는 은어로 구성되어 있다. 영어몰입교육이다 뭐다 하며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총동원령을 내리다 보면 어느 시점에서는 한글이 흑인영어와 같이 주변언어의 취급을 받을 때도 찾아올지도 모른다.

그것은 우려만은 아니다. 대학 때 영어원어 강의 수업에 들어가서 나는 한 시간 동안 정말 영어 못하는 사람은 얼마나 왕따를 당할 수밖에 없는지를 체감하였다. 문제는 사람들이 무슨 말을 들으면 와하하 웃는데 나는 멋도 모르고 따라 웃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슬픈 시간이었던 것 같다. 이 시간 동안은 백인들 틈에 낀 흑인이 된 것 같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힙합과 랩에서 들리는 흑인영어의 알 수 없는 리듬에 매료되어서 흑인영어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보통 흑인영어를 구사하면 범죄자고 아시아 영어를 구사하면 이주노동자나 창부로 취급받는다고 하지만 주류 영어에 대한 반역적인 의미를 갖는다는 점이 맘에 들었다.

정확히 말해 영어교육 열풍에서 교육받고자 하는 언어는 미국의 주류 백인, 남성들의 언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한자를 모르면 명함도 내밀지 못하던 조선시대와 마찬가지로 주류영어를 모르면 기본소양이 안 되어있는 것으로 보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아파트, 주식, 자가용, 영어

영어 광풍의 욕망에는 국제적인 주류로 언어적으로나마 편입되고 싶은 강렬한 욕망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주류, 정상인, 다수자를 욕망하는 것이며 소수자들을 의사소통의 주체로 간주하지 않겠다는 의도를 감추지 않는다.

   
 
 

그러나 이 영어교육의 욕망의 배후에는 이 무한경쟁 속에서 정상적으로 살아남고자 하는 생존의 욕구마저도 감지된다. 물론 정상적이라는 의미는 아파트도 갖고 있고, 주식도 갖고 있고, 자동차도 굴리고, 외국인과 자유자재로 의사소통할 정도의 생활수준과 삶의 형태를 의미한다.

이러한 정상성 속에는 말할 수 없는 바보, 광인, 정신지체인, 부랑인, 노숙자 등의 주체는 빠져 있으며 소수자, 가난한 자, 맨 몸뚱아리로 살아가는 자라는 주체도 누락되어 있다. 즉 이 욕망에는 자본주의는 영원히 성장하고, 발전하리라는 원대한 장밋빛 꿈이 숨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흑인영어처럼 존재하는 사투리 방언들이 깃들어 있는 한글 중에서도 소수자 언어가 맘에 든다. 그 속에야 말로 낮은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욕망의 숨결이 살아 움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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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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