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조탄압 선진국 "살해위협과 납치까지"
        2008년 04월 14일 03:0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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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리핀은 여전히 불안한 정치상황으로 인해 활동가들에 대한 납치와 살해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지역으로 국제적으로 최악의 노동인권 탄압국가 중의 하나이다. 여기에는 한국기업도 관련되어 있는데 작년 한국기업은 필리핀에서 가장 노동인권을 탄압한 기업들로 손꼽히는 영광(?)을 누렸다.

    필리핀의 가비테 수출자유지역(Cavite Economic Processing Zone)은 필리핀 정부가 외자유치를 위해 조성한 공단으로 진출업체들은 면세혜택을 받을 뿐만 아니라 강력한 무노조 무파업 정책을 펴고 있기 때문에 공단 내에서 노조를 만드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공단의 약 50%이상을 차지하는 한국 업체를 중심으로 노동자들은 끊임없이 노조결성을 통해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려 애써왔다.

       
      ▲ 버려졌던 곳에 다시 선 아로라(왼쪽)와 노멜리타. 이들 뒤로 보이는 곳에 2007년 8월 6일새벽, 속옷만 입혀진 채로 괴한들에 의해 이들은 버려졌다
     

    그 과정에서 가비테 지역 한국 업체에서 발생한 인권침해 문제는 국내외에 알려졌고, 특히 2007년에 발생한 한국업체인 청원패션과 필스전의 노동자 살해 위협 및 납치 문제는 국제인권문제로 비화되었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한 노동자들

    2003년부터 노조결성에 나선 청원패션과 필스전 노동자들은 회사측의 갖은 방해에도 불구하고 2004년 노조를 설립하게 된다.

    그러나 회사는 단체협상에 응하지 않은 채 노조원들에 대한 해고위협을 가하며 탄압을 지속하자 두 노조는 지난 2006년 9월 파업에 돌입하였다.

    파업에 돌입하자마자 필리핀 당국은 노조원들을 폭력적으로 진압하였다. 노동자들은 이후 회사 앞에서 천막을 치고 농성에 돌입하였고 필리핀 당국은 농성장을 3개월 동안이나 봉쇄하면서 음식물 공급까지 차단하였다.

    천막농성장마저 회사에 의해 철거당해 비닐을 쳐놓고 3번의 태풍과 찌는 듯한 필리핀의 더위를 견뎌야 했다. 농성장을 이탈하면 다시 농성장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기에 여성노동자들은 구덩이를 파서 화장실을 만들고 밥을 해먹으면서 9개월여를 버텼다.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생활마저 포기해야했던 농성마저 지난 2007년 6월 4일 청원패션 농성장에 난입한 괴한들이 M-16소총으로 살해 위협을 하는 사건과 2007년 8월 5일 필스전 농성장에 괴한들이 들어와 여성노동자 2명을 납치하여 길가 구덩이에 버리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끝나버렸다.

    이 기간 동안 필리핀 노동자지원센터(Workers Assistance Center)를 통해 노조는 할 수 있는 그 모든 것을 다했다. 필리핀 노동부와 대법원을 통해 노조가 합법적 노조라는 것을 인정받았고, 노조원들에 대한 폭력사태에 대해 필리핀 검찰에 고발하였으며 필리핀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넣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해고와 폭력, 그리고 납치 및 살해위협이었다.

    한국에서의 대응

    국제민주연대와 민주노총은 끔찍한 폭력사태로까지 치달은 이 문제를 두고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작년 9월 두 노조를 직접 한국에 초청하였다. 다국적기업이 지켜야할 최소한의 인권기준을 가이드라인으로 정하여 OECD회원국에 이를 준수할 것을 정한 OECD가이드라인이 필리핀 노조에게는 남은 선택이었다.

    두 노조와 필리핀 노동자지원센터, 국제민주연대와 민주노총은 지식경제부 투자정책과가 간사를 맡고 있는 한국OECD 가이드라인 연락사무소에 공동 진정인 자격으로 2007년 9월 3일 제소를 하였다. 한국연락사무소는 2007년 10월 1일 답변을 통해, 청원패션의 경우 본사가 부도가 났기 때문에 필스전만 다룰 수밖에 없다는 입장과 함께 필스전의 100%지분을 가진 한국 본사 (주)일경의 답변을 통보해왔다.

    (주)일경은 답변을 통해, 회사는 폭력사태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으며 필리핀 현지법을 준수하며 기업 활동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여전히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주)일경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하여 국제민주연대와 민주노총은 2007년 11월에 직접 필리핀 현지로 떠나 추가 증거 수집을 하였다.

    명백히 드러난 회사 측의 거짓말

    현지조사 결과, 약 5Kg에 달하는 문서들이 필스전 노조가 합법적이고 배타적인 단체협상권을 가진 노조임을 입증하고 있었다. 이미 필리핀 대법원은 2006년 11월 20일에 판결을 통해 이 문제에 대하여 법적인 종지부를 찍어놓은 상태였다. 필스전 경영진 이 내용을 알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하여 두 차례에 걸쳐 현지 대표인 최양선씨를 만났다.

    최양선씨의 답변은 한마디로 자신은 대법원 판결을 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회사 측 변호사가 주소지를 옮겨서 대법원 판결을 전달받지 못했으니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관해서 소송을 걸려면 얼마든지 걸어보라는 것이다.

    더군다나 최양선씨는 폭력사태에 대한 질문을 하자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이 폭력사태를 직접 지시한 바는 없으나 필리핀 당국에 “회사 앞에 밥해먹으면서 냄새피우고 그래서 치우라고 했다”고 말했다고 조사팀에게 밝혔다.

