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저 죄없는 머리칼만 또 자릅니다"
        2008년 04월 16일 10:4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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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지 여러분!
    이제 저는 또 삭발을 합니다. 흔하고 흔한 것이 삭발이고 단식인데 무에 그리 대단할 것입니까? 차라리 총칼을 들고 저 칠흑 같은 어둠으로 버티는 자본의 심장을 후비고 싶지만 구속에 단식을 하고도 그저 죄 없는 머리칼만 또 자르고 있습니다.

       
      ▲ 우리의 설움도 나의 머리카락처럼 ‘싹둑’ 잘려나갔으면 좋겠습니다.(사진=금속노조)
     

    삶의 무게에 짓눌려 떠난 동지들을 잊을 수 없어

    “우리는 더 이상 1회용 소모품이 아닙니다. 우리는 당당한 인권을 가진 노동자입니다.” 이 한마디를 지키는 일에 왜 이렇게 힘들고 긴 시간이 필요한지 모르겠습니다.

    불법 파견에 맞서, 문자해고에 맞서 싸운 지 벌써 1,000일, 끝까지 일터를 지키려는 노력은 불법으로 응징되고 자본의 불법은 자본에게 가장 쉬운 돈으로 해결하면 그만인 세월이 만 3년을 코앞에 두고 있는 것입니다.

    200명의 우리 노동자들이 한꺼번에 노조를 만들던 보고대회 때 그 설레는 눈망울을 아직도 우리는 기억합니다. 생살 찢기듯 우리 심장 같은 조합원들, 회유와 협박에 못 이겨, 너무나 무거운 삶의 무게에 짓눌려 하나하나 눈물 흘리며 우리 곁을 떠나갈 때 그 미안함에 담긴 목소리를 우리는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수십 일을 농성 중에 우리는 사람 사는 맛을 알았습니다. 어설펐던 우리 팔뚝질이 익숙해지고 입 안에만 맴돌았던 구호가 씩씩해지면서 우리는 쇠사슬 풀어 우리의 몸을 철문에 묶을 줄도 알게 되었습니다.

    열댓 명 잡으러 수천 명의 경찰이 달려들고

    열댓 명을 잡으러 수천 명의 경찰이 달려들고 경찰보다 더 얄미운 노예 인줄도 모르는 노예들인 구사대가 난리를 칠 때, 잡혀가는 동지들을 보고 피눈물을 흘리던 우리들의 분노는 아직도 저 하늘보다 창창하게 남아 있습니다.

       
      ▲ 설움과 분노의 눈물을 흘리고 있는 조합원들.
     

    구속을 감수했고 가정 생계의 파탄을 감수했습니다. 30일 단식을 했고, 3보1배를 했으며, 우리 조합원들 벌써 벌금 전과만도 도대체 몇 개나 되는지 모릅니다.

    고통에 겨워도 연대를 포기하지 않았으며, 몇 푼의 돈에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쌓여만 가는 손배액수, 늘어가는 벌금 과태료만 우리를 막아서고 있습니다.

    이도 모자라 기륭자본은 200억 흑자 회사를 500억 적자 회사로 만들더니 생산노동자들을 정리해고 하고 사무 간접직 노동자들을 명퇴시키며 이제 마지막 땅 장사를 하겠다고 나서고 있습니다.

    기륭전자는 현대판 노예제인 파견 노동을 그것도 불법으로 한 것에 대한 저항입니다. 우리사회 양극화 및 모순의 뿌리 비정규직 문제의 상징이자 역사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난 3년을 되돌아보면 정말 힘든 것은 우리 사회는 물론 우리 안에 도사린 어차피 안 될 것이라는 패배감이나, 나만이라도 살고 봐야 한다는 극단적인 이기심과 맞서 견디는 것이었습니다.

    생계라는 이름으로, 절차라는 이름으로, 동지에 대한 속상함이나 배신감으로 얼굴을 바꾸며 우리 조합원과 우리의 투쟁을 괴롭힌 “비관”라는 귀신, 그냥 골치 아파하지 않고 아무 생각 없이 편히 살자는 “포기”라는 귀신은 끈질기고 또 강했습니다.

