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나라당계’ 시대의 개막
        2008년 04월 11일 10:1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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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야간 쟁점도 없고, 새로운 정책도 없고, 공천쇼와 견제론과 안정론이라는 추상적인 구호만 있어 ‘희귀한 선거’라고 불렸던 4.9총선이 막을 내렸다. 이번 4.9총선의 가장 큰 특징이자 평가의 주요한 대목은 모든 전국 단위 선거를 통틀어 한국 정치사상 역대 최저 투표율을 기록했다는 점이다.

    유권자 54% 총선불참, ‘역대 최약체 국회’의 등장

    아무리 낮은 투표율이 예측되었다고 하더라도 46%라는 투표율은 이번 총선을 총선이라고 부르기에 민망스럽다는 느낌을 갖게끔 한다. 정당 간의 선거경쟁에 의해 수행되는 대의 민주주의의 위기를 논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이다.

    정치학자들은 투표율 60%를 심리적 안정선이라고 본다. 2/3 가깝게는 투표에 참여해야 체제 정당성과 정치적 대표성이 지탱될 근거를 갖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에 비추어 볼 때, 한국의 정치는 대단히 취약한 상태에 처하게 된 것이다.

    정치가 제대로 기능하고 민주주의가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부와 권력의 공정하고도 안정적인 배분을 위한 권위가 형성되어야 한다. 그 권위는 일차적으로 다수의 참여와 선택에 의해 세워질 수 있다. 그러나 54% 유권자의 총선 불참은 18대 국회가 그러한 권위를 가질 수 없으며, 따라서 당분간 정치가 불안정할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결코 낮지만은 않은 ‘정치 실패’ 위기의 가능성

    경제성장과 선진화, 복지신장만큼 정치주체들에게 부과된 중요한 책무가 바로 정치에 대한 관심과 참여, 그리고 신뢰의 유지와 재생산이다. 노무현 정부 5년이 단지 ‘정부의 실패’와 ‘진보-개혁의 실패’였다고 하면, 이명박 정부 5년은 그것을 넘어 보수건 진보건 다 죽는 ‘정치 실패’의 시기가 될지 모른다.

    특정 정권에 대한 부정이나 비판보다 무서운 정치 전반에 대한 민심의 이반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상황, 다수의 침묵과 방관 그리고 무관심 속에 어떤 정치적 격동이 예비되어갈지 이명박 정부를 비롯, 각 정당들이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

    만약 정치실패를 겪게 되면 사회적 갈등과 분열이 해소되고 통합되지 못하면서 ‘국가부식’과 ‘사회붕괴’의 위기에 처하게 될 수 있다. 기껏한다는 자기혁신 프로그램이 공천쇼고, 대운하 쟁점의 배제였던 주요 정당들의 구태의연한 행태를 보면 그 가능성이 낮다고만 볼 수 없다.

    ‘한나라당계’의 시대 개막, ‘여당적 야당’과의 갈등-협력이 향후 한국 정치의 관건

       
    ▲ 선거 다음날인 4월 10일 현충원을 참배하는 한나라당 당직자들 (사진=한나라당)
     

    다음으로 눈여겨 볼 것은 한나라당이 간신히 과반을 확보했지만, 친박연대와 친박계열 무소속, 자유선진당 등을 합치면 ‘보수본류-한나라당계’가 197석 정도를 차지했다는 점이다. 한국 정치를 대표하는 것은 보수라는 상징적 의미를 넘어, 이들 간의 갈등-협력 관계가 실질적으로 한국 정치의 향방을 좌우하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오만한 보수’의 등장을 우려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여당적 야당’인 자유선진당과 한나라당으로 살아돌아가게 된 친박연대 그룹에 의해 주도될 보수 내부의 경쟁과 견제는 이명박식 독주를 제어하는 효과를 낼 수도 있다. 주류보수언론은 이명박 대항마로서의 박근혜 전 대표에 주목하면서 이를 극화할 것이다. 정몽준 의원의 행보 역시 정치면의 주요 아이템이 될 것이다.

    제1야당의 좁은 입지, 선명야당보다 ‘또 하나의 정부’가 되야 살아날 것

    이것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역할이 단지 적은 의석수 때문만에 의해서가 아니라, 보수의 분화와 진보-개혁의 장기침체 돌입에 따른 후과로 인해 상당 정도 제약받게 될 것임을 의미한다. 민주당은 야당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집권 경험을 극대화하면서 ‘또 하나의 정부’로서 기능하는 방향으로 스스로를 변모시키지 않으면 대단히 오랫 동안 정치적 이니셔티브를 쥘 수 없을 것이다.

    민주당은 이명박 정부에 대한 일정한 실망에도 불구하고, 또 요란스럽던 공천혁명쇼에도 불구하고 지지 상승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것은 유권자 다수가 민주당에게 요구하는 것은 정부여당에 대한 비판과 견제를 중심으로 한 야당의 선명성이라기보다는 집권경험을 보유한 정당답게 사회적 고통을 해결하는 구체적인 능력을 선보이라는 것임을 뜻한다.

    차단된 진보정당 독자 성장의 길, 매력적인 진보의 재구성 방안 마련이 핵심

    민주노동당은 5석을 확보해 원내 재진입에 성공했다. 하지만 17대 총선의 절반이다. 정당지지율도 그렇다. 진보신당은 의석확보에 실패했다. 정당 지지 2.9%를 얻어 유지 요건만 겨우 충족시켰다. 결국 진보정당 독자적으로는 입법발의도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원내에서 홀로 정치적 의제를 제기할 수 있는 자격을 상실한 것이다.

    설사 3석을 얻은 창조한국당의 협조를 구한다해도 안된다. 나름 민주노동당의 저력을 확인하긴 했지만, 분당 파동까지 겪으면서 시작된 진보의 재구성 실험이 아직까지는 유권자들에게 매력을 선사하지 못한 것이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관계에 대해 “이혼이 아니라 별거일 뿐”이라는 발언을 했던 권영길 의원은 재선에 성공했다. 권영길 의원 등의 주도 하에 민주노동당이 공격적으로 진보대연합 및 재통합 논의를 제기할 것인지, 진보신당이 그것에 응할지가 주목된다. 상호 간의 신뢰와 불신의 정도를 다시금 확인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계속 별개의 정당으로 가든 재통합을 하든 문제는 진보에 냉담해진 유권자들의 관심을 다시 끌어낼 수 있느냐이다. 이때 핵심은 민주노동당이든 진보신당이든 입을 모아 표명한 진보의 재구성 노력을 유권자들에게 실감시킬 수 있는지의 여부이다.

    보수 우위 시대 좁아진 진보의 입지가 오히려 자기 혁신을 위한 시간을 확보한 것이 될지, 결코 멀지 않은 2010년 지방선거에서 우선 평가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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