       
      ▲ 필스전 회사 변호사가 운영하는 경비업체
     

    더욱 기가 막혔던 것은, 주소를 옮겨서 고객에게 판결문을 전달하지 못했던 무능한 변호사가 운영하는 ‘SUNPORT’라는 경비업체가 2007년 8월 1일에 필스전 경비업체로 선정되었다는 것이었다.

    납치당했던 필스전 노조 위원장 직무대행 노멜리타씨와 아로라씨와 함께 납치현장을 방문하였다.

    그들이 그날 밤 던져진 곳은 바로 이 경비업체에서 불과 100m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필스전과 SUNPORT가 계약을 체결한지 5일 만에 발생한 이 납치사건에 회사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것일까?

    육안으로 뚜렷하게 보이는 경비업체 건물과 두 노조원이 버려졌던 곳에선 두 납치 노동자는 여전히 그날의 악몽에 힘겨워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큰 악몽은 법을 지키고도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권리였다.

    6년이 걸려 노조 대표와 마주한 사장

    2008년 3월 11일, 제 11회 지학순 정의평화상으로 선정된 필리핀 노동자지원센터가 한국을 방문한 것에 맞추어 과천 정부종합청사에 다시 한국OECD 연락사무소와 면담을 가졌다. 진정인들은 연락사무소에 최소한 (주)일경이 필리핀 대법원까지 인정한 노조와 단체협상을 시작하도록 권고할 것을 강력하게 요청하였다.

    너무나도 명백한 사안이기에 다국적기업의 인권준수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가이드라인 연락사무소로서는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3월 13일에 지난 9월 3일에 이어 다시 (주) 일경 앞에서 규탄집회가 개최되었다.

    작년 9월 3일 면담에서는 ‘어디 허락도 없이 노조를 만들어’라고 분개했던 (주) 일경이 웬일인지 이날 면담에서는 민주노총의 중재를 받아들이고 현지에 연락해서 노조와 대화를 하도록 하겠다고 나온 것이었다. 노조는 절대로 안 된다는 회사가 갑자기 돌변한 것에 대하여 의심스럽기는 하였지만 일단 현지에서의 대화를 지켜보기로 하였다.

    2008년 4월 4일, 최양선 대표는 노조결성 움직임이 시작된 지난 2003년 이후 처음으로 노조를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고 대화 자리에 나왔다. 지루한 법적공방과 국내외에서의 캠페인이 벌어진 끝에 겨우 대화자리 하나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회사는 노조에 본사 및 현지 경영진에 사과할 것과(심지어는 노조가 귀찮게 했으므로 한국인권단체에도 사과하라고 요구하였다) 해고상태임을 인정할 것, 그리고 절대로 노조는 인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전달하였다.

    단 노조가 이를 받아들일 경우, 해고 노동자들의 복직을 고려해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회사가 자의적으로 노조를 인정하지 않아서 파업에 돌입한 노동자들을 무단이탈로 간주해 해고한 것을 받아들이라는 것은 납치까지 당하며 인정 받으려했던 노동조합을 포기하라는 것과 다름없는 통보였다.

       
      ▲ 2007년 9월 3일에 있었던 (주) 일경 앞 규탄집회
     

    이 시대 노동자들의 권리는 어디서 찾아야 하는 것인가?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외치는 정부가 들어섰다. 아울러 국제기준에 맞춘 선진화 역시 정부는 주장하고 있다. OECD가입국가로 이행해야할 가이드라인 당사국으로서 필스전 사건은 한국사회의 선진화 논의가 어떻게 진행될지를 보여줄 것이다.

    노조가 없는 것이 선진화인지, 노조를 인정하는 것이 선진화인지 말이다. 한국OECD 연락사무소는 정부기관 및 지방자치단체로 구성된 외국인투자실무위원회가 맡고 있다. 곧, 명백히 (주)일경이 노조를 인정하고 단체협상에 나설 것을 권고할 책임은 한국정부가 지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필리핀 현지 대사관을 비롯하여 정부는 이 문제가 필리핀 현지에서 발생한 문제이고 이에 개입하는 것은 주권침해라는 논리를 내세워 회피하려 하였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강조하는 자원외교에 의해 앞으로 세계 곳곳에서 한국기업으로 인해 발생될 인권침해와 환경파괴 논쟁이 끊임없이 제기될 것이다.

    OECD 가이드라인이 있는 이유는 바로 다국적기업과 같이 국경을 넘는 행위자의 활동을 최소한의 인권기준으로 규제하기 위함이다. 힘없는 제3세계 노동자와 주민들이 한국기업에 의해 피해를 당했을 때, 현재로서는 제도적인 틀에서 이의제기를 할 수 있는 것은 OECD 가이드라인뿐이다.

    필리핀 법에 따라 노조를 만들었고 파업을 했고 그래서 납치까지 당한 필스전 노동자들에게조차 기업의 편을 드는 것이 비즈니스 프렌들리일까? 회사가 노조인정을 거부한 가운데 앞으로 한국 OECD 연락사무소가 내리는 결정은 국내외에 한국정부가 OECD 가이드라인과 같은 국제인권기준을 어떤 수준에서 다루는지를 보여주게 될 것이다.

    필스전이 노조와 단체협상을 시작하기 전까지 결코 이 싸움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이미 필스전 노동자들의 투쟁은 한 사업장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자들의 인권을 둘러싼 국제적 문제로 자리매김한지 오래다. 더 큰 국제적 망신을 당하기전에 글로벌 스탠더드인 OECD 가이드라인을 이 정부가 준수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 * *

    * OECD 가이드라인을 비롯하여 이 사안과 관련된 더 많은 정보들은 국제민주연대 홈페이지(http://khis.or.kr)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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