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묻지마 성장주의’와 무시무시한 경고
        2008년 04월 10일 06:0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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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 좋은 선거 결과를 낳은 선본 관계자가 선거 끝난 지 하루도 안 돼 선거 평가를 쓴다는 게 그리 모양이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게다가 필자 역시 나약한 인간 종에 속하는 한 개체인지라 지금 글을 쓰기에는 머리도 무겁고 가슴도 먹먹하다.

    하지만 <레디앙>의 원고 요청이 있었고, 나름대로 동시대인들과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하고픈 것들도 있어서 키보드를 두드려 본다.

    18대 총선은 역시 대선의 연장선

    선거 결과에 대해서 언론도 이 말 저 말이 많지만, 이번 총선은 한 마디로 지난 12월 대선의 연장선이었다. 이건 뭐 다들 오래 전부터 예상한 것이기는 하다. 하지만 범한나라당 세력의 압승과, 절반에도 못 미치는 투표율이라는 결과를 마주하고 보니 그 양상이 새삼 충격적이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워낙 민심을 잃어서 선거판이 조금은 요동치지 않겠냐는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그 요동은 범한나라당 아닌 어떤 당에 대한 지지로 나타나기보다는 엄청난 기권율로 나타났다. 현 정부에 대한 실망이 기권으로 표출됐기에 투표층 내의 ‘묻지마 경제 성장’ 투표 양상은 그 농도를 대선 때 그대로 유지했다.

    아무튼 이번 총선은 2006년 지방선거로 시작된 정치 과정의 대단원의 막이라 할 수 있다. 2006년 지방선거-2007년 대선-2008년 총선을 거쳐, 경제성장 물신주의로 무장한 새로운 보수 세력의 집권이 완성됐다. 새로운 시대의 시작에 박수를 쳐주자. 그것은 또한 새로운 투쟁의 시작을 의미하기도 하니까.

    진보 좌파로 눈을 돌려 보면, 민주노동당이 17대 의석의 절반 규모에서 원내 정당 지위를 유지한 것과, 진보신당이 원외 정당으로 시작하게 된 것이 눈에 띈다. 민주노동당의 경우에 최대 성과는 아무래도 강기갑 의원의 재선이다. 강기갑 의원의 당선은 농촌 지역에서 농민운동 세력을 중심으로 한 정치 연합의 형성 가능성을 보여준 흥미로운 사례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민주노동당 전체로 볼 때는 그렇게 긍정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필자와 일군의 사람들이 민주노동당을 뛰쳐나올 때 “민주노동당의 앞날은 좌민련(좌파 자민련)”이라고 일갈했던 그 상황에서 변화한 것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노동자 밀집지역인 창원을에서 가까스로 재선에 성공한 권영길 의원의 모습이 우리에게 아무런 감흥도 던져주지 못하는 게 그 표징이 아닐까?

    진보신당의 경우는 애초 총선에 뛰어들 때의 비장한 각오가 그대로 현실화됐다고 볼 수 있다. 선거 중반에 노회찬, 심상정 두 대표가 수도권 지역구에서 예외적인 바람을 일으켜서 느닷없는 기대와 흥분을 자아내기도 했고, 이 경험은 두 사람의 실제 당선 여부와 상관없이 앞으로 커다란 자산이 될 것이다.

    하지만 창당 1주일만에 선거에 뛰어들면서 18대 국회에서 원내 정당이 되기를 꿈꾸었다면, 그것은 지나치게 요행수를 바란 것이었으리라.

    진보신당이 표방한 ‘진보의 재구성’은, 진보신당 자신이 그렇게 천명해온 것처럼, 총선 이후에야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다.

    진보신당에게 이번 총선은 진보신당이 극복하고자 하는 ‘낡은 진보’에 대한 채찍질을 한 번 더 받음으로써 ‘진보의 재구성’이라는 과제의 막중함을 다시 한 번 절감하는 훈육의 계기였다고 할 수 있다. ‘진보의 재구성’이라는 과제를 수행하는 데는 어쩌면 원외 정당으로 시작하는 게 더 합당한 것일지도 모른다.

    진보 좌파, 죽음의 골짜기에서 다시 부활하자

    그럼 ‘진보의 재구성’을 추진하고자 하는 우리에게 이번 총선 결과가 던져주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이제 진보 좌파의 과제는 이미 존재하는 정치 세계 내에서 시민권과 지분을 확보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이번 총선 결과는 한 마디로 ‘무시무시한 경고’다. 절반에도 못 미치는 유권자만이 제도 정치 과정에 참여했다는 것, 이것은 정말 무시무시한 것이다. 진보의 위기, 민주주의의 위기 정도가 아니라 정치 자체의 위기를 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시대 상황에서 진보 좌파가 해야 할 일은 정치의 새로운 형식을 주조하는 것, 그래서 정치 자체를 복원하는 것이다. 더 이상 진보 좌파가 제도 정치 과정 안에 평면적 경쟁자들 중 하나로 참여하는 것만으로는 이 심대한 위기에 맞설 수 없다. 오히려 체제의 공범이 될 뿐이다.

    지난 세기 혁명 교과서에 나오는 선전 선동의 정치를 반복하는 것도 답은 될 수 없다. 대중이 모든 정치적 메시지를 불신하는 시대에는 어떠한 폭로도, 선동도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아래로부터 새로운 정치 문화를 만드는 것, 대중(정치 활동가 역시 그 일부다)의 정치 행위를 걸음마부터 새롭게 훈련하는 것이다. 아마도 모든 것을 대중의 직접 참여를 통해 새롭게 시작하는 게 우리가 가진 유일한 힌트일지 모른다.

    ‘진보의 재구성’의 두 축은 첫째 노동운동을 완전히 새롭게 다시 시작하는 것이고 둘째 지역의 생활 현장에서 진보적 지역 정치를 만드는 것이다. 새로운 정치 문화와 정치 행위 양식은 이 시도들 속에서 그 꼴을 갖춰갈 것이다.

    오늘은 일단 여기까지만 확인하자. 앞으로 할 이야기들이, 할 일들이 더 많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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