    우리 사회의 양심에 연대의 손길을 내밉니다

    그래서 그간 많은 투쟁이 꺾이고 많은 동지가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단단하게 단련된 우리지만 정말 외롭고 지친 소수이기도 합니다. 그럴수록 더욱 절실하게 연대를 구하고 단결 투쟁을 염원했습니다. 그 마음은 여전하지만 우리 앞에 놓인 이 가시밭 길, 한밤중 캄캄한 길에 다시 한 번 노동자 민중과 사회 양심에 총연대의 손길을 내밀게 되었습니다.

    제 몸 불 질러 버리지 않으면 쳐다도 안보는 세상에서 열사가 된 분들, 굶거나 머리라도 자르지 않으면 눈 한번 흘깃하지 않는 이 차가운 겨울의 나라가 지속되어야 합니까? 슬픔은 심장을 채우지만 우리는 이제 설움에 잠겨 있을 수가 없습니다.

    가슴에 타는 분노로 동지의 어깨를 부여잡고 연대의 발걸음 돋우어 한발 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또 한번 분노의 삭발을 하는 것입니다.

    머리카락이 잘립니다. 우리의 설움이 저렇게 싹둑 잘렸으면 좋겠습니다. 머리카락이 잘립니다. 저 더러운 자본의 탐욕이 저렇게 싹둑 잘렸으면 좋겠습니다. 비정규직의 고통이 잘리고 노동자 농민 민중을 억압하는 저 더러운 것이 뿌리까지 몽땅 싹둑 잘렸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가슴이 따뜻한 우리, 너무 선량해 일상의 고통도 이기고 거리로 나선 우리, 목이 막혀 너무나 목이 막혀 죽을 것 같은 세상에 맞서 밥그릇을 두드려 대야 하는 우리들의 투명한 희망이 새롭게 자랐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쥐어짜고 나서는 이 지옥 같은 세상을 깎고, 더불어 함께 사는 우리 노동자 참세상을 새롭게 기르는 삭발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 지금까지 싸워온 만큼 더 싸워야된다고 해도 우리가 물러설 곳은 없습니다. 이제 머리띠를 다시 두릅니다.
     

    우리가 지면 노동자 미래가 지는 것입니다

    우리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1,000일을 넘기지 않고 일터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비록 우리는 삭발에 그쳤습니다. 하지만 내일 우리는 구속을 결단하고 죽음을 결단하며 또 한 번의 투쟁의 길로 나섭니다.

    물러설 뒤조차 없기에 오직 투쟁으로 전진할 수 밖에 없는 우리는 하늘로 오르다 오르다 못해 방패로 소화기로 맞아 죽지만, 기껏 제 머리 깎고 제 곡기를 끊지만 불법 파견과 비정규직 철폐의 길이 죽음이라면 그 죽음도 영광으로 받고 나설 것입니다.

    우리는 연대로 지금 이 자리를 버텼습니다. 우리가 지면 우리 노동자 미래가 지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타협이라는 말, 실리나 실용이라는 말이 얼마나 가진 자들의 것인지 속속들이 아는 시간이었습니다. 정말 우린 사람이란 이름으로 불법 파견과 비정규직이라는 시대적 치욕을 극복하고 싶습니다.

                                                      * * *

    이렇게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기륭전자 투쟁의 공동대책위원, 후원회원이 돼주시기 바랍니다. 1500만 우리 노동자가 4천만 민중이 모두 대책위원이 되어 준다면 도대체 무엇을 극복하지 못하겠습니까. 

    지식인 전문가 정치인 문학인 여러분! 기륭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 서명과 더불어 다양한 연대 투쟁에 꼭 동참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연대로 지금껏 이 자리를 버텼습니다. 우리가 지면 우리 노동자 미래가 지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타협이라는 말, 실리나 실용이라는 말이 얼마나 가진 자들의 것인지 속속들이 아는 시간이었습니다. 정말 우린 사람이란 이름으로 불법 파견과 비정규직이라는 시대적 치욕을 극복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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