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천 노인들과 함께 웃고 울었다"
        2008년 04월 10일 01:1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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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일 치러진 18대 총선은 보수의 압승과 진보의 패배로 요약할 수 있다. 한나라당, 자유선진당, 친박연대는 200석에 육박하는 거대한 보수국회를 형성했으며 민주노동당은 지난 총선의 반 정도인 5석에 그쳤고 진보신당은 의석을 얻지 못했다.

    그런데 보수의 물결 속에서 의미 있는 일이 벌어졌다. 한나라당 실세인 이방호 사무총장의 지역구인 경남 사천에서 민주노동당 강기갑 후보가 승전보를 전한 것이다. 강 후보는 이방호 총장을 불과 178표차로 누르고 두 번째 국회 입성에 성공하게 되었다.

       
    ▲강기갑 의원과 민주노동당 지도부의 사천 집중유세, 최근의 선거에서 보기 힘든 많은 인파가 모였다.(사진=강기갑 후보 선본)
     

    특히 강기갑 후보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이방호 후보에 크게 뒤지다가 점차 그 폭을 좁혀왔으나 출구조사에서 다시 이방호 후보에게 크게 뒤지는 것으로 나와 당선이 사실상 물건너 갔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개표와 함께 10% 이상 격차를 벌리며 이방호 후보를 압도하기 시작한 강 의원은 이후 이 후보 강세지역의 개표함이 열리자 점차 격차가 줄어들며 손에 땀을 쥐는 승부를 연출했다. 하지만 결국 0.4%포인트 차의 극적인 승리를 거두게 되었다.

    아슬아슬한 승부인데다 총선 최대의 이변으로 평가받는 강기갑 의원의 당선을 놓고 여러 관측들이 쏟아지고 있다. 특히 방송, 신문 등 각 언론매체는 강 의원의 당선을 두고 이방호 사무총장에 대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승리로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보수적인 농촌에서 박근혜 후보의 지원만으로 강 의원의 당선을 평가할 수 없다. 더구나 이방호 사무총장은 삼길포 수협조합장만 4선을 하고 2선 국회의원을 지내 조직력에서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었다.

    최철원 강기갑 의원 정책특보는 “이 후보의 조직력을 보면 아파트는 층마다 한 명, 마을에는 2명 이상의 운동원을 배치할 정도로 엄청났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조직적으로 항상 100명 이상을 모아놓고 세를 과시하곤 했다”고 말했다.

    조직력에서 큰 열세를 보였던 강 의원은 조직력에 의존하는 구태 선거운동 방식보다 진정으로 주민에게 다가서는 ‘섬김’ 선거운동 방식을 택했다. 막개발 공약에 의존하는 이방호식 방식보다 농어촌교육 개선방안 토론회와 같이 주민들 실생활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방식과 공약을 선택했다.

       
      ▲강기갑 의원(사진=강기갑 후보 선본)
     

    김찬섭 강기갑 의원 보좌관은 “강기갑 의원이 17대 의정활동에서 보여준 진정성과 350여 개 자연부락 중 200여 개 가까운 부락을 직접 찾아가 의정보고를 했던 것이 주민들의 마음을 파고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강 의원은 다른 선거에서 보여주는 것과 같은 자기 자랑이나 네거티브 공세를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강 의원이 선거기간 사용했던 ‘선거농사’는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강 의원에 대한 비방 문자, 여론조사 악용과 같은 불법선거에도 불구하고 강 의원의 ‘종자론’은 사천 선거판을 더 혼탁하게 만들지 않았다.

    이런 강 의원의 승리는 구태정치에 대한 승리라고 할 수 있다. 이방호 후보의 조직동원, 흑색비방, 관권선거에서 승리를 거둔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역시 사천 시민들의 진심이 있다.

    최 특보는 “65세 이상의 인구가 70%에 달하는 사천에서 강 의원은 그들의 하소연을 듣고 같이 웃고, 울었다”며 “3월 8일 총선필승결의대회에서 한 할머니가 버려진 유모차에 몸을 기대 4~5km를 걸어와서 ‘강기갑을 꼭 당선시켜 달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한미 FTA에 대응하는 농민대표라는 점도 강 의원 지지자들의 마음을 이끌어냈다. 전국농민회총연맹에서 농민운동을 한 경력과 의정활동 내내 두루마기와 한복을 입고 다녔던 그의 모습이 농민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고스란히 표로 반영되었다. 이방호 후보는 삼천포 등 어촌부락 쪽에서 더 지지율이 높았으나 강기갑 의원은 농촌지역에서 높은 득표율을 보였다.

    전통적으로 민주노동당 강세지역이었던 울산에서 노동자 후보들의 실패가 있었음을 감안하면 농민회의 규모도 크지 않은 사천에서 농민들이 지지한 후보의 승리는 구태정치에 대한 농민들의 직접적인 심판과 강기갑식 정치에 대한 선택의 의미가 있다. 그 의미 앞에 친박계열의 도움은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다.

    최 특보는 “솔직히 막강한 한나라당 조직이 무너진 것이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15%포인트 차이가 벌어졌는데 이렇게 역전한 것은 기적에 가깝다”고 말했다.

    강 후보는 당선 직후 소감 발표에서 “사천도 놀라고 대한민국도 놀랐다”며 “저에게 준 한 표 한 표는 오만한 권력에 대한 심판이요.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잘 사는 세상을 열라는 엄중한 주문이라고 생각하고 혼신의 힘을 다해 실천으로 보답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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